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햇빛에 비추어진 바다처럼 단아했다. 보는 순간 마음이 설렜고 빠져들게 했다.초연서는 눈가가 촉촉해졌다.“아람아…… 고마워. 너무 마음에 들어. 고마워…….”“너무 비싼 주얼리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구회장의 체면을 생각한 것도 있고, 이런 연한 하늘색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아람은 흐뭇하면서도 자신 있게 말했다.“주얼리 디자인을 할 때 착용자의 개성과 기질에 맞는 메인 스톤을 선택하기 좋아해요. 제가 알렉스이기에 디자인의 가치는 이미 주얼리 자체의 가치를 뛰어 넘었어요.”그 후 유민지와 강소연도 초연서를 끌고 준비한 생일 선물을 보러 갔다. 방안의 여자들은 재잘거리며 활기차게 떠들썩했다.이때, 아람의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 핸드폰을 꺼내서 살펴본 다음, 방을 나와 복도 끝으로 갔다.“여보세요.”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람아. 내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 특별히 알려드리러 왔어.”달빛 아래서 경주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럽고 매력적이며 섹시했다.“앞으로 내 상태를 알고 싶으면 직접 전화해. 한무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필요 없어.”아람은 가슴이 떨려 입술을 오물거렸다.“아니면 내가 전화해도 돼. 그럼 더 좋아.”경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 적극적이었다.“그럴 필요 없어. 난 너의 주치의가 아니야. 24시간 내내 몸 상태를 체크할 시간이 없어.”아람은 냉정하게 말했다.“괜찮으니 다해이네.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각자의 행복을 찾자.”“지난번에 챙겨줘서 고마워.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열이 그렇게 빨리 떨어지지 않았을 거야.”경주는 가볍게 웃었다. 낮은 목소리는 그녀의 귀를 부드럽게 울렸다.“네가 약보다 효과 있어.”“신경주! 죽고 싶어?”아람은 침대 위에서 그에게 눌려 강제로 키스를 당한 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얼굴에 열기가 치솟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렸다.“다시 한번 그런 짓을 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주말.귀족 가문의 두 사모님의 생일 파티가 다가왔다.진주는 전날 밤 너무 흥분한 나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파티에서 사람들을 압도하고 화려하게 등장할 장면을 상상하며 킥킥 웃었다.뿐만 아니라 그녀는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의 영상을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TS에서 데뷔할 때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포토샵으로 편집했다. 그것들을 생일 파티에서 반복 재생해서 모든 하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했다.그 결과 다음날 진주의 얼굴은 노랗게 질렸고 눈에 충혈까지 되었다. 두 다크서클을 가리지 않으면 홍콩 영화의 귀신과 같았다.그녀는 거의 쉰 살이 되었고 많이 늙었다. 예전에는 사흘 밤낮을 연달아 촬영해도 피부가 뽀얗고 빛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 하룻밤도 자지 않으면 안색이 엉망진창으로 된다.“이봐! 빨리 미용사를 불러와! 빨리!”진주는 마음이 급해서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조증 환자처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값비싼 컵을 깨뜨렸다.그 거만하고 괴팍한 모습은 신광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문밖에서 기다리던 가정부는 겁이 나서 즉시 사람을 부르러 갔다.진주는 거울을 좌우로 바라보며 가슴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오늘은 초연서와 같은 날에 생일을 쇠고 맞서는 날이다.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초연서를 보지 못했다. 신광구의 본처이기에 지위는 첩인 초연서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초연서는 TS의 간판 배우이다. 전국 남성들의 이상형인 그녀를 이기지 못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했다.“엄마, 엄마!”신효린은 급히 달려왔다. 진주의 귀신같은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왜 귀신처럼 소리를 지르는 거야!”진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방, 방금 할아버지께 전화해서 확인했어. 오늘 밤 엄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셨어…….”“그게 놀랄만한 일이야? 처음부터 그 노인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오든 말든 상관없어. 온다고 해도 내가 싫거든!”진주는 차갑게 피식 웃었다. 딸의 앞에서 신남준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았다.
