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소파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덮고는 리모컨으로 방 안의 조명을 전부 꺼버렸다.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소파에 앉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정원을 보았다.오늘은 달이 떠 있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별이 보였다.바닷가에서, 초원 위에서 봤던 별처럼 아름답지도 않아 환각이 생긴 것이 아닐까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하지만 아무런 불빛도 없는 상황에서 하늘을 자세히 보면 확실히 별이 보였다.마음과 정신은 점점 평화를 찾아갔다.그녀는 그렇게 한참 창밖을 내다보며 멍을 때렸다.
강하랑뿐 아니라 식탁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특히 그녀의 옆에 앉은 황소연의 안색은 창백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연바다의 이름만 들어도 몸이 떨려왔기에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불청객이 틀림없었다.“여긴 왜 찾아왔는지 말하던가요?”강하랑이 물었다.진민수는 들은 그대로 말했다.“아가씨를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다른 구체적인 건 말하지 않았고 저도 묻지 않았습니다.”강하랑은 차갑게 말했다.“그럼 무시하세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시고요.”“하지만...”“만약 이야기를
강하랑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만약 연바다가 어떤 미친 짓을 꾸밀지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분명 식탁 위에 있는 남은 음식을 전부 그의 머리에 쏟아부었을 것이다.“진 기사님, 들어가서 쉬세요.”단원혁은 문을 잡고 서 있는 진민수를 향해 말했다.진민수는 아마도 그들에게 연바다가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설명할 생각인 것 같았다. 다만 처참한 자신의 모습과 연바다가 이미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가고 게다가 진짜인지 모를 연바다의 신분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그래서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엔 연바다가 경호원을
“아직은 생각이 없어. 아마 집에 있을 거야.”강하랑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당연히 춥기만 한 겨울에 외출할 계획이 없었다.“그렇구나.”연바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른 계획이 없으면 나한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까? 나 너랑 쇼핑하고 싶었거든.”강하랑은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해 버렸다.“너무 추워서 나가기 싫어.”연바다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의자에 팔을 걸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만 들을 수 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나가기 싫은 거야
단원혁이 생각한 대로 연바다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원혁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저희 집안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애초에 저한테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제 혼사에 끼어들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더군다나 할아버지는...”연바다는 서해에서 봤던 연성태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늙은이가 자신의 인생을 간섭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강하랑은 더 이상 연바다에게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앞서 나갔다. 연바다는 발걸음을 맞춰 이 집에서 위치가 가장 좋은 침실로 들어갔다.궁전의 공주 방 같은 인테리어에 연바다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강하랑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여기가 네 방이야?”연바다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잠시 문턱에 서 있었다. 아무리 연바다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방에 선뜻 들어갈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았다.비록 그는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여자의 방에 마구 드나든 적은 없었다. 인간으로서 이 정도 선은 지켜야 했다.
“우리 서로한테 솔직해지기 전에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아무리 보고 싶더라도 나한테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강하랑은 연바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연바다가 던져준 휴대폰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네 휴대폰은 네가 원해서 나한테 준 거야. 나는 너처럼 몰래 뒤에서 훔쳐보지 않았어.”연바다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네줬다.“좋아, 이번엔 내 잘못이야. 다음엔 안 그럴게. 됐지?”“...”강하랑은 그를 힐끗 보고는 입술을 꾹 닫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받아서 들며 다시 말했다.“다음은
연바다가 말을 마친 순간 강하랑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도 겁에 질려서 그런지 헛구역질도 금방 멈췄다.연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아주 복잡했다. 연바다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그녀의 거짓말을 무참히 짓밟았다.“기억이 다 났으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거 힘들었지? 내가 죽도록 미우면서도 아닌 척하려고 하잖아. 그러면서 내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주다니... 하랑아, 내가 널 어떡하면 좋을까?”비웃음이 섞인 목소리에는 어쩐지 씁쓸함이 들렸다.강하랑은 이제야 구석에서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