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안에는 열 명 남짓한 청춘 남녀들이 수다를 떨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물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남자들은 파트너와 함께 오지 않은 여자들을 훑었고 여자들은 비싼 옷을 걸친 남자들에게 접근하려고 아양을 떨었다.이곳에 모인 대부분이 재벌 2세들이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바람둥이거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우들이었다.“예민이 드디어 왔구나. 다들 너만 기다렸잖아.”소예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외모는 평균보다 조금 괜찮은 편인데 소예민이나 림려한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진한 화장에 섹시함을 강조한 타이트한 옷차림이 오히려 술집 여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저쪽은 조설련, 저와는 대학 동기예요. 저 친구가 이번 모임을 주최했어요. 거의 일년 만에 보는 거죠.”소예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조설련은 한지훈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림려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예민아, 이분이 네 사촌언니지? 정말 예쁘시다. 너희 가문은 정말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나 봐. 너희 때문에 내가 다 못생겨 보이잖아.”웃으며 다가온 조설련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다들 조용히 해봐.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나랑 같은 의대 다니던 캠퍼스 여신 소예민. 의학자 가문으로 알려진 소씨 가문의 외동딸이야. 어때? 예쁘지? 여자친구 없는 사람들 오늘 노력 좀 해봐.”장난처럼 한 말이겠지만 어쩐지 뼈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이쪽은 예민이 사촌언니. 완전 여신이야!”소개가 끝나자 림려한은 대범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했다.“안녕, 림려한이라고 해.”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남자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간질거렸다.사람들은 분분히 일어서서 열정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안녕, 소예민이라고 해.”소예민도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한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분은 내가 여기 와서 새로 사귄 친구, 한지훈 씨야.”사람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만 끄
그리고 이때, 검은색 정장에 느끼한 인상을 가진 한 남자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소예민에게 술을 권했다.그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하고 소예민과 림려한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생긴 건 꽤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에 피부가 하얘서 귀티가 났다.행동거지에서도 교육을 잘 받고 자란 티가 났다.소예민과 림려한을 바라볼 때 눈에 욕망이 가득했지만 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홍철수는 갑자기 잔을 들더니 한모금에 술잔을 비워버렸다.소예민은 그의 행동에 약간 당황하며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일면식도 없는 남자였다.“예민아, 뭐 해? 철수 씨도 잔을 비웠는데 너도 비워야지? 홍철수 씨 H시에서 인정받는 청년 기업가 출신이잖아. 너 얼굴 본다고 여기까지 온 분이야.”조설련이 소예민의 어깨를 툭 치며 재촉했다.사실 그녀는 혼자 주목 받는 소예민이 얄미웠다.상대는 H시의 F4라고 불리는 인기남 중 한 명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재력까지 갖춘 완벽한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자존심만 아니라면 나 한번 만나달라고 들이대고 싶었다.하지만 홍철수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소예민에게는 진한 흥미를 보였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설련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 뭔가 억지로 소예민과 홍철수를 이어주려는 의도가 보였다.유현빈은 구석에서 굳은 표정으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소예민을 좋아해서 H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사냥감이 되었는데 지켜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홍철수는 H시의 홍씨 무술관 후계자로 그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현빈이 오늘 좀 이상하네. 너 예민이 좋다고 쫓아온 거 아니었어? 철수가 예민이한테 대놓고 호감 드러내는데 왜 가만히 있어?”옆에 있던 재벌2세 한 명이 장난끼 어린 얼굴로 말했다.“닥쳐!”유현빈은 소예민이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분노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장난을 친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알아?