진주를 대하는 태도는 그저 전처럼 뜨겁지 않았고 담담하고 냉정했다.신씨 가문의 두 자매는 부모님 맞은편에 앉았다. 신효정은 여전히 움츠린 채 구아람이 준 곰돌이 인형을 안으며 위안을 받았다.신효린은 값비싼 최신 정장을 입었다. 화려한 옷은 곁에 앉아 있는 신효정을 단정한 가정부처럼 보이게 했다.“우리 동생, 오늘은 엄마의 생일인데, 왜 제대로 차려입지도 않고 나왔어?”신효린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흑단처럼 미끄러운 신효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신광구의 앞에서 정이 깊은 자매인 척했다.“꾸밀 줄 몰라? 언니한테 말하지 그래? 언니가 도와줄 수 있는데.”신효정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전에 언니가 해준 헤어스타일이 얼마나 예뻐. 오늘도 해줄 걸 그랬어.”신효린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갑자기 짝하고 소리 났다. 신효정은 손을 번쩍 들어 신효린의 손을 때렸다.신씨 부부는 막내딸이 화를 내는 건 처음 본다는 생각에 모두 깜짝 놀랐다.“효정아! 언니가 너무 아파. 뭐 하는 거야?”신효린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억울한 척했다.“저…… 단 한 번도 언니에게 부탁한 적 없어요. 매번 언니가 강요한 거예요.”신효정은 곰돌이를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갑자기 용기가 생겨서 그녀에게 말대꾸를 했다.이 말을 듣자 신광구는 의아한 눈빛으로 신효린을 바라보았다.“뭐, 뭐라고?”신효린은 동공이 지진이 난 듯 멍한 표정이었다.“그래고 저는 프리지아 머리를 싫어해요. 죽도록 싫어요. 앞으로는 그 머리를 해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네?”신효정은 이를 악물고 신효린에 대한 원망을 말했다.“효린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신광구는 정색하며 물었다.“아빠! 효정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갑자기 헛소리할 때도 있어요. 그런 말이 나와서 저도 혼란스럽고 억울해요!”신효린은 애교 부리며 모르는 척했다.“오빠, 오늘 경주가…… 정말 구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해? 정말 안 온다고?”진주는 말을 돌리며 남편의 팔짱을
신효린은 화가 나서 옆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신효정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나쁜 년, 이유희가 네 뒤를 봐준다고 대단한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죽게 해줄게!’……진주의 생일 파티는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여전히 소식을 언론에 공개했다.‘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데, 관심을 받지 않으면 안 되지.’소식을 들은 기자들은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며 기다렸다.신씨 가문의 사람들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진주가 빛나는 주얼리로 치장한 모습은 정말 귀족 가문 사모님의 모습 같았다.“신 사모님!”“진주 씨!”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와 신씨 가문의 일가의 사진을 찍었다.신광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동요하지 않고 아내 진주와 함께 당당하게 언론과 마주했다.“회장님, 오늘 밤 부인의 생일 연회에 가족들이 모였는데, 왜 신 사장님이 없어요?”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기자도 아니다.“경주가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어요.”신광구는 담담하게 웃더니 대충 말했다.“오늘은 KS 그룹 구만복 회장의 셋째 부인 초연서 씨의 생일입니다. 진주 씨 생일은 수요일인데 일요일로 옮겼네요. 일부로 초연서와 같은 날로 했습니까? 아시다시피, 두 분은 당시 같은 방송국의 배우였습니다. 그때부터 라이벌이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두 사람은 아직 원한을 풀지 못했습니까?”“아! 오늘 초연서 언니의 생일이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몰랐네요.”진주는 놀란 척하며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손으로 입을 가렸다.“제가 실수했네요. 언니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해야 했어요. 가족과 손님들이 수요일에 시간을 내기에는 너무 바빠서 오늘을 선택했어요.”그녀는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이번엔 손님도 많이 초대했어요. 다들 시간 내서 오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겁니다.”“손님이요? 두 분이 그렇게 많은 손님을 초대하셨어요?”기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2시간 전
