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광의 꾸중을 들은 성형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성여광은 급히 물었다.“아빠, 어떻게 됐어요? 할아버지께서 그 여자를 쫓아낸다고 하셨어요?”백연도 흥분해하며 물었다.“아버지께선 당연히 맞는 판단을 하셨겠지요?”“콜록콜록!”성형찬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성수광이 위층에서 내려오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맞는 판단이라는 거냐?”백연은 난감한 듯 웃으며 변명했다.“잘못 들으셨어요,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아버지의 위압을 느낀 성형찬은 심호흡을 하고는 선포했다.“이제부터 심지안은 우리 성씨 가문이 사람이야.”성여광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도대체 이 심지안이 무슨 재주가 있길래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감싸고 도는 걸까?’“할아버지, 심지안도 받아들였는데 왜 그때 임시연을 거절한 거예요?”“말도 안 되는 소리, 일개 광대 주제에 우리 가문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임시연은 예술가이고 배우이지 광대가 아니에요...”“너희같이 생각 없는 녀석들이나 속지... 날 화나게 하지 말고 저리 물러가.”성수광은 임시연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해, 페물 같은 둘째 손자를 상대하기 싫어서 옛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러 갔다.“아빠, 할아버지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형만 좋아하곤 난 나 몰라라 하잖아요.”성형찬은 그를 쏘아보았다.“못난 자신이나 탓해. 네가 일을 잘하나, 와이프가 있나...”성여광은 투덜댔다.“와이프 얻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성씨 가문의 첫 증손이 제 아일지도 모르죠!”...그날 밤은 본가 저택에 머물렀다.성연신과 심지안은 일찍이 방으로 돌아갔다.심지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성연신은 한창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앉아 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네이비 잠옷을 입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미끈한 손가락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 옆모습은 마치 조각상 같았다.심지안은 얼굴이 붉어졌다. “저기요... 난 어디서 자면 돼요?”성연신은 고개를 들고 장난스레 말했다.“침
그리고 자신이 성연신의 팔을 베고 있고, 다리도 그의 튼튼한 허리에 걸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성연신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깊이 잠들어 있었다.성연신이 잠에서 깨면 화를 낼까 봐 두려웠던 심지안은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화장실로 갔다.한참 후.잠에서 깨어난 성연신은 품에 껴안고 자던 심지안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지나가던 성연신은 안에서 들려오는 샤워 소리에 더운 듯 옷깃을 잡아당겼다....샤워를 마친 심지안과 성연신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1층.성형찬 가족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다른 친척들 몇 명은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심지안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그러자 백연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더니 비아냥거렸다.“해가 중천인데 이제야 일어난 거야? 어쩌면 예의가 조금도 없어.”심지안은 난감한 듯 고개를 숙였다. 처음으로 방문한 시댁에서 늦잠을 잔 것이 부끄러웠다.“어제 피곤해서 오늘 늦게 일어나게 되었어요. 앞으론 주의할게요.”성여광도 한마디 덧붙였다.“그러게요, 예전 같으면 어른들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도 차려야 하는걸요.”“예전 같으면 넌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이 사람을 공손히 대해야 했어.”이때, 성연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심지안을 감싸는 성연신의 모습에 성여광은 화가 났다.“형, 동생인 저한테 무슨 말을 이렇게 해요?”‘팔도 안으로 굽는데 형은 도대체 누구 편인 거야?’성연신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이제 생각났어, 옛적에 혼전 임신한 여자는 돌팔매를 맞았는데, 그럼 넌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었을 거야.”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성형찬은 참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한마디 했다.“그만해, 옆에 어린애도 있는데, 말조심해!”옆에 서 있는 오정연은 크고 동그란 눈으로 사람들을 순진하게 바라보았다.성여광은 눈을 반짝이며 오정연을 품에 안고 물었다.“정연아, 연신 오빠가 데려온 와이프가 마음에 들어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애한테 구박받은 성여광은 난처해 났다.‘아니, 왜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거지?'부잣집은 여주인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아 아무 배경도 없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부잣집 아가씨를 맞이해야 했다.평소에 그렇게 총명하던 형이 여자를 보는 눈이 어떻게 이렇게 잘못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오정연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고 표정도 서로 달랐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백연은 질투를 애써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성여광에게 말했다.“신경 쓰지 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 기어이 이런 여자를 찾으려고 하는 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너도 좀 잘해봐. 빨리 적합한 여자친구를 찾아 연신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 그러면 네 할아버지는 자연히 너를 더 관심하게 될 거야.”만약 남자아이를 낳는다면, 성씨 집안의 자산을 적어도 절반은 더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다.“좋아요! 엄마, 어디 두고 보세요, 엄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볼게요!”성연신은 성여광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는 그를 마음에 두지 않고 담담하게 심지안에게 물었다.