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에둘러 민도준 곁으로 다가갔다.그러던 중 지나쳐 온 사람 중 팔이 괴이한 모습으로 꺾여 있는 뚱보가 눈에 들어왔다.그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순간 쾌감이 밀려왔지만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도 함께 덮쳐왔다.두 사람이 약 두 걸음 정도 떨어져 있을 때 민도준이 갑자기 권하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그녀를 껴안은 채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왜 이렇게 늦어? 다리에 힘이 풀렸나?”민도준이 매번 크게 싸우고 나면 왠지 모를 화와 피가 들끓는 것 같은 흥분이 그의 정신을 지배하곤 한다.지금도 마찬가지로 들끓는 피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당장이라도 권하윤의 허리를 부러트릴 듯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권하윤은 이럴 때 그를 거절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거리낌 없이 행동하다가 소문이라도 새어나갈까 봐 작게 버둥거렸다.“사람 있어요.”민도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살짝 쓸었다. 그 덕에 손에 묻은 피가 새하얗게 질린 권하윤의 얼굴에 묻어 약간의 색을 더했다.“이 사람들은 다 죽었다 생각하면 돼.”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순간 멍해졌다.주위에서 들리던 울부짖음도 그 소리에 더욱 날카로워졌다.겁 많은 똘마니들은 민도준이 저들을 정말 죽이기라도 할까 봐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조금 배짱이 있는 놈들은 오히려 민도준을 협박했다.하지만 그저 자신들의 보스가 예전에 얼마나 잘나갔는지 자랑해 대며 자기들을 죽이면 보스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협박이었다.민도준은 그들의 분노와 애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마치 정말로 죽은 사람 대하듯 그들을 대했다.그러더니 갑자기 권하윤이 걸치고 있는 커다란 외투를 잡아 당겨 그녀를 자기 앞에 끌어오더니 피 묻은 칼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었다.“아까 하윤 씨 만진 놈한테 복수 해.”권하윤은 그 칼을 손에 받아 들었지만 마치 뜨거운 감자라도 쥔 것처럼 오히려 불안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거면 충분해요.”“이게 어떻게 충분해.”민도준은 그녀의 몸을
차 안.권하윤은 시선에서 점차 멀어지는 창고를 힐끗거리더니 자기와 함께 뒷좌석에 앉은 민도준을 바라봤다.“우리…… 로건 씨 안 기다려요?”민도준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그녀를 흘겨봤다.“사람도 찔렀으면서 멍청하게 굴지 말지.”권하윤은 그의 말에 곧장 입을 닫았다.마치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자 민도준은 이내 피식 웃었다.“창고 안 놈들 모두 처리하려면 5분 정도는 소요 돼. 왜? 설마 저들이 불쌍하기라도 해? 그럴 거면 차라리 나를 생각해 주는 게 어때?”“어디 다쳤어요?”권하윤은 잔뜩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본인은 이미 얼룩 고양이처럼 되었으면서 도리어 자신을 걱정하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윽고 담배를 입에 물며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여기 앉아. 보여줄 테니까.”그의 말에 운전석에 앉아 있던 한민혁은 묵묵히 이어폰을 끼더니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다.하지만 정작 권하윤은 부끄러운 듯 말을 얼버무렸다.“저 옷 더러운데 움직이면 차 안이 더러워…… 아!”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하윤을 자기 무릎 위로 끌어온 민도준은 그녀의 귀를 잘근잘근 씹으며 놀려댔다.“내가 언제 하윤 씨 더러워했어?’그 말을 들은 권하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한참이 지나서야 제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런 뜻 아니에요.”“응? 내가 무슨 뜻으로 말한 줄 알고 아니래?”상대의 함정에 빠졌다는 걸 인지한 권하윤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그녀의 그런 모습에 민도준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 바람에 다리가 휘청거렸다.“내가 먼 데서부터 달려왔는데 은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래서야 되겠어?”민도준에게 놀림을 당한 권하윤은 부끄러워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대체 다친 거예요? 아니에요?”그녀는 본인이 무섭게 화를 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민도준의 품에 안긴 채 긴장해서 몸을 움츠린 모습으로 소리 지르는 모습은 화를 낸다기보다는 애교 수준에 가까웠다.민도준은 그런 그녀를 마치 애완동물 만지듯