소예원은 살짝 멈칫거리더니 난처해하며 말했다.“근데 제가 술을 마실 줄 몰라요……”이쯤 돼서 소예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오늘 이 자리는 온전히 홍철수의 파트너로 조설련이 일부러 자기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소예원은 그녀가 홍철수의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이용할 줄은 몰랐다.“흥! 몰라! 마실 줄 몰라도 오늘은 꼭 마셔야 해! 아니면 우리 친구고 뭐고 다 끝이야!”조설련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마실 줄 모르면 예원 씨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홍철수는 다정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철수 도련님, 부탁인데 성은 떼지 마시고 소예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성까지 떼고 부르시면 뭔가 다정해 보이잖아요. 제가 좀 듣기 거북해서 그래요.”소예원은 인제 어리고 순정한 소녀가 아니다.자기 생각을 똑바로 밝히며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사람들을 앞에 두고 홍철수의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똑부러지게 말했다.그러자 홍철수는 단번에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그는 헛기침하며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예원 씨 보기보다 꽤 도도하네요.”이 말을 입 밖으로 뱉을 때, 홍철수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당장이라도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만 같았고 눈 밑 깊은 곳에서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묵묵히 자리에 앉으며 소예원 옆에 앉아 있는 한지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러다가 문득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소예원 씨, 곁에 있는 친구분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똥이 결국은 자기한테까지 튕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러한 하찮은 수단도 재벌 2세들이나 할 법하다.“저는 S시 도영 그룹의 경호원입니다.”한지훈은 덤덤하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와아, S시 도영 그룹이라면 대기업인데, 엄청 훌륭한 분이셨네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홍철수는 마냥 부러워하고 추앙하는 듯이 말했다.한지훈을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것이 알리지도 않을 만큼 연기력이 대단했다.“하하! 철수 도련님, 지금
한지훈의 말 한마디에 룸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졌다.“집에 밥이 없다고요? 하하하, 역시 대단한 분이세요! 소예원 씨는 어쩌다가 저런 친구를 옆에 두게 된 거예요? 같은 남자로서 너무 부끄럽네요.”호지명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그는 소예원에 대한 홍철수의 마음을 뻔히 알고 있다.그리하여 기회를 틈타 한마디 해주면서 홍철수를 밀어주려고 했다.그럼, 홍철수도 그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셈이다.어쩌면 앞으로 H시 한씨 가문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게 될지도 모른다.“하하하! 너도 좀 그만해. 딱 봐도 가난해 보이는데, 좀 절약하면서 사는 것도 당연한 거잖아. 여기서 밥을 먹은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하며 다닐 수 있어. 이곳은 일반인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그런 곳이잖아.”윤기가 좔좔 흐르던 남자가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그러나 한지훈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삐에로를 보듯이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반면, 소예원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지며 참다못해 소리쳤다.“다들 그만 하세요! 제 친구한테 지금 무슨 막말을 하시는 거예요?”“예원아, 너무 화내지 마. 우리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였어. 이렇게 보잘것없는 친구는 도대체 왜 만나는 거야? 게다가 문이나 지키는 경호원이라며? 마을 지키는 똥개하고 별반 다를 게 없잖아. 명색에 H시 소씨 가문 천금인데, 창피하지도 않아?”“철수 도련님이 어디가 뭐 어때서 싫다는 거야? 인물도 훤하지, 돈도 많지, 사업도 잘되고 있지 도련님 좋다는 여자들 줄섰어. 넌 내가 특별히 가장 앞줄에 서게 해 준 거야.”조설련은 소예원을 위하는 척하면서 말끝마다 한지훈을 폄하하고 홍철수를 높였다.“지금 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했어? 나를 위한다는 사람이 내 친구를 이렇게 깔봐도 되는 거야?”소예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가방을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제가 어떤 친구를 사귀든 그건 모두 제 마음이에요! 당신들이 감히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제가 보기엔 한지훈은 평생 부모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대박! 미친놈!’한지훈의 말에 사람들은 들숨을 쉬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감히 홍철수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것은 죽고 싶어 안달 난 것과 다른 바가 없는 일이다.