“지금 갈 거예요, 아니면 아침 식사를 하고 갈 거예요?”심지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냥 회사에 가서 아무거나 먹으면 돼요.”지금은 11시가 다 돼가니 아침이 아닌 점심을 먹는 셈이다.“좋아요.”성연신은 성수광이 보이지 않자, 서백호에게 자신은 일이 있어 미리 간다고 전하라고 말했다.이번 가족 연회에 정욱이 따라오지 않아 성연신은 스스로 차를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은 차창을 반쯤 내렸다.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자, 정신이 상쾌해졌다.“봤죠?”성연신이 불쑥 입을 열었다.“뭘요?”“우리 가족이요.”심지안은 잠깐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네, 왜요?”“지안 씨가 본건 그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해요. 명문가의 내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워요.”집은 피난처가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검이 될 수도 있
심지안은 거절할 수 없었다.그녀는 일단 먼저 승낙하고 그때 가서 다시 아무 핑계나 대고 거절할 생각이었다. 선물만 주고 본인은 참석 안 할 생각도 하였다.기획팀에 도착한 심지안은 여직원이 새로 입사한 것을 발견했다. 김인정은 산후조리로 휴가를 냈고, 경은은 해고당한지라 인사팀에서 지난주에 새로 직원을 채용한 것이다.윤아는 옷차림이 매우 센스가 있었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았다. 듣자 하니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이라 개방적이고 열정적이어서 단 하루 만에 다른 동료들과 잘 어울려 있었다.윤아는 심지안을 보자 생글생글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언니가 바로 지안 언니죠? 전 새로 온 윤아라고 해요.”“안녕하세요.”심지안은 처음에 윤아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한 동료가 성연신의 사무실로 가져가야 할 서류가 있다는 것을 듣고 윤아는 즉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달려왔다.“제가 갈게요.”“네? 윤아 씨는 방금 입사해서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을텐데...”같은 부의 회사 동료가 완곡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전 외국에서 기획팀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걸요. 게다가 성 대표님의 이름을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이번에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밤잠도 설칠 정도로 기대했거든요. 제발요, 절대 망치지 않을게요.”윤아의 애교에 동료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서류를 내려놓고는 절대 쓸데없는 말들을 삼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성 대표는 말이 많은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잘 알겠어요!”15분 후.서류를 전해주고 돌아온 윤아는 동료들에게 물었다.“성 대표님은 여자친구 있으세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칫했다.“없지 않을까요.”“아마 없을 거예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으셔요.”“우리 같은 보통 직원들이 어떻게 성 대표님의 사생활을 알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저도 99%는 없을 거로 생각해요.”윤아는 환하게 웃으며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듯 말했다.“좋아요. 나 결정했어요! 이제부터 성 대표님을 쫓아다
“남진영이라니까. 도대체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김대휘는 성연신의 이름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성연신은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잔인해지는 성연신은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비즈니스 업계에서 악독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성연신을 건드리기 무서웠다. 어차피 남진영과 모순이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사람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은옥매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남진영이 연아를 얼마나 아끼는데. 다른 사람과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어.”“연아를 아낀다고?”김대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바로 비웃는 말투로 얘기했다. “심연아가 설마 너랑 남진영의 딸은 아니겠지?”그 당시 일부러 그한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라면. 김대휘는 은옥매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함부로 얘기하지 마. 난 남진영을 몰라.”“그러면 왜 네 딸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건데?”은옥매가 협박하는 어투로 얘기했다.“그건 너랑 상관없는 일이고. 하여튼 나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관계를 몰랐으면 해. 만약 입 뻥긋했다가는... 연아를 데리고 김씨 가문에 가서 인사드려도 되겠다.”김대휘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러자 화가 난 그의 뱃살이 출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이번 생에서 그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20년 전에 은옥매에게 홀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진 것이다. 이 여자는 그 당시에도 심전웅과의 관계도 제대로 끊어내지 못했다.은옥매는 화를 내는 김대휘를 눈여겨보지 않고 바로 새로 산 가방을 들고 귀부인처럼 걸어갔다.김대휘는 멍을 때리다가 은옥매가 멀리 간 후 그제야 거리를 지키며 떠났다.하지만 두 사람 다 이 모습이 사설탐정에 의해 찍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사설탐정은 사진을 바로 고용주에게 보냈다.그러자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의 카드에 큰 금액의 돈이 들어왔다.정욱은 사진을 받자마자 바로 성연신에게 보고했다.“익명으로 심전웅의 이메일에 보내.”정욱은 고개를