오늘따라 민도준은 유난히 집요했다.방 안이 조용해질 때쯤, 권하윤은 반쯤 혼이 나간 채 멍한 눈으로 누워있었다.담배를 피우고 난 민도준은 고개를 돌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 희롱했다.“방금 똑똑히 봤어? 내가 다쳤는지 안 다쳤는지?”권하윤은 그런 그를 상대하기도 귀찮았다.‘다치긴 무슨!’죽으면 오히려 손뼉 치며 쾌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민도준을 노려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눈에는 아직 물기가 촉촉하고 야릇했기에 민도준을 위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그는 마른침을 삼키더니 이내 권하윤은 끌어안았다.“괜찮아?”권하윤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하지만 민도준은 포기하지 못하고 손을 이불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정말 안 돼?”“아껴 쓰는 게 어때요? 그래야 저도 민도준 씨 오래 모실 수 있지 않겠어요?”권하윤이 어렵사리 꺼낸 말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손을 뒤로 뺐다.“그래, 그럼 킵해두자고. 다음에 갚아.”권하윤은 더 이상 그와 실랑이를 벌일 힘이 없어 피곤한 눈을 스르르 감았다.잠시 눈만 붙이려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완전히 잠들어버렸다.어두운 밤.아까 급하게 들어온 나머지 커튼을 닫지 않은 탓에 불빛과 달빛이 한데 어우러진 채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 때문인지 빨간 손자국이 난 얼굴이 더욱 불쌍하게 느껴졌다.민도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눈썹을 치켜떴다.엊그제만 해도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여우처럼 굴던 그녀가 다친 모습을 보니 마치 상처 입은 어린 동물처럼 느껴져 보호 욕구를 자극했다.권하윤은 매번 이렇게 그의 흥미가 사라지려고 할 때쯤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그렇다면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우리 천천히 놀자고.’-병원.“지금 거신 번호는 전원이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약 9통의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연결되지 않는 전화에 조 사장은 진기태에게 무슨 일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그때 마침 사람을 찾으러 나갔던
그 후 며칠 동안 권하윤은 줄곧 민도준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며칠 전 차갑게 대하던 그의 태도는 조금 변했다. 그는 가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늦은 밤 그녀에게 전화해 야릇한 말들로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도록 유도했다.권하윤은 그가 자기를 보러 올 시간마저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걸 대충 알고 있었다.하지만 요즘은 왠지 그녀가 뭔가를 물을 때마다 민도준은 화제를 전환해 결국은 야릇한 농담으로 끝을 맺곤 했다.그렇게 지체하다가 끝내 민상철의 생일연회 날이 다가왔다.권하윤은 민씨 집안 예비 며느리로서 아침 일찍 민씨 가문 본가에 가 이것저것 거들었다.민상철의 생일만 되면 아침마다 먼저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는 가풍이 있다.물론 집안 메이드들이 해도 충분하지만 효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도와줄 수밖에 없다.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제사상 준비는 끝마쳤다.오늘은 올 사람이 유난히 많았기에 제사상은 야외 응접실에 차렸다.그리고 8시반 쯤 되자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민승현의 집안은 다섯째이기에 위치가 맨 끝자리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권하윤이 자리에 앉기 바쁘게 따가운 시선이 그녀를 쏘아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민승현이었다. 지난번에 싸우고 난 뒤 그는 한 번도 집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그는 사실 일부러 권하윤을 방치해 그녀가 혼자 마음고생하게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욱 화사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씨발 이년 설마 또 그 자식 만나러 간 거 아니야? 걸레 같은 년! 제사 끝나고 따져 물어야겠네!’9시가 되자 민상철이 민시영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를 빙 둘러봤다.“도준이 얘는 또 어디 갔어?”그의 말에 민시영이 싱긋 웃었다.“아마 할아버지를 위해 큰 선물 준비하나 보죠. 곧 올 거예요.”“흥. 걔가 무슨 큰 선물을 준비하겠어? 내 화만 돋우지 않는다면 효도지.”그러던 그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할아버지가 제 선물 받고 싶지 않다면 다시 가져갑니다.”모든 사람이 소리가
