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멈춰!”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그들의 안색이 달라졌다.레스토랑 입구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장정들에 의해 가로막혔다.정장을 입은 장정들은 기운을 감추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엄청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그 광경에 장동건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정도 스케일이라면 서울시 최고의 가문을 제외하면 허씨 집안과 김씨 집안뿐이었다.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1미터 80 정도 돼 보이는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그 청년을 본 순간, 장동건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 청년은 다름 아닌 그가 조금 전 아는 사이라고 큰소리쳤던 김명진이었기 때문이다.“김명진 씨,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정신을 차린 장동건은 정중한 태도로 김명진에게 다가갔다.그러나 김명진은 장동건을 몰랐다. 장동건이 피를 묻히고 다가오자 김명진의 경호원이 장동건을 막아 나섰다.“당신은 누구죠?”김명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질문에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당황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동건은 김명진이 자기 형이라고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르는 사이라니?설마 돈 많은 장동건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장동건은 주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굉장히 무안해했다.“김명진 씨, 전 장동건입니다. 전에 김명진 씨와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장동건이라는 이름을 듣자 김명진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이 장동건이라고?”“네, 접니다. 기억나신 건가요?”장동건이 기쁘게 말했다.그러나 김명진의 이어진 다음 말에 장동건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먼저 다리 하나 부러뜨려.”“네!”경호원은 대답한 뒤 곧바로 장동건의 종아리를 찼다.뽀각!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동시에 사람들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다짜고짜 상대방의 다리를 부러뜨리다니, 참으로 무자비한 사람이
진서준이 정신을 잃은 뒤 허윤진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진서준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손가락으로 진서준의 뺨을 찔렀다.“진서준, 진서준!”두 번 불러도 진서준이 깨어나지 않자 허윤진은 그제야 손을 털었다.“흥, 감히 나랑 맞서려고 해? 넌 그럴 수준이 아니야! 아까 레스토랑에서 감히 나더러 부탁해 보라고 해? 내가 이참에 아주 단단히 혼쭐내주겠어!”허윤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서준의 뺨과 팔을 힘껏 꼬집었다.그러나 그녀의 힘으로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리고 김명진 그 사람도 그래. 감히 나와 진서준을 연인으로 보다니. 진서준 같은 사람이 나한테 어울리기나 해?”허윤진이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한바탕 화풀이를 한 뒤 허윤진은 손승호에게 연락했다.“다 됐어?”“네. 하지만 다른 레스토랑으로 왔으니까 얼른 이리로 와요.”“문제없어. 지금 당장 갈게!”몇 분 뒤 손승호가 룸에 도착했다.테이블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진서준을 본 손승호는 무척 흥분했다.“윤진아, 넌 가서 계산해. 난 진서준을 업고 내려갈게.”손승호는 진서준의 곁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인 뒤 진서준을 업으려고 했다.그런데 진서준을 업자마자 손승호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 자식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손승호는 키가 190cm 가까이 되고 몸무게는 80kg 정도였고, 진서준은 손승호보다 머리 반 개쯤 작았다.그러니 손승호가 진서준을 업는 것이 힘들 리가 없었다.허윤진은 손승호의 불평을 듣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승호 오빠, 이 자식 그렇게 무거워요?”“그래. 다 큰 돼지처럼 무거워!”손승호는 힘겹게 허리를 편 뒤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가 150kg쯤 되는 바위를 업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제가 도와줄 사람을 찾을까요?”“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손승호가 손을 저었다.“알겠어요. 그러면 전 일단 내려가서 계산할게요.”허윤진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손승호는 곁눈질로 진서준을 바라보
허윤진은 손승호에 의해 구석까지 몰리게 되었다.“손승호,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내가 당신을 이렇게 도와줬는데 감히 내게 손을 대려 해?”허윤진의 눈빛에 분노가 흘러넘쳤다.그녀는 신사처럼 점잖아 보이던 손승호가 사실은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허윤진의 분노에 찬 고함에도 손승호는 같잖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허윤진, 난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네가 날 따른다면 난 앞으로 절대 네 언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 우리 셋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허윤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손승호는 절망에 빠진 허윤진의 모습에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오늘 밤 허윤진을 얻게 된다면 허사연 또한 다 잡은 물고기가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허씨 자매 모두가 손씨 가문의 사람이 될 것이다.허윤진은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이곳은 16층이었기에 이곳에서 뛰어내린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윤진아, 그냥 이쪽으로 와. 난 널 난폭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손승호는 허윤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현재 손승호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오늘 밤 허윤진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오지 마!”허윤진이 소리를 지르면서 빠르게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그녀는 꽉 닫히지 않은 창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밖으로 내뻗은 뒤 화가 난 눈빛으로 손승호를 바라보았다.“거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딘다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손승호의 눈빛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보였다.현재 허윤진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 상태라 그녀를 더 몰아붙였다가는 정말로 뛰어내릴지도 몰랐다.그래서 손승호는 말투를 바꿔서 평소처럼 굴었다.“윤진아, 나 가지 않을게. 그러니까 절대 뛰어내리지 마. 네가 그냥 죽어버리면 허사연이 얼마나 슬퍼하겠어? 그렇지? 네 언니를 위해서라도, 네 아빠를 위해서라도 냉정해져야지!”손승호