연회장에는 손님이 몇 명밖에 없었다. 정말 싸늘하고 비참해 보였다.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신광구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웨이터와 피아노 연주자를 제외하고는 여성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평소 진주와 겉으로 보이기에는 사이좋았던 귀족 가문 사모님들, 그리고 신씨 가문의 세력 때문에 억지로 아첨하던 귀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오지 않았다.‘젠장…….’뒤에서 지켜보는 수많은 언론 기자들이 아니었다면, 진주는 그 자리에서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신광구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감정을 알 수 없었다.신효린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어머니가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빨리, 빨리 찍어! 실검에 오를 수 있는 헤드라인이야!”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량한 연회장을 정신없이 찍었다.“제목은 ‘신씨 그룹 회장 부인의 생일 연회에 성을 비우는 전술을 썼다.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가.’라고 해.”“방금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고 말했잖아. 바로 망신을 당하네, 너무 웃겨!”진주는 화가 나서 화려한 치마 밑의 두 다리가 떨고 있었다. 그녀는 신효린을 째려보며 대신 말해라고 눈치를 주었다.신효린은 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기자 여러분, 어머니의 생일 연회가 곧 시작됩니다. 손님들을 맞이하러 들어갈 테니 모두 천천히 가세요. 나중에 문 앞에서 보너스를 드릴게요.”경호원들은 기자들을 서둘러 밖으로 내보냈다.보너스를 받은 일부 기자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우리가 눈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게 해놓고, 이제 와서 창피해서 숨으려 하네!”“손님들을 맞이해? 어디 손님이 있어? 귀신들을 맞이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생일 파티가 막 시작되었지만 우울한 분위기는 곧 끝날 것 같았다.진주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섬세한 메이크업은 그녀의 굳은 표정과 화난 얼굴을 감출 수 없다.참석한 손님들은 모두 신광구의 친구이다. 그래서 간단한 축복
신효정의 얼굴에는 바로 눈에 띄는 붉은 자국이 나타났다.“구아람 그년 때문에 엄마가 억울을 당했어! 딸로서 가만있어도 상관없어. 그런데 구아람의 편을 들어줘? 엄마가 널 괜히 키웠어!”“새언니를 욕하지 마!”말을 할수록 신효정은 점점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히며 말대꾸했다.“욕할 건데, 왜!”신효린은 목을 쭉 뻗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자 몇몇 손님들은 옆으로 쳐다보았다.“욕하지 마!”신효정은 분노 버튼이 눌린 듯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부릅뜨고 신효린의 당황한 눈빛을 노려보았다.자신을 때리고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구아람을 모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이년이, 감히 나에게 소리를 질러? 이유희가 네 편이라고 해서 내가 널 무서워하는 줄 알아?”항상 발밑에 있던 신효정이 말대꾸를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그녀의 팔을 꼬집으려 했다.바로 이때, 조용하던 연회장 문이 갑자기 열렸다.사람들은 차분하고 안정된 걸음걸이로 들어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유, 유희 오빠…….”신효정은 이유희를 보자 눈에는 기쁨의 물안개가 가득 찼다.그리고 이 순간 매의 눈처럼 반짝이는 이유희의 눈빛도 그녀를 깊이 바라보고 있었고 한시도 떼어내지 않았다.신효정이 항상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어도, 항상 고개를 숙이고 존재감이 없어도 이유희는 한눈에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이, 이 도련님!”진주와 신효린은 어안이 벙벙했다.손님과 이야기를 나우던 신광구는 버건디 벨벳 고급 정장을 입을 이유희가 신랑 들러리처럼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신효린은 폭력을 휘두르려던 손을 재빨리 거두었다. 이유희를 바라보는 기분은 만감이 교차했다.이유희가 신효린을 미워해도 그녀는 고통을 바로 잊을 수 있는 연애에 올인하는 사람이다. 이유희의 얼굴을 보자 신효린은 넋이 나갔다. 차라리 그에게 학대를 당하고 싶었다.하지만 이유희가 자신을 싫어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알몸으로 서있어도 소용이 없을
“아! 아파!”신효린의 어깨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효정아.”이유희는 신효정 앞에 서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깊이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너무 예쁘다.”“네?”신효정의 가슴이 두근거렸다.“여긴 너무 지루해. 오빠랑 같이 갈까?”이유희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어, 어디요?”“마음대로.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자.”그의 눈빛은 엄청 진지했다.신효정은 왠지 모르게 울컥하여 눈시울을 붉혔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가족 중 가장 멍청한 아이였고 가장 얌전한 아이였다.사랑을 받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새언니한테 가고 싶어요. 둘째 오빠한테 가고 싶어요.”울컥한 신효정은 가볍게 말했다.“좋아, 내가 데려다줄게.”말을 마치자 이유희는 주동적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돌아서서 나갔다.현장은 고요했다.