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설계도를 받아 들고 살펴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설계도를 성연신에게 돌려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고청민 씨가 미리 이걸 알았다고 해도 저는 신경 안 써요.”고청민이 그녀를 해치려고 했으면 애초에 그녀를 안 구하면 될 일이었다.하지만 고청민은 그녀를 구한 뒤 그녀의 신분을 조사해서 성씨 가문에 데려다 줬다.성씨 집안은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고청민은 어릴 때부터 경영 일을 하던 사람이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모두 야심이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고청민이 진심으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에게 잘해줬다.성연신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눈치채고 눈살을 찌푸렸다.“고청민은 계략이 많은 사람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한테 사기당해서 뼈도 못 추릴걸요. 믿지 않으면 후회할 거예요.”“예전에 믿어도 후회했는데, 결과는요?”심지안은 더없이 찬란하게 웃었지만, 눈동자는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대표님은 교통사고나 처리해 주세요. 제대로 된 결과가 없으면 일 크게 키울 생각이에요.”말을 끝내고 그녀는 와인잔에 있는 와인을 원샷해버리고 산뜻하게 떠나버렸다....성연신은 화가 나서 임시연을 찾아왔다. 긴 다리로 우악스럽게 문을 걷어차는 모양이 분노를 쏟아내는 것 같았다.임시연은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 간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온 걸 보고는 허둥거렸다.“연신아, 네가 무슨 일로...”“심지안한테 가서 사과해.”그는 거절은 없다는 듯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임시연은 멋쩍게 웃었다.“내가 왜 사과해야 해?”성연신은 점점 인내심이 사라졌다.“너, 김슬비 차로 심지안 뒤밟았잖아. 교통사고로 그 사람 해치려고 했잖아. 내가 이렇게 직접 말해야 해?”사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는 그저 의심만 하고 있었다.그는 임시연이 심지안을 질투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극단적인 행보를 보일 줄은 몰랐다.김슬비는 현재 한창 인기 있는 예술가였고 사회적 평판을
심지안은 성연신이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작게 웃었다.“볼 만큼 봤어요?”그는 욕망을 숨기고 표정을 가다듬었다.“옷 갈아입고 내려와요.”“내려가서 뭐 하는데요?”“임시연이 밑에서 기다려요.”심지안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는 장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요.”오늘은 세움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고청민은 모두 회사에 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만약 마주치면 어색해질 게 뻔하니 확실히 옷은 갈아입어야 했다.기다리는 동안, 성연신의 머리속에는 온통 심지안의 촉촉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는 그녀를 내려놓지 못했는데, 그 정도로 유혹적인 장면을 보자 차갑고 매력적인 성연신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드리워졌다.심지어 임시연이 옆에서 뭐라 말해도 그는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임시연은 혼이 빠진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늘 자기가 와서 해결을 봐야 둘이 만날 기회를 줄일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안은 아무렇게나 샤워가운을 걸치고 여유 넘치는 발걸음으로 나타났다.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나무 의자에 앉아 차갑게 말했다.“시작해요.”임시연은 전혀 원치 않았지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오늘 제 친구 슬비가 운전하다가 실수로 지안 씨를 쳤네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성연신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더 찌푸려졌다.심지안은 흥미진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친구 슬비요? 하지만 제가 본 뒷모습은 당신이었는데요.”말하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열고 그 자리에서 임시연과 비교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키, 체형, 어머... 신발도 같네요.”임시연은 창백해져서 순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비틀거리면서 테이블을 잡은 그녀는 마치 본인이 피해자인 것 같았다.“신발은 슬비가 저한테 준 거예요. 걔도 같은 거로 한 쌍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슬비를 대신해서 사과하러 온 거에요. 모든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시지 마세요.”“아, 네. 사과받을게요.”심지안은 당황
성연신은 고청민과 시선이 마주치자 얇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비웃었다.“뭘 무서워하는 거예요?”고청민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성 대표님 말씀도 참. 야밤에 집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누가 안 무섭겠어요?”“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 아니고요?”고청민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흠잡을 데 없는 사내의 얼굴에는 귀티가 흘렀다.“지금 지안 씨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를 저한테 푸는 건가요?”음산할 정도로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딱 봐도 기분이 나빠 보였다.성연신은 대꾸도 하지 않고 차갑게 그를 노려보고 더 말하기 귀찮다는 듯이 차를 운전해서 떠났다.정원에는 고청민과 임시연만 남았다.임시연은 이미 멀리 떠난 차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그녀 혼자 돌아가야 했다.성연신은 아무리 품고 있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돌덩이 같았다.고청민은 3층을 쳐다보았다. 심지안의 방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밝은 빛이 그의 몸을 비추는 게 마치 그의 인생을 비추는 빛 같기도 하고 그의 앞길에 없어서는 안 될 빛 같기도 했다.그는 시선을 돌렸지만, 긴 속눈썹에 소유욕이 흘러 눈빛이 날카로워졌다.“5년이 지났는데 왜 발전이 없어요?”성연신을 갖지 못한 건 그렇다 쳐도 성우주의 환심도 못 얻어냈다.아주 유리한 상황이지만 임시연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당신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요? 당신도 심지안 못 꼬셔냈잖아요!”임시연이 똑같게 맞받아쳤다.“안심해요. 제가 당신 같은 쓰레기는 아니라서요.”그가 심지안을 꼬셔내지지 못한 이유는 그가 선을 넘지 않아서였다.사실 그와 심지안의 거리는 이미 많이 가까워졌다.하지만 심지안의 성격으로 보면 절대 조바심을 내면 안 되고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했다.고청민이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 해서 임시연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김민수 잘 관리해요. 저 찾아오게 하지 말라고요.”“앞으로 지안 씨 찾아와서 소란 피우지 마세요.”고청민은 잠깐 머뭇거리는 듯했다. 입가에 보조개가 드러났다가 사라지더니 세상 무해한
