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건넨 배달 기사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박태준은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들어 있는 신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뺨이 발그레 달아오른 채, 잠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차마 이런 그녀를 깨울 수 없어, 손에 쥐고 있던 콘돔 박스를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신은지는 제일 먼저 박태준부터 찾았지만, 침대엔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너무 지쳐 그가 떠나는 줄도 모르고 잠들어버린 것 같았다. 신은지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팔로 지탱했다. 그런데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동시에 어제 욕실에서 박태준과 함께 보냈던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때 거실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곧바로 실내화를 신고 방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자 박태준이 앞치마를 입은 채, 주방에서 아침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인기척을 느낀 박태준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손 씻고 밥 먹어.”신은지는 붉은 끼가 남은 얼굴로 물었다.“아직 안 갔어?”“갔으면 했어?”“….”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본 박태준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손에 힘이 안 들어가? 어제 좀 길었지?”신은지가 코웃음치며 반박했다.“애쓰는 건 좋은데, 시간이 길다고 테크닉이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아.”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박태준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앞치마를 벗고 그녀를 방으로 이끌었다.“내 테크닉이 좋은지 나쁜지는 해봐야 알지. 벌써 안 한 지 몇 달인데, 그 새 좋아졌을 수도 있지 않겠어?”테크닉이 좋지 않다는 것만큼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없었다. 박태준도 다르지 않았다. 신은지는 반응할 틈도 없이 그에게 끌려 부드러운 침대에 눕혀졌다. 이어서 그의 숨결이 가까워지면서, 깊은 키스가 시작되었다. 신은지는 반격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 그에게 리
한참 뒤, 행위가 끝나자 몸은 이미 땀 범벅이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품에 끌어안은 채,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은지야, 나 돌아왔으니까, 재경 그룹은 내가 지킬게. 절대로 망하게 두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원한다면 사표 내고 다시 복원사로 돌아가도 돼.”그가 가쁜 숨을 들이켜면서 말을 이었다.“재경 그룹으로 들어간 뒤로, 너 얼굴이 너무 안 좋아졌어. 은지야, 난 네가 처음 이혼했을 때처럼 생기 넘치게 살았으면 좋겠어. 전에 다큐에서 네가 했던 말대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길 바라.”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신은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재경 그룹으로 들어간 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신은지는 박태준이 괜히 자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진 않아.”“알아. 내가 돌아올 동안 재경 그룹을 지키기 위해 애쓴 거. 이젠 내가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나머지는 내게 맡겨, 응?”“….”신은지는 피곤함에 도무지 말을 이어갈 기력이 없었다. 밖에 해가 높게 뜬 것을 보니, 이미 출근 시간은 한참 넘은 것 같았다. 박태준이 낮게 웃으며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안 일어나면 또 한다?”그 말을 들은 신은지는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그녀는 얼른 박태준을 밀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해 침대를 부여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을 지도 몰랐다.신은지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욕실로 향했다. 더 이상 출근을 미룰 수는 없었다.얼마 뒤, 신은지는 드디어 회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평소 출근보다 많이 늦은 시각이었다. 멀리서 그녀를 발견한 두 여직원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빽 있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네요. 두 시간이나 지각했는데, 아무도 혼내지 않다니.”“하긴 직속 상사가 전 시아버지고 배에 전남편 애까지 있는데, 당연하죠. 아마 집에서 놀아도 월급은 그대로 지급될 걸요?”
