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 있습니다, 어디세요?”내가 대답했다.“저는 지금 예전에 만나 뵈었던 그 회의실입니다, 제가 위치 보내드리죠.”“네.”나는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청원이 바로 위치를 보내왔다.나는 위치를 파악하고 차를 돌려 회의실로 갔다.도착해보니 이청원이 벌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도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차를 한잔내어 주었다.“한지아씨, 제가 한지아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이청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 대한 인상이 점점 좋아졌다, 그는 시원시원하며 거짓이 없고 호기로웠다.“말씀해보세요.”나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대답했다.그는 시원시원한 나를 보고는 자신의 뒤에 있던 서류 가방에서 자료 한 장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이거 먼저 봐보세요.”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자료를 받아 보았다, 이것은 계약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로젝트 계약서였다, 그런데 형원그룹의 계약서는 아니었다.나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펴봤다, 개발면적이 작지 않았다, 잘 세워진 계획이었다.이청원이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는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나는 계획서를 다 보고 난 뒤 이청원을 바라봤다.“이 사장님…”“이것은 담보 계획서입니다, 지금 그쪽에서 갚을 능력이 안 되어서 지금은 내 계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형원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한지아씨를 불렀습니다, 한지아 씨는 이쪽에 흥취 있으신가요? 물론 모든 절차는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지아씨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이청원이 엄숙하게 나를 바라봤다.“나를 도와주는 셈이네요.”“저… 생각을 좀 해봐도 될까요? 우리 회사에 동업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저 혼자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계약서밖에 있었던 일도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당연하지만 이 사장님께서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그건 당연하죠!”이청원이
내가 회사로 갔을 때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장영식만이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길에 복도에서 퇴근하는 이동철을 만났다. 나는 그와 함께 장영식 사무실로 갔다.나는 그 둘에게 이청원이 나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려주며 장영식에게 계약서를 보여줬다.장영식은 계약서를 다 읽은 후 이동철에게 넘겨줬다.이동철도 이 계약이 간단한 계약이 아니라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럼 우리도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요, 제가 완곡히 거절해 볼게요.”내가 그 둘에게 말했다.“우리 회사가 이제 막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데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청원이 말했다시피 조건은 우리가 말하면 돼요, 내가 보기에 이건 기회예요.”의자에 기대어 한참을 생각하던 장영식이 다시 이어 말했다.“불편하면 내가 내일 가서 얘기할께.”“공평하게 나누시려고요?”이동철이 장영식을 보며 말했다.“저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위험이 따른다면 미리 위험을 막을 준비와 조건을 갖춰야죠, 이 청원도 이미 한 대표님에게 조건을 말씀하시라고 했다면 우리도 사양할 필요가 없죠.”“그런데 그분은 우리가 제일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이 청원도 말했다시피 우기가 그를 도와주는 셈이죠.”“이것도 도와주는 거예요, 도움은 여러 가지 방식과 형식이 있죠, 어떤 일인지도 봐야 하겠지만 그를 도와주는 건 무조건 도와줘야 해요, 그런데 이번 건은 도와주는 게 위험이 좀 따르네요, 그리고 상업상 우리도 이익에 관해 얘기를 안 할 수는 없어요.”장영식은 역시 나보다 생각이 깊었다.이동철도 장영식의 말에 동의했다.세 명이 머리를 맞댄 결과 장영식을 보내 이 청원과 조건을 협상하게 하였다.비록 우리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결과였지만 나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둘은 이 청원이 조건에 동의할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결정을 마치고 우리는 회사를 빠져나왔다, 때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나는 자기 생각에 흠칫 놀랐다. 설마 배현우가 배유정의 시선을 돌리려고…? 왜 자기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냐던 그의 질문이 다시 떠오르자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사방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방안에 사람만 없었어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난 그야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한 거였다. 그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난 애써 멘탈을 잡고 감정을 추슬렀다. 적응은 안 되지만 그는 매정한 걸 못 견뎌 하기에... 더는 핑계 대지 말고 내려놓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함께하는 길은 좋을 수가 없으니...밥을 먹고 나는 장영식 그리고 이동철과 함께 내일 이 청원을 찾으러 가는 일에 대해 좀 더 상의했다. 나는 일을 벌이면서도 불 난 집에 도둑질하러 가는 느낌이 들어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러자 장영식은 이건 비즈니스고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지켜야 그도 마음이 편할 거니 이익 때문에 의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그가 다른 사람을 찾지 않은 건 찾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야. 이 정도 이익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아마 우리가 최적이라 생각해서겠지. 왜 우리가 최적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가 우리의 계약이 성사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건 확실해. 그게 아니면 우리의 조건을 다 맞춰줄 거라는 약속을 했을 리가 없지. 넌 그가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믿고 맡길 사람 하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명료하게 분석해내진 못했었지.이튿날, 난 장영식과 함께 청원을 만나러 갔다. 예상대로 그는 담담하게 우리를 대했고 장영식도 에둘러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청원은 대담하게 비용은 반반으로 나누되 이익은 3:7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수속은 우리 측에서 그쪽과 계약하길 요구했다. 영식은 고민 끝에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청원 쪽의 권리양