고청민은 그녀의 망설임을 발견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했다.“뭔데요? 성연신이 또 괴롭혔어요?”심지안은 멈칫했다. 작고 하얀 얼굴에 감동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고청민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잘 챙기는 사람인데 무엇을 망설이나 싶었다.그녀는 잡지에 끼워둔 설계도를 꺼냈다.“사실 별거 없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이걸 줬어요.”고청민은 그 설계도를 받아 들고 보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당시 사고가 발생했던 병원 설계도라는 걸 눈치챘다..심지안은 고청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연신 씨가 말했어요. 당신이 나를 구한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요.”고청민은 고개를 들어 맑은 눈으로 물었다.“그 말을 믿어요?”“안 믿어요.”그녀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했고, 좋고 나쁜지는 속으로 알 수 있었다.“거짓말은 안 할게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 병원의 특수 설계된 곳을 알고 있었어요.”“네?”고청민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해명했다.“이 병원을 설계한 사람이 제 고등학교 동창 아버지세요. 늘 같이 놀다가 우연한 기회로 설계도를 봤고 원래는 응급 통로로 쓰다가 나중에는 응급상황이 적어졌죠. 그렇게 원장이 몇 번 바뀌고는 알고 있는 사람도 점점 적어졌어요.”“그랬군요.”심지안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눈웃음을 지었다.“당신이 나를 속일 리 없다는 거 알아요. 성연신은 그냥 남 잘되는 꼴을 보기가 싫었나 보죠.”고청민은 그녀의 선명한 웃음을 보면서 손끝을 매만지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그 사람도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지안 씨가 사기 당할까 봐.”심지안은 하품 했다.“성연신 편 들어주지 마요.”정말 그녀를 위한다면 왜 인제 와서야 말하겠는가?“네, 네. 피곤하죠? 얼른 쉬어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요.”“네. 잘 자요.”고청민은 가볍게 웃고 불을 껐다.“잘 자요.”...이틀 연속으로 평온한 나날이 지속됐다.심지안은 퇴근한 뒤 옷을 갈아입고 임시연의 연주회에 왔다.
임시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이 하도 세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는데 손바닥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임시연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단원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서 임시연은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하지만 연주 효과가 생각처럼 좋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잘 모르는 관중들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임시연의 연주 생애 최대 사고였다.“어떻게 된 거야? 내 귀가 문제가 생겼나?”“연주가 왜 이래? 내 어린 조카보다도 못하잖아.”“시연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봐. 우리가 이해해주자.”나중에는 뒤에 있던 매니저가 보다 못해 무대로 올라와 임시연과 단원들을 이끌고 사과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연주회에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시연이가 요즘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오늘 티켓은 다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임시연은 다급해졌다.“지금 나더러 혼자 이 난장판을 책임지라는 거예요?”매니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내가 망친 것도 아닌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임시연은 화가 났다.“누가 일부러 날 해치려 한다니까요.”“그건 나중에 말하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팬들을 달래는 거예요. 한 번 손해 보는 것과 평생 손해 보는 것의 차이는 당신도 잘 알잖아요.”임시연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씁쓸하게 웃으며 눈물범벅이 되어 관중석에 앉아있는 팬들에게 사과했다.이 방법은 팬들에게 아주 잘 먹혔다. 그들은 하나둘씩 이해한다고 말했다.상황이 순식간에 역전이 되자 심지안은 태연하게 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이내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에 임시연의 사진이 나타났다.현재 사진이 아니라 과거의 사진이었다.그녀가 명성을 떨치기 전에 여러 부자와 친밀하게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중에는 3P 사진도 있었다.사실 이 사진들을 구하기 꽤 어려웠다.사진 중에 있는 부자 한 명이 파산하면서 돈이 급하지 않았더라면 사진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한 임시연을 바라보