문 앞까지 걸어가던 이유희는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신효정은 하마터면 그의 엉덩이에 부딪힐 뻔했다.그는 몸을 살짝 돌려 신광구를 향해 얕게 허리를 숙이고 떠났다.신광구는 깜짝 놀랐다.이유희가 막내딸을 데려가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가기전에 어른인 그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미워할 수 없게 만드네!’“엄마! 어떡해…… 어떡해!”신효린은 울먹거리며 진주의 손을 잡아당겼다.“이유희가 이렇게 데려갔어? 이게 무슨 일이야? 일부러 일을 망치려는 거 아니야? 효정을 보내면 안 돼! 엄마가 꼭 데려와야 해!”“내가 왜 데려와야 하는데?”진주는 힘껏 손을 뿌리치며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눈빛은 그녀가 항상 신효정을 보는 눈빛이었다.“생일 파티가 이미 망했는데, 동생이 돌아오든 말든 무슨 소용이 있어? 게다가 내가 왜 데려와야 하는데? 모르겠어? 지금 그들의 사이가 좋아. 이유희가 효정을 보는 눈빛을 못 봤어? 예전에 네 아버지가 날 바라보는 눈빛보다
이유희는 신효정의 따뜻하고 촉촉한 손을 잡고 한눈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 보이자 이유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미소에는 애정과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유, 유희 오빠. 왜 지하 주차장으로 안 가요?”호텔 로비까지 걸어온 것을 본 신효정은 두려움에 떨며 급히 물었다.“차가 정문에 주차되어 있어. 지하 주차장은 너무 멀어.”“하, 하지만 밖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다 기자들이에요.”신효정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가녀린 어깨를 움츠렸다.“우리, 이렇게 나가면 안 돼요…… 저 기자들이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쓸 거예요.”“말도 안 되는 기사? 어떤 거?”급하게 나온 그녀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본 이유희는 레드 벨벳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 단추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잠갔다.그 모습은 정말 아빠처럼 다정한 남자 친구 같았다.“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내 마음에 들면, 그건 좋은 기사야.”“음…… 그, 그니까, 우리가 그런 관계라고…….”얼굴이 발그레한 신효정은 중얼거렸다. 말을 더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다.그 목소리는 부드러운 깃털처럼 떨리는 마음을 건드렸다.이유희의 눈이 천천히 붉어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큰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네?”신효정은 사슴 같은 눈을 부릅뜨며 깜짝 놀랐다.“효정아, 넌 내 여자야. 넌 나만의 여자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이유희는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다. 큰 손바닥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그는 신효정의 목뒤, 부드러운 머리카락, 따뜻한 체온, 섬세한 피부를 만지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유혹이었다.신효정은 알듯 말듯 고개를 저었다.“남들이 뭐라든 상관없어. 너랑 함께 있고 싶다는 뜻이야. 너랑만 같이 있고 싶어.”신효정은 지나치게 강렬한 눈빛에 숨이 턱턱 막혔다.‘나도 오빠랑 있는 것이 너무, 너무 좋아. 하지만…….’이유희는 그녀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녀가
‘아. 너무 멋있어! 너무 매력적이고 남자다워. 너무 섹시해! 구아람 씨가 무슨 안목이야. 왜 우리 윤 사장님처럼 훌륭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이때 저 멀리서 목표물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 목표물은 경주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유성이 연속으로 쏜 세 발은 정확히 경주의 머리를 조준했다.“너무 대단하세요! 윤 사장님의 사격 수준은 정말 신과 같아요. 한 발도 놓치지 않으셨어요!”우 비서는 바로 박수 치며 아부를 했다.“아쉽네.”유성은 총을 거두며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아쉬워요?”“사진일 뿐 실제 사람이 아니잖아.”유성은 우 비서를 보지 않고 슈트 바지 주머니에서 네모난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총을 닦았다.“무슨 일이야?”“윤 사장님, 구 회장님을 미행하던 사람이 소식을 전해왔어요. 구 회장님께서 오늘 밤 구아람 씨와 신경주를 찾으러 갔는데, 구아람 씨를 데려가지 않았어요.”이 말을 하자 우 비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역시 유성의 눈빛도 점차 어두워졌다.“아람을 데려가지 않았어? 그럼 아람은 아직도 신경주와 함께 이유희 집에 있다는 거야?”“네.”우 비서의 목소리까지 떨렸다. 유성의 눈빛이 사나워지며 갑자기 총알을 장전하더니 바닥을 향해 몇 발을 쏘아댔다. 총알은 우 비서의 발 아래에 터지자 겁에 질려 혼비백산했지만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총알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유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혔다.“차 준비해!”...구만복이 해장원에 돌아올 때 이미 새벽 12시가 되었다. 아람을 찾으러 갈 때 안색이 엄청 어두웠지만, 지금은 이미 생각을 마친 것 같았다. 아람이 경주의 보살핌을 받아 살진 모습을 생각하자 걱정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심지어 약간의 후회도 있었다. 당시 아람을 강력하게 감금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람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창문을 뛰어내려 탈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두근거리네. 만약에 아람이 뛰어내리다가 큰 사고가 나면 나도