육영그룹.박태준은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사람, 기민욱이었다. 이틀만의 방문이었다. 평소에 똘망똘망하고 소년 같던 표정은 어디 가고, 눈에 핏발에 가득 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기민욱의 등장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비서가 급하게 서류들을 정리하며 박태준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 전 이만 가볼게요.”“그래.”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기민욱이 평소와 다른,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비서는 기민욱이 얼마나 박태준에게 집착하는지, 그 무해한 얼굴 뒤로 얼마나 지독한 본성을 숨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잘못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릴 게 뻔했다.그래서 기민욱과 마주치는 것이 항상 껄끄러웠다. 웃다가도 언제 한번 수틀리면, 어떻게 돌변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는 두말없이 사무실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추었다. 사무실에 기민욱과 박태준, 둘만 남게 되었다. 기민욱이 박태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형 비서, 나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박태준은 기민욱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그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신은지와 다시 합쳤을 테니 말이다. 프러포즈 반지까지 다 준비해 놨는데, 기민욱 때문에 무한으로 연장되었다. 이젠 박태준으로 돌아가도 다시 연인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하지만 신은지가 그를 거부하지 않았으니, 희망은 있었다. 박태준은 하루라도 빨리 그녀가 임신하길 바랐다. 그래야 뭐라도 명분이 생겨 확실하게 옆에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 출산, 후 결혼도 그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물론 신은지는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박태준은 그만큼 절박했다.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한 채, 태연히 기민욱과 대화를 나눴다.“네가 그렇게 무섭게 째려보는데,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출근 안 하고, 여긴 어쩐 일이야
문을 연 사람이 신은지가 아닌 나유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신은지 집에서 쇼핑백을 든 채 나오자, 박태준은 그만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넌 여긴 어쩐 일이야?”마치 집주인처럼 자연스레 집에서 나오는 모습에 박태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지는 어디 있어?”그 말과 함께 박태준은 나유성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유성은 그가 그러던 말던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면서 문까지 닫아버렸다. 박태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은지가 집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안 좋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현관문으로 돌아와 보니, 박태준은 자신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히 신은지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연결할 수 없다는 안내 멘트를 듣고, 자신이 아직 차단당한 상태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나유성은 신은지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다. 차별 대우에 박태준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기분이 다시 저조하게 가라앉았다.박태준은 타깃을 바꿔 빠르게 나유성을 뒤쫓아갔다. 다행히 나유성은 물건을 옮기느라 아직 주차장이었다.나유성은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있었는데, 뒤에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박태준이 다가와 그가 담고 있던 짐을 뒤적거렸다. 쇼핑백 안에 여자 것으로 추정되는 옷들이 몇 벌 담겨 있었다.“은지 옷은 왜 들고 가는 거야?”“출장이야. 새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에 열흘 정도 사전 조사 가기로 했거든.”나유성이 트렁크 문을 닫으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박태준이 막아섰다.“지금 임신 중인데….”박태준의 말을 들은 나유성이 눈썹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임신 같은 소리 하네. 저번에 네가 베개를 받을 때, 나도 현장에 있었던 거 잊었어? 이제 와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정곡이 찔린 박태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곧 방향을 바꿔 다시 질문했다.“그래서 은지는 어디 있는데?”“지금 공항에 갔어. 난 아직 출발 전이라 잠깐 대신 옷 챙겨주러
나유성은 박태준이 오는 것을 보고 박용선에게 말을 건넨 뒤 신은지의 곁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신은지가 대답하려 하자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등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유성도 이를 눈치채고 박태준을 올려다보며 일부러 그를 자극하듯 손에 든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 박태준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놈은 정말 한가해서 견딜 수가 없나 보다. 신은지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나유성을 너무 많이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그녀를 도와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별일 없을 거야. 그리고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병원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늘 저녁일은 고마워, 가서 일찍 쉬어.” 나유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신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들었다가 내리며 말했다. “그래.” 나유성이 떠나자, 신은지도 밖으로 나가 박용선과 박태준만 남았다. 입원실 복도에는 에어컨이 켜있지 않았지만 찬바람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신은지는 박태준의 이름을 핸드폰 수신 차단해지를 한 후 아래층 매점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 식당의 음식이 신은지의 입맛에 맞지 않아 그녀는 저녁을 많이 먹지 않았다. 나중에 신은지는 다시 뛰어다니며 수속을 밟느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허기를 느꼈다. 신은지는 컵라면 하나를 사서 매점에 있는 뜨거운 물을 붓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먹으며 진유라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진유라가 목욕을 하고 있는데 화면 속 장면이 너무 적나라해 신은지는 하마터면 라면을 내뿜을 뻔하였다. ”내 옆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 모습으로 영상통화를 받아?” “쇄골 밖에 보이지 않는데 무서울 것이 뭐 있어?” 진유라는 말하며 휴대전화를 눈앞에 들이댔