임시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얬다. 그녀는 눈앞의 흰색 조화를 보면서 백스테이즈 휴식실 책상에 과일칼이 있는 걸 힐끗 보았다.그녀는 고청민과 심지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다.매니저는 그녀의 눈빛이 바뀐 걸 발견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고청민을 가리키며 물었다.“고청민 씨, 저희는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의도적으로 이용당한 건 아니에요?”고청민이 입을 열기 전에 심지안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와 헛웃음을 치더니 말했다.“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연예인으로서 팬들에게 사실을 알릴 권리는 있잖아요.”“헐, 이게 다 진짜란 말이야?”“전에 시연이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성연신은 이미 임시연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던 거네.”“단발머리 여자, 심지안인 것 같은데, 성연신 전처 있잖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오늘 시연이 연주회인데 조화까지 보내고, 심지안도 악독하네.”“시연이라고 부르지 마. 역겹지도 않아?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잤는데, 부자들은 우리가 걸레를 보배처럼 여긴다고 비웃을 거잖아.”의논 소리를 들은 임시연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더는 예술계에서 머리를 쳐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그녀가 몇 년 동안 힘들게 유지해온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망가졌다.매니저의 상황도 임시연보다 좋지는 않았다. 그는 고청민과 맞붙을 자신이 없어 심지안을 향해 화풀이했다.“이런 일을 사적으로 얘기해도 되잖아요. 일부러 공개적인 장소를 선택해서 우리 시연이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알기나 해요? 당장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고소할 거예요!”“좋아요, 그럼 법정에서 뵙도록 하죠.”심지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말했다.화가 난 매니저는 물건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경호원을 불러 이 일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선 자리에 얼어붙은 임시연은 온몸의
고청민은 고개를 슬쩍 돌려 그녀의 폰 화면을 보았다.“성연신이에요?”심지안은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성연신 말고 임시연 일을 이렇게 관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고청민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심지안의 폰이 또 울렸다. 똑같은 번호였다.심지안은 당연히 받지 않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넣지는 않았다. 임시연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에 끼어든 건 맞지만 그녀를 제일 실망하게 만든 사람은 성연신이었다.성연신을 망쳐버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불쾌하게 만들 생각이었다....프라이빗 찻집.장학수는 폰으로 실검에 오른 기사를 보면서 박장대소했다.“너무 재밌는데. 임시연 얼굴을 봐봐.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잖아.”손남영도 옆에 다가가 보고는 장학수처럼 웃음을 터뜨렸다.“저렇게 추태 부리는 모습은 정말 처음 보는데. 지안 씨 진짜 판을 크게 깐 모양이네. 예전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네.”예전의 심지안이라면 지금과 같은 매정한 짓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장학수는 얼굴을 괴고 평가했다.“긴 머리도 단발머리로 변했고, 그런데 연신아, 될 수록이면 얼른 방법 찾아서 기사 내려. 넌 괜찮은데 우주는 아직 어리잖아. 마음도 여려서 사회 여론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자기 친엄마의 은밀한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아들로서 얼마나 슬플까. 아마 심지안과 필사적으로 맞붙으려 할 것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성연신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서 한기가 느껴졌다.“우주는 한 번도 대외로 임시연이 엄마라고 인정한 적이 없어.”장학수는 말문이 막혔다.“인정하지 않아도 변함없는 사실이잖아.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변호사로서 그는 인심이 험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서 있을수록 하는 행위마다 확대되어 약점이 될지도 모른다.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신중하게 처리할게.”성연신은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이런 행위는 법적으로 어떻게 해?”“
심지안은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그녀는 화면에 뜬 내용을 보자마자 멈칫하더니 이내 이불에서 나와 앉았다.정신이 든 그녀는 폰을 힐끗 보고는 옆에 내려놓고 씻으러 갔다.아침 먹을 때, 성동철은 눈살을 찌푸리고 심지안을 보았다.“보광 중신에서 올린 성명 나도 보았다. 성연신이 네 편에 설 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좋은 일이 아니었다. 심지안을 보호한다기보다 차라리 적이 되어 연을 끊는 게 더 좋았다. 성씨 집안은 그럴 능력이 있었다.그러면 고청민과 심지안이 나중에 결혼했을 때 불필요한 번거로운 일도 피할 수 있었다.심지안은 팥빵을 한입 물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성연신이 제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임시연과 관계를 끊으려고 했어요. 게다가 아들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끊으려 할 거예요.”성명에는 주요하게 세 가지 관점을 표달했다.첫째, 성연신과 임시연은 결혼한 적이 없고 아이는 성연신 혼자 키우고 있다는 것.둘째,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에 간섭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것.셋째, 합의는 5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고 일시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것.성연신은 임시연과의 관계를 단번에 부정했다. 우스운 건, 누가 손을 썼는지 임시연에 관한 실검은 이미 사라졌다.관계를 끊으려 하면서도 도와주는 게 성우주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성동철은 심지안의 생각을 반박하지 않고 한참 고민하다가 젓가락을 놓고 말했다.“지안아, 밥 먹고 서재로 오거라.”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순순히 답했다.“네.”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고청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 들어 성동철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아차린 것 같았다.서재.성동철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심지안을 보며 말했다.“청민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좋은 사람이죠.”인품, 외모, 가정배경 다 뛰어났다.“난 너희 둘이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두 사람이 결혼하면 내 곁에 더 오래 있어 줄 수 있잖니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