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연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게 가능해요? 혹시 들키기라도 하면요?”“가능하든 안 하든 당신한테는 지금 이 방법밖에 없어요. 예정대로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지우는 건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까.”‘아이를 지운다고?’임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아이를 지운다면 그녀는 더 이상 성연신의 옆에 있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일은 종종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홍지윤은 조롱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됐어요. 보스님께서는 이미 당신한테 최대한 도움을 주셨어요. 모든 준비는 다 되었으니 만약 당신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잘 알고 있죠?”“보스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근데 만약 심지안이 연신이한테 임신 사실을 알렸다면요?”“그건 신경 쓸 거 없어요. 그쪽은 가능한 당신이 성연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외부에 많이 알려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게. 나머지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신경 쓰지 말아요.”임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쫓아다녔던 남자들은 성연신, 이진우급의 남자를 제외하면 거의 다 그녀한테 넘어왔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이댈지는 홍지윤이 말하지 않아도 임시연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오늘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길을 걸어가다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보고 심지안은 놀랍기만 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쌀쌀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옷깃을 여미고 빠른 걸음으로 손씨 가문의 회사로 들어갔다. 손남영은 그녀를 데리고 그의 부친을 만나러 갔고 그들은 기획안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요구는 보광 중신의 기준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손남영의 부친은 10분 정도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는 급히 자리를 떴고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손남영과 심지안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다.심지안은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손
고연희는 입을 삐죽거렸다. “오빠만 행복하면 됐어요.”며칠 동안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연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남녀 사이의 감정이 아니라 그냥 어린 소녀의 숭배심인 것 같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 성연신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잘생긴 오빠였다. 졸업 후에는 집안의 도움 없이 홀로 보광을 맡아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 자연히 이목이 쏠리는 법이다. 누구나 훌륭한 사람에 대해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성연신에 대해 단지 숭배심이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고 그 사람을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잘생긴 성연신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띠었다.“많이 컸네.”고연희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오빠, 좋은 남자 있으면 나 소개해 줘요.”그 말에 심지안은 갑자기 한 소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턱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고청민 씨 알죠? 두 사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집안도 비슷하고 외모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성연신도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고청민이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고청민 씨요? 세움의 그 사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요.”“나중에 소개해 줄게.”“고마워요, 오빠.”영화가 곧 시작되고 그들은 영화에 집중하며 고연희와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SF 영화라서 관람객이 대부분 남자와 아이들이었다. 두 사람의 앞줄에 앉은 아이가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고 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아이가 귀엽다고만 생각할 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문뜩 생각이 떠오른 심지안은 성연신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수군거렸다. “나중에 연신 씨 아이가 저러면 어떡할 거예요?”“한 대 때릴 거예요.”규칙이 없으면 아무 일도 성취할 수 없는 법,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대부분 부모가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그런 것이다
1시간 뒤, 심지안은 장학수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고 변호사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그녀는 밖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자 성연신과 장학수가 함께 걸어 나왔다.그들을 발견한 그녀가 앞으로 다가가 조급하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이젠 집에 가도 된대요?”장학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소변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고 CCTV 확인 결과 누군가 몰래 그 물건을 연신이 사무실에 넣어놓은 것이 발견됐어요.”그제야 마음이 놓인 그녀는 벌컥 화를 냈다.“도대체 누구예요? 정말 괘씸하네요!”“성여광의 부하 송강호예요.”그 말인즉 이번 일은 성여광이 꾸민 일이라는 것이다. CCTV 속 송강호는 오늘 아침 몰래 성연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송강호가 잡힌 뒤, 그는 성여광의 시킨 짓이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소변 검사 결과와 송강호의 오락가락한 진술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성연신을 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어제 한대 얻어맞은 성여광이 복수라도 하는 건가? 