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환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그녀가 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다만 말하지 않고 맞장구를 치며 물었다. “그래? 무슨 좋은 소식인데?”“오후에 DCM의 초청을 받았어. 듣기로는 우리 YS그룹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10억 달러를 투자할 생각이래!”흥분되어 말하는 이청월의 백옥같은 얼굴이 홍조를 띠고 있었다.DCM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기업으로 국내회사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이런 글로벌 기업의 눈에 들었으니, 로또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었다.“조급해하지 마. 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더 많은 기쁜 소식이 널 기다리고 있어!” 임지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주작이 말한 금액이 5조 원이었으니 달러로 계산해도 6,000억이 넘었다.“표정을 보니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은데.”이청월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설마 이미 알고 있었어?”“응, DCM 회사 사람은 내가 데려온 거야.”임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농담하지 마. DCM 회사는 세콰이어 캐피탈에 버금가는 존재야.”“네가 아니라... 우리 이씨 가문도 이 회사앞에서는 새 발의 피야.”이청월이 입을 삐죽거리며 믿지 않았다.그녀가 임지환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DCM 회사가 그만큼 대단한 회사이기 때문이다.DCM 회사는 전 세계 투자회사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존재이다.한재석의 엔젤투자그룹도 충분히 대단한 회사이지만, DCM 앞에서는 기껏해야 이제 막 옹알이를 배우는 아이처럼 비교가 되지 않았다.만약 임지환이 진짜 DCM 회사 사람을 자기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대도시 갑부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곧 누군가가 증명해 줄 거니까.” 임지환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이 자식이 말을 하면 할수록 믿음이 안 가네!”“그럼 난 오늘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도대체 어떤 사람을 데려와서 둘러대는지 한 번 지켜보겠어!”이청월이 팔짱을 끼고는 임지환의 거짓말을 까발리려고 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농담을 하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빈이 손을 저었다.“유빈 씨, 왜 그러세요?”이성봉이 다급히 말했다. “혹시 몸이 안 좋으시면 다른 날 인사드리러 와도 됩니다.”“이번에 제가 한국에 온 이유는 임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임 선생을 만나지 못한다면 귀사와의 협력은 언제든지 끝날 수 있습니다!”유빈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네? 설마 우리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임지환과의 관계 때문인가요?”말을 들은 이성봉이 깜짝 놀랐다.반평생을 사업만 해 온 강한시 갑부인 그는 누구보다 DCM 회사의 대단함을 알고 있었다.DCM 회사의 도움으로 회생한 회사는 다 합해도 수백 개는 될 것이다.매년 해외에 투자하는 비용만 해도 YS그룹 열 개는 살 수 있었다.강한시 갑부인 이성봉마저도 우러러보는 다국적 회사가 임지환의 체면을 세워주다니?이는 또다시 이성봉의 인식을 쇄신했다.(임지환에게 아직 얼마나 많은 비밀이 남아있는 거지?)“임 선생은 저희 대표님의 친구예요. 만약 그분이 나서지 않았다면 저도 먼 길을 오지 않았을 겁니다.”“설마 이 선생님은 YS그룹이 저희가 1조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죠?”유빈이 담담하게 말했다.역시 솔직한 말이 가장 직접적이고 상처도 큰 법이다.이성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빈 씨, 그만 하세요.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시죠?”“죄송합니다. 제가 좀 직설적인 편이라.”유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이해 부탁드립니다.”“실례뿐이겠어요? 칼로 제 심장을 찌르는 것보다 더 아파요!”이성봉이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사서 고생하지 않기로 했다.그의 안내로 유빈은 빨리 용은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유빈 씨, 여기가 바로 임 선생이 머무는 곳입니다.”“잠시만요, 제가 먼저 들어가서 말을 전하겠습니다!”이성봉이 별장을 짚으며 소개했다.유빈은 고개를 돌려 거대한 별장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같이 들어오세요!”