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이 순간만은 성연신에게 포옹을 해주고 싶었다.그녀는 그를 안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심지안은 두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제자리에 멈춰버렸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 사이 관계는 이런 친밀한 행동을 허용치 않았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띠더니 성연신과 거리를 두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성연신이 갑자기 그녀를 껴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성연신은 턱을 심지안의 어깨에 기대고는 피곤함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기대고 있을게요.”심지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작은 손으로 달래듯 성연신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네.”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는데 상대방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평화로운 분위기였다.심지안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옥상에 있는 덕분에 이 각도에서 달이 아주 크고 둥글게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또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성연신은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더니 계속 심지안을 안은 채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는 탐욕스럽게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우리 싸우지 말고 화해해요.”성연신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가볍게 말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마치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했다. 그의 얇은 입술은 심지안의 피부에 닿는 듯 마는 듯하면서 그녀를 간지럽혔는데 심지안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성연신은 두 손으로 심지안의 얼굴을 감싸고 그녀의 콧등에 자신의 콧등을 맞대고 다시 말했다.“우리 화해해요.”심지안은 빨간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진심이에요?”“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요?”“싫어요, 바람피웠었잖아요.”그녀는 그날 밤에 일에 집착하면서 그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았다.“실수예요. 절대적인 실수요. 바람피운 것과 실수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잖아요.”“연신 씨가 실수라면 실수인 거예요?”‘바람피운 남자들은 항상 이렇게 변명하곤 하지.’심지안은 성연신의 사랑 넘치는 눈빛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재결합에 동의한 적 없어요. 그날 밤은 실수였어요.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둘 다 신중하게 생각해 봐요.”임시연을 제외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재결합이 망설여지는 이유가 많았다.성연신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같은 여자가 분명 마음속으로는 엄청 기뻐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하기는. 그래, 당신의 연기에 나도 장단 맞춰줄게.’한편, 임시연은 성연신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채 들뜬 마음으로 보광 그룹으로 향했다. 사무실 안, 손남영과 성여광은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성여광이 다시 집을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성연신은 구매자에게 연락해 보라고 정욱에게 당부했다. 곧 임시연이 올 때가 된 것 같아 심지안은 성연신을 향해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따가 난 화장실에 가 있을 테니까 임시연 씨한테 내가 여기 있다는 거 말하지 말아요.”그녀가 있으면 임시연은 분명 자연스럽지 못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길 것이다. 심지안의 속셈을 눈치챈 성연신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임시연이 신경 쓸까 봐 그래요?”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3분 뒤, 밖에서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심지안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문틈 사이로 밖의 상황을 몰래 살폈다. 그 모습에 성연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연신아,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임시연은 옅은 화장을 한 채 고급스러운 카멜 색상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수줍게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연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성연신은 며칠 동안 그녀한테 연락하지 않았었다. ‘왜 갑자기 날 부른 거지?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혹시... 내가 보고 싶었나?’남자는 두 종류로 나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
말문이 막힌 임시연은 안색이 굳어졌다. “아직도 심지안 씨 좋아하는 거야?”한편, 화장실에 있던 심지안은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였다. 성연신은 소파에 편히 기댄 채 차갑게 웃었다. “알고 있으면서 뭐 하러 굳이 또 물어보는 거야?”“연신아, 너한테 진심인 건 나야. 심지안 씨는 진현수 씨와 사귀는 거 아니었어?”그 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심지안은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어머, 임시연 씨가 내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임시연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신이 여긴 어떻게? 지금까지 화장실에 숨어있었던 거예요?”‘무슨 꿍꿍인 거야!’“숨어있다니요? 잠깐 화장실에 왔던 것뿐이에요.”심지안은 진지한 얼굴로 뻔뻔스럽게 둘러댔다. 임시연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연신아, 두 사람 지금...”“볼일 끝났으니까 넌 이제 가봐.”“나 온지 얼마 안 됐는데...”성연신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정욱을 불렀다.“시연이 집까지 데려다줘.”“네, 대표님.”정욱은 미소를 지으며 임시연을 안내했다. “싫어!” 머리가 똑똑한 임시연은 단번에 성연신이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그녀는 벌컥 화를 냈다.“날 조롱하려고 일부러 이곳으로 부른 거야?”그녀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아무리 불리한 처지에 처하더라도 늘 주도권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널 조롱하는 거 아니야. 단지 지안 씨한테 해명을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고 그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임시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시울을 붉혔다.“저 여자한테 해명하려고 내 자존심까지 짓밟은 거야?”그녀의 말에 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없잖아. 난 그냥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니까.”“근데 심지안 씨는 왜 화장실에 숨어있었던 거야?”임시연은 차갑게 콧방귀
