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별장 판매 부서.유정은 진서준이 새 직장을 소개해 준다는 말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했다.그녀는 자신이 이 일을 잘하지 못해서 진서준의 얼굴에 먹칠할까 봐 두려웠다.“서준 씨. 제가 일을 잘못하면 어떡해요.”“괜찮아요. 천천히 해봐요. 못해도 누가 뭐라 안 해요.”“알겠어요. 제가 그러면 여기에 사직서를 제출할게요. 아참. 서준 씨! 새 직장은 무슨 일이에요?”유정이 물었다.“작은 회사 사장님 일을 하시면 돼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유정은 멍해졌다.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줄곧 가장 기초적인 일만 해왔고, 회사의 경영진에 들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은 그런 그녀를 보고 직접 한 회사의 사장님을 하라 했다.유정은 자신이 일을 망칠까 봐 두려웠다.“서준 씨, 전 사장을 못 할 것 같아요! 그냥 직원 시켜주세요.”유정이 다급한 어조로 말하자 진서준이 거절했다.“그건 안 돼요. 지금 여기는 사장 자리만 부족한 상태예요! 일단 먼저 여기로 오세요. 자세한 건 제가 다시 말해줄게요.”유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곁에 있는 고한영을 보고 말했다.“서준 씨, 아니면 제가 고한영 언니랑 함께 갈게요. 한영 언니는 예전에 회장님 비서로 일한 적이 있어요.”진서준이 이 말을 듣자 바로 승낙했다.“그럼 그렇게 하시죠. 고한영 씨가 당신 비서를 맡으면 되겠어요. 그럼 이렇게 정하고 지금 회사의 위치를 보내줄게요!”전화를 끊은 후 유정은 바로 고한영을 찾으러 갔다.진서준이 했던 말을 고한영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두 사람은 사직서를 내고 진서준이 보내준 위치로 이동했다.지금 천화 태클놀로지 회사의 직원들은 낮은 소리로 새로 온 회장님이 누구를 사장님으로 임명할지에 대해 의논했다.각 부서의 부장들은 서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고 모두 진서준에게 잘 보이려 했다.A/S 부서의 노수연은 바로 그들 중 한 명이었다.노수연은 올해 32살이고 천화 테크놀로지에서 4년간 일을
유정과 고한영을 회사 사람들에게 소개한 후, 진서준은 바로 떠났다.사장 사무실 안에서 유정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한영을 바라보았다.“한영 언니, 이제 어떻게 해요?”고한영이 차분하게 말했다.“우선 이 회사의 업무에 대해서 알아보는게 어때요?”“네!”유정은 회사의 자료를 전부 찾아냈고 두 사람은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그들이 한창 회사의 자료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들어오세요.”사장 사무실에 들어온 노수연은 그들이 회사 자료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들어온 그녀들은 아마도 자기 몸까지 팔아가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 것이다.“유 사장님, 저는 우리 회사의 A/S 부서의 부장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무슨 일이에요?”유정이 손에 들었던 자료들을 내려 놓으며 물었다.그러자 노수연이 대답했다.“사실 몇몇 회사가 우리 회사에 빚진 잔금이 거의 반년이 되었는데 지금 계속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몇 번 가보았는데도 안 준다고 떼를 쓰니까 유 사장님께 물어보는 겁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까요?”유정은 이 사실을 알자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노 부장님, 상대방 회사의 자료를 보내주세요. 제가 한 번 가볼게요!”유정의 말을 들은 노수연은 마음속으로 너무 기뻤다.사실 노수연은 오기 전에 자신을 까다롭게 대하던 회사들의 자료를 이미 정리해두었다. 지금 유정이 나서겠다고 하자 그녀는 이 일을 유정에게 슬쩍 떠넘기려고 했다!만약에 유정이 잔금을 못 받아온다면, 그녀는 이 일을 진서준에게 알려주려 했다.진서준이 아무리 이 두 여자를 좋아한다 해도, 만약에 그들 둘이 능력이 없다면 진서준도 화가 날 것이다.“알겠어요. 유 사장님. 제가 지금 바로 가서 자료 보내 드리겠어요!”노수연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고한영은 한숨을 쉬었다.“유정 씨, 저 여자가 우리를 해치려고 해요!”“한
많은 사람의 눈에 허윤진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하지만 수수한 옷차림의 진서준은 거지꼴이었다.이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너무 차이가 났고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무슨 일로 저를 불러냈어요?”진서준이 물었다.“이야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진서준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허윤진은 눈에 경멸이 가득했다.자기처럼 이렇게 예쁜 여자와 함께 레스토랑에 와서 밥을 먹는데 진서준의 옷차림은 엉망진창이었다!원래 허윤진은 진서준을 모함하는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하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사라졌다.그녀가 보기에 진서준은 모함당해도 마땅했다.동시에 진서준도 허윤진이 경멸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세요?”“정말 우리 언니를 좋아해요?”허윤진이 무심코 물었다.“네. 맞아요. 윤진 씨도 아시잖아요.”진서준은 대범하게 인정했다.예전에 어린 나이에 어리석게도 유지수를 좋아했다.하지만 지금의 진서준은 허사연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허사연과 함께 있을 때 진서준은 아무런 고민이 없었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하지만 우리 언니는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허윤진은 사정없이 진서준에게 독한 말을 뱉었다.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되물었다.“사연 씨 본인도 아니면서, 사연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난 사연 언니의 동생이니 당연히 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허윤진이 반박했다.“우리 언니는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남자와 결혼해야 해요! 서준 씨처럼 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남자는 안 돼요! 만약에 당신이 그때 우리 아빠를 구하지 않았다면 언니와 당신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이에요!”허윤진은 말할수록 화가 났고 목소리도 따라 높아졌다.주변 사람들은 허윤진과 진서준이 싸우는 줄 알았다.진서준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저를 그렇게 무시하시면서 오늘 왜 불러냈어요? 저를 보지 않으면
