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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 몰라?

Author: 강캔디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06-20 18:55:02
권하윤은 권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아니다. 때문에 권씨 가문의 사상이 늘 이해되지 않았고 약혼남이 다른 여자와 뒹구는 걸 본 지금은 속이 메쓱거렸다. 민승현에게 살갑게 대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

어제 민도준과 충동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도 사실 보호막을 하나라도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민도준이 그나마 어제의 인연을 봐서 나서주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알고 보니 구멍 난 우산이었을 줄이야.

외투를 일부러 벗어두고 간 남자를 떠올리니 권하윤은 또다시 속이 뒤틀렸다.

지난 반년 동안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지내오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던 그녀였다. 상대에게 들킬까 두려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눈빛도 되도록이면 남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만약 어제 민도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평생 그렇게 가짜 신분으로 생활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민도준이 나타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는 권하윤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진짜 그녀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권하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게 폈다.

한평생 가짜로 살더라도 남한테 당하기만 할 수 없었다. 하필 민도준을 건드려서 일이 귀찮게 되긴 했지만.

-

민씨 저택.

권하윤은 메이드들과 함께 가족 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려고 할 때 손 하나가 쑥 나와 잔 밑은 받들었다.

“오늘 와인 안 마실 거라서 보르도 컵 놓으면 혼날걸요.”

고개를 들어보니 우아한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권하윤을 보고 있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와 행동이었다.

“저는 원혜정이라고 해요. 형님이라고 불러요.”

“아, 형님.”

자기소개를 끝낸 원혜정은 메이드더러 위스키 잔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더니 말없이 권하윤을 도왔다.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시선에 고개를 들어보니 강민정이 민승현 어머지, 즉 그녀의 이모 강수연의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친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활짝 웃은 채 귓속말을 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방향을 가리키기까지 했다.

그제야 방금 전 주방에서 술잔을 가질 때 강민정이 곁을 지나갔던 게 생각났다.

‘하, 일부러 나 엿 먹이려는 거였어?’

그러던 그때, 원혜정이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민정이가 어릴 때부터 다섯째 숙부와 숙모가 거의 기르다시피 해서 승현 도련님도 엄청 예뻐해요. 친동생처럼.”

‘하 친동생처럼 친해서 같이 몸도 섞나?’

권하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다른 사람한테 할 수 없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민씨 가문 어르신 민상철이 휠체어에 끌고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그가 나타나자 현장은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때, 민상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민도준 이 자식은 또 어디 갔어?”

민도준의 이름 석 자에 권하윤은 어색한 듯 몸을 움질했고 민승현의 불만 섞인 눈총을 받았다.

그때 민상철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도준이가 어디 우리가 부른다고 올 애예요? 할아버지가 직접 불러보세요.”

민상철의 표정은 순간 구겨졌고 눈은 차갑게 식었다.

“한심한 놈!”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뒤에서 장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몰래 다른 사람 험담을 하면 수명 줄어요.”

민도준이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왔다. 190이 다 되는 큰 키는 순간 현장을 압도했다.

오늘 가족 연회는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민상철의 심기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갑자기 들리는 충격적인 한 마디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심지어 방급 입에 물을 머금었던 권하윤마저 사레가 들렸다.

최대한 낮은 소리로 헛기침을 했지만 또다시 민승현의 불만 섞인 눈총을 받았다.

“꼭 이럴 때 사람 쪽팔리게 행동해야겠어?”

곧이어 낮은 불평이 들려왔다.

권하윤이 물을 마시는 틈에 민도준은 어느새 빈자리에 착석했다.

그는 잔뜩 긴장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삐딱하게 앉더니 최선을 다해 자기 존재감을 낮추는 권하윤을 힐끗 살피고는 다시 민상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극도로 어두워진 민상철의 낯빛에 모든 사람들이 그가 화를 낼 거라고 짐작했지만 모두의 생각이 빗나갔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어디 갔냐고요? 어디 갔더라…… 생각 좀 해볼게요.”

