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꺼내자마자 혀를 깨물 뻔했다. 후회된다기보단 바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그럼 그렇지. 배현우는 상냥하게 웃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분명히 그 속에 담긴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 와중에 아빠도 한마디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냥 네가 배웅해 줘. 술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잖니!”"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하고는 일어섰다."가죠!“차에 오르자, 현우는 내게 목적지를 알려줬다. "스타라이트로 가요.“참 다행이었다. 스타라이트는 경원보다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근데 왜 경원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경원은 너무 멀잖아요. 지아 씨 혼자 돌아오는 게 영 걱정되어서요.“그의 배려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고마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날 걱정하는 거 맞지?차를 몰고 가는 내내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 맴돌고 있었다."함께 올라가죠.“"저...“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명령의 어투로 한마디 던지고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밖으로 걸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차를 세우고 그의 뒤를 따라 로비로 들어갔다.현우는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길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다시 버튼을 누르고는 나더러 올라가라 했고,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히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긴장되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익숙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방인가 보네.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도 주춤거리다 그의 뒤를 따랐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나에겐 익숙했다.두 사람 사이에서 맴도는 어색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지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해 나는 뒷걸음쳤다. 그는 빠르게 손을 뻗어 내 턱을 단단히 붙잡고는 얼굴을 들게 하였다. 나는 강제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한지아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하지 않았다.“진짜 당신이었어요? 왜 들어오지 않고... 명절은 어떻게 보낸 거예요? 해외에 있었어요? 아니면 서울에 있었나요? 혼자 있었던 거에요?” 속사포로 질문을 쏟아냈다.“이제서야 생각나서 묻는 거예요? 늦었다고 생각 안 해요?” 화가 난듯한 말투였다.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먼저 여기저기 스캔들 내고 다닌 건 당신이에요. 오늘은 임윤아였다가 내일은 한소연이였다가, 뭐가 진실인지, 몇 다리를 걸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 재산 따윈 관심 없는데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남자를 좋아할 수는 없잖아요?”나는 화풀이를 하듯 억울함을 쏟아냈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안중에도 없단 듯이 그를 비난하고 비판했다.“신호연한테 속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바람둥이를 만나다니.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네요. 내가 뭐가 모자라서 아무나 날 속이고 이용하지 못해 안달이냐고요!” 나는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내가 아무나예요?” 불만이 섞인 질문이었다.“당신은...” 눈을 꼿꼿이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난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했잖아요! 알면서도 날 흔든 건 당신이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죠!”“재벌이든 뭐든 다 필요 없어요, 돈 같은 건 내가 벌 수 있으니까. 난 그냥 서로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는 관계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것도 과분한 욕심이었나요?” 현우를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욕심 아니에요...” 현우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나를 한 품에 와락 껴안았다. “울지 말아요.”“당신 눈엔... 내가 임윤아랑 닮았나요?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왜 다른 사람을 흔들어 놓는 건데요? 똑똑히 말할게요. 배현우씨. 나는 신지아예요, 임윤아가 아니라!”“그 누구도 아니에요!” 뜻 모를 말이었다.“무슨 뜻이에요? 얘기해봐요! 역시 임윤아죠?”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려왔다. “저도 바보 아니에요. 죽은 그 사람을 이길 순 없다는 거 알고 있다고요. 나한테서 그 사람 모습을 찾아
차 안에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길한 느낌은 떨칠 수가 없어 힘껏 페달을 밟아 빠르게 차를 몰았다.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아직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린 모양이다.“집까지 데려다줬어?” 엄마가 물었다.“네. ” 대충 대답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왜 아직도 안 자고 계셨어요?”아빠가 그제야 일어서더니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너 돌아오는 거 봤으니 이제 편히 자야지.”“아이고 우리 현우씨가 콩이한테 정말 잘한다니까.” 엄마가 놓칠세라 한마디 했다. “우리 귀염둥이가 이렇게 잘 따를지 상상도 못 했네!”“그 사람도 외로운 사람이에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인척도 거의 없거든요. 아마 우리같이 정 있는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거겠죠.” 일부러 그의 단점을 꼬집었다.그가 이번 설에도 혼자 쓸쓸하게 보내며 가족의 온정을 그리워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왔다.“그 사람, 큰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며?” 내 말에 아빠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회사가 클수록 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거죠. 혼자 운영하고 애를 쓰니까, 회사가 클수록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 왠지 현우 씨의 꼬투리를 잡는 말 같이 느껴졌다.“부모님 두분 다 안 계신다고? 어려 보이는데 안타깝네.” 엄마가 안타까워했다.“네. 항공 사고로 같이 돌아가셨어요.”“세상에! 그런 비극이!” 엄마가 탄식했다. “그럴 줄은 몰랐어. 귀하게 자란 줄 알았는데 이런 슬픈 사연이 있을 줄이야.”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근데... 그 집안이 대단한 집안이던데... 우리랑은 맞지 않는 것 같네.”“엄마! 자꾸 멀리 생각하지 마요. 우리 아직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니까요. 이런 얘기하긴 아직 이르기도 하고 스스로 잘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 “얼른 주무세요. 늦었어요!” 항의하듯 대꾸하며 서둘러 부모님을 끌고 올라갔다....그날 밤 나는 쉽게 잠 들지 못했다. 종일 뒤척이며 그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그때의 항공 사고를