레스토랑 안에 많은 사람들이 진서준 쪽을 바라보며 구경하고 있었다.허윤진이 계속 거절하자 장동건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그래서 그는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인마. 네 여자 친구는 이제 내 여자야. 이 차를 몰고 꺼져!”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장동건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다른 남자 앞에서 바로 상대의 여자를 빼앗는 것은 난생처음 봤다.그들은 진서준의 반응이 궁금했다.그는 물 한 모금 마신 후 차가운 시선으로 장동건을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장동건은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내 말이 안 들려? 네까짓 게 내가 부러워할 정도로 이쁜 여자 친구를 두었군. 지금 이 차 키를 들고 꺼져. 그러면 놓아 줄게, 아니면 혼날 줄 알아!”장동건은 웃으며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들고 그의 얼굴로 향했다.장동건의 손이 진서준의 얼굴에 닿으려고 할 때, 진서준은 그의 손목을 잡았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네놈이 지랄하네! 내가 안 가면, 어쩔 건데?”장동건은 흉악하게 웃으며 다른 한 손으로 진서준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그가 손을 들기 전에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레스토랑 안에 울려 퍼졌다.그리고 진서준은 장동건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머리를 식판에 내리쳤다.순식간에 도자기 식판이 산산조각이 났고 조각들 사이에는 붉은 피가 있었다.진서준은 멈추지 않고 식탁 위에 물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 장동건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팍하는 소리와 함께 장동건의 뒤통수에서 피가 튀었다.장동건은 남은 한 손으로 식탁 위에서 버티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허윤진은 진서준의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주변에 있던 웨이터들과 밥을 먹던 사람들은 얼굴이 변했다.눈앞의 사태는 이미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그들은 보기에 얌전한 남자가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때릴 줄은 생각 못 했다!그와 동시에
레스토랑 안은 아수라장이었고, 장동건의 몸은 피투성이라서 더욱 비참해 보였다.“정말 우습네.”장동건은 조롱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경멸이 넘쳐 흘렀다.조금 전 장동건은 김명진이 본인 형님이라고 했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사실 그도 다른 사람의 위세를 빌려서 김명진과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은 것이었다.심지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김명진과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다.그러나 그와 김명진이 어떤 사이인지를 깊이 아는 사람은 없었다.장동건이 입고 있는 옷과 조금 전 그가 보여준 재력은 그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너처럼 별 볼 일 없는 놈이 어떻게 우리 형님을 안다는 거야?”장동건의 비아냥에도 진서준은 무덤덤했다.“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잠시 뒤에 알게 되겠지.”옆에 있던 허윤진은 진서준이 김명진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김명진은 그의 언니와 같은 급의 인물이기 때문이다.허윤진은 비록 김명진과 몇 마디 해보지 못했고 두 사람 사이에 교류도 많지 않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김명진은 안목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다.그와 친구가 되려면 단순히 돈이 많은 거로는 부족했다.“진서준 씨, 아직도 창피한 줄 몰라요?”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왜요? 저 사람이 먼저 날 때렸는데 난 저 사람을 때릴 수 없나요?”진서준이 되물었다.“그리고 이 일은 허윤진 씨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요.”장동건은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자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그가 가장 즐겨 보는 것이 바로 사이좋은 연인들이 그가 끼어듦으로써 원수가 되는 것이었다.“윤진아,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와 평생을 함께할 이유는 없어. 그냥 나랑 만나. 나랑 만난다면 윤진 씨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게!”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장동건 같은 바람둥이는 일편단심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여자에게 흔쾌히 돈을 썼다.조금 전 그가 20억이 든
