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서 기민욱을 본 육정현은 말없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재빨리 감정을 감추었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그는 기민욱이 맞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호영과 점심약속을 잡았다. 이것은 기민욱의 일었기에 본인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기민욱이 말했다. "병원에 있는 것도 심심하고 형이랑 같이 가고 싶었어.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했고 기다렸다가 깁스를 풀러 병원으로 오면 된다고 했어.” 육정현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며 물었다. ”아침은 먹었어?” "아직,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여기로 바로 왔어.” 육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꾸짖었다. "의사의 당부가 기억나지 않으면 사람을 붙여서 의사의 말을 네 옆에서 상기시켜 주라고 시킬게." "형, 화내지 마. 왕 비서님께 사다 달라고 부탁했어.” 기민욱은 어제 육정현이 신은지와 또 함께 했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매우 초초하고 불안했다. 기민욱은 무언가가 서서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조금씩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형, 어젯밤에 왜 병원에 안 갔어?” "공적인 일이 좀 있었어.” 기민욱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 그의 눈에 어둡고 불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박씨 가문과 관련된 일이야? 두 가문은 이미 완전히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어? 또 무슨 할 말이 있어?” 육정현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기민욱이 말했다. "어제 내 친구가 길에서 형이 신은지 씨랑 임신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우연히 보고, 나와 얘기하면서 나에게 형 결혼했냐고 물었어.” "협력업체 직원 아이가 이틀 뒤 백일잔치를 하는데 마침 임신부 가게를 지나다가 적당한 게 있으면 사려고 들었했는데 거기서 우연히 신은지 씨를 만났어.” 육정현이 대충 얼버무리자 기민욱은 화가 났다. "그럼 신은지 씨를 데려다주고 그 집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도 우연이야?" 기민욱의 얼굴 표정은 굳어졌다.
상대방이 말을 가지리 않자 육정현의 안색이 약간 변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형, 제가 이미 전화로 말씀드렸지만 이 일은 오해예요. 제 동생은 단지 우연히 그곳에서 술을 마셨을 뿐이고, 호영 씨 사람이 먼저 제 동생을 건드렸어요.” "그가 못생겼다면, 거기에 있던 여자 눈에 띄지 않았을 것 아니야. 네 동생이 너무 잘생겨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 네 동생이 그 술집에 나타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네 동생이 재수 없는 것을 탓해.”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 앞에서는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육정현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했다. "호영 씨, 제 동생은 나이가 어려서 이번 일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호영님이 그날 형님과 같이 있었던 사람들과 제 동생에게 사과하길 바랍니다.” "당신 작년에 육씨 가문에서 경인시로 데려온 작은아들이지?” 호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육정현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돌려 앞에 있던 잔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 만약 테이블이 커다란 대리석 원탁이 아니었다면 테이블마저 젖었을 것이다. 호영은 육정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해? 네 아버지도 감히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지 못했어! 육씨 가문이 최근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한들 이 경인시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호영은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기민욱을 보았다. "이 놈은 내가 때렸어. 사과는 불가능해. 오늘은 네놈 체면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내 눈에 띄면 또 때릴 거야. 밥맛 다 떨어졌네, 가자. 정말 재수 없어.” 호영이 말을 마치고 나가자 그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즉시 우르르 그를 따라 나갔다. 아수라장이 된 룸 안이 곧 조용해졌고, 육정현과 기민욱만이 남았다. 기민욱은 입술을 오므리고 육정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형, 화내지 마. 저런 사람은 조만간 벌을 받게 될 거야. 누군가는 저런 꼴을 참지 못하고 혼내 줄 거야.” 기민욱은 눈을 가늘
육정현의 목젖이 움직였다.”아니, 됐어. 안 친해”진선호와 신은지는 들어오면서 방금 둘의 대화를 들었다.신은지는 문 옆에 서 있는 육정현과 이민욱을 보지 못했는데 대화소리를 따라 가보니 두 사람이었다. 기민욱은 신은지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은지 누나, 친구랑 밥 먹으러 왔어요?”"…네.”기민욱과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신은지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옆에 있던 진선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요.”진선호는 요 몇 달 동안 군대에 있어 박태준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방금 신은지와 육정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본 진선호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둘이 싸웠어요?”보아하니 싸운 것 같지 않고 헤어졌거나, 아니면 얼굴을 붉히면서 격렬히 싸워 서로 꼴도 보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신은지는 진선호가 사람들 앞에서 박태준의 이름을 부를까 봐 걱정했다.특히 육정현은 어젯밤 그녀에게 기민욱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하여 서둘러 진선호를 붙잡았다. "이분은 육영 그룹의 육 대표님, 육씨 가문의 작은 아드님이세요.”진선호는 눈살을 찌푸렸다."아, 육 대표님 안녕하세요.”인사를 마친 진선호는 신은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기민욱의 외모와 말투는 요 몇 년 동안 유행하는 강아지남과 같이 생겨 사람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은지 누나, 저랑 형이랑 아직 식사 안 했어요.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같이 식사하지 않을래요? 지난번에 누나랑 같이 밥 먹고 싶었는데, 그때 누나가 너무 바빠서 내가 말을 못 했어요. 오늘은 형도 같이 있으니 식사같이 해요.” 기민욱은 말을 마친 후 신은지를 향해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육정현은 변명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만약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자주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큰 경인시에서 지인과 자주 마주칠 수 있었을까? 설령 재경 그룹을 탐내고 신은지의 마음을 반쯤 떠 보고 싶다 해도 그녀가 무엇을 알겠는가? 오늘도...… 육정현