별장에서 임지환의 목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우레가 우는 것 같았다.오양산은 칼자루를 꼭 쥐고 두 눈은 번개처럼 유빈을 노려보았다.“무례하지 마세요. 이분은 우리 이씨 가문의 손님이십니다!”유빈이 압력을 참지 못하고 손을 쓰려는 찰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뒤이어 캐주얼한 복장의 청년이 천천히 걸어왔다.그 청년이 나타나는 순간, 그녀의 숨을 조여오던 압력이 사라졌다.“임 선생이신가요? 의부님 말씀과는 좀 거리가 있네요!”임지환을 보는 유빈의 눈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자신의 의부가 추앙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최소한 종사급 인물일 거로 생각했었다.하지만 임지환은 보기에도 너무 어릴 뿐만 아니라 종사의 기개가 느껴지지 않았다.비교해 보았을 때, 신선의 풍채와 기개를 가진 오양산이 더 출중해 보였다.“만약 당신이 주작이 말한 선물이라면, 주작에게 좀 실망스러운데요!”임지환은 유빈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화진고수는 다른 사람에게는 귀한 존재겠지만, 임지환에게는 계륵과 같았다.먹자 하니 맛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웠다.“임 선생님, 저의 의부님과 친구인 점은 존경합니다.”“그렇지만 그 말씀은 너무 예의가 없으신 거 아닌가요!”임지환을 바라보는 유빈의 백옥같이 하얀 얼굴에는 냉랭함이 가득했다.“친구?”임지환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주작이 나의 진짜 신분을 말하지 않았나 보네요.”“떠나기 전에 의부님께서는 그저 오랜 친구이기에 잘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선생님의 신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유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화를 참으며 천천히 설명했다.“지금 수련 레벨로 보았을 때, 내 신분을 알게 되면 득보다 실이 커요.”임지환이 뒷짐을 지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를 보호하는 일은... 됐어요. 난 보호 필요 없어요.”“임 선생님, 자신감이 있는 건 좋지만, 너무 과하면 자만입니다.”“혹시 지금 사면초가에 처한 건 아세요?”“한씨 가문뿐만 아니라,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진씨 가문의 진용이 종사 급의 은
유두 16 영사, 그녀를 포함한 열여섯 명은 모두 화진급의 강자이다.16 영사가 연합하면 종사는 쉽게 멸할 수 있다!“유빈 아가씨, 말씀하신 내용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요?”“종사급 강자며, 16 영사... DCM 회사 사람이 아니신가요?”이성봉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는 눈앞의 누구보다 아름다운 혼혈 여인을 보며 마음속이 의문으로 가득했다.“저는 DCM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의부님이 보내신 임 선생님의 경호원이기도 합니다.”유빈은 냉랭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 “이 선생님께서 이 비밀을 지키시리라 믿습니다.”“당연하죠!”이성봉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유빈이 유두 16 영사 이야기를 꺼내자, 오양산도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만약 유빈 한 사람뿐이었다면,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그녀와 같은 레벨의 고수가 15 존이 진짜 있다면, 그도 감히 얕보지 못한다.“임 선생님, 이제는 좀 마음이 놓이시지 않나요?” 유빈이 고개를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조금 전 별장에 들어설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적지 않은 좌절을 겪었다.그래서 그녀는 지금 임지환이 뻘쭘해하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아쉽게도 유빈은 실망할 것이 뻔했다.“16영사라면, 그런대로 괜찮네요.”임지환은 전혀 놀라지도 않았고 심지어 16 영사의 존재에 대해서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이 말을 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이청월 같은 문외한도 유두16 영사의 공포를 상상할 수 있었다.하지만 임지환의 말만 들으면 보잘것없는 존재 같았다.“임 선생님, 선생님은 비록 제 의부님의 친구시지만, 너무 오만하게 행동하시면 안되죠!”“아마 저희 유두16 영사의 전적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제가 똑똑히 알려드리죠.”“5년 전 설립 초기, 저희는 태평양에서 국제 1급 탈주범 아오구스틴을 사살했습니다!”“3년 전, 인터폴 내부에 반역자가 나타나 첨단 무기를 대량으로 가져간 사건이 있었는데, 역시 저희 16영사가 첨단 군사 무기를 지닌 특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유빈과의 도박은 안중에도 없었다.“저를 얕잡아 본 것이 얼마나 틀린 생각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유빈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긴 다리로 놀라운 점프력을 보여주었다.