나는 전화를 끊고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씻고 1층으로 내려갔다. 콩이는 이미 집에 없었다.밥 먹으려던 찰나, 이해월한테서 전화가 와서 민여진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곧 도착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가방을 쥐고 집을 나서려고 했을 때 엄마가 콩이를 데려다주고 막 시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집을 나서려는 나를 보더니 물었다.“밥은 먹었어?” “아니요, 회사에 가서 먹으려고요. 마침 고객님이 오셔서 같이 먹으려고요.”나는 말을 끝내고 급히 집을 나섰다.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민여진은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이해월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불렀다.“대표님!”나는 걸어 들어가면서 웃으면서 물었다.“오래 기다렸지. 어제 우리 딸 생일이라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늦게 깨났지 뭐야.”나는 멋쩍게 말하면서 시간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직 밥 먹기는 이른 시간이었다.“대표님, 방금 한 바퀴 쭉 둘러보았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네요!”그녀는 공손하게 말하면서 어색함을 무마하려고 했다.“에이, 무슨. 얼른 앉아.”나는 열정적으로 그녀는 소파에 앉혔다.“원래는 오늘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이번의 일은 정말 실수였습니다. 직접 사과를 드려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민여진은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괜찮아. 일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나는 넓은 아량으로 말했다.“하...”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대표님처럼 늘 한결같은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운데 너무 멀어서 문제예요. 같은 도시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나는 잠시 생각하다 가방을 들고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가자, 좋은 구경 시켜 줄게.”나는 일부러 비밀스럽게 말했다.어리둥절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를 사무실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이해월한테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당부했
그녀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민여진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누군데 저래요?”나는 민여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딱 봐도 민여진은 전희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로써 그녀가 그날 우리의 계약서를 망친 얼굴 없는 배후자였던 것이 분명해졌다. 아니면 민여진이 그녀가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민여진에게 말했다.“아직 몰라? 우리 계약을 망친 사람이잖아.”민여진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나는 바로 말했다.“너희 사장님과 아는 사이야. 사장님을 도와 우리의 일을 망치게 한 배후자라고.”민여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전희를 짚으면서 말했다.“저 분이요? 근데 무슨 분이시길래 저렇게 건방지대요?”“서울의 한 부동산 회사 사장. 근데 그 회사가 아주 이름있어.”나는 차분하게 말했다.“어느 회사예요?”민여진이 물었다.“형원.”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민여진은 더욱 놀랐다.“어... 어떻게 이런 사람이!”나는 눈썹만 움찔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별로 따지도 싶지도 않았다. 언제든 다시 볼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녹차만 마시고 있을 때, 저쪽에서 한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사모님, 한 번만 봐주세요. 저도 저분들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신 적이 없어서 잘 알아보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니 그만 넘어가 주세요.”“내가 안 따지면 누가 따져? 나 여기 골드 회원이야! 일 년에 몇천만 원씩 쓴다고. 알아? 근데, 이러고 있을 권력도 없다고?”자신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 회원권이 2, 3천만원이나 하네, 이런, 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있나? 혜선 씨가 준 이 카드가 이렇게도 비쌌다니. 참 통도 크셔.”“안 보이면 그만인데 왜 하필 나랑 마주치게 해? 여기가 아무나 오는 곳이야? 전염병이라도
모두가 예상 못 한 말을 들은 듯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전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아무 말 없이 무관심한 듯 고개를 돌렸다.먼저 온 안내원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손님, 급해하지 마시고 먼저 계세요. 제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확인하고 올게요.”“안 급해요. 어느 곳이든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 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모두 기다리고 계시는데 손님들 등급을 나눠서 대접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나의 이 말은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타 뭇사람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의도적으로 다른 손님들을 이 싸움에 불러들인 것이다.한 사람이 나서니 힘을 얻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동의하며 반발했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거들먹거리며 모욕적인 말을 뱉어대는 소위 골드 회원들을 만났고 그들을 따르는 종업원도 다를 것 없었다.한 사람이 나서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람을 따라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려는 심리가 있다.도도해 보이는 한 여자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저도 듣고 싶네요. 이 회원과 저희 회원이 무엇이 다른지!”“다른 건 다른 거죠. 아가씨는 단골 회원이잖습니까. 손님을 말한 것도 아닌데요.” 그들을 시중드는 계집애가 웃으며 말했다.“어머. 그럼, 아까 그런 의미로 나한테 말한 거였어요?” 나는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화는 나지 않았다.이때 전희가 인상을 구기며 불쾌감을 드러냈다.“웨이터 한 명 놀리는 게 재밌어요?”“재미없어요.” 나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아까 어느 한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요란하게 종업원분을 나무라시던데. 그 사람은 재밌었나 봅니다?”조금 전의 도도한 여자가 말 한마디를 보탰다. “무슨 상관이에요. 한 사람은 깔보는데 도가 튼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부하느라 야단이던데. 아주 천생연분 파트너 아닙니까. 관상이 아주 노예상이구먼, 뭐.”계집애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희 가게는 원래 이래요! 단골손님은 당연히 혜택이 있어야죠.