진서준은 아까부터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었다.룸 안에서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그는 이미 음식에 약을 탄 사실을 눈치챘다.진서준은 이 기회를 틈타 아예 기절한 척해서 멍청한 허윤진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알아보려 했다.그런데 손승호가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다.손승호가 혼잣말하던 것도, 두 사람이 조금 전 나눈 대화도 진서준은 휴대전화로 전부 녹음했다.허윤진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 때 진서준은 사실 그녀를 구할 생각이었다.허윤진이 아무리 짜증 나고 성가셔도 그녀는 허사연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만약 허윤진이 죽는다면 허사연은 분명 슬퍼할 것이었다.허사연을 깊이 사랑하는 진서준은 자기 여자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손승호가 겨우 말 몇 마디로 허윤진을 속일 줄은 몰랐다.이렇게 멍청한 여자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만약 허윤진이 일반 가정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일찌감치 사기를 당하고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너... 너 왜 깨어있어?”손승호는 진서준의 발차기에 내장이 전부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배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리는 통증을 손승호는 참기 어려웠다.허윤진도 이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진서준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무척 놀라워했다.“진서준 씨 기절한 거 아니었어요?”진서준은 덤덤한 눈길로 허윤진을 힐끗 바라보았다.“내가 기절하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란 거예요?”허윤진은 표정이 굳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계속 반응이 없길래 진짜 정신을 잃은 줄 알았죠.”진서준은 허윤진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승호를 향해 걸어갔다.그는 짐승만도 못한 손승호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그가 오늘 이렇게 음험한 수작을 부리려던 걸 생각하면 앞으로 또 어떤 계략을 꾸밀지 몰랐다.“진서준, 날 놓아준다면 앞으로 당신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조금 전의 발길질로 손승호는 자신과 진서준 사이의 실력 차이를 실감했다.만약 진서준과 붙
허윤진은 옷을 갈아입은 뒤 전화를 꺼내 병원에 연락했다.손승호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출혈 과다로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전화를 끊은 뒤 허윤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이만 가요.”진서준은 손승호를 싸늘하게 바라본 뒤 허윤진을 데리고 떠났다.오늘 밤 비록 손승호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절대 그를 오래 살려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그들이 호텔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거리에는 행인이 적었고 서늘한 밤바람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허윤진은 파란색 원피스만 입고 있었기에 서늘한 바람이 불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면서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허윤진은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진서준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손을 흔들어 택시를 불러 세웠다.“내 차는 아직 레스토랑 입구에 있으니 우선 레스토랑으로 돌아가서 차를 가져온 뒤 데려다줄게요.”그렇게 택시 한 대가 빠르게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진서준은 별말 없이 조수석에 앉았고 뒷좌석에 앉은 허윤진은 진서준을 힐끗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불만이 보였다.장소를 말한 뒤 진서준은 눈을 감고 쉬었다.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진서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 진서준은 그저 열심히 수련하며 실력을 높여 내년 3월 신농산에 갈 생각뿐이었다.이승재의 사부님이 관문을 나온다면 그와 함께 영골을 찾아 어머니의 두 다리를 치료하고, 가끔은 허사연과 데이트하면서 그녀와 감정을 쌓아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소망마저 이룰 수 없다니. 게다가 자꾸만 뵈는 게 없는 놈들이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청년, 여자 친구랑 싸우기라도 한 거예요?”운전기사는 4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운전기사는 진서준이 허윤진과 함께 앉지 않고,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서 두 사람이 싸운 연인처럼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저희는 연인이 아니에요!”진서준과 뒷좌석에 앉