“다들 멈춰!”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그들의 안색이 달라졌다.레스토랑 입구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장정들에 의해 가로막혔다.정장을 입은 장정들은 기운을 감추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엄청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그 광경에 장동건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정도 스케일이라면 서울시 최고의 가문을 제외하면 허씨 집안과 김씨 집안뿐이었다.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1미터 80 정도 돼 보이는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그 청년을 본 순간, 장동건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 청년은 다름 아닌 그가 조금 전 아는 사이라고 큰소리쳤던 김명진이었기 때문이다.“김명진 씨,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정신을 차린 장동건은 정중한 태도로 김명진에게 다가갔다.그러나 김명진은 장동건을 몰랐다. 장동건이 피를 묻히고 다가오자 김명진의 경호원이 장동건을 막아 나섰다.“당신은 누구죠?”김명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질문에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당황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동건은 김명진이 자기 형이라고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르는 사이라니?설마 돈 많은 장동건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장동건은 주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굉장히 무안해했다.“김명진 씨, 전 장동건입니다. 전에 김명진 씨와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장동건이라는 이름을 듣자 김명진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이 장동건이라고?”“네, 접니다. 기억나신 건가요?”장동건이 기쁘게 말했다.그러나 김명진의 이어진 다음 말에 장동건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먼저 다리 하나 부러뜨려.”“네!”경호원은 대답한 뒤 곧바로 장동건의 종아리를 찼다.뽀각!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동시에 사람들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다짜고짜 상대방의 다리를 부러뜨리다니, 참으로 무자비한 사람이
진서준이 정신을 잃은 뒤 허윤진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진서준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손가락으로 진서준의 뺨을 찔렀다.“진서준, 진서준!”두 번 불러도 진서준이 깨어나지 않자 허윤진은 그제야 손을 털었다.“흥, 감히 나랑 맞서려고 해? 넌 그럴 수준이 아니야! 아까 레스토랑에서 감히 나더러 부탁해 보라고 해? 내가 이참에 아주 단단히 혼쭐내주겠어!”허윤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서준의 뺨과 팔을 힘껏 꼬집었다.그러나 그녀의 힘으로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리고 김명진 그 사람도 그래. 감히 나와 진서준을 연인으로 보다니. 진서준 같은 사람이 나한테 어울리기나 해?”허윤진이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한바탕 화풀이를 한 뒤 허윤진은 손승호에게 연락했다.“다 됐어?”“네. 하지만 다른 레스토랑으로 왔으니까 얼른 이리로 와요.”“문제없어. 지금 당장 갈게!”몇 분 뒤 손승호가 룸에 도착했다.테이블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진서준을 본 손승호는 무척 흥분했다.“윤진아, 넌 가서 계산해. 난 진서준을 업고 내려갈게.”손승호는 진서준의 곁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인 뒤 진서준을 업으려고 했다.그런데 진서준을 업자마자 손승호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 자식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손승호는 키가 190cm 가까이 되고 몸무게는 80kg 정도였고, 진서준은 손승호보다 머리 반 개쯤 작았다.그러니 손승호가 진서준을 업는 것이 힘들 리가 없었다.허윤진은 손승호의 불평을 듣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승호 오빠, 이 자식 그렇게 무거워요?”“그래. 다 큰 돼지처럼 무거워!”손승호는 힘겹게 허리를 편 뒤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가 150kg쯤 되는 바위를 업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제가 도와줄 사람을 찾을까요?”“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손승호가 손을 저었다.“알겠어요. 그러면 전 일단 내려가서 계산할게요.”허윤진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손승호는 곁눈질로 진서준을 바라보
허윤진은 손승호에 의해 구석까지 몰리게 되었다.“손승호,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내가 당신을 이렇게 도와줬는데 감히 내게 손을 대려 해?”허윤진의 눈빛에 분노가 흘러넘쳤다.그녀는 신사처럼 점잖아 보이던 손승호가 사실은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허윤진의 분노에 찬 고함에도 손승호는 같잖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허윤진, 난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네가 날 따른다면 난 앞으로 절대 네 언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 우리 셋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허윤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손승호는 절망에 빠진 허윤진의 모습에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오늘 밤 허윤진을 얻게 된다면 허사연 또한 다 잡은 물고기가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허씨 자매 모두가 손씨 가문의 사람이 될 것이다.허윤진은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이곳은 16층이었기에 이곳에서 뛰어내린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윤진아, 그냥 이쪽으로 와. 