박태준은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좁히며 신은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거야? 만약 네 말대로라면 지금 신당동의 여자들은 모두 그곳에 없을 거고, 네가 진선호를 우리 집에 받아 줄 수 있었겠어?” 벌써 얼마나 지난 일인데 아직도 가슴에 그 일을 담고 있다니. "궁중 암투극 황제들을 봐봐. 수많은 후궁들과 첩을 두고도 황제는 그들을 영원히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아.” 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앞으로 그런 영양가 없는 드라마는 좀 보지 마.” "아직도 아이돌 나오는 드라마 봐?” "진영웅이 그런 것을 봐야….…” 그는 여자들은 로맨스를 좋아하고, 특히 드라마의 달달한 남자 주인공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박태준은 이런 드라마에 관심이 없지만, 신은지를 위해 드라마 두 편을 억지로 보았지만 그 뒤로는 절대 보지 않았다. "흐흐." 신은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 비서님은 솔로야. 그런데 그의 말을 들어? 진 비서님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아마 지금쯤 애가 둘은 있었겠다.” 아직 회사에서 밤샘 야근하고 있는 진영웅의 귀가 갑자기 간지러웠다. 그 틈을 타 박태준이 물었다. "그럼 넌 어떤 걸 좋아하는데?” 신은지는 잠시 생각해 보고 말했다. ”고연우 씨 같은 사람. 입이 무겁고, 아내를 사랑하고, 한결같고, 스캔들도 없고, 감성 지수도 높은 사람. 고연우 씨 같은 조건이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쫓아다니겠어? 그럼에도 그는 공처가잖아.” 비록 박태준이 독설을 퍼붓는 스타일이지만 그는 분명히 고연우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신은지는 상당히 꺼림칙한 눈초리로 박태준을 보았는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박태준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정민아 씨가 좋은 것을 모른다는 거야? 그렇게 좋은 남자가 매일 자기를 떠받들며 살아 주는데,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연우를 귀찮게 생각한다는 거야?” 신은지는 그를 험상궂게 노려보며 박
이 망할 놈은 또 술수를 부려 신은지에게 재혼을 하자고 한다. 신은지는 지금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박태준의 목을 잡아 침대 위로 눕혔다. 신은지의 힘으로는 분명 박태준을 눕힐 수 없었지만 박태준은 순순히 협조하며 신은지가 힘도 쓰기 전에 침대 위로 누웠다. 분노에 휩싸인 신은지는 전혀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침대에서 일어나 박태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그의 목에 댔다. "박태준의 생사는 아직 불분명하고, 반년 뒤에는 지나면 신분을 말소할 자격도 되는데, 나더러 재경 그룹의 작은 사모님이 돼서 과부가 되라는 거야? 그리고 지금 누가 내가 네 전처라는 사실을 몰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작은 사모님이 되라는 소리야? 내 마음대로? 아니면 너랑 불륜이라도 맺어?” 박태준은 한 손을 신은지의 허리에 얹고 그녀가 자신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신은지의 말을 들은 박태준의 눈가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럼 네 말은 내가 박태준이라는 신분을 회복하면 나와 재혼할 의향이 있다는 거야?” 신은지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차고 하는구나? 난 아직 네가 나를 속인 것에 관해 결론을 내지 않았어.” "너에게 이미 신분을 밝혔잖아. 이 일은 그냥 넘기면 되는 거 아니야?" 박태준은 제발에 저려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게 너 스스로 말한 거야?” 지난 일을 생각하니, 신은지는 더욱 화가 나서 사납게 박태준을 노려보았다. “네가 연기를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들킨 거지. 처음에는 임산부한테 관심 없다며? 심지어 내가 널 유혹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녀가 내뱉는 말들을 듣고 있으니 박태준은 듣기 거북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거슬렸다. 박태준은 양미간을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때는 내가 너를 멀리하면 너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 했어.진작 알았더라면......” 숨길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사실 박태준은 신은지를 만나면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신은지는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갔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박태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어떤 전문 용어를 사용해 통화하는 것을 보니 박태준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음성통화를 하는지 영상통화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신은지는 방에 머물다가 심심해서 진유라에게 그녀가 본 드라마에 대해 문자를 보냈다. 진유라는 신은지에게 펑펑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나는 지금 무릎 꿇고 빌고 있어. 예쁘지만 독선 적인 언니와 같은 마음이야. 모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유일한 차이점은 그녀는 동정심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돈을 잃고 있다는 거야.” 문자에도 진유라가 이 순간 이를 악물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영수는 또 왜?” "굳이 전공을 바꿔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잖아. 설득해도 듣지 않고, 그 개 같은 놈이 영수에게 무슨 약을 먹였는지는 모르지만......” "둘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아니었어?” 지난번 학교에서, 진유라가 빨리 막지 않았으면 진영수는 곽동건에게 달려들고 그를 때렸을 것이다. 그날 진영수의 의분 가득 한 모습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날 발생한 일 때문에 영수가 변호사를 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거야. 곽동건을 직장에서 눌러버리고 무릎 꿇리고 나한테 사과하게 만들겠대. 도대체 뭘 잘못 먹고 이런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컴퓨터 하나를 사도 며칠씩 이유를 찾는 애가 나를 설득할 생각도 없고 직장에서 곽동건을 이기고 싶다니, 차라리 내가 곽동건이랑 결혼해서 평화조약을 맺는 게 낫겠어.” 진유라는 열변을 토했다. 그녀는 자신이 책략가인척 때리고 욕하고 원망하고 간신히 곽동건으로부터 '고민해 보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그는 화장실에 갔다.진유라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산속에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 노릇 한다는 말처럼 그녀는 그런 안도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머리 위쪽에서 들려오는 곽동건의 목소리 덕분에 결국 오래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