유희도 마른침을 삼켰다. 순간 욕망이 불타오르며 오늘 밤 효정과 어떻게 사랑을 나눌지 생각을 마쳤다.“이 변태야!”아람은 입술을 깨물고 팔꿈치로 경주의 갈비뼈를 힘껏 때렸다. 세 사람은 거실로 돌아와 앉았다. 이 시간 효정은 이미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정연은 효정을 챙겨주고 아람과 경주, 유희에게 차를 준비해 주었다. 유희를 바라보며 말할지 말지 고민했다. 아직 보고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았다.“본가에 갔었어.”유희는 눈을 내리깔고 차를 한 모금 하셨다. 말투는 나지막하고 죄책감이 가득 찼다.“경주야, 아람아. 우선 먼저 사과하고 싶어. 할아버지가 결국 이소희를 꺼냈어.”이 이름을 듣자 경주의 눈빛은 순간 차가워졌다.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는 아니야. 열흘 정도 구속되면 풀려날 거야. 이미 예상했어.”아람은 감정 기복이 없었고 오히려 침착했다.“하지만 풀려도 이소희가 국내에서 이미 얼굴을 들지 못할 거야. 스캔들 때문에 명예를 완전히 잃을 거야.”“이소희 그 계집애의 얼굴을 내밀고 불빛 아래 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던 꿈은 완전히 깨졌어. 이씨 가문 출신이라도 이미 공식적으로 차단 되었어.”“공식 생사, 방송국, 심지어 라이브에도 나타나면 안 돼.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어. 성주에서 악명이 높은 두 여자, 진주랑 이소희. 둘 다 오래도록 유명해질 거야.” “부족해. 너무 부족해.”경주의 눈에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 듯 분노의 불김이 잠재웠다. 손에 힘을 주자 아람의 손까지 아프게 했다.“아람에게 준 상처는 목숨으로 죄를 치러도 과분하지 않아. 이런 벌은 너무 부족해. 법이 이소희를 풀어주었다고 해도 난 그러지 않을 거야. 이소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람의 가슴이 잔잔히 떨리며 경주의 어깨에 기대었다.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느껴졌다.“어휴, 경주야, 넌 나설 기회도 없을 거야. 내가 이미 보내버렸어.”유희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눈썹을 찌푸렸다.“할
도현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곧바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했다. 유희는 눈을 부릅뜨며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긴장했다. ‘유희 오빠는 효정이만 부를 수 있는 애칭인데,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불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까지 쳐들어왔어?’“오빠, 아직 안 갔어?”대치를 할 때 아람과 경주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날카로운 아람은 두 남자가 상대하는 모습을 보자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봤다.“아, 내가 문을 못 열었어. 마침 유희 도련님이 돌아와서 문을 열어줬어. 지금 갈 거야.”도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람을 향해 활짝 웃었다.“아람아, 오빠가 바쁜 일정을 마치면 같이 여행이나 가자. 맨날 같은 남자랑 붙어있지 마. 심심하잖아.”경주는 말문이 막혔다.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친오빠라는 것도 알지만 질투하기 시작했다. 도현이 떠난 후에도 유희는 침착하지 못하고 경계했다. 집에 없는 동안 도현이 효정을 만났고,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유희야,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경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유희는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미안해. 내가 오빠보고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어.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했네.”아람처럼 예리한 사람은 바로 유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주동적으로 사과했다.“넌 경주랑 친구잖아. 하지만 여긴 너와 효정의 집이야. 우린 잠깐 있는 건데, 외부인을 들여보낸 건 확실히 실례였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경주는 깜짝 놀라 아람의 허리를 안고 급히 유희 대신 해명했다.“아람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유희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은 아니야.”유희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흔들었다.“형수님,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깎아내리는 거잖아. 네가 와서 지내는 건 나도 기쁘고 경주도 기뻐. 우리 와이프도 좋아해. 네가 온 후로 효정의 기분이 엄청 좋아. 말도 많아졌어. 너희들이 쭉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난 절대 반대하지 않아!”아람은 경주의 품에 안기며 다정하게 눈을 마주쳤다.“이렇게