손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육정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손을 놓아주어야 했지만 놓아주기는커녕 참지 못하고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신은지의 피부를 스치자 따끔따끔한 감촉이 솟아오르며 혈관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랐다. 수많은 불꽃이 미세한 전류를 타고 마음속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다. 육정현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신은지와 눈을 마주쳤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마치 그 공간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 눈치가 없이 입을 열어 좋은 분위기가 깨지며 육정현의 손이 누군가에 의해 밀려났다. "육 대표님, 묵주가 필요하세요? 은지 씨 손이 당신 손에 잡혀 있네요. 은지 씨 남편이 실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육 대표님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좋지 않아서요.” 진선호는 의자를 거칠게 빼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다시 왼쪽 의자를 당겨 신은지를 앉혔다. 육정현이 들어가 그녀의 반대편에 앉으려 하자 진선호가 그를 막으며 자신의 오른쪽에 있던 의자를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육 대표님, 여기 앉으세요. 남자끼리 같이 앉아야 편해요.” 육정현은 차갑게 그를 흘겨보았지만 진선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육정현은 거만하게 턱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결벽증이 있어서요. 남자한테 나는 땀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요.” 천성적으로 뻔뻔하고 반쯤 건달인 진선호는 그런 말을 듣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그는 오늘 진씨 가문 저택에서 나오면서 아침에 샤워를 했다. 게다가 지금은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고 오는 내내 차 안에 있었다. 땀이 날 틈이 없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육 대표님 분명히 고의로 이러는 것이다. 진선호는 일어나 마치 친한 친구에게 하는듯 육정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를 자신의 오른쪽 의자에 앉혔다. "그럼 육 대표님은 병이에요. 남자, 여자는 모두 땀을 흘려요. 저는 지금까지 땀 냄새를 맡은 적이 없어요. 그런 병이 있으면 나중
육정현은 그 말에 가뜩이나 화가 났는데, 그가 알아듣지 못했을 까봐 나유성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재경 그룹 사장 자리가 공석이니 당연히 사장 비서는 없고, 박 이사님의 몸이 안 좋으셔서 의사가 힘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서 이런 일들을 모두 은지와 상의하는 거예요.” 육정현은 묵묵히 술을 마셨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당신을 벙어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유성은 말했다. “요즘 육 대표님 자주 화내시네요?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요?” 두 사람이 다시 싸우려고 하는 것을 보자, 신은지는 머리가 아파서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저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두 분 천천히 말씀 나누세요.” 그녀는 자리를 뜨며 그들을 쳐다보고 경고했다. "물건을 부수면 돈으로 물어내야 해요.” 진선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둘의 나이를 합치면 반백 년 넘게 산 나이인데, 초등학생처럼 싸우다니 유치하지 않아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육정현이 일어나며 말했다. 몽롱하게 취해있던 기민욱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났다. "형, 가는 거야?” "아니, 화장실 좀 다녀올게. 좀 더 앉아있어. 속 좀 가라앉게 차 한 잔 따라 줄 테니 마셔.” 술을 마셔 얼굴과 몸이 빨갛게 달아오른 기민욱은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실수로 육정현의 옷을 잡아당겼다. 룸에서 나와 복도를 보았지만 이미 신은지는 보이지 않았고, 육정현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복도 끝을 따라 야외 정원으로 갔다. 그 식당에서 유일하게 바람을 쐬기에 적합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그는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방금 기민욱이 잡았던 옷자락 부분을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 구석에서 단추를 하나 찾았다. 단추 모양이었지만 일반 단추보다 두꺼워 코트 다는 장식용 버클 같았다. 육정현은 단추를 손에 쥐고 자세히 관찰했는데, 겹겹이 천으로 싸인 단추는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는 단추를 귓가에 가까이 대고 가볍게 흔들었다.이 단추는 속이 비어 있고 내용물이 들어