민도준은 테이블 위에 놓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맞은켠에 앉은 민상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저 배신한 놈 족치고 왔어요. 글쎄 누군가 사람을 시켜 절 감시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새끼 눈알 뽑아냈어요. 칼을 눈에 찔러 넣고 한 바퀴 빙 돌리고 푹 뽑아내니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덕분에 손이 좀 더러워졌어요.”

동작까지 더해가며 설명하는 남자의 눈은 살기가 가득했다.

“그만!”

민상철은 끝내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

그리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은 저마다 손수건을 입에 대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민도준은 그 사람들을 같잖은 듯 흘겨봤다.

‘꼴에 그런 눈으로 날 봐? 저들은 깨끗한 척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둘러보던 그때 경멸하거나 무서워하는 눈빛들 속 유일하게 맑게 빛나는 눈이 보였다. 마치 이 일은 자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선을 긋고 있는 느낌이었다.

민도준은 재미있는 듯 권하윤을 살피더니 잔을 들며 인사했다.

무심한 듯 건넨 인사에 권하윤은 소름이 돋았다.

역시나 다음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그녀를 향했다. 심지어 민상철 까지도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민상철의 차가운 눈빛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자 권하윤은 마치 거대한 산에 눌린 듯 숨이 턱 막혔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그때 옆에 있던 민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형.”

아마 저를 향해 인사한 거라 착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안하무인이던 민도준이 겨우 명문에 끼어들까 말까 한 말단 가문의 여자한테 인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을 팔아 자리를 굳힌 권씨 가문은 이곳에 있는 수많은 명문 가문들 사이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그러던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민도준은 자신이 민도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먼저 잔을 비우며 예의를 표했다.

그제야 권하윤은 그의 뒤에 숨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데 겨우 안도하려던 그때 민도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수씨, 나 몰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민도준을 건드렸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 피할 수도 없게 되자 권하윤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을 들었다. 그리고 당당하고 대범한 듯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건넨 한마디에 민승현마저 멍해졌다.

‘권하윤이 형을 안다고? 할아버지도 가족 연회 핑계를 대서 겨우 만나는 형을 권하윤이 어떻게?’

그 시각 사방에서 몰려오는 시선에 권하윤은 담담한 척 애를 썼다.

‘절대 티 내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면 안 돼.’

이런 자리에서 만약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할 게 뻔했다.

그때 민상철이 의아한 듯 눈썹을 들썩이며 민도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알아?”

권하윤은 표정을 숨기려고 잔을 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 때문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그 일을 말해버릴 거란 걱정을 할 필요도 없겠는데 상대는 하필 민도준이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 스릴을 즐기고 재미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지금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그저 민도준이 저한테 살길을 남겨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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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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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사모님. 지훈 도련님이 왔습니다.”“뭐?”‘민지훈이 왜 하필 이 시간에 왔지?’원혜정은 권하윤을 힐끗 흘켜보며 명령했다.“위층으로 데려가요. 절대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입이 틀어막힌 채 질질 끌려 계단을 오를 때 웃음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누가 왔어.’사람이 온 걸 확인 한 권하윤은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보디가드를 뿌리치려고 애썼다.그 때문에 보디가드는 소리를 막기 위해 하는 수없이 그녀를 바닥에 눌렀다.그 시각 아래층.원혜정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지훈을 맞이했다.“도련님, 여긴 웬일이에요?”“형 찾으러 왔어요. 형 집에 있어요?”“이걸 어쩌나. 형은 아까 나갔는데.”“그래요?”민지훈은 아무 일 없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마침 계단 아래에 떨어진 여자 신발에 눈이 고정되었다. 이내 고민되는 듯 주위를 서성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형한테 물건 빌리러 왔거든요. 급하게 쓸 데가 있어서.”“무슨 물건이요? 제가 찾아서 보내드릴게요.”“제가 어떻게 형수님께 막 시키고 그래요? 제가 형 방에서 직접 찾을게요.”원혜정의 대답을 듣기 전 민지훈은 이내 위층으로 올라갔다.“아, 지훈 도련님.”“…….”그리고 2층에 도착한 순간 보디가드들에게 입이 막힌 채로 잡혀 있는 권하윤과 맞닥뜨렸다.뒤에서 따라오던 원혜정의 낯빛은 순간 어두워졌다.권하윤은 깜빡깜빡 점등되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두 사람의 입모양을 살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순간 마치 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라도 된 듯 숨 막히고 목마르고 더웠다.간질간질한 느낌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와 고통스럽고 기분이 이상했다.흐릿한 의식 속에 권하윤은 누군가 자신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가는 걸 느꼈다.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목을 끌어안고 차가운 피부에 닿으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갖다 댔지만 상대가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안 돼요. 이러면 저 형한테 맞아 죽어요.”민지훈은 권하윤을 방 침대에 눕히고는 마치 농락이라

