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지만 서울은 여전히 불빛으로 반짝였다. 대도시의 밤은 지금이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하지만 경공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남미주가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는 미연이 아직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매분 매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배현우의 전화가 울렸고 나와 도혜선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를 쳐다봤다.배현우는 전화를 받더니 미간이 살짝 풀어지며 말했다.“문기태의 사람들밖에 없나요?”추측건대 문기태가 움직인 것 같았다.배현우는 전화를 끊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당신과 혜선 씨는 이곳에 남아있어요, 난 잠시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는데요?” 나는 급박하게 물었다.아무리 봐도 배현우가 확실한 소식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확실한 소식이 있나요?”배현우가 나를 바라보더니 인내심 있게 대답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 확실한 상황이 아니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여기서 내 소식만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가장 먼저 알려줄게요.”“뭐가 또 가장 먼저예요, 지금이 가장 먼저 아닌가요? 난 가장 먼저 미연이 소식을 알고 싶다고요!”나는 고집스럽게 배현우의 얼굴을 쳐다봤고 추호의 물러섬도 없었다.“지아 씨, 말 들어요. 알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 이번엔...”“그래서 나도 꼭 가야겠어요. 지금 가장 위험한 건 미연이에요. 난 내 안위만 생각할 수가 없어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미연이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요!”나는 살짝 분노가 치밀었다.도혜선이 그런 내 상황을 보더니 서둘러 다가와 내 팔을 잡고는 배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배 대표님, 우리도 함께 가게 해주시죠! 미연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특히 지아한테는 더욱 더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배현우는 절대 물러섬 없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가 가지 못하게 막아선들 경공관을 나서자마자 나도
경공관을 나오자 나는 배현우에게 말했다. “나는 혜선 언니랑 같은 차에 탈게요!”배현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차에 올라탔고 나도 도혜선의 차로 이동했다.차에 타자 도혜선이 입을 열었다.“이제 보니, 미연이의 일이 이세림과 연관된 게 분명해.”두 대의 차가 줄지어 경공관으로 떠났다.길에서 동철이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배 대표님의 차를 따라가지 마세요. 남미주가 미행을 붙였어요.”나는 깜짝 놀라 도혜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언니, 현우 씨 차를 따라가지 마, 남미주가 미행을 붙였대!”나는 이 여자의 신중함과 교활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서둘러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낮은 소리로 주소를 알려줬다. 그리고는 먼저 골드 빌리지로 돌아가 미행을 따돌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배현우가 말한 주소는 용산구의 낡은 건물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인수된 후 나이트클럽으로 재탄생했고 10층 위로는 호텔이었다. 이름도 상당히 독특한 것이 소울시티라고 불렸다.나는 어쩔 수 없이 배현우가 시키는 대로 도혜선더러 골드 빌리지로 직행하라고 했다.도혜선이 거칠게 한마디 내뱉었다. “이세림이 이번 일과 연관돼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혜선 언니, 난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시각에 남미주가 어떻게 이세림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지? 둘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었다 한 들 지금은 경솔하게 나설 때가 아닐 텐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은연중에 좋은 징조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혹시 저들이 문기태의 행동을 모르는 건 아닐까? 아니면...”나는 더는 생각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도혜선 역시 두 눈 가득 두려움에 질려있었다.“헛된 생각 하지 마! 좋은 일일 수도 있잖아!”도혜선이 계속 뒤쪽을 예의주시하며 말했다.우리가 탄 차는 골드 빌리지로 들어갔고 미행하는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도혜선이 차를 어두운 곳에 대고는 대문을 관찰했고 바로 그때, 동철에게서 전화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나와 배현우는 시선을 맞추고는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위로!” 그리고는 동시에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홀 안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엘리베이터는 이미 위로 올라가고 있었고 배현우는 다급하게 다른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나와 배현우, 김우연을 포함한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손에 쥔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려댔다. 전화를 받자 반대편에서 동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남미주가 경공관을 나왔어요, 지금 소울시티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어요!”나는 긴장되는 눈빛으로 배현우를 쳐다봤고 그는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당황하지 말고, 사람부터 찾고 얘기해요!”나는 배현우의 손을 꽉 잡은 채 미연이가 위에 있다면 무조건 그녀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하고 우리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역시 다른 엘리베이터도 같은 층에 멈춰 섰고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배현우가 방향을 판단하더니 나를 끌고 왼쪽으로 뛰었고 순조롭게 비상 탈출구를 찾아냈다. 