권하윤은 점점 멀어져 가는 민도준이 떠나는 뒷모습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그녀는 사실 민도준에게 잘 보여 그가 오늘 하루만 자기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한 거였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줄이야.하지만 그녀가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미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리자 민승현이 눈을 보릅뜬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거기 서서 뭐 해? 쪽팔리지도 않아?”권하윤은 치맛자락을 털며 허리를 세웠다.“약혼녀가 여기에서 아주 대자로 넘어지는 게 네 체면이 선다면 더 힘껏 밀지 그래?”“너!”목소리를 조절하지 못해 주위의 이목을 끌게 되자 그는 할 수 없이 입을 다물었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자 권하윤은 이내 그의 팔짱을 끼면서 밖으로 나갔다.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 밖에서는 잘 지내는 척 연기해야 했다.하지만 팔짱을 낀 권하윤 때문에 민승현은 오히려 불편했다. 그의 각도에서 고개를 숙여 보자 마침 권하윤의 목덜미가 보였고 희고 가는 목덜미 위에 부드러운 머리카락 몇 가닥이 붙어 있어 그녀의 여성미를 더해주었다.하지만 권하윤이 다른 놈과 붙어먹었다는 생각을 하자 순간 가슴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에 그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경고했다.“너 요즘 또 그 자식과 붙어먹었지? 내가 말해두는데, 너 만약 또다시 그 자식과 붙어먹으면 나 너랑 바로 파혼이야!”“걱정 마, 나 절대 한민혁 씨랑 붙어먹는 일 없을 테니까.”‘네 둘째 형하고 붙어먹으면 모를까.’너무 진정성 있는 태도와 말투에 민승현은 그녀가 이미 충분히 반성했다고 생각했는지 몇 마디 더 경고한 뒤에 입을 다물었다.본채 거실.제사를 지르는 동안 생일상은 이미 준비되었으며 요리들은 저마다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식구들 대부분이 모두 자리에 앉고 나서야 민상철이 천천히 등장했고 그 뒤는 민도준이 건들거리며 뒤따랐다.방금 제사가 끝난 뒤 민상철은 민도준을 서재에 불러들여 대화를 했었는데
민도준은 그의 말에 활짝 웃으며 의자에 기댔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전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그의 말에 민상철은 분노가 치밀어 버럭 소리쳤다.“저 고얀 놈! 저!”“할아버지.”분위기가 또다시 경직되자 이번에도 민시영이 분위기를 풀었다.“오늘 할아버지 생신인데 화내지 마세요.”“그래요, 할아버지.”민재혁이 활짝 웃으며 끼어들었다.“저한테 좋은 소식 있어요.”민상철도 민도준을 진짜로 쫓아낼 생각이 없었기에 이내 화를 가라앉히며 되물었다.“무슨 소식이냐?”“둘째 숙부와 숙모의 시신에 관한 소식이에요.”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민도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민도준의 부모님은 해외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돌아가셔 지금껏 시신도 찾지 못했었다.민씨 가문에서도 여러 번 소식을 알아봤지만 지금껏 시신을 찾지 못해 그저 빈 묘비만 세워두고 있다.“제가 오래전부터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게 했거든요. 들리는데 의하면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식구로 착각해서 묘지에 묻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으면 유골이 국내로 운송될 거예요.”민재혁은 민도준을 향해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독사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운송 과정에 별일 없었으면 좋겠네요.”지금껏 아들과 며느리를 여의고 시신도 찾지 못한 민상철은 줄곧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들이 겨우 조국의 땅에서 편히 잠들 수 있다는 소식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도준아, 얼른 형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하.”하지만 민도준의 잇새에서는 그저 조롱 섞인 나지막한 웃음만 튀어나왔다.“참 고생했네. 죽은 사람들한테 에너지를 쏟아붓느라.”그의 말에 민상철은 눈살을 찌푸렸다.“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네 부모님이잖느냐!”“그렇죠. 제 부모님이죠. 그런데 할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이기도 하잖아요.”민도준은 눈 밑에 드리운 비아냥거림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그 일이 아니면, 두 분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권하윤은 당연히 민승현에게 문자 내용을 들킬 수 없었기에 손을 등 뒤에 숨긴 채 끝까지 핸드폰을 지켰다.“이건 내 사생활이야. 내가 왜 너한테 보여줘야 하는데?”“씨발, 너 딴 놈이랑 붙어먹기까지 했으면서 무슨 사생활 타령이야? 당장 가져와!”민승현은 문자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권하윤의 팔을 잡아당겼다.“놔! 나 아프다고!”