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는 화가 나서 얼굴을 굳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혼 남녀는 서로를 고려해 보는 것이 정상이에요. 서로 많이 만나 보지도 않고, 누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어떻게 알 수 있죠? 육 대표님은 본인 회사나 잘 관리하면 되세요. 특히 이런 일은 육 대표님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신은지는 육정현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려고 애썼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줄 마음이 없어 오히려 손을 꼭 쥐었다. "놔요." 신은지는 감정이 약간 가라앉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육정현이 자신의 붉어진 눈시울을 볼 수 없게 했다. 방금 한 말은 이 논쟁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박태준 사고 이후 신은지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매일 밤 두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박태준을 영영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녀 혼자 견디고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날 갑자기 전화로 누군가 그녀에게 박태준의 유해를 찾았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매일 이런 생각들을 하며 생활하고, 마음속은 이미 여러 가지 감정으로 긴장감이 극에 달했고,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였다. 박태준이 그녀가 잘 살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았고, 강혜정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신은지는 진작에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육정현이 말했다. "내가 손에 힘을 풀면 넌 도망갈 거지?” 그들이 있는 곳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는 곳이라 누가 오기만 하면 그들을 볼 수 있었다.육정현은 신은지를 끌고 은밀한 구석으로 가 얼굴을 맞대었다. 그는 신은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가슴이 아파왔다. 육정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지야.” 신은지는 한발 물러섰다. "육 대표님, 자중하세요. 저는 당신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로 당신을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육정현은 손을 뻗어 신은지를 품에 안았다. 그의 턱
박태준이 자신을 증명하는 데 급해진 것을 본, 신은지는 이 망할 놈을 속이면서 놀리기로 했다.속이는 건 그렇다 쳐도 육정현은 허점투성이인데, 육정현은 자기가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신은지는 말했다."육 대표님, 그 말씀은 의심하는 사람이 증거를 대라는 말 아닌가요? 저는 지금 육 대표님을 의심하지 않아요.”박태준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를 믿어 주는거야?” "저는 항상 당신을 믿었어요, 육 대표님." 신은지는 그를 향해 웃었다. "너무 오랫동안 밖에 있었어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걱정할 거예요. 이대로 계속 저를 붙잡고 있을 건가요?” "실버......” 그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박태준은 신은지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술 향기가 그녀의 입술 사이에 감돌았고, 박태준은 매우 절박하게 지체 없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 혀끝에 깊은 키스를 했다. 그의 키스는 공격적이었다. 신은지는 그의 품에 안겨 입술을 약탈당한 듯 그와 키스했다. 키스가 끝나자 박태준은 신은지를 놓아주고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이마를 맞대었다. “이제는 알아보겠어?” "……” 넌 귀신이야. 박태준에 의해 입술이 물린 그녀는 입술을 문질러 손등 살갗이 약간 붉어졌다. 그녀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육 대표님, 제 전남편을 존중해 주세요. 제 전남편은 아직 바닷속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 그의 아내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제 전남편이 당신 꿈에 나올까 봐 두렵지도 않나요?” 신은지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신은지는 몇 번 흐느끼는 척하며 웃음을 다시 삼키고, 정색을 하고 고개를 돌려 말을 하려 했다. 그 순간 박태준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바지를 벗어서 보여줄게, 지난번 뱀에게 물린 상처에도 흉터가 남아있어.” 그동안 신은지는 그의 바지를 벗겨 확인하려 했지
진선호와 나유성이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신은지는 거절하고 혼자 식당을 나섰다. 오후에 진유라와 함께 진영수의 학교에 방문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박태준은 이제야 답답했던 속이 좀 내려갔다. 전에는 거슬렸던 진유라가 오늘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 다시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진유라가 곽동건과 잘되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박태준은 기민욱을 부축해 차에 태운 다음,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집으로 가자."주차장을 나가는 길은 내리막길과 커브가 이어져 있어 운전이 쉽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쏠리는 것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었다.호시탐탐 다시 박태준의 호주머니에서 단추 도청기를 꺼낼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민욱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차의 움직임과 함께 몸을 박태준 쪽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막상 손을 뻗으려니,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의 손은 주머니에 닿기도 전에 박태준에게 저지당했다.박태준은 진작 기민욱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피할 수는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민욱이 몸을 기울여오자, 오히려 역으로 그를 배려하는 척 팔 거치대까지 펼쳐주며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능청스럽게 운전기사에게 주의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운전 조심해."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연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기민욱은 자연스레 술에서 깬 척 눈을 떴다."형."기민욱이 막 정신을 차린 듯 흐리멍덩한 눈을 연기하며 박태준을 불렀다. 박태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찾는 척 연기하며 주머니에서 기민욱이 찾던 단추를 꺼내 들었다."어디서 난 단추지?"박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순간, 기민욱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취한 척 연기하느라 흐리멍덩했던 눈빛도 또렷해졌다. 하지만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박태준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차 좀 세워봐."차가 서는 동