나는 콩이의 변화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나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나가는 콩이...“삼촌!”나는 콩이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현우... 그를 본 순간 나는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때 흥분에 겨워 뛰어가던 콩이는 그만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몸이 기울었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바로 손을 뻗어 콩이를 받아내는 배현우. 그의 몸은 관성에 의해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나는 급하게 달려 나갔지만 둘은 이미 둘만의 세상에 빠져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콩이는 그 짤막한 두 팔로 배현우의 목을 꼬옥 둘러 안고 말했다.“삼촌 최고야!”콩이의 귀여운 한마디에 나도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배현우의 조각 같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고 두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인의 동경을 받는 고고한 왕자님 같던 배현우가 어린애를 보며 이토록 달콤하게 웃다니. “얼른 일어나 봐요. 넘어진 데는 괜찮아요?”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그는 그저 잠깐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눈 보고는 이윽고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콩이에게 건네며 말했다.“Happy birthday!”콩이는 상자를 보고는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고마워요 삼촌! 이거 혹시 최신 태블릿이에요?”“그럼!”배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콩이는 기쁨에 겨워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삼촌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요!”그의 품에 안겨 얼굴에 뽀뽀 세례를 하는 바람에 배현우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나는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걸 느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배현우는 어딜 가든 이목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둘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그제야 그는 콩이를 안고 일어섰다. “이제 엄마랑 집으로 돌아가.”그의 말에 콩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삼촌은 집에 같이 안 가요?”나와 배현우는 잠깐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나를
"아이고, 자네 정말 오랜만이네!" 아빠가 먼저 반응 빠르게 반겼다.싸늘한 분위기는 이 열정 넘치는 인사에 점점 녹았고 배현우도 따뜻하게 웃으며 안부 인사를 했다."아버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계속 바빠서 인사도 못 드렸어요. 그 간 몸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외할아버지, 삼촌이 저한테 엄청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이제 콩이 생일도 함께 보내주신대요!“행복해하는 콩이와 달리, 나는 매우 난처했다. 얘는 정말, 자기 엄마 처지를 헤아려 주지도 않네."정말?“쾌활하게 웃으며 손녀와 말하는 아빠를 보니 살짝 놀라웠다. 연기 실력이 언제 저렇게 느셨지?"네!" 콩이는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삼촌, 그렇죠?""응! 콩이랑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지!" 이 인간, 오늘따라 말은 왜 또 이렇게 많은 거야!나는 서둘러 콩이를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러면 빨리 내려와. 엄마랑 옷 갈아입으러 가자!“콩이는 현우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난 삼촌이랑 갈아입을래!“어이가 없었다.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콩이는 여자라서 엄마랑 갈아입어야 해. 삼촌 어디도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외할아버지랑 얘기 나누면서 기다릴게.“현우는 콩이랑 약속했다. "생일인데 예쁘게 입고 와!“콩이는 그제야 손을 떼고 내 품에 얌전히 안겼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현우에게 자기를 기다려 달라 신신당부했다."저 빨리 내려올 거니까 삼촌 절대 가면 안 돼요! 콩이를 꼭 기다려 주세요!" 배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앉아서 엄마 아빠와 얘기를 나눴고, 나는 콩이를 방으로 데려갔다. 콩이는 빨리 현우를 보고 싶은 마음에 떼쓰지 않고 나를 잘 따라주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혼자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콩이를 보내고 나도 방으로 돌아갔다. 심장은 아직도 두근두근 뛰었고, 지금은 손마저 덜덜 떨렸다.치마로 갈아입은 나는 옅은 화장도 하면서 예쁘게 꾸몄다. 나도 내 행동이 이
이 말을 꺼내자마자 혀를 깨물 뻔했다. 후회된다기보단 바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그럼 그렇지. 배현우는 상냥하게 웃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분명히 그 속에 담긴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 와중에 아빠도 한마디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냥 네가 배웅해 줘. 술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잖니!”"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하고는 일어섰다."가죠!“차에 오르자, 현우는 내게 목적지를 알려줬다. "스타라이트로 가요.“참 다행이었다. 스타라이트는 경원보다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근데 왜 경원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경원은 너무 멀잖아요. 지아 씨 혼자 돌아오는 게 영 걱정되어서요.