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그를 쏘아보았다.“이렇게 해서 끝날 줄 알았다면 오산이에요. 그 모든 장면은 이미 내 두 눈에 똑똑히 담겼고, 내 마음에 상처를 입혔어요. 절대 잊을 수 없어요.”그는 나를 꼭 껴안으며 애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그 사람을 벌해야죠. 평생 안아달라고 하고, 손 놓지 말라고 해야죠!”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 남자는 정말 나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부드럽게 하면 그는 강하게 몰아붙이고, 내가 강하게 나오면 그는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다시 한번 그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벌은 필요 없어요.”나는 일부러 고집스럽게 말했다.“그 사람도 안을 사람이 있는데, 나라고 없겠어요?”우리는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말했다.“감히? 손을 썼더니 아직도 덜 혼이 났나 봐요?”나는 놀란 채로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며 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늠해 보았다.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내 마음이 다 풀렸다는 것을 알고 내 입술을 살짝 물었다.“꼬마 아가씨, 콩이보다 더 달래기 어렵다니깐요.”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감정 상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혜선 언니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서강민이 그녀의 마음에 완전히 상처를 입혔어요. 이번엔 돌아올 여지가 별로 없어 보여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마음의 상처에요. 그런 상처는 깊이 남아서 치유할 수 없으니깐요.”배현우는 팔을 더 꽉 조였고 턱으로 내 이마에 비비적거렸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랐다.요즘 나는 순조롭게 지내고 있지만, 내 친구들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칠 동안 김향옥은 골드 빌리지로 출근하듯 매일 찾아왔고 오후 2시쯤 도착해 콩이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녀의 상태는 나쁘지 않아 보였고 우리 엄마도 그녀의 위중한 병세를 듣고는 더는 그녀에게 트집을 잡
강숙자는 내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각성한 듯 내 앞으로 뛰어왔다.“한지아 이 쌍년, 낯짝도 두꺼운 놈. 이혼하고도 신호연한테 꼬리를 쳐? 그렇게 대단하면 이 곧 죽을 년도 집에 데려오지 그래? 네가 신호연한테 아이디어를 내줬다며? 내 집을 빼앗으라고...”“내 집? 당신이 뭔데? 당신은 자격 있어요?”나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잡아끌었다.“들어가요! 엄마, 다들 들어가세요!”그 말과 함께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경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숙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우리 집 마당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특별히 김향옥을 위한 출입 카드를 만들어줬으니 그녀는 지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이 미친 사람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기회에 경비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었다.나는 어른들을 집안으로 밀어 넣으려 집 앞까지 쫓아갔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녀가 우리 집 문턱을 넘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내 계획을 모르고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펄쩍 뛰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짚어댔다.“이 천한 년, 네가 경비를 불러서 뭐 어찌하겠다는 거야? 오늘 널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다시는 신호연에게 꼬리 칠 수 있나 보자!”그녀가 다리를 들어 내 집으로 들어오자 나는 윤 씨 아주머니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아 망설임 없이 빠르게 휘둘렀다.숟가락이 강숙자의 얼굴에 맞았고 그녀의 머리가 갑자기 한쪽으로 쏠리더니 다리도 휘청거렸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머리를 흔들더니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이제 보니 숟가락에 맞아 정신이 멍해진 게 틀림없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더니 음산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마 내가 진짜로 손을 쓸 줄 몰랐었는지 미친 듯이 나에게 달려들었다.엄마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어 나를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소리 질렀다.“다 물러나요! 물러나!”“다시 와 봐요!” 나는 강숙자를 도발했다.“당신은 정말 김향옥이 만만한가 봐요? 늙은 짐승만도 못