신은지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주 준비를 철저히 했네.""그 썩을 놈이 내 전화를 안 받으면 끝나는 줄 알겠지만, 천만에! 내가 오늘 누나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겠어!"진유라가 쌈닭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며 말했다. "이러다가 대학에서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끝날 게 뻔해. 처음부터 경영학을 배우게 했어야 했는데. 아오! 괜히 동생 놈 때문에 딴 년한테 남신까지 빼앗기고!"그 말을 듣고 있던 신은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걱정 마, 얼마 전에 그 남자 이혼했다는 뉴스 봤어.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다시 잘해봐.""...."둘이 그러고 있는 사이, 진영수는 몰래 정문 구석 나무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전화는 안 받고 있었지만, 문자는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진유라가 곧 찾아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구원투수한테 연락까지 넣은 상태였다. 진영수는 부디 그가 오기 전까지, 경비 아저씨가 대신잘 막아주길 기도했다. '제발... 제발...!'하지만 그의 바램과 달리, 경비 아저씨는 얼마 버텨주지 못했다. 진유라가 기어이 정문을 통과하고 말았다. 이대로 숨어있다가 잡히면 그동안 학교에서 쌓아왔던 이미지가 모두 무너질지도 몰랐다. 진영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것이 덜 꼴사나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신호흡을 하며 나무 뒤에서 나가려던 찰나, 카톡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영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구원투수가 교문에 도착했다고 문자 보낸 것이었다. 다급해진 그는 재빨리 영상통화를 걸었다. "형부, 이거 보세요! 우리 누나 지금 막 정문을 통과했어요! 저 어떡해요!"진영수가 흥분해 높게 말하는 바람에 단번에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고 말았다. 물론 막 정문을 통과하고 있던 진유라와 신은지의 눈에도 들어왔다. 진유라는 차마 공공장소에서 동생한테 화를 낼 순 없어, 이를 악문 채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진영수, 좋은 말 할 때 이리로 와.""형부, 살
바지? 박태준은 바지를 벗을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육정현의 신분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신은지의 태도를 보니 그녀는 자신이 바지를 벗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아파트 복도 끝자락에 보이는 창문은 어느새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이런 사적인 공간에서 남녀 둘이 늦은 시간에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박태준은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크흠, 찾아보니까 임신 4개월이면 할 수는 있다던데, 의사한테 물어본 적은 없지?"신은지는 좀 더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 집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의아했다."뭘 물어봐요?"신은지도 알 거는 다 아는 성인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단번에 그의 말에 담긴 성적인 의미를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는 아직 신은지에게 박태준이라고 인정받지도 못했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박태준이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네가 아까...."그가 하던 말을 멈추자, 신은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까 뭐요?"박태준은 말없이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았다.그제야 신은지는 그가 좀 전에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육 대표님, 본인이 누군지 잊으신 거 아니죠? 제가 비록 과부가 되긴 했지만, 제 뱃속에는 전남편의 아이가 있어요. 그를 위해 평생 수절할 각오도 되어 있으니까, 저를 욕보이지 마세요."박태준은 그녀의 말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평생 자신을 위해 수절하겠다는 말에 감동받고 있었다.그는 애당초 지금 신은지에게 박태준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에게 있어 지금의 박태준은 육정현으로 인식되어 있을 텐데, 외간 남자를 집으로 들이다니, 말에 이치가 맞지 않았다."그럼, 나유성이랑 진선호도 안 받아줄 거지?"마음 같아선 한시도 신은지 옆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박태준은 당분간 육정현의 신분으로 살아야
신은지는 그가 왜 보기 좋지 않을 거라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그의 옷을 들췄을 때 보았던 상처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옷에 가려 있어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그때 보았던 상처들은 지금도 그녀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심을 꽉 옥죄고 있는 듯,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다. 신은지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재빨리 그를 밀쳐냈다."저 쉬고 싶어요. 씻으러 갈 거니까, 따라오지 마세요.""은지야...."박태준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신은지의 행동이 더 빨랐다. 침실 문이 쾅 하고 닫히며 안에서 문을 잠그는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해진 그가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은지야,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봐도 되니까, 문 좀 열어줘.""