“다른 건 다 괜찮아. 엄마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아람의 말에 좀 상처받았어.”구만복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불빛 아래 비추어진 처량한 속눈썹이 촉촉해졌다.“이 혼탁한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도연을 잘 알겠어.”“구 회장님, 아가씨는 혈기 왕성해요. 예전에 많은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를 거예요.”기 비서는 한숨을 쉬었다.“나중에 사모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기회가 있다면, 아가씨도 회장님의 좋은 의도를 이해할 거예요.”...구만복을 배웅하고 정연은 효정을 위층으로 데려가 쉬게 했다. 아람, 경주 그리고 도현이 거식에 앉아 얘기를 했다.“아람아, 맹세해. 내가 말한 거 아니야!”도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맹세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알아, 우리 구씨 가문 자식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경주에게 가장 적대적인 백진 오빠도 아빠를 이용해 우리에게 압박을 주지 않아. 그런 비겁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아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족을 무조건 믿었다. “그동안 계속 여기 살았는데,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 아빠는 진작에 찾아왔어. 무조건 누가 말을 했어. 너희들이 잘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도현은 의아한 듯 턱을 쓰다듬었다.“음, 누굴까.”“윤유성 그 나쁜 자식이겠지.”아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요즘 답답해서 경주에게 함께 산책하러 가자고 했었어. 성주에 윤유성의 사람이 많아. 우리의 행방을 발견하고 따라와서 아빠에게 일렀을 거야.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엄청 커.”유성을 의심하는 건 점점 자연스러웠다. 유성은 아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나쁜 사람으로 찍혔다.“젠장, 윤유성 그 자식이 그렇게 한가해? 소질이 없네.”도현은 혀를 차며 이를 악물었다.“상관없어. 그런 수단이 좋으면 쓰라고 해. 나랑 경주가 여기 있으면 아무렇지 않아.”아람은 경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경주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곁에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키스해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경주는 늘 적극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구만복과 아람은 마음이 통하여 아무도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헐, 몰래 밥을 먹어?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돌아다니다 지친 도현은 배도 고파서 식탁으로 달려가 앉았다.“아람아, 넌 의리가 없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부르지 않아? 내가 많이 먹어도 구진 형보다 하겠어? 내가 네 밥을 뺏어 먹을까 봐 그래?”구만복과 아람은 도현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아, 널 잊었네.”...저녁 식사를 마친 구만복은 떠날 준비를 했다. 아람은 계단에 서서 구만복과 기 비서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주는 실례를 할까 봐 구만복을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기 전 구만복의 훤칠한 몸은 갑자기 멈칫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경주를 바라보았다.“득의양양하지 마. 오늘 밤 내가 남은 건 우리 딸이 보고 싶어서야. 아람과 오래 있고 싶어. 내가 널 인정하지 않았고, 용서하지도 않았어.” 경주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지만 목은 쉬었고 씁쓸하게 느껴졌다.“알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그래서 회장님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저 저에게 아람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전혀 아깝지 않아요.”구만복은 깜짝 놀라며 차갑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신경주, 네가 아람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네 일이야. 하지만 내 앞에서 깊은 애정이 있는 척할 필요 없어.”“난 가족 외에 누구한테도 차갑게 굴어. 네가 내 딸을 위해 목숨을 포기해도 싫어. 여전히 네가 싫어. 너희들 사이를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결국 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제 인생에서 후회되는 건 딱 한 가지예요.”경주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며 입을 떨며 말했다.“처음부터 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거예요. 마지막까지 아람과 좋은 결과가 없어도 평생 지켜줄 거예요.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요.”구만복은 경주를 한