나는 기품 있게 마당에 서서 경비원들을 바라보았다.“이제 왔어요? 이런 사람은 우리 동네의 주민이 아닌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경찰에 신고하세요.”담당 경비원이 바닥에 꼿꼿이 누워있는 강숙자를 보고 많이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곤 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경찰에 신고해요! 이 사람이 민가에 몰래 침입하고, 또 범행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어요. 얼른 경찰에 신고해요!”나는 경비원에게 다시 말했다.나는 마음속으로 구경하는 이웃 중 몇 명의 젊은 사람들이 이미 핸드폰으로 전 과정을 촬영했고, 우리 집에도 CCTV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이때 강숙자의 손에 여전히 삽이 쥐어져 있었다. 내 추측으로는 부동산 경비원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책임질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이 사람을 들여보낸 것이니깐.“그... 아가씨, 저희...”나는 전화기를 들고 바로 신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조용히 지내려면 신연아 같은 놈을 뿌리째 뽑아 여기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해야 한다.그런데 경찰이 오기도 전에 내가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신연아가 뛰어 들어왔다. 바닥에 누워있는 강숙자을 보자마자 욕설을 퍼부으며 강숙자에게 달려들어 울부짖었다.“... 엄마... 사람을 죽였어요! 한지아 네가 감히 사람들 앞에서 살인을 하다니!”“맞아, 강숙자가 들어와서 범행을 저지르니 난 정당방위를 해야지.”나는 여전히 손에 숟가락을 들고 유유히 신연아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아까 강숙자가 몰래 눈을 뜨고 신연아를 보자 신연아가 얼른 강숙자의 눈을 가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연아가 강숙자를 죽은 척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한지아, 내가 그동안 너를 오래 참았어. 너는 전남편을 꾀어서 우리 가정을 이간질하고, 이 죽지도 않는 늙은이를 자꾸 너에게 달려가도록 하고, 너 무슨 속셈이야?”신연아는 마구 뒹굴며 울부짖었다.“...엄마! 일어나세요!”바로 그때,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입구에 멈췄다. 경찰 몇
김향옥은 지금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붙잡으며 말했다.“조급해 하지 말아요, 난 괜찮아요. 경찰이 공무집행 절차 때문에 조사하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강숙자가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때린 사실을 경찰이 공론화할 거예요.”“나도 갈래... 나도, 나도 너랑 같이 갈게!”김향옥이 날 덥석 잡았다. 마치 내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었다.나는 강숙자의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눈빛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녀의 일생에서, 곧 죽을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있어서, 그녀의 눈에는 남남인 내가, 신 씨 가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이 시점에서 그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아마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내가 그녀의 남은 인생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나는 마음이 매우 쓰라렸다. 이때까지 살면서 이제야 비로소 사람을 똑똑히 보다니. 나는 다시 힘껏 그녀의 녹초가 된 몸을 부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겁내지 마세요. 조금 진정해요. 우리 모두 괜찮을 거예요!”나는 고개를 돌려 부모님께 당부하고 김향옥과 함께 차에 탔다. 생각해 보니, 첫째로 김향옥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가봐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나는 김향옥이 조급해하는 걸 원치 않았다. 둘째로 그녀가 가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다.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내가 아직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경찰서에 도착했는데, 신연아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내 잘못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어쨌든 강숙자의 머리에 난 상처 때문에 피투성이여서 매우 무서워 보였다. 특히 상황을 모르는 서의 경찰관이 이런 상황을 보고 모두 약자를 감싸며 나에게 호통쳤다.김향옥은 놀라서 벌벌 떨며 입에서 계속 무언가 중얼거렸다.“제가 했어요. 제가 때렸어요, 절 잡아요.”우리는 따로따로 질문을 받았다. 나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낱낱이 진술했다