그의 말을 듣고 홍철수의 얼굴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한낱 보잘것없는 놈이 건방 하기 짝이 없어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미친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네가 감히 뭔데 철수 도련님보고 무릎 꿇으라 말아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넌 철수 도련님 개도 될 자격도 없는 새끼야! 주제 파악 제대로 해!”한지훈을 비아냥거리던 호지명이 벌떡 일어서서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쳤다.홍철수가 할 수 없는 말들을 그가 대신한 셈이다.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호지명을 덤덤하게 훑어보았다.“그래? 아까부터 개 짖는 소리 들었는데, 그게 너였어? 네가 바로 철수 도련님 개야?”“쓰읍!”사람들은 다시금 들숨을 내쉬었다.호지명 또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히스테리를 부렸다.“너…… 진짜 죽고 싶지!”호지명은 대문 지키는 촌놈 경호원이 이렇게 극악무도할 줄은 몰랐다.그는 한지훈을 손 좀 봐주려고 달려들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홍철수가 그를 말렸다.“다들 그만 해요. 기분 좋게 놀러 나온 건데, 사소한 일로 분위기 망칠 필요 없잖아요.”홍철수는 그런대로 사람 됨됨이가 잘 되어 있어 보였다.그는 잔을 들며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자, 우리 다 같이 건배해요. 설련 씨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해요!” 사람들은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었다.하지만 한지훈, 소예원, 림려한은 일어서지 않았다.물론, 이미 술에 취한 유현빈도 일어서지 못했다.그는 이미 눈이 풀리고 고개를 제대로 들 수도 없었다.소예원은 지금 화가 제대로 치밀어올라 얼굴까지 일그러졌다.그녀는 오늘 이러한 몰골을 당
한지훈의 말 한마디에 순간 공기마저 흐름을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다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지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맙소사!’‘미친놈이 분명해!’‘감히 홍철수보고 자존심 따위를 개한테 줘버렸다고 하다니!’그들은 어처구니없는 말에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한지훈이 곧 닥칠 불행에 기뻐해 마지 못했다.모두 오늘이 바로 한지훈의 제삿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홍철수에게 미움을 샀으니 아마 오늘 룸에서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어쩌면 사지를 부러뜨려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릴지도 모른다.홍철수도 이미 인내의 한계에 이르러 얼굴이 차갑기 그지없었다.두 눈에서 차가운 빛이 더없이 반짝이며 한지훈을 노려보고 있다.“한지훈! 지금까지 봐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걸 왜 자꾸 들이대는 거야?”그 누구도 홍철수를 이처럼 모욕한 적이 없다.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화를 꾹 참고 있었다.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미 한지훈을 내리쳤을 것이다.“철수 도련님, 저 새끼 너무 까불고 있습니다! 도련님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무시하고 있잖습니까! 옷도 촌놈처럼 입고 와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막말만 하고 있습니다!”한지훈에게 한 방 먹은 호지명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진상을 부렸다.“맞습니다! 저 미친놈 본때 보여줘야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우리가 한 번 손 보겠습니다. 도련님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게 하겠습니다.”홍철수의 얼굴은 비할 데 없이 어두워졌고 차가운 억새가 두 눈에서 번쩍이고 있다.“한지훈, 난 너 같은 놈 안중에 둔 적도 없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은 오로지 소예원씨를 위해서야. 그러니 이쯤에서 당장 대가리 조아리고 사과하고 꺼져! 아니면 네 제삿날로 만들어 주겠어.”홍철수는 종래로 아무에게나 무시당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일단 정색하기만 하면 그가 해낼 수 없는 일이 없다.게다가 홍철수는 평소에도 운동을 빼놓지 않고 태권도 고
허공을 찌를 듯한 소리가 진동했다.“죽어!”홍철수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주먹이 한지훈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그의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표정까지 일그러졌다.홍철수가 내리꽂은 주먹은 모든 이들의 눈에서는 강하기 그지없었다.역시 홍철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역시 태권도 검은 띠 고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H시 홍씨 가문은 듣던 대로 보통이 아니라고 다시금 느껴졌다.‘저 주먹에 맞으면 소라도 힘없이 넘어가겠지?’홍철수는 그들의 놀라움과 숭배하는 시선을 누리면서 험상궂게 웃기 시작했다.한지훈이 피가 터지도록 맞아서 자기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했다.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이 일어났다.한지훈은 시종일관으로 덤덤한 모습으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대박!’‘이 상황에서 잘난 체하는 거야?’‘정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어?’‘아니면, 소예원 앞에서 이미지라도 지키고 싶은 걸까?’