임시연은 이를 악물며 화를 참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심지안에게 욕설을 퍼부을 것 같아 그녀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먼저 갈게. 며칠 후에 같이 산부인과 가는 거 잊지 마. 의사 선생님이 내가 항암 치료 환자라서 가족이 동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해줄 수 있으니까.”성연신은 정욱을 쳐다보았고 그의 뜻을 눈치챈 정욱이 이내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제가 함께 갈 겁니다. 대표님께서는 워낙 처리하셔야 할 업무가 많으셔서요.”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지만 그녀는 최대한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알았어.”말을 마친 그녀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계속 있다가는 심지안과 싸움이 날 것 같아 급히 자리를 뜬 것이다. 순식간에 사무실에는 성연신과 심지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성연신은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그날 밤의 일이 사고였다는 거 이젠 믿을 거죠?”“믿어요.”그녀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해가 풀리면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아까 화가 잔뜩 난 임시연의 모습을 보면 분명 그날 밤의 일은 사고였을 것이다. “내일 나랑 본가에 같이 갈 거예요?”“아니요. 일해야 해요.”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뭘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요?”“악착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나한테 당신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누가 당신한테 먹여 살려달라고 했어요?”그녀는 남한테 의지해서 사는 것보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우리는 지금 이혼했 거든요. 그러니까 서로의 인생에 대해 간섭하지 말죠.”그 말에 성연신은 피식 웃었다.“당신은 참, 사람 마음을 몰라주는군.”“이만 갈게요.”심지안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데려다줄게요.”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오해가 풀리니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 심씨 가문에서 나와서 새로 집을 구했
임시연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게 가능해요? 혹시 들키기라도 하면요?”“가능하든 안 하든 당신한테는 지금 이 방법밖에 없어요. 예정대로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지우는 건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까.”‘아이를 지운다고?’임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아이를 지운다면 그녀는 더 이상 성연신의 옆에 있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일은 종종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홍지윤은 조롱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됐어요. 보스님께서는 이미 당신한테 최대한 도움을 주셨어요. 모든 준비는 다 되었으니 만약 당신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잘 알고 있죠?”“보스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근데 만약 심지안이 연신이한테 임신 사실을 알렸다면요?”“그건 신경 쓸 거 없어요. 그쪽은 가능한 당신이 성연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외부에 많이 알려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게. 나머지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신경 쓰지 말아요.”임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쫓아다녔던 남자들은 성연신, 이진우급의 남자를 제외하면 거의 다 그녀한테 넘어왔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이댈지는 홍지윤이 말하지 않아도 임시연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오늘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길을 걸어가다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보고 심지안은 놀랍기만 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쌀쌀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옷깃을 여미고 빠른 걸음으로 손씨 가문의 회사로 들어갔다. 손남영은 그녀를 데리고 그의 부친을 만나러 갔고 그들은 기획안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요구는 보광 중신의 기준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손남영의 부친은 10분 정도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는 급히 자리를 떴고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손남영과 심지안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다.심지안은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손