한 시간 동안 고생한 결과,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간단한 요리는 괜찮지만 난의도가 올라가니 경주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아람의 감독과 지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주 혼자 하면 아마 밤을 새울 것이다. 요리하느라 바쁜 경주는 이마에 땀이 맺혔고, 입고 있는 흰 셔츠도 땀에 푹 젖었다. 아람이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파 휴지로 땀을 닦아주며 입을 삐죽거렸다.“아빠 정말 짜증 나. 집에 셰프도 많고 능력자 연서 이모도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먹을 수 있는데, 꼭 남아서 사람을 괴롭혀?”“아람아, 구 회장님과 오랜만에 만나잖아. 그리고 너도 내가 만든 음식을 구 회장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잖아.”경주는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하는 아람과 함께 요리를 하는 순간을 즐겼다. 아람은 말을 잘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그건 화나서 한 말이야. 아빠는 내 뜻을 알지도 못해!”“괜찮아, 아람아.”경주는 긴 팔로 아람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위로했다.“나도 구 회장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간단한 요리라도 좋아.”“잘 보이고 싶어?”아람은 경주의 몸에 밀착하며 코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그 생각을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아빠는 고집이 세. 네가 아무리 잘 보여도 아빠는 투덜거릴 거야. 네가 잘 보일 이유도 없어. 우리 둘이 만나는 건 아빠의 의견이 필요 없어.”“켁.”구만복은 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을 방해했다. 아람은 째려보았다.‘이 늙은이가 정말 흥을 깨네!’“허, 고생했네, 신 사장님. 아침을 차려 주는 줄 알았어.”구만복은 피식 웃더니 우아하게 앉았다.“허, 밥을 먹겠다는 건 아빠야. 강요한 사람이 없어.”아람은 비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경주는 나 말고 누구한테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어. 영광인 줄 알아. 투정 부리지 말고.”구만복은 말문이 막혔다. 경주도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구만복과 아람의 말투와 분위기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치마를 경주에게 둘러주고 뒤로 돌아와 묶어주었다.“그런데 우리 아빠의 입은 그동안 연서 이모의 대접을 받아서 엄청 까다롭고 식탐이 많아.”경주는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걱정 마. 내가 옆에서 가르쳐줄게. 내 말대로 천천히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경주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튼튼한 팔로 아람을 품으로 끌어당기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명령대로 할게요. 우리 사령관님.”...“야야, 고기를 먼저 넣어야지, 순서가 틀렸어!”“야야! 식초를 너무 많이 넣었어!”“아, 타잖아. 빨리 뒤집어!”두 사람은 부엌에서 시끌벅적하게 요리를 하며 어수선했다. 구만복은 원래 거실에 앉아 눈을 감가 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자 눈을 뜨고 저도 모르게 부엌을 바라보았다. 별장 1층에 있는 주방은 개방형 구조여서 거실과 거리는 멀지만 구만복의 위치에서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경주의 훤칠한 뒷모습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람은 옆에서 가르쳐주며 가끔 장난스럽게 엉덩이로 경주를 부딪치며 머리를 툭툭 치는 모습도 보였다. 경주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웃었다.‘바보 같네. 아람은 도대체 신경주를 왜 좋아하는 거야!’구만복은 비록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점차 부드러워진 시선은 아람과 경주에게서 뗄 수 없었다. 순간 화목한 가족 느낌이 들었다. 이런 편한 분위기와 단순한 행복이 바로 구만복이 그토록 추구하던 것이었다.“구 회장님, 아가씨를 보세요.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아가씨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시죠?”곁에 서 있는 기 비서는 흐뭇하게 웃었다.“흥, 당당한 나 구만복이 어떻게 이런 사랑만 모르는 딸을 낳았을까. 나중에 눈물을 흘릴 거야!”구만복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기 비서는 웃으며 타일렀다.“사랑에 빠지면 빠졌죠. 우리 아가씨의 능력과 미모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재산을 매일 KS 옥상에서 뿌려도 충분해요.