신은지는 화가 나서 얼굴을 굳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혼 남녀는 서로를 고려해 보는 것이 정상이에요. 서로 많이 만나 보지도 않고, 누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어떻게 알 수 있죠? 육 대표님은 본인 회사나 잘 관리하면 되세요. 특히 이런 일은 육 대표님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신은지는 육정현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려고 애썼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줄 마음이 없어 오히려 손을 꼭 쥐었다. "놔요." 신은지는 감정이 약간 가라앉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육정현이 자신의 붉어진 눈시울을 볼 수 없게 했다. 방금 한 말은 이 논쟁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박태준 사고 이후 신은지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매일 밤 두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박태준을 영영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녀 혼자 견디고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날 갑자기 전화로 누군가 그녀에게 박태준의 유해를 찾았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매일 이런 생각들을 하며 생활하고, 마음속은 이미 여러 가지 감정으로 긴장감이 극에 달했고,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였다. 박태준이 그녀가 잘 살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았고, 강혜정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신은지는 진작에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육정현이 말했다. "내가 손에 힘을 풀면 넌 도망갈 거지?” 그들이 있는 곳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는 곳이라 누가 오기만 하면 그들을 볼 수 있었다.육정현은 신은지를 끌고 은밀한 구석으로 가 얼굴을 맞대었다. 그는 신은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가슴이 아파왔다. 육정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지야.” 신은지는 한발 물러섰다. "육 대표님, 자중하세요. 저는 당신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로 당신을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육정현은 손을 뻗어 신은지를 품에 안았다. 그의 턱
박태준이 자신을 증명하는 데 급해진 것을 본, 신은지는 이 망할 놈을 속이면서 놀리기로 했다.속이는 건 그렇다 쳐도 육정현은 허점투성이인데, 육정현은 자기가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신은지는 말했다."육 대표님, 그 말씀은 의심하는 사람이 증거를 대라는 말 아닌가요? 저는 지금 육 대표님을 의심하지 않아요.”박태준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를 믿어 주는거야?” "저는 항상 당신을 믿었어요, 육 대표님." 신은지는 그를 향해 웃었다. "너무 오랫동안 밖에 있었어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걱정할 거예요. 이대로 계속 저를 붙잡고 있을 건가요?” "실버......” 그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박태준은 신은지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술 향기가 그녀의 입술 사이에 감돌았고, 박태준은 매우 절박하게 지체 없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 혀끝에 깊은 키스를 했다. 그의 키스는 공격적이었다. 신은지는 그의 품에 안겨 입술을 약탈당한 듯 그와 키스했다. 키스가 끝나자 박태준은 신은지를 놓아주고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이마를 맞대었다. “이제는 알아보겠어?” "……” 넌 귀신이야. 박태준에 의해 입술이 물린 그녀는 입술을 문질러 손등 살갗이 약간 붉어졌다. 그녀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육 대표님, 제 전남편을 존중해 주세요. 제 전남편은 아직 바닷속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 그의 아내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제 전남편이 당신 꿈에 나올까 봐 두렵지도 않나요?” 신은지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신은지는 몇 번 흐느끼는 척하며 웃음을 다시 삼키고, 정색을 하고 고개를 돌려 말을 하려 했다. 그 순간 박태준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바지를 벗어서 보여줄게, 지난번 뱀에게 물린 상처에도 흉터가 남아있어.” 그동안 신은지는 그의 바지를 벗겨 확인하려 했지
진선호와 나유성이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신은지는 거절하고 혼자 식당을 나섰다. 오후에 진유라와 함께 진영수의 학교에 방문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박태준은 이제야 답답했던 속이 좀 내려갔다. 전에는 거슬렸던 진유라가 오늘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 다시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진유라가 곽동건과 잘되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박태준은 기민욱을 부축해 차에 태운 다음,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집으로 가자."주차장을 나가는 길은 내리막길과 커브가 이어져 있어 운전이 쉽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쏠리는 것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었다.호시탐탐 다시 박태준의 호주머니에서 단추 도청기를 꺼낼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민욱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차의 움직임과 함께 몸을 박태준 쪽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막상 손을 뻗으려니,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의 손은 주머니에 닿기도 전에 박태준에게 저지당했다.박태준은 진작 기민욱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피할 수는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민욱이 몸을 기울여오자, 오히려 역으로 그를 배려하는 척 팔 거치대까지 펼쳐주며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능청스럽게 운전기사에게 주의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운전 조심해."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연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기민욱은 자연스레 술에서 깬 척 눈을 떴다."형."기민욱이 막 정신을 차린 듯 흐리멍덩한 눈을 연기하며 박태준을 불렀다. 박태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찾는 척 연기하며 주머니에서 기민욱이 찾던 단추를 꺼내 들었다."어디서 난 단추지?"박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순간, 기민욱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취한 척 연기하느라 흐리멍덩했던 눈빛도 또렷해졌다. 하지만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박태준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차 좀 세워봐."차가 서는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