난 널 난폭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손승호는 허윤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현재 손승호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오늘 밤 허윤진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오지 마!”허윤진이 소리를 지르면서 빠르게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그녀는 꽉 닫히지 않은 창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밖으로 내뻗은 뒤 화가 난 눈빛으로 손승호를 바라보았다.“거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딘다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손승호의 눈빛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보였다.현재 허윤진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 상태라 그녀를 더 몰아붙였다가는 정말로 뛰어내릴지도 몰랐다.그래서 손승호는 말투를 바꿔서 평소처럼 굴었다.“윤진아, 나 가지 않을게. 그러니까 절대 뛰어내리지 마. 네가 그냥 죽어버리면 허사연이 얼마나 슬퍼하겠어? 그렇지? 네 언니를 위해서라도, 네 아빠를 위해서라도 냉정해져야지!”손승호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정장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던 엄승현은 정장 남자의 따귀를 맞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이유는 단 하나, 정장 남자의 아버지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었다.호랑이는 르벨 동부 지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엄승현의 집이 좀 잘사는 건 맞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았음에도 엄승현은 감히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비굴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조 도련님, 방금은 제가 많이 실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엄승현은 황급히 와인 한 병을 따더니 단숨에 들이켰다.술이 모두 넘어가자 엄승현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조 도련님, 우리 아버지와 도련님 아버지는 오랜 사업 파트너입니다.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호텔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그러나 정장 남자는 엄승현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네 술 한 잔 얻어먹자고 이러는 줄 알아?”엄승현은 그 말에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조 도련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간단하지. 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가 아는 사이니까 네가 와인 한 병 더 마시면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이놈들은 여기 남아야 해.”정장 남자는 도지아를 비롯한 일행을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그 말을 듣자 모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엄승현 뒤로 숨었다.“승현 오빠, 제발 구해주세요.”여자들은 울먹이며 엄승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들이 엄승현의 동정을 자아냈다.엄승현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정장 남자에게 부탁했다.“조 도련님, 제발 이 애들은 봐주십시오. 다들 제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한 잔씩 올리는 걸로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말이 끝나자마자 정장 남자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그
“나도 너 같은 외지인들 많이 봤거든. 기를 쓰고 우리 도시에 자리 잡으려 하는 놈들 말이야.”갑자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하는 엄승현을 보며 진서준은 질린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이놈 정신 상태가 이상하네.'그때, 도민수가 나서서 말했다.“형, 우리 그냥 딴 데로 갈까요?”“왜 딴 데로 가려고 해?”조금 전 진서준에게 밀린 탓인지 엄승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여긴 귀도파 구역인지라 싸움이 금지되어 있잖아요. 아까 그놈 패버렸는데 혹시 그놈이 귀도파에 일러바치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도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이 말을 들은 도민수 일행도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르벨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동부 지역을 장악한 최대 조직이 바로 귀도파였다.귀도파 조직원은 수천 명이었고 하나같이 잔혹한 놈뿐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게다가 여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생 신분인지라 괜히 귀도파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귀도파 두목 호랑이와 친구거든.”“대박, 승현 오빠 인맥이 대단하네요.”“역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남자다워요. 귀도파 두목이랑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우리 다 함께 승현 오빠를 위해 한잔하자.”모두가 잔을 들며 엄승현에게 한 잔을 권하자 엄승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엄승현은 이때다 싶어 슬쩍 도지아를 바라봤다.자기를 보고 감탄하는 줄 알았는데 도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곧이어 아까 엄승현에게 얻어맞았던 정장 남자가 불같이 뛰어들었다.그리고 남자 뒤에는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잔뜩 따라왔다.이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순식간에 엄승현 뒤로 숨어들었다.“너 진짜 지원군 데려왔네?”엄승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군자는 복수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는 법이야. 네가 아까 날 때린