상대가 홍철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한지훈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홍철수는 H시에서 3년 연속으로 킥복싱 우승을 거머쥔 인물이다.조설련, 호지명 그들도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일어날 광경이 미리 보이기라도 하는 듯했다.하지만 바로 이때 한지훈이 손을 내밀었다.그도 마찬가지로 주먹을 들어 정면으로 맞이했다.이 광경을 목격한 홍철수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하찮다는 듯이 비웃었다.‘죽으려고 환장했어!’‘감히 주먹을 내밀다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뭐가 달라?’“펑!”삽시간에 우렁찬 소리가 룸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두 주먹이 허공에서 만나 세차게 부딪쳤다.“찰칵!”뼈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홍철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한지훈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저놈 분명 팔 부러졌을 거야.’조설련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어내며 소예원에게 말했다.“들었어? 뼈가 부러진 소리 맞지? 참, 안 됐다……”그러나 곧 모든 이들이 뒷걸음을 칠 정도로 믿어지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일
홍철수 또한 넋이 나갔다.그는 무적에 가까운 한지훈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자신 있게 휘두른 주먹이 이처럼 철저하고도 비참하게 부러진 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H시 킥 복싱 대회에서 연속 3년 동안 우승을 했었고 H시 홍씨 무술관의 도련님으로 실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하지만 한지훈이 가볍게 휘두른 주먹이 진동하여 뼈가 갈라진 그와 달리 한지훈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덤덤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이런 모습에 홍철수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때 한지훈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며 홍철수를 향해 다가갔다.몸에 풍기는 카리스마는 비할 데 없이 날카로워지고 눈빛도 어느새 더없이 차가워졌다.“미친놈! 너…… 너 뭐 하자는 거야! 나 H시 홍씨 가문 도련님이야. 우리 아버지는 홍우용이야! 나한테 손끝 하나 더 대면 우리 아버지는 물론이고 홍씨 가문에서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네 가족까지 무사하지 못할 거야!”홍철수는 당황한 나머지 뒷걸음을 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그는 이미 한지훈의 얼굴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차가운 살의를 보았기 때문이다.이러한 살의는 지금껏 아버지인 홍우용한테서만 본 적이 있다.아니!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지훈이 지금 풍기고 있는 살의는 아버지한테서 느꼈던 살의보다 만 배 정도는 더욱 짙다.‘이럴 수가!’홍철수의 아버지는 H시 무술자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일대 거장이자 일성 예비 군왕인 강자이기도 하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한지훈은 일존 살신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지금, 이 순간 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지훈이 풍기고 있는 기세에 눌려 버렸다.조설련은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지훈을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미쳤어? 철수 도련님은 경호원밖에 되지 않은 너 같은 놈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분이셔! 너 지금 죽으려고 환장하는 거라고!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이러다가 우리까지 피해 보면 어떻게 할 거야?”“정신
“하! 이 탐욕스러운 늙은 개 같으니라고!”제이슨이 이를 갈며 일그러진 표정을 띤 채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일어나, 네가 아직 가치가 있을 때 네 목숨이 보장되는 거다. 알겠나?”한지훈이 고개를 들어 제이슨을 향해 담담히 말하자, 제이슨의 눈동자가 빠르게 회전했다.그는 결코 무능한 자가 아니었다. 아시란치 같은 대가문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나 세상사를 잘 알고 지혜롭기 마련이었다.한지훈이 지금 이 말을 꺼낸 것은 단순히 제이슨을 위협하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지금 이 순간, 칼날이 제이슨의 목에 닿아 있는 상황에서 한지훈이 그를 협박할 필요는 없었다. “한 선생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제이슨의 표정이 한결 차분해졌다.방금 전 전화 통화 이후로, 제이슨은 생각이 번뜩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아시란치 가문은 결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오직 후계자로 내정된 자들만이 가문의 전폭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그러니 그는 단지 가문의 장난감일 뿐이었다. “아시란치 가문에 문제가 끊이지 않는데, 네가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그 문제와 연관이 있을 때, 넌 아시란치 가문의 중요한 사람이 되니 그때 네 목숨을 지킬 수 있을 거다!”