나는 여유작작하게 차를 마시며 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조금도 피하지 않은 채 그녀가 어떻게 훼방을 놓든 개의치 않는다는 듯 살짝 웃어 보였다.그녀의 얼굴이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전희는 당장 달려와 싸움을 걸 것 같은 자세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매서운 눈빛이 나를 찢으려는 것 같았다.그러나 나는 쌈닭처럼 투지 드높은 그녀의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이청원이 도대체 왜 이렇게 멍청하고 현명하지 못한 여자에게 반했는지 알 수 없다.그녀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았다. 이청원은 자신의 자산을 숨겨야만 했으니 어쩌면 그는 전부터 전희가 자신이 동고동락하며 살 동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숨기기 시작한 이상, 그것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내부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 여자는 늠름한 자태로 걸어 나왔는데 당당하고 각 잡힌 자세로부터 이 사태를 해결하러 나온 사람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녀는 나오자마자 로비 안의 사람들을 한 바퀴 쓸어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세요!”소란스럽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 사람들을 훑고 마지막엔 전희를 향했다. 전희는 태연한 듯 앉아있었고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속으로 대충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했다.전희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 말했다. “김 주임님! 잘 오셨어요. 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 사람들이 카드를 해지하든, 아니면 저와 제 친구들이 모두 해지하든 하게 될 겁니다.”그녀의 말투에 약간의 위협이 담겨있다.“그럼 해지해요! 시끄럽게 굴지 말고, 아까부터 진짜.”“누굴 말하는거예요?”김 주임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들 그만하시죠. 방은 언제든 있습니다. 이렇게 화내지 마시고요.”손님들이 너도나도 김 주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종업원의
나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밀었고 김혜은은 웃는 얼굴로 카드를 받아쥐었다. 그러나 카드를 받아쥔 찰나, 그녀가 허리를 숙인 채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행동을 멈췄다.나는 의아하게 김혜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카드를 들고 한참을 그대로 멈춰있었다.김혜은가 몸을 움츠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살펴보았다. “저... 그...”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민여진도 어리둥절한 채 한마디 했다. “환불한다고요.”그러나 김 주임은 오히려 난감한 얼굴로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손님,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그... 잠시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요!”“또 기다리라고요? 휴식하러 와도 기다려야 하고 지금은 환불하겠다 해도 기다리라는 거예요? 저희가 시간 낭비하려고 온 줄 아세요?” 민여진이 참다못해 따졌다.“그게 아니라... 그, 일단 두 분 기다려 주세요!” 김혜은의 표정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일이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음을.전희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두리번거렸지만, 얼굴에 불쾌함이 드러났다. “왜 그러세요, 김 주임. 난처하면 우리가 환불할게요!”말을 마치고 자신의 카드를 꺼내 탁자 위에 ‘탁’ 놨다. 그리곤 뒤 돌아서 친구들에게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얘들아.”눈짓으로 단번에 뜻을 알아챈 친구들이 저마다 자신의 카드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 “우리도 환불할게요.”김혜은은 난감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잠시만요! 제가 금방...”아까 나를 도와줬던 도도한 여자가 상황을 둘러보고 김 주임한테 전희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환불하지 않으면 제가 환불할게요.”그리고 자신의 카드를 들어 김혜은의 손 위에 놓았다. 김 주임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고 허공을 방황했다.그녀는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나는 당황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무엇이 주임마저 할 말을 잃게 만든 것일까.나는 탁자 위의 몇 장의 카드들을 둘러보았다. 금색 카드 몇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