    Last Updated : 2023-06-20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3화 돈이면 뭐든 가능하다

    갑자기 들려오는 호통에 권하윤은 억울했는지 나지막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그 목소리는 전화를 통해 민도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씨발, 기다려.”곧이어 낮은 욕지거리가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민지훈!”“응, 형. 무슨 일이야?”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민지훈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권하윤 데리고 집에서 나와.”“뭐? 본가 저택이 어떤 곳인지 형도 알잖아. 보는 눈이 그렇게나 많은데 내가 무슨 수로 사람 하나를 빼돌려?”“흥. 뭐라도 얻어내겠다는 꼼수냐?”“에이, 내가 설마 그러겠어?”민지훈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그런데 내가 오늘 큰 형수님한테 원한을 산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남평 건물 네가 가져.”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오케이 콜. 사람은 걱정 마. 내가 무조건 빼돌릴게.”-돈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말이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민지훈한테는 그야말로 진리였다.반 시간 후, 마대에 꽁꽁 싸맨 사람 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민 씨 저택을 빠져나왔다.그리고 사람을 실은 순간 차는 쌩하고 떠나버렸다.미처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민지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헤실 거리며 떠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 시각 차 안.대충 맨 마대를 홱 풀어버리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습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원래도 더워 미칠 지경이었는데 안에 묶여있은지라 권하윤은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젖은 채로 얼굴에 들러붙어 있고 눈은 흐릿했으며 양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런 그녀는 민도준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품에 폭 안겨왔다.지금껏 긴장하고 부끄럼을 타며 어색해하던 모습과는 달리 주동적인 모습이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을 자기 무릎에 눕히며 외투를 벗어 여자의 몸을 덮었다. 앞쪽에서 슬쩍슬쩍 보내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한 번 더 봤다가 눈알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민도준이 슬쩍 눈을 들며 경고하자 앞에서 운전하던 한민혁이 이내 고개를 돌리며 어색하게

    Last Updated :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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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4화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요

    연말이 되자, 하윤은 사람들 다 같이 경성에서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경성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진가연과 한성운도 그러고 싶어 했다.남은 사람은 양현숙이었다.하윤은 원래 양현숙을 데리고 경성에 오려고 했는데, 양현숙이 해성시의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양현숙은 집을 지켜야 한다면서 오래 집을 비우면 너무 처량한 느낌이 난다고 했다.하윤은 양현숙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집뿐만이 아니라 이성호와의 추억이다.그래서 하윤은 그렇게 요구하지 않고 도윤을 데리고 자주 보러 갔다.이번에 하윤의 요청에 양현숙이 기분 좋게 동의하면서 31일에 같이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하윤은 손님 맞을 준비를 했고 곧 새해가 다가왔다. 양현숙이 하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하윤에게 물었다.“하윤아, 네 오빠 귀국한다는데, 만나볼래? 싫으면 너희 방해하지 말라고 할게.”그때 병원에서 기분 나쁘게 헤어진 뒤로 만난 적이 없었다.승우는 도윤의 나이를 잘 기억하고 있어 가끔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보내주었다.이렇게 여러 해 지나고 하윤은 전의 일을 마음에 담아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것에 대해 조금 자책했다. 양현숙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하윤은 양현숙이 중간에서 힘들까 봐 가볍게 말했다.“오빠 돌아왔으면 같이 오세요. 우리 한 가족 되게 오래 같이 못 만났잖아요?”양현숙은 기뻐서 대답했다.“알았어, 그렇게 오빠한테 전달할게.”...통화를 마친 하윤은 이 일을 도준에게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승우가 하윤의 오빠지만, 하윤이 이 이년 사이에 아무 이성과 접촉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컷 모기까지 도준은 하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도준은 승우를 항상 경계해 왔다.도준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그날 저녁 도준이 돌아왔을 때, 하윤은 120%로 잘 보이려고 했다.하윤은 발꿈치를 들고 도준의 외투를 벗겨주었다.“여보 왔어요? 어땠어요? 오늘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도준이 하윤을 힐끔 쳐다보고 소파에 앉아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3화 당신은 참 좋은 엄마인 거 같아