우리는 순식간에 뛰어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옥상은 꽤 큰 규모였고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는 광고판 불빛 아래 대낮처럼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언뜻거렸다.문기태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을 진행했고 우리도 옥상의 모든 공간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한 바퀴 수색하고 나자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옥상은 아직 사용 목적 없이 방치되어 있었기에 드넓게 열려있었고 모든 장비가 한눈에 보였다.모두들 한 바퀴 찾아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이 실망한 표정으로 문기태에게 다가갔다.문기태도 조급해 보였다. 두 쌍의 눈동자가 흰 불빛의 대비 속에서 유난히 깊고 어두워 보였고 마치 두 개의 블랙홀같이 소름 돋는 한기를 뿜고 있어 저도 모르게 오한이 밀려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원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고 온화하고 점잖은 평소의 문기태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나는 그의 앞으로 뛰어가 물
“... 미연아... 미연아...”탱크 꼭대기로 달려가자 아래에서 문기태의 급박한 외침이 들려왔고 그 목소리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나는 머리가 띵하고 울려와 저도 모르게 발이 삐끗해 아래로 떨어지려고 했고 다행히 뒤에서 따라오던 배현우가 나를 덥석 잡아서 일으켜줬다. 마음이 급한 나는 물불 안 가리고 탱크 꼭대기부터 밑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달려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미연! 미연이 괜찮아요?”사실 나는 아래쪽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탱크 밑부분에 은은하게 몇 가닥의 빛이 아른거렸는데 물도 있는 것 같았다. 아래로 갈수록 녹슨 쇠냄새와 고인 물의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고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아래에 있는 문기태 쪽 사람들이 전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탱크 밑부분을 비추고 있자 거대한 탱크 안에서는 반딧불 빛과 같아 보였다. 눈앞에 천이 한층 가린듯 보이지 않았는데 어둠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문기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칼!”내 심장이 덜컥했다. 칼을 왜 찾는 거지?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 빨리 달려갈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음이 초조하고 급한데 느린 발걸음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끊임없이 떨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밑에 도착하자 눈도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졌다. 나는 이미 고인 물에 들어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물속에서 하얗게 퍼진 이미연을 안아 꺼내온 문기태를 봤고 누군가 칼로 그녀의 손발을 묶은 끈을 자르고 있었다. 반딧불 같은 불빛 아래,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이미연은 머리와 몸이 이미 축 늘어져 숨이 간들간들했다. “... 미연아!”문기태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눈 좀 떠봐. 나왔어.”그는 속수무책인 듯 품속에 금방 손발이 풀린 이미연을 바라봤고 아무런 생명 반응이 없는 모습에 무너질 듯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서 사람의 그림자가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문기태가 이미연을 부르는 소리와 어우러져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문기태
남미주의 해골같이 검은 눈동자는 음산한 기운을 풍겼고 기세등등하게 문기태를 바라봤다. “문기태, 나 남미주가 하려는 일을 당신은 알고 있죠. 그리고 제 말을 거역한 대가도 보았을 테고.”“그럼 어디 해봐요.”문기태의 말투는 전혀 굽힐 의사가 없이 단호했다. 비록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 있는 말투로 말을 마친 그는 망설임 없이 이미연을 안고 출구를 향해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분노를 참지 못한 남미주의 외침에 그녀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단번에 문기태를 에워쌌는데 각자 손에 거무튀튀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미칠 듯 화가 났지만 이미연의 상태는 더 이상 지체할수 없었다. 48시간!그녀는 이미 물속에서 48시간 있었다. 탱크 속은 낮에는 숨 막힐 듯 뜨거웠고 저녁은 음산하고 어두웠는데 이미연이 48시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남미주!”나는 이미 무섭다는 생각은 안 한 지 오래됐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남미주에게 소리쳤다. “당신 정말 무법천지군요. 미연이가 죽으면 당신도 살 생각하지 말아요.”도혜선이 얼른 나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분노에 찬 눈으로 남미주와 눈을 마주쳤다. “비켜!”남미주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더니 포악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로 낮게 소리쳤다.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또 처음 보네요.”“그러면 날 상대해 보든지.”나는 겁도 없이 소리쳤다. “지금 당장 꺼져!”남미주가 분노를 안고 날 향해 한 걸음 걸어오자 배현우가 바로 호통쳤다. “어딜 감히!”남미주는 내 옆에 서서 날 보호하는 배현우를 천천히 보더니 진짜 다음 동작을 하지 않았다. “비켜!”문기태는 남미주 부하에게 소리쳤다.그 사람들은 모두 머뭇거리며 남미주를 바라봤고 남미주가 입을 떼기도 전에 문기태가 남미주를 등지고 말했다. “부디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요. 내가 손을 써서 양측 모두 다치게 강요하지 말아요. 오늘 내가 이미연을 구하는 것을