막 돌아서서 떠나려는데 김향옥이 소리쳤다“지아야, 나... 너랑 같이 가도 될까?"그 순간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 눈을 들어 배현우를 쳐다보았는데 배현우의 눈동자에 부드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김향옥을 바라보았다.“결정했어요?"그녀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랑 갈게!"“... 엄마!"신호연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엄마가 지금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은 아들의 얼굴에 먹칠하는것과 같다.모든 경찰은 눈앞의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경찰들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정말 당황했다. 내가 돌아서서 김향옥을 부축하자 김향옥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원래 나랑 같이 갈지 말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는 말을 삼켰다.로비에 이르자 신연아가 서 있었다. 김향옥이 휘청휘청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앞으로 다가와 김향옥을 가리키며 추궁했다.“노망난 거 아니에요? 한지아가 누군지 모르세요? 그런데 같이 간다고요? 잘 들어요, 김향옥 씨, 오늘 한지아랑 같이 가면 다시는 신씨 가문에 발 들이지 마세요."나는 코웃음을 치며 신호연을 힐끗 쳐다보며 두 눈 가득 비꼬았다. 신호연은 당연히 내 눈빛을 알아챘다. “입 다물어!"“내가 무슨 입을 다물어? 저 여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야. 한지아가 뭐라고 김향옥이 저 여자를 따라가? 날 며느리로 생각하긴 해?"신연아가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신호연을 향해 소리쳤다.“그러면 너랑 가? 네가 이런 꼴인데 어떻게 너랑 함께 가겠어."나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돌아가서 계속 때리게?"신연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배현우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매의 눈 같은 배현우의 눈동자에는 무서운 포악함이 가득했다. 신연아는 갑자기 발을 멈추고 눈을 피하며 더 이상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갔다. 배현우는 신호연과 스쳐 지나갈 때 신호연을 차갑게 바라보며 음산하게 한마디 했다.“당신 여자 똑바로 단속해
이미연이 이미 조용히 퇴원했지만, 문기태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그녀의 외출을 엄하게 단속했다.내가 이미연을 데리고 나와 라온하제에 가려고 했는데, 방금 도착하자마자 한소연이 크고 작은 가방을 가득 들고 안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그것을 본 이미연은 나를 보고 의아한 듯 말했다. “물건을 쓸어 담았네?”나도 그녀가 물건을 많이 산 듯 쇼핑백을 한가득 힘겹게 걸치고 나오는 것을 봤는데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번 옷차림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고 이상했다.“하! 다른 사람을 찾은 건가 보군. 보이콧을 당했는데도 이렇게 풍족하게 살아? 예전에 잘나갈 때도 사치품으로 이렇게 사치 부리는 것을 못 봤어.”이미연은 한소연이 물건을 들고 주차장으로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가자! 한소연을 보면 기분이 상하지 않아?”나는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이미연 역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확실히 기분 상하네. 그런데 지금 모습이 어째서 이도 저도 아니지?”“너도 발견했어?”난 이미연을 향해 봤다. “스타일이 누구랑 닮았더...”나와 이미연이 동시에 말했다. “나!”“너!”우리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확실히 닮았어!”“하지만 한소연은 겉모습만 배웠지 분위기는 전혀 안 맞아! 보기 불편해졌어!”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가자! 쟤도 멍청이같아.”나는 이미연의 말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것 같아 히죽 웃었다. 우리 둘은 함께 차에서 내려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구경하며 도혜선의 얘기를 했다. ”혜선 언니는 아직 소식이 없어?”이미연이 물었다.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없어. 며칠 전 서강민이 찾아왔어.”“사람은 항상 그래, 있을 때 모르고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알아.”이미연이 탄식했다.“서강민이 조금 아픈 것도 좋아. 포기하든지, 되찾든지!”하지만 도혜선의 이번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혜선이가 정말 상처받은 것 같아.”우리는 함께 G