허윤진의 악랄한 축복에 진서준은 그녀가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다.조금 전에 그녀를 구해줬는데 돌아서자마자 그를 죽으라고 저주하다니.“걱정하지 말아요. 난 100살까지 장수할 테니까. 당신은 계속 날 보게 될 거예요.”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액셀을 밟고 그곳을 떠났다.허윤진은 진서준의 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집으로 들어갔다.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허사연은 별장 입구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윤진아, 어딜 갔었어?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온 거야? 내가 전화해 보니까 전화도 받지 않던데!”허사연은 초조한 얼굴로 동생 앞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자세히 살펴봤다.허윤진에게 있어 허사연은 어머니와도 같았다.두 자매의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적 세상을 떴고, 허사연은 철이 들었을 때부터 허윤진을 몹시 아꼈다. 마치 어머니처럼 말이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허사연은 단 한 번도 허윤진을 혼낸 적이 없었다.그로 인해 허윤진은 막무가내에다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허윤진은 머리를 쓰는 것도 싫어했다.허사연이 그녀를 위해 모든 걸 계획했기 때문이다.“언니, 나 친구랑 놀다 왔어.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놨고.”허윤진은 웃으며 설명했다.“그러면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야지!”혼을 내는 것 같으면서도 걱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투에 허윤진은 더더욱 자책했다.그래도 다행히 진서준 덕분에 좋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있었다.허윤진은 허사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껴안았다.“윤진아, 갑자기 왜 이래?”허사연은 깜짝 놀라면서 의아한 얼굴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그냥. 언니는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데 난 언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허윤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보야. 난 네 언니잖아. 너한테 잘해주는 건 당연한 거지.”허사연은 허윤진이 처음으로 고맙다는 뜻으로 말하자 무척 기뻤다.품속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허사연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시간도 늦었으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은 뒤 진서준은 다시 침실로 돌아가서 계속 수련했다.정오가 되어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진서준은 수련을 멈췄다.“황보식 어르신, 무슨 일이세요?”전화 건너편에서 황보식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각주님, 얼른 별장으로 오세요. 이승재가 권해철의 도전장을 가지고 왔습니다!”황보식의 말에 진서준은 눈을 빛냈다.그는 권해철을 오래도록 기다렸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진서준은 곧바로 운전해서 황보식의 별장으로 향했고 약 30분 뒤 황보식의 별장 앞에 도착했다.진서준이 차에서 내리자 조철용이 곧바로 그를 맞이하러 갔다.“진 선생님, 황보식 어르신께서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안내하시죠.”진서준은 조철용을 따라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그들은 응접실에 도착했다.응접실 안에는 황보식을 제외하고 이승재도 있었다.“진 선생!”황보식은 진서준이 안으로 들어오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진 선생님, 오랜만입니다.”이승재는 거만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예전에 그는 진서준을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그의 사부 권해철이 돌아왔으니 이승재는 진서준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이승재가 보기에 권해철이 진서준을 죽이는 것은 개미를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진서준 또한 이승재의 경멸을 보아냈지만 개의치 않았다.“당신 사부님이 나왔다고?”“맞아요. 이건 우리 사부님의 도전장입니다. 자신 있다면 어디 한 번 열어보시죠!”이승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이곳으로 오기 전에 권해철은 이 도전장에 술법을 걸었다.만약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이 도전장을 연다면 술법으로 인해 다치게 된다.권해철이 이렇게 한 이유는 진서준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만약 진서준이 도전장에 걸린 술법 때문에 다치게 된다면 권해철의 상대가 될 자격이 없었다.탁자 위 도전장을 힐끗 본 진서준은 단숨에 도전장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보잘것없는 술법으로 날 시험해 보려고 해?”진서준은 냉담히 웃더니 한 손으로 힘을
떠날 때가 되니 이승재는 조금 전처럼 의기양양하지 않았다.그는 진서준의 실력에 정말로 겁을 먹었다.겨우 손가락 하나로 그의 사부님이 걸어둔 진법을 파괴할 수 있다니, 이 정도 실력이라면 그의 사부님과 엇비슷할 정도였다.이승재가 떠난 뒤 황보식은 기쁜 얼굴로 함께 식사하자고 초대했고 진서준은 거절하지 않았다.밥을 먹을 때 황보식의 눈동자에서 은근한 걱정이 보였다.“각주님, 권해철은 오랫동안 이름을 날린 사람입니다. 5일 뒤 대결에서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습니다.”“그때가 되면 제가 서울시의 세가들을 초대하여 그들에게 각주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황보식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은 덤덤히 웃을 뿐 거절하지 않았다.권해철과의 대결로 서울시 세가들은 진서준의 진정한 실력을 알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앞으로 진서준에게 불경을 저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점심을 먹은 뒤 황보식은 조철용에게 차로 진서준을 데려다주라고 했다.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서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가 고한영인 걸 확인한 뒤 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일이에요?”“진서준 씨, 어서 플라워 호텔 706으로 와줘요.”고한영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에게 들릴까 봐 무서운 사람처럼 말이다.“알겠어요.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진서준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곧바로 플라워 호텔로 향했다....어젯밤 밤새 노력한 덕에 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은 드디어 회사의 모든 자료를 다 보았다.그리고 유정은 노수연이 보낸 부채 회사 정보를 보러 갔다.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은 의논한 결과 먼저 고객 중 한 명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고 했다.우선 예의를 차리다가 그래도 안 되면 강경한 수단을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만약 상대방이 계속해 빚을 갚으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두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한 사람은 손지헌이라는 청년이었다.손지헌은 유정과 고한영을 보다가 하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