“그의 배려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고마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날 걱정하는 거 맞지?차를 몰고 가는 내내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 맴돌고 있었다."함께 올라가죠.“"저...“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명령의 어투로 한마디 던지고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밖으로 걸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차를 세우고 그의 뒤를 따라 로비로 들어갔다.현우는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길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다시 버튼을 누르고는 나더러 올라가라 했고,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히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긴장되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익숙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방인가 보네.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도 주춤거리다 그의 뒤를 따랐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나에겐 익숙했다.두 사람 사이에서 맴도는 어색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지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해 나는 뒷걸음쳤다. 그는 빠르게 손을 뻗어 내 턱을 단단히 붙잡고는 얼굴을 들게 하였다. 나는 강제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한지아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하지 않았다.“진짜 당신이었어요? 왜 들어오지 않고... 명절은 어떻게 보낸 거예요? 해외에 있었어요? 아니면 서울에 있었나요? 혼자 있었던 거에요?” 속사포로 질문을 쏟아냈다.“이제서야 생각나서 묻는 거예요? 늦었다고 생각 안 해요?” 화가 난듯한 말투였다.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먼저 여기저기 스캔들 내고 다닌 건 당신이에요. 오늘은 임윤아였다가 내일은 한소연이였다가, 뭐가 진실인지, 몇 다리를 걸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 재산 따윈 관심 없는데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남자를 좋아할 수는 없잖아요?”나는 화풀이를 하듯 억울함을 쏟아냈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안중에도 없단 듯이 그를 비난하고 비판했다.“신호연한테 속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바람둥이를 만나다니.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네요. 내가 뭐가 모자라서 아무나 날 속이고 이용하지 못해 안달이냐고요!” 나는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내가 아무나예요?” 불만이 섞인 질문이었다.“당신은...” 눈을 꼿꼿이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난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했잖아요! 알면서도 날 흔든 건 당신이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죠!”“재벌이든 뭐든 다 필요 없어요, 돈 같은 건 내가 벌 수 있으니까. 난 그냥 서로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는 관계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것도 과분한 욕심이었나요?” 현우를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욕심 아니에요...” 현우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나를 한 품에 와락 껴안았다. “울지 말아요.”“당신 눈엔... 내가 임윤아랑 닮았나요?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왜 다른 사람을 흔들어 놓는 건데요? 똑똑히 말할게요. 배현우씨. 나는 신지아예요, 임윤아가 아니라!”“그 누구도 아니에요!” 뜻 모를 말이었다.“무슨 뜻이에요? 얘기해봐요! 역시 임윤아죠?”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려왔다. “저도 바보 아니에요. 죽은 그 사람을 이길 순 없다는 거 알고 있다고요. 나한테서 그 사람 모습을 찾아
차 안에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길한 느낌은 떨칠 수가 없어 힘껏 페달을 밟아 빠르게 차를 몰았다.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아직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린 모양이다.“집까지 데려다줬어?” 엄마가 물었다.“네. ” 대충 대답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왜 아직도 안 자고 계셨어요?”아빠가 그제야 일어서더니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너 돌아오는 거 봤으니 이제 편히 자야지.”“아이고 우리 현우씨가 콩이한테 정말 잘한다니까.” 엄마가 놓칠세라 한마디 했다. “우리 귀염둥이가 이렇게 잘 따를지 상상도 못 했네!”“그 사람도 외로운 사람이에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인척도 거의 없거든요. 아마 우리같이 정 있는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거겠죠.” 일부러 그의 단점을 꼬집었다.그가 이번 설에도 혼자 쓸쓸하게 보내며 가족의 온정을 그리워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왔다.“그 사람, 큰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며?” 내 말에 아빠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회사가 클수록 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거죠. 혼자 운영하고 애를 쓰니까, 회사가 클수록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 왠지 현우 씨의 꼬투리를 잡는 말 같이 느껴졌다.“부모님 두분 다 안 계신다고? 어려 보이는데 안타깝네.” 엄마가 안타까워했다.“네. 항공 사고로 같이 돌아가셨어요.”“세상에! 그런 비극이!” 엄마가 탄식했다. “그럴 줄은 몰랐어. 귀하게 자란 줄 알았는데 이런 슬픈 사연이 있을 줄이야.”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근데... 그 집안이 대단한 집안이던데... 우리랑은 맞지 않는 것 같네.”“엄마! 자꾸 멀리 생각하지 마요. 우리 아직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니까요. 이런 얘기하긴 아직 이르기도 하고 스스로 잘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 “얼른 주무세요. 늦었어요!” 항의하듯 대꾸하며 서둘러 부모님을 끌고 올라갔다....그날 밤 나는 쉽게 잠 들지 못했다. 종일 뒤척이며 그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그때의 항공 사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