그러자 이미연은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져서 고개를 번쩍 들어 그 아가씨를 바라보았다.“왜 말을 그렇게 해요? 뭐 잘못 먹었어요?”“전 원래 이렇게 말해요. 듣기 싫으면 오지 마세요. 눈치랑 염치 좀 챙겨요. 여기가 당신 집 보석함인 줄 알아요? 한 번, 또 한 번 가져가는 게 양심에 찔리지 않아요?”그녀의 작은 입은 매우 말주변이 좋았다. 나는 조금 뜬금없어 그녀를 바라보았다.“흥분하지 말고 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봐요. 나는 단지 이 팔찌를 보고 싶을 뿐인데 문제 있나요?”조금 더 나이 든 점원이 얼른 달려왔다. 그녀의 명찰에 점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점장은 판매원을 뒤로 끌어당기며 얼굴에 웃음을 띠며 나에게 말했다.“한지아 씨, 죄송합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에요.”“누가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고 했어요. 의도한 게 맞아요! 정 안되면 그만둘게요, 답답해요. 정말 염치없이 여기를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저는 탐욕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당신처럼 이토록 탐욕스러운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정말 주얼리를 본 적 없는 소시민이네요.”그 계집애는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말끝마다 가슴을 찔러 아무리 뻔뻔한 사람도 참을수 없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당신에게 죄를 지었어요? 지금 내 얘기를 하는 거예요?”“맞아요. 당신을 말하는 거예요.”그 계집애는 정말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세였다.그 점장은 상황이 안 좋아지자 얼른 계집애에게 호통을 쳤다.“그만해요. 입 다물어!”그 계집애는 갑자기 폭발하여 자기 작업복을 찢어 퍽 하고 테이블에 내리쳤다. “저 이제 그만둘게요. 당신들의 이런 방법으로는 이 가게도 오래가지 못하고 곧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거예요. 지금 그녀가 공짜로 가져가는 것도 부족해요.”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웠다. 이게 다 뭔 소리야?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가씨, 말 좀 똑바로 해요. 내가 언제 공짜로 가져갔어요?”“아직도 인정
이미연 역시 겁먹지 않았다.“내가 몇 번 다시 말해도 안 가졌어요.”진소이는 정말 화가 나서 가게 안의 다른 사람들을 뿌리쳤다. “당신들은 정말 끝장 보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네요. 아직도 변명을 하다니!”진소이는 바로 카운터로 가서 재빨리 서랍을 열고 장부를 꺼냈다.그 편씨 성을 가진 점장은 즉시 달려들어 강탈했다.“진소이 씨, 건방지네요!”“점장님은 이 여자를 무서워하고 잘 보이고 싶겠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왜요? 승진하고 싶어요? 그러면 사장님 물건으로 인정을 베풀지 마세요! 이 가게는 당신 것이 아니에요.”짝 하는 소리와 함께 진소이는 온몸이 휘청거렸다. 진소이는 이내 얼굴을 가리고 그 점장을 바라보았다.편 점장은 때리고 나서 자신도 좀 지나치다고 느꼈는지 멍해졌다.진소이는 기회를 틈타 장부를 홱 잡아당겼고 편 점장을 쳐다보며 말했다.“방금 때린 이 뺨을 기억해요. 내가 언젠간 갚을 거예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 카운터에 장부를 내리쳤다.“봐봐요, 이게 당신이 사인한 거예요!”그녀는 말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내게 건넸다. 나는 재빨리 집어 들고 자세히 맨 뒤까지 확인했다. 과연, 위의 서명이 분명히 내 이름, 한지아였고 글씨체도 비슷했다. 나는 이미연과 얼굴을 마주 보며 사태가 좀 심각해짐을 느꼈다.진소이는 코웃음을 치며 차가운 눈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왜요? 아직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이미연은 공책을 집어 들고 시간을 보더니 소리쳤다.“지아야, 나 무슨 일인지 알겠어!”내 머릿속도 번쩍했다.“한소연!”우리 둘 다 눈이 휘둥그레했다.진소이는 승리를 거머쥔 듯 당당했다.“더 할 말이 있어요? 아직도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나는 진소이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며 욕을 했지만 왜인지 나는 지금 그녀가 상당히 좋았다. 심지어 그녀의 얼굴에 선명히 나타난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을 보고 약간 마음 아팠다.“진소이 씨, 나를 자세히 보세요.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