두 손으로 응급실 문 앞의 벽을 짚고 있던 문기태는 배현우가 성큼성큼 다가와서야 몸을 일으켜 배현우를 향해 담담히 한마디 했다. “고마워요.”배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위로했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을 믿어요.”두 시간 후, 응급실의 불이 마침내 꺼지고 의사가 피곤한 모습으로 나와 희비 반반인 소식을 전했다. 의사는 이미연의 바이탈은 안정됐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몸에는 대부분 가벼운 찰과상이었는데 오랜 시간 묶여있던 팔은 괴사현상이 있어 회복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불안함에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괴사라고요? 회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돼요?”의사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단지 괴사 현상일 뿐이어서 환자가 감각을 회복했을 때 다시 확인해 봐야 해요. 그리고 일단 의식을 되찾고 감각 테스트를 한 뒤에야 회복할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데 가능성은 아주 커요.”나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문기태는 vip 병실로 예약했고 병실을 엄호해 아무런 소식도 흘러 나가지 않도록 지시했다. 이런 소식이 일단 흘러 나가면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감정 문제가 아니라 두려운 사건으로 될 것이다. 얼마 안 지나, 이미연이 병실로 이송됐고 모습을 보아하니 병원에서 이미 그녀에게 간단한 청결 조치를 한 것 같았는데 안색이 아직도 창백했다. 문기태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자기 큰손에 움켜쥐고 중얼중얼 혼잣말했다. “미연아, 일어나 봐. 이제 안전해, 두려워하지 마.”그가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보아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없었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나는 코끝이 찡해 얼굴을 돌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이미 날이 밝았다. 문기태가 여러 번 재촉했지만 우리는 줄곧 그녀의 옆을 지켰다. 이미연이 깨어나기 전에 우리는 절대 갈 수 없다. 끝내 의사가 지금 혼수상태이고 아직 깨어날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 방해하지 말라고 쫓아냈다. 배현우도 나와 도혜선에게 일단 돌
내 머릿속에는 줄곧 떠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바로 어제 경공관에 남미주가 그토록 태연하게 나타난 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애초에 이미연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그토록 악랄한 환경에 버리고 무관심했던 것은 남미주가 애초에 이미연을 살려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연을 만나지도 않고 안에 혼자 죽도록 버렸다. 문기태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녀가 사람을 그렇게 지옥 같은 탱크에 버린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그래도 문기태가 남미주의 악랄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어젯밤 그토록 태연하게 이세림과 경공관에 나타난 것이다. 이세림이 떠오르자 나는 이동철에게 그녀를 더 주의해 달라고 전화했다. 문기태의 전화가 울리자, 그는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돌아온 후 이미연의 병상 앞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얘기하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이미연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문기태가 나가자 나는 이미연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었다. 이미연은 그제야 창백한 얼굴로 우리 둘의 손을 어루만지며 사건의 경과를 천천히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호텔 프런트에서 방에 물건을 두고 갔으니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차를 돌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정전되었고 차량 시동을 켜고 보니 앞뒤로 막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 차량 창문을 두드려 창문을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커다란 손이 들어와 그녀의 입과 코를 막았고 그 후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입은 막혀있고 손발도 묶여있었으며 몸 아래에 전부 물이어서 두려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까지 말한 이미연은 흐느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과 공포로 가득 찬 눈으로 덜덜 떨며 나에게 말했다. “지아야, 그거 알아? 너무 무서웠어.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고 물이 점점 찼어. 주위는 어둡고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이건 횡포가 아니라 음흉하고 무지한 거예요. 다행히 제때 구해서 지금은 괜찮아요.”“엄마, 그러면 제주도에 며칠 더 있어요. 이쪽 일을 다 처리하고 제주도에서 충분히 즐기면 제가 모시러 갈게요.”나는 그들이 낯선 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적응이 안 될까 봐 엄마를 위로했다. “마침 지금 콩이가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많이 돌아다녀요. 콩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해요.”나는 또 당부했다.“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요.”“현우가 다 세심하게 안배해 줬어. 오늘 아침 일찍 모든 생활용품이랑 이것저것 많이 가져왔는데 일 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엄마의 말투는 유쾌해 보였다. “여기 진짜 공기가 좋아. 너희 아빠가 엄청 좋아해.”“그럼 다행이에요.”우리는 또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 엄마는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 콩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마음속도 편해졌다. 갈 때 엄마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곳의 기후가 아빠의 건강에도 유익해서 일거양득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배현우에게 더 의지하게 하였다. 나는 잠시 고민 후 배현우에게 전화했다. 나는 이미연의 일에 신경 쓰느라 딸을 까먹고 있었다. 그가 콩이에게 전화한 일을 전혀 몰랐다. 통화 연결음이 두어 번 울리자 배현우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슨 일 이에요?”“어디예요?”나는 부드럽게 물었다.“왜요? 나 보고 싶어요? 그러면 바로 갈게요.”배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반문했다. “병원에 있죠? 상태 어때요?”“괜찮아요. 조금 놀라서 정신 상태는 별로 안 좋아요. 지금은 잠들었어요.”나는 조심스럽게 이미연의 상태를 알려줬다. “현우 씨, 고마워요.”“뭐가 고마워요?”그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는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 쪽에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