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정욱이 제때 나타나 경비원들에게 기자들을 쫓아내라고 했고 그녀를 데리고 무사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기자들 아마 오늘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따가 나갈 때 뒷문으로 나가요.”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알았어요. 연신 씨는 오늘 많이 바쁜가요?”그녀의 물음에 정욱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임원진들과 회의 중입니다. 성형찬을 이사회에서 내쫓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우리 보광의 명예에 좋지 않다면서요.”“안 좋은 건 사실이에요.”솔직하게 대답하는 심지안을 정욱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지안 씨가 이리 착한 분인 줄은 몰랐네. 평소에 백연이 그렇게 지안 씨를 괴롭혔는데 마음에 두지도 않고.’“내쫓는 건 되지만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필요는 없었어요.”성형찬의 가족은 감사할 줄 모르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다. 성연신에게 빌붙어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면서도 성연신에 대해 고마운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가족은 없어도 그만이었다....그러나 정욱의 생각이 틀렸다. 갑자기 심지안은 뭔가 생각이 떠올랐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남들이 다 알게 일을 떠벌였다고...”‘그래, 연신 씨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성형찬의 일가를 내쫓은 건 일도 아니야. 굳이 이렇게 큰 소동을 벌이는 건 분명 일부러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거야... 그럼,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일부러 그런 척하는 건가?’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사무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고 때마침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성연신, 너무한 거 아니야? 성여광을 이사회에서 내쫓았으면 된 거잖아. 꼭 이렇게 둘째 삼촌까지 쫓아내야겠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거야.”“둘째 삼촌의 편을 들러 온 겁니까?”“당연하지.”“그래요... 난 잃어버린 5%의 순이익 때문에 화가 나서 이리 달려온 줄 알았습니다.”“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럴 일도 있는 거니까.”“당신의 딸을 삼촌에게 보낸 것도 포함되나요?”문밖에
순식간에 사무실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심지안은 계속 반박하는 성연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무의식중에 그녀는 문득 알 것만 같았다. 진성태가 한 말은 사실이라는 걸. “정욱, 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이 사람 끌고 나가!”성연신은 안색이 극히 어두워졌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목적에 달성한 진성태는 정욱이 말하기도 전에 차갑게 웃음을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던 정욱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의 손을 끌어당겼고 심지안은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성연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다 지나간 일이니까 붙잡고 늘어지지 말아요.”“하지만 임시연 씨는 아직 우리 삶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 여자는 지난 과거 아니라고요.”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임시연이 못마땅했다. 고청민의 말이 맞았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일인데 왜 하필 제삼자가 자꾸만 나타나는 건지?“아이만 낳으면 임시연도 과거일 뿐이에요.”심지안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럼 임시연 씨의 아이도 과거가 되는 건가요?”“우리 약속한 거 아니었어요? 우리 두 사람 문제에 아이까지 끌어들이지 말자고.”“임시연 씨가 낳은 아이를 보면서 내가 임시연 씨 생각이 나지 않겠어요?”그 말을 듣고 성연신은 고뇌에 빠졌다.‘만약 그날 지안 씨와 함께 제경으로 광고 촬영을 하러 갔었다면 이런 복잡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그는 담배를 꺼내 피웠고 연기가 피어올라 그의 잘생긴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하여 그의 표정을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마음속으로 혐오감을 느꼈다. 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임시연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녀는 이 아이의 존재를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평생 성연신의 곁에 남아 그가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다. 그러나 그녀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성연신을 받아들일 수는
미간을 찌푸리던 성연신은 천천히 인상을 펴고는 국화차 한잔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어느 쪽으로 나갔어?”정욱은 뒷문의 소방 통로를 가리켰고 성연신은 이내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갔다.그 모습에 정욱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어차피 달래줄 것을 처음부터 기분 맞춰줄 거지...’뒷문으로 걸어갔지만 심지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성 대표님.”부드러우면서도 한껏 들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진희수가 그의 앞에 서 있었고 흰 티셔츠에 플리츠 스커트 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아주 청순해 보였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진희수는 옷자락을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대표님 찾아왔었죠?”“응, 방금 갔어.”“죄송해요, 대표님. 제가 아빠 대신 사과드릴게요.”진희수는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다시는 이곳에 와서 소란 피우게 하지 마.”성연신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진희수는 입술을 깨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볼일 남았어?”성연신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대표님... 전 성형찬 씨의 내연녀 아니에요. 아빠가 헛소리 하는 거에예요.”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갑자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성연신은 눈썹을 치켜세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성형찬 씨의 내연녀가 되는 걸 거부했기 때문에 절 회사에서 자른 거예요.”말을 하면서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대표님,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그녀의 모습에 성연신은 흠칫했다. “3년 전, 성원 그룹의 연말 파티에서 전 술에 취했었고 그날 성형찬 씨가 절 부축해서 호텔까지 갔어요. 그가 샤워하는 틈을 타서 뛰쳐나온 거예요. 대표님께서 본 것과 사실은 전혀 달라요.”“내가 믿을 것 같아?”성연신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둘째 삼촌이 왜 굳이 너네 아버지한테 순이익을 5%나 더 줬겠