한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제이슨의 푸른 눈동자가 한지훈의 얼굴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만요! 러셀로란 가문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한 선생님께서는 제 경호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은 우리 아시란치 가문과 이미 내정된 협약이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이는 정말 과감한 배반이었고, 제이슨의 마음속에는 이미 원대한 계획이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방관하는 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아시란치 가문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가문의 존폐 따위가 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보아하니 이제야 제대로 깨달은 것 같군.”한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한 선생, 나... 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당장 너희 가문에게 연락해! 우선 네가 무사하다고 안부를 전하고, 어젯밤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 에먼로가 도망간 후 산토스가 또 직접 나서서 처단했다고. 난 이미 월영과 창월의 손에 죽게 됐다고!”이내 한지훈은 핸드폰 한 대를 제이슨 앞에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제이슨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전의 그는 가문을 팔아먹기는 했었지만, 배신을 한 적은 없었다. 만약 이 거짓말을 한 게 나중에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는 바로 아시란치 가문의 반역자로 전락된다. “한... 한 선생, 내... 내가 직접 그런 얘기를 전하는 건 아마 신빙성이 높지 않을 수도 있어.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병신이라 내가 살아남게 된다는 건... 말이 되지도 않는 일이야!”제이슨은 덜덜 떨며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으며 뒤에 있는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걱정 마. 넌 다치게 될 일은 없어. 저 거울을 보면 알게 될걸!”그 말에 놀란 제이슨은 창백해진 얼굴로 급히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그여진 긴 칼자국을 보고는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겨우 마음속의 분노를 참아내었고,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려 앞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입력했다. 그의 얼굴의 이 칼자국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다.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떻게든 러셀로란 가문과 아시란치 가문의 의심을 털어내는 것이었다. 만약 이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 칼은 다시 한번 그의 얼굴에 그리고 그의 목에 떨어질게 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 통화가 연결되었고, 휴대폰 너머로는 백발이 가득한 노인이 제이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제이슨입니다!”“제이슨,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동안 연락이 안 된 거야! 그리고, 에먼로가 너에 대한 험담을 하던
핸드폰을 건네받은 당국호는 메시지를 흘깃 보았다. 방금까지 전혀 개의치 않던 모습을 보이던 당국호는 모든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는 얼굴색이 검게 변했다. “뭐라고요? 유럽의 이 놈들, 단단히 미친 거 아니에요? 일단 천신계의 강자가 세상에 들어서게 되면 그것은 세상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이미 백 세에 가까운 연세인 장로는, 그동안 천신계의 강자를 수도 없이 직접 만나봤기에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수십 년 전 당시에도, 두 개의 수류탄의 위력은 천신계의 강자가 뿜어낼 수 있는 파괴력에 훨씬 못 미쳤다. “대장로님, 사실 저희는 이번 일을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지 용국 그리고 용국 무종에 몇 명의 천신계의 강자가 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국왕은 더없이 엄숙한 표정과 장엄한 말투로 물었다. “그...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미 알려진 천신계의 강자는 대부분 무신종이긴 하지만 단 4명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잠잠하게 지내면서 무학에만 집착하여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종문은 많아도 10명은 넘지 않을 겁니다!”“천신계는 천왕계와는 다릅니다. 일단 천신계를 돌파한 무자들이라면 그 누구든지 모두 하늘의 은총을 받은 행운아들이고, 천부적인 재능이든 오성이든 모두 갖춘 최상위 포식자들입니다!”대장로의 이 말 뜻은, 결국 용국의 천신계의 강자는 사실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한 나라 혹은 두 개 나라를 상대하는 것까지는 괜찮을진 몰라도, 전 세계를 상대하는 건 용국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판도라의 마법 상자와도 같았다. 일단 열리게 되면 그 누구도, 국면을 뒤바뀔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때 진우도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굳어진 표정의 국왕과 대장로 두 사람을 발견하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그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폐하, 무슨 큰일이 난 건가요?”이내 진우는 고개를 돌려 대장로를 바라보