    하윤은 요즘 아들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도윤은 다른 애들과 달리 장난감으로 놀기 좋아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책을 보는 일이었다.가끔 하윤은 도윤이 너무 오래 앉아 있어 힘들까 봐 텔레비전 앞에 데려와서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그러나 하윤이 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도윤이 뉴스 채널을 돌려서 재밌게 보고 있었다.소파 위에 있는 작은 아들을 보고 하윤은 걱정이 앞섰다.‘설마 내가 너무 연습에 몰두해서 아들을 소홀히 했나? 그래서 아들이 상처를 받아서 저런가? 안 돼! 도윤에게 완벽한 동년을 줄 거야!’하윤은 이 일이 엄청나게 큰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생각하고 도윤을 데리고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과 많이 만나게 하려고 했다. 많이 만나면 도윤의 동심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하윤은 어디를 가던 도우미가 자기를 보는 것이 싫어, 그냥 아파트에 살았다. 이곳에는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있었고 그중에 모래로 촉감놀이 하는 곳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하윤은 그곳에 도윤을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날씨가 좋아 하윤은 도윤의 손을 잡고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갔다.모래가 있는 곳으로 가자, 도윤은 모래를 뿌리며 재밌다고 웃어대는 친구들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하윤은 도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신나게 말했다.“도윤아, 친구들 얼마나 재밌게 놀아, 우리도 얼른 들어가서 놀자.”도윤은 눈썹이 붙을 정도로 찌푸렸지만, 하윤이 기대에 찬 모습에 하윤과 함께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도윤은 하윤이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하윤과 함께 모래에 들어갔다.도윤의 눈썹과 눈은 하윤을 닮았고 나머지는 도준과 똑같았다. 너무 잘생겨서 순식간에 다른 애들의 주의를 끌었다.한 아이가 도윤에게 말했다.“우리 같이 모래 파서 궁전 만들자!”그 아이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도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미안, 난 엄마랑 놀아야 해서.”하윤은 도윤이 자기랑 놀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마음속으로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2화 결혼식 한다고?

    하윤이 해성시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소혜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혜는 딸 민효연이 첫돌 생일을 쇠는 김에 미뤘던 결혼식도 같이 한다고 했다.지훈이 산을 구매해서 이제 산속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하윤이 깜짝 놀랐다.“결혼식 한다고?”“네!”소혜는 간식을 먹으며 말했다.하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혜를 불렀다.“소혜야.”소혜가 목을 쭉 뻗었다.“네?”지훈이 욕실에서 몸을 내밀자, 빛나는 눈은 여우처럼 사람을 홀렸고 머리가 젖어 더욱 섹시해 보였다.지훈의 보조개는 아주 귀여웠다.“수건 가져다줘.”지훈의 섹시한 모습에 소혜가 다급히 말했다.“언니, 오빠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줄래요? 그럼, 이렇게 정하고 저는 남자 만지러, 아, 아니, 수건 가져다주러 갈게요!”‘헤헿.’통화를 마친 하윤이 소혜가 보낸 웨딩사진을 보고 마음이 조금 찡했다.소혜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지훈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저녁 식사를 할 때, 하윤이 이 일을 도준에게 말했다.“지훈이 소혜랑 결혼식 올린대요. 다음 달에 한다는데, 당신이 언제 경성에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던데.”도준이 하윤을 바라봤다.“그건 당신한테 달린 거 아닌가? 당신이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내가 힘을 좀 써서 당신을 잡아와야지.”“말하는 것 좀 봐요. 제가 무슨 나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하네요? 다 연습하러 가는 거지.”하윤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일부러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소혜랑 지훈이 결혼식 한대요.”도준은 물을 마시고 콧소리가 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도준이 눈치채지 못하자, 하윤은 더 선명하게 눈치를 줬다.“아니, 쟤네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미뤘던 결혼식 올리는 거네요?”도준이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아기를 배속에 다시 밀어 넣고 결혼식 할 수는 없잖아?”하윤은 화가 나 그릇에 담겼던 완자에 구멍을 뚫었다.“맞아요! 맞는 말이죠!”도준이 눈치가 없자, 하윤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도준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봤다.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1화 가고 싶어?