“승현 오빠, 시원하게 잘 팼어요. 저 개자식 확실하게 밟아버리세요.”“우리 승현 오빠 앞에서 감히 까불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흥, 승현 오빠는 우리 헬스팀 에이스야. 감히 이런 분을 건드려? 주제 파악이 안 돼?”도민수 일행은 정장 남자가 피범벅이 된 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이 분위기에 엄승현도 한껏 고무되었다.“지금 당장 꺼져. 안 그럼 넌 오늘 병원 중환자실 예약이야.”엄승현이 또 술병을 들어 정장 남자를 협박했다.“너 독한 건 인정하지.”정장 남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말 똑바로 해. 그리고 우리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엄승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차기를 날렸고 정장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미안해.”정장 남자가 이를 갈며 억지로 사과했다.“성의가 없잖아, 다시 제대로 해.”엄승현이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죄송합니다!”정장 남자가 억지로 분을 삭이며 다시 외쳤다.“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엄승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이제 꺼져.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또 쓸데없이 까불다간 진짜 뼈를 바스러뜨릴 줄 알아.”정장 남자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더니 떠나기 전 엄승현을 빤히 쏘아봤다.“승현 오빠 최고예요!”“승현 오빠는 저놈 사과를 받아낼 정도로 대단하네요.”“승현 오빠 아직 여자친구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몇몇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승현을 바라봤다.팽팽한 분위기가 풀리자 도지아가 다가와 도민수를 설득했다.“민수야, 이제 누나랑 같이 집에 가자.”“나 안 가. 갈 거면 누나 혼자 가. 나 귀찮게 하지 마.”도민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도지아를 밀쳐냈다.“야, 너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엄승현이 곧바로 다가와 얼굴을 굳히며 도민수를 꾸짖었다.그러곤 다시 다정한 눈빛으로 도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나, 괜찮아요?”“응, 난 괜찮아.”도지아가 예의 바르게
“그만해!”도지아가 황급히 외치며 도민수의 앞을 막아섰다.“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손찌검은 하지 말고요.”“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도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누나를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어이쿠, 여기 또 미녀 한 분이 오셨네?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은데?”정장 남자가 도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도지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말했다.“이봐요, 제 동생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나요?”“이놈이 내 얼굴을 때렸거든. 이걸 어쩌면 좋을까?”양복남이 쌀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내 친구 엉덩이를 만졌잖아. 한 대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도민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내가 그년 엉덩이를 만진 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게다가 그년은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데? 남자 꼬시겠다는 거 아니야?”정장 남자가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그 말을 듣자마자 도지아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이 인간이 도민수의 친구를 성추행했고 도민수가 그걸 못 참아 주먹을 날린 거였다.“이봐요, 당신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제 동생이 참지 못한 거죠.”도지아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양복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가씨, 이놈 누나 맞지? 그럼 내가 화해할 방법을 알려 줄게. 오늘 밤 아가씨가 나랑 즐겁게 놀아주면 아가씨 동생이 날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그 순간, 도민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이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 그 입 다시 놀려 봐? 진짜 네 머리 터지고 싶어?”정장 남자의 선을 넘는 말에 도지아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 경찰이 판단하게 하자.”“경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알고 개소리하는 거야? 그놈들이 감히 날 잡아갈 수 있을 것 같아?”양복남은 코웃음을 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 넌 빠져.”도민수가 도지아를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