그 시각 마침 매원에 도착한 민도준은 마침 그 대화를 듣고는 강수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승현이 이놈 아주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 보네요.”그 말에 강수연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채신 없이 구는 권하윤을 욕했다.“하하하, 내가 객실 청소하라고 일러둘 테니 앉아있어.”강수연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는 당황하기 그지없었다.그는 민도준이 갑자기 오늘은 매원에서 자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지라 메이드를 불러 방을 치우게 하고 과일을 준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급할 거 없어요.”민도준은 거실에 다리를 꼰 채 앉아 마치 주인인 것처럼 편하게 행동했다.그리고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승현이랑 대화를 못 나눈 것 같은데…….”강수연은 그의 암시가 섞인 말을 듣자 억지미소를 지었다.“내가 승현이 바로 불러올게.”이내 2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활짝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는 장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시각 민승현은 권하윤을 창가에 누른 채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너희 둘 뭐 하는 거야?”민승현이 고개를 돌리는 틈에 권하윤은 재빠르게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온 뒤 옆으로 도망쳤고 순간 그녀를 놓친 민승현은 그녀를 다시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당장 이리 오지 못해? 너…….”“그만하지 못해?”강수연은 권하윤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민승현을 호통쳤다.“소리는 왜 지르고 난리야? 네 둘째 형이 아래에서 너 기다리니 내려가 봐.”민도준이 왔다는 소리에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모
어둠 속에서 권하윤은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움켜쥐고는 자꾸만 뒤쪽을 확인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바로 그녀의 이런 모습을 말하는 것인듯 싶다.그녀는 숨을 죽인 채 민승현의 상태를 확인했고 가벼운 코 고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했다.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렸다.어느 때보다도 조심해야 했기에 그녀는 평소처럼 대범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소리라도 날까 봐 문손잡이를 조금씩 천천히 내리눌렀다.하지만 고요한 밤이라 그런지 낮은 “찰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그 소리와 함께 멈춘 코 고는 소리에 권하윤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하지만 깨어난 줄 알았던 민승현은 그저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하더니 곧이어 안정된 호흡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낮은 코골이 소리가 다시 울리자 권하윤은 그제야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복도의 빛이 문틈 사이로 방에 흘러들자 그녀는 이내 몸을 빼내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가슴이 북을 치듯 쿵쾅거렸다.민도준의 방은 그들이 묵은 방의 사선 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 말인즉 권하윤이 중간 복도를 에둘러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그녀는 허리를 숙인 채 주위를 살피더니 아무 사람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맨발로 잽싸게 민도준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소리가 날까 봐 노크도 하지 못한 채 민도준에게 전화하려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그녀는 문을 등지고 선 채 핸드폰을 귀에 대고 누구라도 나올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누가 나오기라도 하면 나 진짜 끝장인데. 입이 열 개라도 결백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고. 아니지, 나 원래도 결백하지는 않잖아.’권하윤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그때,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때마침 긴장하고 있을 때 기습을 당한 거라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아…… 읍…….”그와 동시에 등 뒤의 남자가 그녀의 입을 막으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소리는 왜 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