그녀가 점프하는 순간, 한 마리의 날아오르는 학처럼 남다른 아름다움을 뽐냈다.하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짙은 차가움을 느꼈다.그녀가 착지하는 순간, 학이 날개를 뽐내는 것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순간 그녀의 몸에서 떨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 떨리는 울음소리가 절정에 달할 때, 그녀가 손뼉을 내리쳤다.둥!공기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임지환의 옷이 소리를 내며 휘날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폭발했다.“참 대단한 명학권이네요! 단전에 기를 모으고 기로 기운을 밀어내며 소리로 힘을 밀어주다니.”“떨리는 힘의 폭발은 종사 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데요!”지켜보던 오양산이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그는 비록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이지만, 무도의 세계에 입문한 지도 오래되었기에 권법에 대해서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이청월이 긴장하며 물었다.“제가 봤을 때, 임지환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설마 맞받아칠 생각인 건가요?”“임 진인님께서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이 여자애더러 한 수만 버티라고.”오양산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먼저 손을 쓰도록 한 건, 보기에 너무 안 좋게 질까 봐 그런 거지요.”“저의 학권은 비석도 뚫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손을 쓰지 않으면 죽거나 중상을 당할 겁니다.”그녀의 권세 공격에도 임지환이 피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유빈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네 나이에 이런 권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볼 수 있지.”“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내가 방어할 정도는 아니야!”임지환이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만방자하기는!”유빈은 임지환이 자신을 무시하자, 더는 봐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주먹에 모든 기를 모아 임지환의 가슴팍에 꽂았다.탕!유빈의 눈빛이 아주 무서운 무언가를 본 것처럼
“이 선생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의 자금도 사실은 임 선생님께서 주신겁니다.”유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네? DCM의 이번 투자가 전적으로 임 선생에게서 온 것이라는 말씀인가요?”“그럼 10억 달러도 설마...” 이성봉이 말을 잇지 못했다.“맞습니다. 그 10억 달러도 사실은 임 선생님의 개인 재산입니다.”“게다가 이번에 사용하신 총자금은 10억 달러만이 아니라 500억 원입니다!”유빈이 또다시 천문학적인 숫자를 내뱉었다.“뭐라고요?”“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임진인 당신 설마 명문가 출신인가요?”“임지환, 너 나한테 아직도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야?”이 말 한마디에 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비록 그들은 이미 임지환의 사람을 놀라게 하는 행동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500억의 충격은 너무 컸다.“우리 YS 그룹의 총자산도 백억이 안 됩니다.”“임 대사임, 판을 너무 크게 벌이신 거 아닌가요!”강한시 재벌인 이성봉도 이 순간 임지환 때문에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청월은 더 참지 못하고 임지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말했잖아? 네가 믿지 않았을 뿐이지!”“제가 강한시 갑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임 대사님과 비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이성봉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사실 저도 처음에는 몇억 달러의 원금밖에 없었습니다. 다 뒤에서 절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불릴 수 있었어요.”말을 마친 임지환이 유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의부님은 금융 면에서 누구보다 대단한 분이세요.”“하지만 임 선생님의 강대함은 확실히 저의 예상 밖이었습니다. 갑자기 의부님이 저를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한 목적이 의심스럽네요!” 유빈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줄곧 이번 임무가 간단한 인물 보호라고 생각하고 의부님의 뜻에