심지안은 눈을 감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진희수 씨 아버지가 금방 다녀가고 바로 진희수 씨가 왔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끝도 없이.”깜짝 놀란 진희수는 잔뜩 겁에 질려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전 그냥 해명하러 왔어요. 별다른 뜻은 없어요.”“해명하러 온 건지 아니면 연신 씨한테 꼬리 치려 온 건지 그건 그쪽이 더 잘 알겠죠.”‘유부님과 어울리는 여자가 좋은 여자일 수가 있겠어?’한편, 옆에 있던 성연신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해요?”“마음 아파요?”심지안은 조롱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심지안 씨.”성연신은 화도 났고 난감하기도 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심지안이라는 여자 하나뿐인데 심지안은 자꾸만 의심하고 있다. “저 때문에 두 사람 싸우지 말아요. 그만 가볼게요.”진희수는 다급히 말했다. “그럼 가봐요. 말만 하지 말고. 설마 동정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니죠?”심지안은 팔짱을 낀 채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진희수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안녕히 계세요.”성연신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짧게 대답했다. 진희수가 떠난 뒤 성연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심지안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젠 만족해요?”심지안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니요!”“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지금 뭐라고 했어요?”분노가 극에 달한 그녀는 오히려 웃음이 났다.“내 남편과 다른 여자가 안고 있었어요. 아내로서 그 여자한테 말 몇 마디 못 해요?”“안은 적 없어요. 그냥 부축한 것뿐이라고요. 지안 씨가 예민한 거라고요.”성연신은 아직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저 심지안이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시락 비닐봉지가 타이트해서 심지안은 손바닥이 아팠다. 마음이 약한 그녀는 밖에서 화를 풀고는 하루 종일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한 성연신이 걱정되
성연신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너한테 변호 맡아달라고 찾아왔어?”장학수와 그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성씨 가문의 사람들은 성연신이 사업하러 해외에 나간 뒤로 두 사람은 연락이 끊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나 되게 비싸.”장학수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성여광이 그 사람 찾아갔어. 변호사 업계에서는 늘 나한테 뒤처진 그 사람 말이야.”변호사 업계에서 장학수가 1위라면 진용택은 영원히 2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성연신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피식 웃었다.“진용택?”“응, 그 사람 맞아.”“오늘 그 아버지가 여기 와서 소란 피우고 갔어.”장학수는 그제야 눈치챘다.“그 집 사람들하고 너네 삼촌 아는 사이야? 한통속이냐고?”“응.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지.”장학수는 물을 따라다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그럼 넌 어떡할 건데?”성연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하찮게 물었다.“너 해결 못 해?”“당연히 해결하지. 어르신께서 불만이 있으실까 두려운 거야.”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손자랑 아들이 싸움이 나면 성수광의 입장이 제일 곤란해질 것이다. “삼촌이 무슨 명목으로 날 고소한 거야?”“불효자인 네가 집안의 재산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했어.”성연신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이번 재판 기대된다.”“남들한테 손가락질받아도 좋아?”장학수를 혀를 찼다.“성씨 가문은 제경에서 최고의 가문이야. 이런 이유 때문에 법정에 서는 건 난감한 일이잖아.”보통 사람들도 체면을 중시하는 요즘 세월에 최고의 가문에서는 더더욱 명예를 중요시할 것이다. “시간 될 때 숙모한테 가봐.”“왜? 너네 숙모한테 삼촌 막아달라고 할 거야?”성연신의 얼굴에는 악랄한 미소가 번졌다.“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아내로서 알 권리는 있어야지. 안 그래?”그 말에 장학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누구랑 바람이 났는데?”그 당시 성형찬과 백연은 혼전임
“지금 날 욕하고 있는 거예요?”침실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훤칠한 모습의 남자가 어울리지 않게 손에 국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 왔어요?”“한 시간 전에요.”“귀신이에요? 인기척도 없이.”그 말에 성연신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자고 있길래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 예전에는 이렇게 푹 자는 모습 본 것 같지 않은데.”“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래요.”성연신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심지안을 소홀히 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화까지 나게 만들었으니...“저녁 만들었는데, 나와서 좀 먹어요.”