    경성에서 하윤이 자기 전에 핸드폰을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욕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여보!”“도준 씨!”“도준 씨!!”욕실의 안개가 도준의 넓은 어깨에 흩어졌고 도준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가슴팍이 보였고 물기를 채 닦지 않아 가슴팍과 근육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도준은 하윤의 다급한 부름에 어디 부딪힌 줄 알고 급히 나왔는데, 나와보니 하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도준은 들고 있던 수건으로 하윤의 엉덩이를 때렸다.“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봤어?”하윤은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도준의 어깨에 놓고 핸드폰을 도준에게 들이밀었다.“빨리 봐봐요! 빨리!”하윤이 너무 날뛰어 핸드폰을 너무 가까이 대는 바람에 도준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도준은 하윤의 손목을 뒤로 잡아당겼지만 하윤이 손을 흔드는 바람에 인내심이 없어 하윤의 허리를 안고 침대에 눕혔다. 혹시라도 너무 흥분해서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보기 귀찮으니까 얘기해 줘.”“고은지가 결혼한대요! 누구랑 하는지 맞혀 봐요!”도준이 물어보기도 전에 하윤은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곽준호! 곽도원의 아들 말이에요! 세상에, 아무런 연관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결혼하게 된 거죠?”도준은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아무 연관이 없진 않지. 전에 곽도원이 고은지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고 술자리를 열었었어.”“네?”하윤이 깜짝 놀랐다.‘그럼, 고은지가 곽준호 새엄마? 세상에! 나보다 더 용감하네?’하윤은 참지 못하고 도준을 밀었다.“얼른 얘기해 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팔을 하윤의 다리에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하윤은 도준의 팔을 치워버렸다.“쳇, 당신도 몰라요?”하윤의 귀여운 모습에 도준이 하윤의 볼을 꼬집으며 그녀를 돌렸다.“그렇게 알고 싶으면 결혼식에 가면 되겠네.”하윤은 볼이 꼬집혀서 말을 똑바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60화 슬픈 멜로디(99)

    준호는 가볍게 물었지만, 눈빛에는 긴장함이 깃들어 있었다.준호는 은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마음도 자신처럼 뜨거운지 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은지가 왜 준호를 찾지 않고 준호가 왔을 때 그에게 기회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수도 없이 많아진다. 은지를 볼 수 없을 때는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만나니까 가지 말라고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지 말라고 잡으면 은지 마음속에 준호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준호의 마음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져 버렸다.준호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자신의 기분을 은지가 느끼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너 속이기 싫어, 난 너 없어도 잘 살아.”준호의 손에 힘이 빠졌고 빛나던 눈도 빛을 잃었다.준호가 기분이 처져 손을 떼려고 하는데, 은지의 차가운 손이 준호의 손등을 감쌌다.“근데 네가 있으면 난 더 기분이 좋아서 매일 행복하게 살 거 같아.”실망했던 준호는 조금 희망을 얻고 말했다.“왜 말을 그렇게 늦게 해! 날 그렇게 힘들게 할 거야?”은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마도?”준호는 은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정말 기뻐서 나오는 웃음은 더 본 적이 없었다.준호는 성큼성큼 은지에게 다가가 입맞춤했다.“고은지, 너 이번에 또 가면 너 절대 안 놔줄 거야!”“응.”비음이 섞인 은지의 목소리에 준호의 몸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준호는 은지를 품에 안았다.“더 이상 나 화나게 하면 안 된다?”“될수록 그렇게 해볼게.”은지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성격에는 문제가 없어?”“너!”준호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계속 품에 안고 싶었던 은지를 안고 있어 화를 낼 수 없었다.“성격 안 좋은 거 나도 알아, 차근차근 알려주면 나 다 고칠 수 있어.”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말은 잘 듣네.’“다 고쳐도 나 좋아해야 된다? 안 그러면 너 안 놔줄 거야!”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될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9화 슬픈 멜로디(98)