고연희는 입을 삐죽거렸다. “오빠만 행복하면 됐어요.”며칠 동안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연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남녀 사이의 감정이 아니라 그냥 어린 소녀의 숭배심인 것 같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 성연신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잘생긴 오빠였다. 졸업 후에는 집안의 도움 없이 홀로 보광을 맡아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 자연히 이목이 쏠리는 법이다. 누구나 훌륭한 사람에 대해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성연신에 대해 단지 숭배심이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고 그 사람을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잘생긴 성연신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띠었다.“많이 컸네.”고연희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오빠, 좋은 남자 있으면 나 소개해 줘요.”그 말에 심지안은 갑자기 한 소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턱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고청민 씨 알죠? 두 사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집안도 비슷하고 외모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성연신도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고청민이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고청민 씨요? 세움의 그 사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요.”“나중에 소개해 줄게.”“고마워요, 오빠.”영화가 곧 시작되고 그들은 영화에 집중하며 고연희와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SF 영화라서 관람객이 대부분 남자와 아이들이었다. 두 사람의 앞줄에 앉은 아이가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고 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아이가 귀엽다고만 생각할 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문뜩 생각이 떠오른 심지안은 성연신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수군거렸다. “나중에 연신 씨 아이가 저러면 어떡할 거예요?”“한 대 때릴 거예요.”규칙이 없으면 아무 일도 성취할 수 없는 법,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대부분 부모가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그런 것이다
1시간 뒤, 심지안은 장학수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고 변호사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그녀는 밖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자 성연신과 장학수가 함께 걸어 나왔다.그들을 발견한 그녀가 앞으로 다가가 조급하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이젠 집에 가도 된대요?”장학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소변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고 CCTV 확인 결과 누군가 몰래 그 물건을 연신이 사무실에 넣어놓은 것이 발견됐어요.”그제야 마음이 놓인 그녀는 벌컥 화를 냈다.“도대체 누구예요? 정말 괘씸하네요!”“성여광의 부하 송강호예요.”그 말인즉 이번 일은 성여광이 꾸민 일이라는 것이다. CCTV 속 송강호는 오늘 아침 몰래 성연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송강호가 잡힌 뒤, 그는 성여광의 시킨 짓이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소변 검사 결과와 송강호의 오락가락한 진술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성연신을 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어제 한대 얻어맞은 성여광이 복수라도 하는 건가? 정말 어리석고 나쁜 사람이네!’한편, 차가운 기운이 성연신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본가에 갔다 와야겠어요. 학수가 당신 집까지 데려다줄 거예요.”심지안을 고개를 저었다.“나랑 같이 가요.”성씨 가문은 성연신을 포함해서 가족이 총 5명이었다. 성형찬과 백연은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성여광의 편을 들 것이 뻔한 일이었다. 성수광이 아무리 성연신의 편에 선다고는 하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손자이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기분이 좋아진 성연신은 눈빛을 반짝였다. ...성씨 가문의 본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성수광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성여광을 노려봤다.“네놈이 제정신이냐! 그 집이 연신이한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느냐?”“할아버지,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형이 돈을 안 주니까 그런 거잖아요. 왜 저한테만 뭐라 하세요?”“그 입 다물지 못해! 그것도 모자라 송강호를 시켜 연신이를 음해한
성연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성여광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성여광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까와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반항했다.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이사회로 돌아가는 게 싫다면 안 돌아갈게요. 어찌 됐든 성원그룹의 리더는 형이니까.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싫은 소리를 하겠어요?”“난 성원그룹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네 형이기도 해. 삼촌 말씀이 맞아. 계속 너의 단점에 대해서만 뭐라 하지 말았어야 했어. 네 우점도 찾아봤어야 했는데.”성연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마치고는 성원그룹의 이사회와 재무팀 그리고 프로젝트팀에 연락했다.한 시간 뒤, 모든 사람이 성씨 가문의 본가로 달려왔다.모든 사람 앞에서 성연신은 회의를 열었고 그들은 성여광이 이사회에 들어온 5년 동안 그가 직접 맡았던 7개의 프로젝트의 이익이 대해 정산했다. 잠시 후, 7개 프로젝트 중 6개의 프로젝트에서 총 몇조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중 한 개 프로젝트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 이건 성연신이 그한테 맡긴 프로젝트라 성여광의 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정확한 데이터를 보고 성여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큰 금액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성형찬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적자가 생기는 건 보통 일이야. 최근 몇 년간은 경기도 안 좋고. 설마 고작 3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려고 하는 거니? 여광이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했어. 앞으로 반드시 크게 성장할 것이다.”아들의 뻔뻔스러운 말에 성수광은 참지 못하고 경멸이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아니죠.”성형찬은 안색이 조금 밝아졌고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성연신은 적어도 둘째 삼촌인 성형찬을 존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내뱉은 말은 성형찬의 기대를 완전히 깨버렸다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