배가 고팠던 심지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테이블에 앉자 성연신은 음식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반찬 4개 그리고 국까지 음식들은 맛과 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냄새만 맡아도 맛있을 것 같았다.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는 젓가락을 들고 동파육 한 점을 집었다. 육질은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아 맛있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먹었다.옛말에 남자의 마음을 붙잡으려면 그 남자의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성연신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천천히 먹어요. 누가 빼앗아 먹지 않으니까.”말을 하면서 그는 국 한 그릇을 떠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심지안은 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그의 시중을 들었는데 지금 그가 자신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 이상하기만 했다.그 생각이 떠오른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이상해도 적응해야지. 난 평생 시중만 들고 싶지 않다고.’배불리 먹고 난 뒤 심지안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성연신도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의 행동에 그녀는 안색이 변하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내려가요.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
그의 말에 심지안은 눈시울을 붉혔고 설움이 폭발하여 눈물을 왈칵 쏟았다. 빗물에 씻긴 부용꽃처럼 예쁘고 맑은 얼굴은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였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녹여버릴 지경이었다. 성연신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진희수한테 개똥이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건 성연신의 명확한 태도였다. 심지안은 성연신을 향해 소리쳤다.“당장 나가요! 다시는 당신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성연신은 당황한 얼굴을 한 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내가 지안 씨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는 거예요?”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당신은 내 편이 아니에요. 계속 진희수 씨 편만 들고 있잖아요. 진희수 씨가 당신 와이프예요? 그럼 그 여자한테 가요.”“나야 언제나 지안 씨 편이죠. 진희수가 개똥이에요. 됐죠?”성연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런 말이 심지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늦었어요.” 그녀는 다짜고짜 그를 밀어내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슬픈 감정을 모두 쏟아내듯이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던 성연신은 열쇠를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지금 들어가면 더 많이 우는 건 아니겠지?’그 생각을 하니 그는 마음이 아팠다. 한참 동안 방문을 바라보던 그는 손남영을 만나러 갔다. 금관성의 가을밤은 쓸쓸했지만 술집의 분위기는 불타오르고 있었고 마치 두 개의 세상 같았다. 일의 자초지종을 들은 손남영은 박장대소했다. “하하하하하, 저녁 내내 지안 씨 시중들다가 지안 씨가 화가 다 풀릴 때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이 지경이 된 거예요?”성연신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흠...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 진희수한테는 어떤 감정인데요?”“아무 감정 없는데.”3년 전, 진희수가 성원 그룹으로 면접 보러 왔을 때 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확실히 임시연과
성연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내가 이 문자를 보내면 지안 씨가 기뻐한다고?”“당연하죠. 내가 장담해요.”“진희수 핸드폰 번호 좀 줘봐. 나한테 없어.”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심지안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밤 8시, 진희수는 문자 한 통을 받았고 문자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심지안 그 여자가 성연신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 걸 거야. 성연신처럼 교양있는 사람이 이렇게 저속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할 수가 없어.’...한편, 진희수가 보광으로 성연신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임시연은 얼굴에 있는 팩을 뜯어내며 피식 웃었다.“그 여자도 낄 생각인가 보죠?”“그런 가 봐요.”홍지윤이 대답했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여자를 가만 놔둔다고 해도 그 여자는 심지안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진희수는 3년 전에 S가 던진 미끼였다. 진희수를 통해 성연신 마음에 임시연의 자리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적당한 시기에 일을 진행시킬 수 있으니까. 진희수는 비밀 조직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냥 돈만 주면 일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리 갑자기 튀어나온 걸 보면 왠지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 홍지윤은 망원경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진희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심지안 앞에 얼씬거리면 당신의 존재만 더 부각되니까.”“나도 그렇게 생각해요.”임시연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늦었어요. 잘 거예요. 이만 돌아가 봐요.”잠시 후, 뭔가 생각이 떠오른 그녀가 짜증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노인네가 심어둔 감시자 눈에 띄지 말아요. 정말 짜증 나 죽겠어요.”‘날 감시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빨리 죽기나 할 것이지. 그럼 내 얼굴 보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아.’홍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은 나 찾지 말아요. 고청민 그 사람한테 한번 가볼 생각이에요. 우리랑 손을 잡을 생각이 있는지 일단 만나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