이튿날.심지안은 과일을 들고 임시연의 병문안을 왔다.임시연은 그녀의 뒤를 보면서 물었다. “연신이는 안 왔어요?”“연신 씨는 일이 바빠서요.”임시연의 얼굴에는 실망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렇겠죠.”심지안은 내색 하지 않고 그녀의 표정을 못 본척 했다.이어 임시연은 주동적으로 화제를 꺼내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심지안이 떠나기전, 그녀는 요며칠 중정원에 가서 오레오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심지안은 이를 승낙했다. “좋아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연신 씨와 함께 전시회에 가야 해서 조금 늦을거 같아요.”임시연은 관심을 두고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그래요? 몇시쯤에 오는데요?”심지안은 대충 시간을 짐작하고 대답했다. “아홉시쯤일 것 같아요.”떠나기 전, 심지안은 임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며칠 전에 연신 씨에게 아침밥 가져다주시지 않으셨어요?”“네,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오레오를 보러 간 김에 연신이 아침도 사간 거예요.” 환하게 웃던 심지안은 장난스레 대답했다. “저 오해 안해요. 그냥 다음에 아침밥을 살 때 제 것도 사주셨으면 해서요. 안 그러면 제가 연신 씨 아침을 먹게 되니까 시연 씨가 괜히 산 게 되잖아요.”“…”심지안은 임시연이 반응하기도 전에 떠났다.은혜는 갚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연이 전여친으로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마음 놓고 보고만 있을 심지안이 아니었다....점심시간에 나온 심지안은 돌아가는 길에 1층에서 커피를 사고있는 김윤아를 발견했다.“팀장님, 성 대표님께서 무슨 커피 드시는지 아세요? 대표님께도 커피 한잔 사드리려구요.”“…윤아 씨, 정말 성 대표님을 좋아해요?”김윤아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성 대표님처럼 멋진 솔로가 또 어디 있다고요. 놓치면 다신 오지 않을 기회잖아요.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죠.”심지안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성 대표님 여자친구 있어요,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마요.”김윤아는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다들 없다고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알겠다는 표정으로 성연신이 김윤아의 커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건 커피만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다. 이건 사람을 받아들인 것과 같다. 오후 내내 동료들은 김윤아에게 열정적으로 대했다.김윤아는 이런 대우를 즐겼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카톡을 보냈다.「당신이 알려준 게 맞아요. 심지안은 지금 기분 나빠하고 있어요.」사실 성 대표는 그녀의 커피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지도 않았다. 그녀는 비서에 의해 가로막혀 버렸다.하지만 그 여자의 말대로 커피를 줬든 말든 준 것처럼 행동하면 이미 목적을 달성한 것과 같았다.여자가 답장을 보냈다.「오케이.」...심지안은 퇴근하자마자 주차장으로 가서 그의 차를 찾아 조수석에 앉은 후 두 손을 허리에 얹고 화를 내며 옆의 남자를 노려보았다.“커피 맛있어요?”성연신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이상함을 눈치챘다. 정욱이 오후에 타 준 커피를 생각하며 아무렇게 말했다.“그저 그래요.”“그저 그렇다면서 마셔요?”“잠이 깨야 하니까요.”심지안은 더욱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왜 자기가 한 일이 맞는 것처럼...”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성연신이 소매를 걷자 근육이 잡힌 팔이 드러났다. 이 멍청한 여자가 뭐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그는 살짝 웃었다.하지만 꽤 귀여웠다.준수한 외모의 성연신은 평소에 강한 기세와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눈에 힘을 풀고 웃으면서 심지안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그녀를 홀릴 수 있었다.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됐어요. 이번만 봐주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주는 커피 마시지 마요.”성연신은 여전히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그래요.”커피가 안 되면 차라도 마시면 되지.잠만 깰 수 있으면 된다. 주얼리 전시회는 시내에서 열린다. 전시회는 세움 주얼리의 독특
심연아는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심지안이 멋진 남자 옆에 서 있는 걸 보니 조금 두려웠다.이때, 성연신의 시선이 심연아한테로 머물렀다. 그 시선은 담담했지만 마치 얼음 조각을 감싼 것처럼 차가웠다.심연아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번에 주얼리를 구경하러 온 것도 맞지만 일도 해야 했다.심지안처럼 와서 권력으로 으스대러 온 게 아니다!전시회의 주얼리들은 모두 리미티드 에디션이라서 경매를 통해 최고가를 부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었다.심연아는 전시회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틈을 타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녀의 시선은 어느샌가 캐주얼하게 입고 있는 소년에게 머물렀다. 심연아는 기뻐하며 비서를 데리고 소년에게로 다가갔다.“고청민 도련님, 안녕하세요.”심연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청민에게 먼저 인사했다.고청민은 그녀를 보며 남진영이 심연아를 온실 속 화초처럼 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도련님, 저는 흥월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매니저입니다. 세움을 위해 엠배서더를 구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저희 쪽에 좋은 인재 몇 명이 있어서요. 혹시 만나볼 의향이 있으세요?” 심연아는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고 고청민에게 넘겨주었다.“이건 저희 회사에서 인지도도 높고 능력도 뛰어난 배우들의 자료에요.”고청민은 거절하지 않고 배우들 자료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다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맘에 드는 사람이 없네요.”“한 명도요?”“네.”“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더 봐주세요. 그래도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이고 몇 명은 주얼리 광고도 찍었는데요.”“확실히 적합한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표정이 굳어진 심연아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시나요?”고청민이 담담하게 답했다. “전 그저 느낌을 봅니다. 제 눈에 드는지, 안 드는지.”심연아는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촉이 고청민이 자신에게 블만이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