    아까는 은지에게 핍박을 당해 자기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다.두 사람은 마주 보며 차에 앉아 있었고 은지가 준호를 지그시 바라보자, 준호는 그 물음을 다시 물어볼 수 없었다.그러나 준호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한 적 있어.”아까까지 겨울의 추위에 덜덜 떨던 준호가 은지의 대답에 봄으로 끌려온 것 같았다.준호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아 다시 물었다.“뭐라고?”은지는 담담하게 바로 대답했다.“이 6개월 동안 너 생각한 적 있다고.”이 6개월 동안 은지는 준호처럼 어린 사람, 준호처럼 무모한 사람, 은지를 마음에 들어한 사람,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 중에 준호처럼 진심으로,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은지는 30여 년간 계속 연기를 했었다. 이성희한테서 귀염을 받으려고, 고씨 집안의 사랑을 받으려고, 곽도원의 귀염을 받으려고 말이다.은지가 수많은 자태를 뽐냈지만, 준호는 은지가 가장 악독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고도 좋아한 사람이다. 그래서 준호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생각났다.“그럼, 앞으로 생각 안 할 거야.”“너!”준호가 다급히 말했다.“왜? 아까는 내 생각 했다며?”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준호를 바라보았다. 은지는 준호의 화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준호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나, 나도 네 생각 했어.”이때 차의 라디오에서 로맨틱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준호는 평소에 이런 노래를 듣기 싫어했는데, 지금 들으니 아주 로맨틱했다.준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은지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가게는 저기 있어.”은지가 물어보지 않자, 준호도 은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나랑 가는 거야, 마는 거야?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용기가 안 나!’마을이 너무 작아 노래 한 곡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은지가 차에서 내리자, 준호도 따라서 내렸고 은지가 계단으로 올라가자, 준호도 따라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8화 슬픈 멜로디(97)

    호텔 내부의 뜨거운 공기에 준호는 재채기를 했고 곧이어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은지를 발견했다.반년이 지나 은지의 머리는 좀 길었지만 조금 헝클어진 상태로 풀어 놓았다.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전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었다. 준호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열정 넘치는 아저씨가 준호 보고 얼른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술을 부어주었다.“은지 남자 친구죠?”준호는 은지가 또 전처럼 새엄마라고 할까 봐 경계했다.그러나 은지는 그저 간결하게 대답했다.“아니요.”준호는 한숨 돌렸다. 그러나 곧이어 준호는 또 짜증이 났다.이제 은지가 준호의 새엄마도 아니니 정말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희현은 은지에게 귓속말했다.“저 사람은 왜 또 언니 잡으러 온 거예요? 제가 문 지킬 테니까 도망갈래요?”말을 채 하지 못했는데, 은지가 희현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왜요? 이 계획 별로예요?”“아니, 너 목소리 너무 커서 저 사람이 너 보고 있어.”과연 고개를 돌리자, 준호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희현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제 막 유명해지려고 하는데, 죽으면 안 되지.’희현이 한 말 때문인지, 은지가 준호를 불러 놓고 준호랑 말을 안 해서인지, 밥을 채 먹지 못했는데, 그는 은지가 화장실을 갔을 때 막아섰다.은지가 손을 씻고 돌아섰는데, 준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은지는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준호가 지금까지 버틴 것이 기적 같았다.“손 씻으려고?”준호는 잘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은지의 말에 또 화가 났다.“손 씻는다고? 내가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손 씻으러 왔겠어?”은지는 준호의 손에 묻은 양념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아니겠지만, 손은 씻어야 할 거 같아.”준호는 은지가 한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씻었다.손을 다 씻은 준호는 은지가 자리에 돌아갔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은지가 옆에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두 사람은 연인처럼 붙어 있었다.은지가 준호를 보자,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7화 슬픈 멜로디(96)