...."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그는 신은지가 방 안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면적이 그렇게 넓은 아파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다. "화났어? 화내는 건 아이한테 안 좋아."이 말을 들은 신은지는 슬펐던 마음이 수그러들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이는 당신한테 줬잖아요. 그렇게 애가 좋으면 돌아가서 그 베개나 돌봐줘요."박태준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전에 신은지한테 베개를 받긴 했지만, 그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화나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계속 달래려 애썼다."아이가 좋은 게 아니라, 네가 몸 상할까 봐 그러지. 은지야, 걱정되니까 문 좀 열어주면 안 될까?""...."하지만 신은지는 지금 안쪽 욕실에서 물 받고 있던 터라 그의 목소리가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다만 듬성듬성 아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을 보아, 아직도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임신 여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그녀가 힘들어질 수 있다며 철저히 피임 도구를 챙기던 건 박태준이 아닌가? 요즘 구시대도 아니고, 피임 도구가 허술하게 제작되지도 않았을 텐데, 갑자기 아이가 생
다음날.신은지는 폭신한 이불에 감싸인 채 잠에서 깼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흐린지 하늘이 뿌연 것이 보였다. 나뭇잎들이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신은지는 오랜만에 개운한 숙면을 취해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그런데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박태준한테 잡혀 품에 갇혀 있었는데, 침실엔 어떻게 오게 된 것일까? 놀란 신은지가 이불을 들춰보았다. 어제 잠들기 전 입고 있던 옷은 잠옷보다는 그냥 외출용 캐주얼 복장에 가까웠다. 박태준이 떠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았었는데, 깨어나 보니 잠옷 차림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즐겨 입지 않는 실크로 된 보라색 나시 원피스 잠옷이었다."...."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박태준의 작품이 분명했다. 신은지는 입술을 깨문 채, 속으로 박태준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아직 박태준이라고 내가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 이 멍청이!'어차피 일어난 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그가 박태준인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신은지는 화를 내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숨을 내쉬며, 신은지는 씻고 출근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오늘 아침엔 박용선이 주체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그녀는 박용선의 최측근 비서로서 반드시 회의에 동참해야 했다. 신은지는 빠르게 준비를 마친 다음 회사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문제가 겹쳐 회의가 끝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회의가 끝난 뒤, 신은지는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진영웅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고연우 씨가 전해드릴 말이 있다면서, 아까부터 지하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었어요.""네, 알겠어요."고연우가 찾아왔다니, 친자 검사 결과지가 나온 것이 분명했다. 신은지가 작성된 보고서를 진영웅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이사님 사무실에 가져다주세요.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지하 주차장이
박태준은 병원 로비 의자에 멍하니 머리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병원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고연우는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 채 다가갔다. "약속 잡을 만한 장소가 그렇게 없었어? 왜 굳이 병원에서 보자고 했어?"박태준이 의자에 늘어진 채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열이 나.""...."그 모습을 본 고연우가 살짝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열나면 빨리 의사한테 진찰이나 받을 것이지, 멍하니 여기에 왜 앉아 있어? 가만히 있으면 열이 알아서 내려?""산부인과 접수해줘.""쿨럭."고연우는 그의 말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장난해? 내가 임신한 것도 아니고 웬 산부인과야? 그리고 남자가 산부인과 접수하는 거 봤어?""인터넷에 검색해 보니까 4개월이면 배가 나와야 정상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은지 배는 임신한 것치고 너무 평평해. 혹시 무슨 문제 없는지 의사한테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아버지 쪽 상황이 안 좋은데, 은지도 스트레스받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다가 애까지 문제 생겨봐, 얼마나 속상하겠어? 내가 직접 가기엔 걸릴 것 같으니까, 네가 좀 대신해 줘.""...."고연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배 안 나온 이유, 혹시 임신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그럴 리 없어. 분명 전에 유아용품점에서 쇼핑하는 거 봤단 말이야.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굳이 거기를 왜 가겠어?"만약 임신한 것이 아니라면, 박태준은 신은지와 실질적인 연결고리가 없어진다.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부분이었다. 옆에 있던 고연우가 말했다."남자인 너도 가봤잖아."그 말을 들은 박태준이 갑자기 기운을 차린 듯 몸을 곧게 세우며 말했다.“애 아빠가 유아용품점에 들리는 게 뭐가 이상해?”고연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너 지금 육정현이야. 박씨 집안이랑 원수잖아.""...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래서 지금 대신 접수해달라는 거잖아.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