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얼굴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한 표정이었다.그는 강하랑의 손을 잡고 감정을 억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랑아, 우리 과거는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자. 너는 이제 내 약혼녀야.”그는 약혼 얘기를 꺼내야만 안심이 되었다. 강하랑에게 약속도 상기시킬 겸 말이다.비록 위협과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약속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실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이제 모든 사람의 눈에 그들은 약혼한 사이이다. 그사이에 수많은 불행이 담겨 있을지라도 말이다.강하랑은 손을 거두며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
강하랑의 예상과 달리 이번 외출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느낌은 시어스에서 지낼 때 가끔 놀러 나가거나 여행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서해에서 돌아온 며칠 동안 영호를 제대로 구경해보지 못했다. 연바다 덕분에 마음껏 구경해서 그런지 단씨 가문의 본가에 도착했을 때 경계하던 마음은 약간은 사라졌다.‘믿을 수 없어. 이렇게까지 조용하다고? 연바다는 정말 단순히 외출할 생각이었던가?’강하랑은 석양을 배경으로 차에서 내리며 연바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서렸다.연바다는 쇼핑하면서 산 물건
강하랑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연바다가 서해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연성태는 HN을 연바다에게 맡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경기장으로 그녀를 찾으러 왔다가 다시 시어스로 돌아갔다.지금은 귀국했다고 했으니 그녀에게 일이 생겼던 그 날부터 계산하면 그는 서해에 보름 정도 머물고 있었다.앞으로도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HN는 연유성의 손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HN의 도움이 없다면 연바다는 절대 멋대로 살지 못할 것이었다.나중에 연유성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연바다는 아주 곤란해
보면 볼수록 그녀는 역겨움이 밀려왔고 기억을 잃었을 때 연바다에게 했던 고백이 꼭 그녀의 범죄 기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연바다가 받아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다.다행히 그때의 연바다는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아마도 젊었을 때 너무 격렬하게 놀아 이제 더는 그럴 힘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쩌면 자신이 아주 더러운 남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좋은 사람 코스프레하면서 고맙게도 그녀의 고백을 거절한 것 같았다.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은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요청을 받아주자 가만히 그녀의 친구 목록에 있었다는 것이다.우물 속에 돌을 던진 것처럼 그저 작은 파문을 일으키곤 조용히 바닥으로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었다.강하랑은 행여나 그가 문자를 보낼까 한참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핸드폰을 한쪽으로 던지며 더는 보지 않았다.어차피 그와 딱히 나눌 대화도 없었다.다음 날, 그녀는 회사 앱으로 사직 신청을 했다.기억이 전부 떠올랐으니 그간 혼란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생활을 다시 정리할 생각이었다.아직 그
강하랑은 머릿속에 드는 악독한 생각을 문자로 작성해 전송하려고 했지만, 그에게 답장을 하는 자체가 싫어 작성했던 문자를 전부 지워버렸다.연바다 같은 미친놈에게 욕하는 것도 시간 낭비였다.생각만 해도 역겨움이 밀려왔던 강하랑은 싸늘해진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한쪽으로 던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정말로 그가 죽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가 되면 그녀는 반드시 폭죽을 터뜨려 파티까지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반드시 그가 프러포즈했던 그날의 폭죽보다 더 화려하고 더 큰 것으로 터뜨리겠다고 말이다.그에게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서해와 멀지 않은 어느 작은 섬.풍성한 나무숲 뒤로 은밀하게 지어진 정원 딸린 별장이 하나 있었다.주위의 자연 풍경과 달리 그 별장 주위로 나무들이 촘촘하게 심겨 있었다.나무숲을 뚫고 들어가면 꼭 조선 시대로 타임 워프한 것 같은 듯한 한옥이 나왔고 경비가 삼엄하여 새도 날아올 수 없었다.“핸슨, 전 핸슨이 당장 이 나라를 뜨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 거예요. 시어스도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서 형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본인이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별장 안은 아주 호화로웠고 전통
수염남은 하는 수 없이 씁쓸한 얼굴로 설명했다.할 수만 있다면 그도 강하랑을 데리고 시어스로 데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여하간에 4년 동안 그들은 그녀 덕에 아주 평화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폐허 같던 도시도 포악한 염라대왕이 성질을 억누르고 나서야 서서히 정상적인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그런데 그 염라대왕을 통제하고 있던 사슬이 끊어져 버리니 다시 예전의 숨 막히던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그들은 도시가 다시 평화롭길 바랐고 설령 그 대가가 크다고 해도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이미 그 평화로움을 맛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