“정말이에요?”도현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러자 효정이 갈색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고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도현은 다정하게 웃었다.“당연하지, 진심으로 얘기한 거야. 네가 그렸어?”“네.”효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신경을 썼겠네. 감정도 많이 표현된 것 같아. 많이 힘들었지?”“네,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유희 오빠가 좋아하거든요.”유희를 언급하자 효정의 맑은 눈에는 달콤한 미소를 머금으며 얼굴이 붉어졌다.“유희 오빠가 너무 잘해줘요. 제가 오빠한테 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선물했어요. 싫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도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랫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매일 어두운 세상에서 사회의 수많은 사악한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렇게 순수한 눈동자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눈앞에 있는 효정은 먼지 하나 없는 밝은 달빛과 같아 순간 어두운 마음한 구석을 비춰주었다.“형사님?”도현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효정은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도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꼬리를 올렸다.“지난번 셋째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아람보고 새언니라고 불렀었지? 그럼 낯설게 굴지 말고 새언니처럼 날 오빠라고 불러.”“도현, 오빠?”효정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불렀다.“도현 도련님. 효정 아가씨는 저희 도련님의 여자예요. 사적으로 사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정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도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재빨리 효정의 곁으로 다가가 유희를 도와 여자를 지켜주었다. 도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웃었다.“제가 무슨 실수를 해서 이렇게 경비하는지 모르겠네요. 왜요, 이유희의 여자가 되면 정상적인 소통을 할 권리도 없어요? 얘기를 나눈 남자는 죽어야 해요? 이건 집착이에요,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너!”정연은 이를 악물며 분노가 눈에서 타오르듯 했다. 아람의 친오빠가 아니었다면 정연은 이미 뺨을 날렸을 것이다.“연이 언니.”효정은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도현은 구만복을 설득하지 못하고, 설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느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정연도 효정을 데리고 갔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경주는 숨이 막혔다. 떨리는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람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손을 움켜쥐며 동작을 멈추었다.‘아람아, 정말, 널 보내고 싶지 않아.’경주는 겁쟁이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스타일이다. 아람에게 빚을 졌을 뿐만 아니라 구만복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 3년간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이나 아람이 잃어버린 아이도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자신이 구만복의 소중한 딸에게 상처를 주어 용서할 수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구만복이 욕설을 퍼붓고 다시 경주를 때려도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줄 수 있었다.“아빠, 무슨 생각해.”아람은 피식 웃으며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아빠의 말을 듣는다면 애초에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출하지 않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마.”“내가 이국땅을 떠돌며 방황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아빠가 나를 찾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내 행복을 망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네.”경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아람의 단호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구아람, 너!”구만복은 순간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지며 숨을 헐떡였다.“지금 네 모습을 봐! 여전히 우리 구씨 가문의 아가씨야? 직접 마트에 가? 설마 그동안 네가 직접 요리를 했어? 신씨 가문에게 공짜로 3년 동안 일했는데, 아직도 모자라? 이게 네가 원하는 사랑이고, 원하는 삶이야?”구만복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여자의 유일한 딸은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억울함과 고생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경주 저 나쁜 자식!’“아빠,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야. 평범한 인생.”아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으로 치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