정말 어리석고 나쁜 사람이네!’한편, 차가운 기운이 성연신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본가에 갔다 와야겠어요. 학수가 당신 집까지 데려다줄 거예요.”심지안을 고개를 저었다.“나랑 같이 가요.”성씨 가문은 성연신을 포함해서 가족이 총 5명이었다. 성형찬과 백연은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성여광의 편을 들 것이 뻔한 일이었다. 성수광이 아무리 성연신의 편에 선다고는 하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손자이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기분이 좋아진 성연신은 눈빛을 반짝였다. ...성씨 가문의 본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성수광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성여광을 노려봤다.“네놈이 제정신이냐! 그 집이 연신이한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느냐?”“할아버지,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형이 돈을 안 주니까 그런 거잖아요. 왜 저한테만 뭐라 하세요?”“그 입 다물지 못해! 그것도 모자라 송강호를 시켜 연신이를 음해한
성연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성여광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성여광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까와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반항했다.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이사회로 돌아가는 게 싫다면 안 돌아갈게요. 어찌 됐든 성원그룹의 리더는 형이니까.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싫은 소리를 하겠어요?”“난 성원그룹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네 형이기도 해. 삼촌 말씀이 맞아. 계속 너의 단점에 대해서만 뭐라 하지 말았어야 했어. 네 우점도 찾아봤어야 했는데.”성연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마치고는 성원그룹의 이사회와 재무팀 그리고 프로젝트팀에 연락했다.한 시간 뒤, 모든 사람이 성씨 가문의 본가로 달려왔다.모든 사람 앞에서 성연신은 회의를 열었고 그들은 성여광이 이사회에 들어온 5년 동안 그가 직접 맡았던 7개의 프로젝트의 이익이 대해 정산했다. 잠시 후, 7개 프로젝트 중 6개의 프로젝트에서 총 몇조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중 한 개 프로젝트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 이건 성연신이 그한테 맡긴 프로젝트라 성여광의 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정확한 데이터를 보고 성여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큰 금액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성형찬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적자가 생기는 건 보통 일이야. 최근 몇 년간은 경기도 안 좋고. 설마 고작 3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려고 하는 거니? 여광이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했어. 앞으로 반드시 크게 성장할 것이다.”아들의 뻔뻔스러운 말에 성수광은 참지 못하고 경멸이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아니죠.”성형찬은 안색이 조금 밝아졌고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성연신은 적어도 둘째 삼촌인 성형찬을 존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내뱉은 말은 성형찬의 기대를 완전히 깨버렸다
심지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앞으로 다가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당신한테 요리 안 해준 지 꽤 오래되었죠. 뭐 먹고 싶어요. 내가 해줄게요.”“오늘은 내가 하기로 했잖아요. 날 못 믿겠어요?” 성연신은 그녀의 손을 토닥였고 잘생긴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알았어요.”비즈니스에 능한 남자는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과일샐러드, 생선구이, 족발 조림, 야채볶음, 옥수수 갈비탕까지 맛과 모양을 모두 갖춘 요리들을 보고 심지안은 급히 족발을 집어 들어 입 안에 넣었다. 부드럽고 찰기 진 족발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았고 너무 맛있었다!‘어쩐지 배달 음식을 싫어하더라니. 셰프 못지않은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배달 음식이 성에 안 찰 만도 하지’성연신은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되게 잘 먹네요.”“잘 먹는 게 뭐가 어때서요?”몸매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감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 심지안은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들을 거의 다 먹어 치웠고 그녀는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설거지가 곧 마무리될 때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보니 진현수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심지안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남자를 흘끗 쳐다보고는 그가 오해라도 할까 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일 돌아가서 진현수한테 연락할 생각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핸드폰은 또다시 울렸다.진현수한테서 온 문자였다.「지안 씨, 전화 좀 받아요. 할 얘기가 있어요.」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손을 깨끗이 닦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마침 진현수한테서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지안 씨, 이사했어요?”“네... 어떻게 알았어요?”“지금 심씨 가문의 별장 앞에 있어요. 나 모레 출국하는데 내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이번에 가면 언제 귀국할지 몰라서요.”“외국에는 사업 때문에 가는 거예요?”“네.”“어