“왜 그러죠?”임지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임 대사가 제 유검술을 몰래 배워 이 계집을 놀라게 할 줄은 몰랐네요.”오양산은 자기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공들어 배워낸 유검술을 임지환이 어떻게 불과 며칠 만에 배워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사람은 타고난 무술 천재인가?“이 계집에게 강대한 걸 보여주지 않으면 이 계집의 성격상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임지환이 손을 흔들며 해명했다.“임지환, 넌 도대체 누구야? 넌 재산이 넘쳐나는데 왜 굳이 배씨 가문에 들어가 3년 동안이나 데릴사위 노릇을 한 거야?”이청월은 임지환을 빤히 바라보며 이 남자의 눈빛에서 자기 질문에 관련된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네가 알고 싶은 건 언젠간 분명 알게 될 거야. 단지 지금은 일단 말하기 어려워.”임지환은 자기 진짜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직 밝힐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난 점점 그 여자의 남자를 보는 안목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너 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사위를 선택하지 않고 왜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이청월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임지환은 이청월의 말에 대응하지 않고 대신 진운을 바라봤다.“나 대신 진성 가주에게 당분간 집에서 나가 이 소란을 피하라고 알려줘요. 진운 씨 형님이 이번에 온다면 분명 이 상황을 그냥 무시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강한시 진씨 가문과 연루될 거고요.”이 결정은 임지환이 심사숙고한 결과였다.“임 선생님, 할아버지는 지금 우리 편에 서 있습니다. 형님이 진짜 온다고 해도 최악의 경우 기껏해야 형님과 정면으로 붙어 한판 벌이는 것뿐입니다.”최근 죽음의 고비를 넘은 후 진운은 예전보다 더욱 성숙해졌다.게다가 임지환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있기 때문에 진운은 진용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자신감이 넘쳐났다.“좋아요. 이번 일은 진운 씨에게도 일종의 시련이 되겠죠. 진짜 금은 활활 타오르는 불의 시련을 겪어야 찬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유빈은 휴대폰을 꺼내 내부 번호를 눌렀다.“유련아, 너희는 바로 강한시로 가는 오후 비행기를 타. 이번 임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니까 조금도 태만해서는 안 돼.”말을 마치고 유빈은 전화를 끊었다.산마루 아래에 서 있는 유빈은 머리를 들어 구름과 안개에 뒤덮인 용문산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이제 오히려 용주님과 맞서 싸울 사람들이 심히 걱정되네.”...어둠이 대지에 내리 앉았다.오관이 뚜렷하고 오뚝한 청년과 마른 체형의 중년 남자가 공항 로비로 들어왔다.이 중년 남자는 드문드문 주머니에서 자갈을 꺼내어 행인들의 경악한 시선 속에서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남자는 자갈을 씹을 때 이가 시린 듯한 마찰 소리를 내었다.자갈을 사탕처럼 먹는 추문철을 보며 진용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삼촌, 이건 무슨 습관이에요? 이 돌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돌이 무슨 맛이 있겠어? 난 그냥 위장 기운이 너무 강해서 소화를 돕기 위해 돌을 삼키는 거야. 네가 언젠가 운이 좋아 무술대가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알게 될 거야.”추문철은 씹어 부서진 자갈을 꿀꺽 삼키고 웃음을 터뜨렸다.“무술대가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전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진용이 씁쓸하게 웃으며 받아쳤다.“내가 장담하건대 지금까지 쌓아온 네 기반과 내 섬세한 가르침을 합치면 20년 안에 네가 대가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야.”추문철은 자신감이 넘쳐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추문철의 체형은 마른 편이지만 긴 셔츠를 입은 백발홍안의 모습을 봐서는 진짜 고수 냄새가 풍기긴 했다. 진용이 대가에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을 물으려고 할 때, 방금까지는 조용하던 공항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수많은 사람들이 출구로 몰려갔고 호기심이 생긴 진용도 그 사람들이 향하는 출구 쪽을 무심코 바라보았다.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차려입은 15명의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물든 여성들이 출구에서 공항 로비로 걸어왔다.이 15명의 여성들은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