    ‘설마 고은지?’곧이어 여자가 목도리를 벗자, 얼굴이 보였다.은지가 아니라, 전에 은지와 함께 준호를 속였던 배우 희현이었다.연말이 되자, 밖에서 일하던 자녀들이 다 무진으로 돌아왔기에 마을에 못 보던 차가 많이 세워져 있어 희현은 준호의 차를 의심하지 않고 차 주변을 돌며 통화를 했다.“여보세요? 언니, 저 도착했는데, 어디 계세요?”“호텔 쪽에 있어요? 아, 그럴 줄 알았으면 택시 타고 호텔로 갔죠.”준호는 희현의 통화를 듣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언니? 고은지인가? 고은지도 여기 있나?’...무진에 호텔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항상 손님이 별로 없었다. 연말이라 손님이 더 없어서 주인장은 일 층에 탁자를 다 붙여서 음식을 해놓았다. 아이들이 모여 있어 희현이 왔을 때 아이들이 희현에게 달려왔다.“희현 언니!”희현은 통쾌하게 용돈을 나눠줬다.“이리와, 언니 돈 많이 벌어서 너희 용돈 줄게!”아이들을 보내고 희현은 창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언니, 저 왔어요!”은지가 처음에 무진에 왔을 때는 준호를 피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져 사탕 가게를 책방으로 바꾸고 알바생을 찾았다. 이 책방에서 책을 보면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했다.이 반년 동안 은지는 여행을 다니면서 지냈다.며칠 전, 호텔 주인이 은지보고 무진에 와서 연말을 보내라고 했고 아이들이 은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오기로 했다.희현은 옆 마을에서 드라마를 찍다가 같이 식사하러 왔다.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둘러앉았다.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준호만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차가워진 도시락을 들고 화를 냈다.준호는 은지가 외롭게 연말을 보낼 줄 알고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이렇게 화목하게 모여서 보낼 줄 몰랐다.준호는 몇 시간을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자신이 참 바보 같았다.이렇게 도시락을 건네주기는 좀 그렇고, 아무 말도 안 건네고 가자니 아쉬

  •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제1656화 슬픈 멜로디(95)

    준호도 그동안 못 완성했던 임무를 마저 수행해야 했다.전에는 은지를 찾는 데만 집중해서 임무는 뒷전이었다. 이번에는 각 지역을 하나씩 제대로 돌아봐야 했다.돌아본 곳이 많아질수록 준호의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마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자연과 마주하니 준호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3개월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준호는 남한성에 돌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팀장은 준호가 전과 달라진 모습에 칭찬했다.“이런 일 많이 하니까 좋은 점이 있네.”...그 후로 준호는 예전처럼 훈련하고 임무를 수행했다.이곳에 있으면 외계의 간섭을 덜 받기에 사람들이 준호의 집안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개의치 않았다.그저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준호는 신옥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은지 씨가 정말 차가운 사람이라면 날 위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을 거야.’신옥영도 이 비밀을 준호가 알게 되면 많은 것을 바꾸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은지처럼 작은 일도 따지는 사람은 무조건 알았을 것이다.준호는 전에 은지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고은지 나한테 정은 있었나?’준호는 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만약 고은지가 나한테 마음이 없다면 이미 놔줬으니까 다시 가서 방해하면 안 돼. 근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면?’...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어 길거리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준호는 신옥영이 머무는 저택으로 갔는데, 집안이 시끄러웠다.하나가 장원수를 지휘하며 집을 꾸몄고 하나는 신옥영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신옥영에게 애교를 부렸다.올해에 준호는 신옥영의 저택에서 이 부녀를 자주 봤는데, 처음에 그들을 만났을 때,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장원수를 쏘아보며 일자리며 가족 관계까지 다 물어봤었다.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신옥영은 재혼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준호는 신옥영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자기는 신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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