심지안은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이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을 꽁꽁 가린 채 맑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항의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요.”‘날 욕망이 가득한 여자로 보는 거야 뭐야? 어이없네, 내가 얼마나 순수한 여자인데!’그녀에게 유일한 일탈은 강우석의 작은 외숙모가 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고...수줍어하는 그녀를 보며 성연신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일은 꼭 줄 거니까.”...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성연신은 이튿날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푹 잤더니 심지안은 피부마저 좋아진 것 같았다. 세수하고 난 뒤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금방 껍질을 벗긴 리치처럼 한 입 베어 물면 과즙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고 있던 잠옷을 벗고 슬림한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적절하게 컷팅된 원피스는 그녀의 영롱한 몸매를 감쌌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와 매혹적이었다.성연신은 고개를 들고 위층에서 내려오는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장 회사에 가봐야 하지 않았다면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그녀를 안고 싶었다. 심지안은 식탁 의자에 앉아 식빵을 집어 들고 잼을 발랐다. 그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회사의 일은 세 시간이면 충분할 거예요. 일 끝나고 데리러 갈게요.”“당신 볼일이 끝났다고 내 볼일도 끝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갈 거예요.”식빵을 한 입 베어 물자 새콤달콤한 딸기잼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말에 성연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당신 집으로 가면 돼요.”그는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우가 부동산에 맡긴 집들은 그의 눈에 들지 않는 집들이었다. 근처에 편안한 별장을 골라 사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듯하다. 아파트는 정원이 없어 불편하
“글쎄요. 그 이상은 심전웅도 말해주지 않았어요.”“시간 될 때 한번 가서 물어봐요.”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가 이내 되물었다.“왜 그래요?”성연신은 포크를 내려놓고 맞은켠에 앉아있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이가 든 성동철과 24살짜리 심지안을 놓고 비교해 보면 확실히 두 사람이 닮은 구석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그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당신도 나와 성동철 어르신의 따님이 닮았다고 생각해요?”“난 그분 따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솔직히 그는 성동철의 가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예전에 그 가문에는 성동철 말고도 그의 형 성한수가 있었다. 성한수는 고씨 가문과 막역한 사이었고 성한수의 소개로 성동철도 고씨 가문을 알게 된 것이었다. 성한수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성연신은 그때 장례식에 참가했었다. 심지안은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나도 본 적은 없어요.”사실 그녀는 성동철의 딸과 자신이 얼마나 닮았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청민과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건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성연신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사진 갖고 있어요?”“우리 엄마 사진이요?”“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뒤적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왜 다들 우리 엄마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뭘 그렇게 중얼거려요?”“아니에요. 봐요. 이게 우리 엄마예요.”그녀는 핸드폰을 그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사진 속의 젊은 여인은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딱 봐도 명문 집안의 규수 같은 우아한 모습이었다.성연신은 사진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당신이랑 닮긴 했네요.”“많이 닮지 않았어요?”“아주머니가 훨씬 더 우아해 보여요.”“그건 그래요. 인정할게요.”그녀의 엄마는 전형적인 동양 미인이었다. 반면 심지안은 생각도 진취적이고 성격도 활발해서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 보였다. 점심시간, 성
심지안은 동공이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홍지윤이 그녀의 어깨를 꽉 누르자 큰 돌멩이가 몸을 누르는 것처럼 그녀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이 홍지윤의 여자는 분명 무예를 익힌 사람이었다. “서두르지 말아요. 친구는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인가요?”홍지윤이 말을 하면서 손뼉을 치자 진현수가 밧줄에 꽁꽁 묶인 채로 룸 안으로 들어왔고 그의 뒤통수에는 누군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던 심지안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옷 벗어요. 하나도 남김없이.”홍지윤은 조롱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심지안은 입술을 깨문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외투, 얇은 셔츠 그리고 마지막 속옷을 벗으려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꾹 참았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진현수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그 여자 강요하지 말아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날 괴롭히라고요!”홍지윤은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연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군.’“이 여자를 위해 당신이 나서겠다고요? 그럼 당신도 옷 벗어요.”진현수가 그녀의 뜻에 따르지 않자 총을 든 남자는 그에게 바로 손을 댔다. 순식간에 진현수의 옷은 모두 벗겨졌고 달랑 속옷 하나 남게 되었다. 홍지윤은 장난꾸러기처럼 심지안을 진현수의 옆으로 밀어붙였다. 야릇한 자세로 앉아있는 두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여기가 식당이 아니라 호텔이라고 착각할 것이다.홍지윤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한편, 온몸이 굳어버린 심지안은 혼이 빠진 꼭두각시처럼 홍지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방어선을 뚫지 않는 한 사진을 찍는 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목숨이니까. 진현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심지안과 재결합한다면 꼭 그녀한테 잘해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홍지윤이 찍은 사진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