한지훈은 월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용국이야!'” 이내 월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결국 용국의 무종 그리고 무맹이야. 필경 용국은 매우 신비롭고 역사가 유구하잖아!”“수천 개의 종문 하나하나가 모두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 각 종문마다 얼마나 많은 천신급의 존재가 있는지 그 누구도 감히 가늠하지도 못해. 이 상황에 전 세계의 모든 무자들이 연합하여 함께 용국을 겨냥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가 용국을 상대할 용기가 있을까?”월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번 일은 용국, 부상, 기타 주변 여러 나라들 그리고 용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나라들한테도 모두 중요한 하나의 대사였다. “역시나!”얘기를 들은 한지훈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초청한 사람들 중에 틀림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한테 매수되었을 거야!” 한지훈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자리에서 초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훗날 배신을 할 사람들은 아니라 생각했다. 믿음직한 동반자들이 아니고서야 무도 학원은 평온할 날이 없을 테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까지 티 내면서 매수를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이 무도학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긴 해. 나의 스승님은 동황도 전에 말씀하시길, 무도 학원은 결코 단지 용국을 상대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라고 하셨어!”“아마도, 그들은 전 세계 무도가의 이름을 걸고 어떠한 중요한 계약 하나를 수정할 수가 있다는 추측을 하셨어!”월영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흥! 계약 수정은 무슨! 단지 평화의 수단을 통해 천신계의 강자가 세속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뿐이야! 유럽 놈들은 천신계라는 이 높은 경지라면 얼마든지 전 세계 어떤 세력도 압도할 자신이 있다고 믿거든!”“물론 그 세력에는 용국도 포함되고!” 창월은 씩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그 말에 한지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재로서 열국이 다들
그러자 창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러셀로란 가문을 상대하기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거야. 사실 이미 도망간 에먼로 그놈이 가장 문제야.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그놈을 찾아내서 죽이자고!”“아니면, 이 놈을 이용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어!”이내 창월은 다시 단도를 꺼내 제이슨의 얼굴을 겨누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놓고 에먼로를 추격하는 건 하책이야. 그놈은 조만간 알아서 스스로 찾아올 거야. 일단 내일 아침, 제이슨더러 가문에 전화 한 통 넣으라고 해!”월영은 혼수상태에 빠진 제이슨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이 놈은 아시란치 가문의 외련 두목이야. 어떻게 이용하든지 너무 과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그 수사자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아시란치 가문 족장의 별명이 바로 수사자왕이었다. 그는 도통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인물로 이미 천신계의 실력에 다다르기도 했다. 다만 여태 아무도 그와 대결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유럽의 몇 대 가문의 배후에는 모두 매우 강력한 세력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무도와 세속 사이에는 규칙 또한 존재했다. 천신계의 강자는 멋대로 세속에 개입할 수 없고, 더우기는 멋대로 일반인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 규칙을 어기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번 벤다고 해서, 뭐 딱히 고통을 느끼기야 할까?”이내 창월은 손에 든 날카로운 단도로 제이슨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제이슨의 얼굴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제이슨이었지만, 떨어진 살 가죽에 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뒤이어 월영이 땅 위의 피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가 분홍색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이내 그 안의 가루약을 꺼내 시체에 뿌렸다. 곧바로 온 땅에 널브러진 시체는 농혈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농혈은 맑고 투명한 액
“그 말은, 유회원이 너희들로부터 구속을 받은 적은 없다는 거야?”이내 한지훈이 물었다. 방금 제이슨의 말로부터, 한지훈은 유회원의 지위가 결코 낮지 않고 또한 아시란치 가문과의 협력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 본능적으로 추측했다. “구속?”그러자 제이슨은 쓴웃음을 드러냈다. “한 선생, 당신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유회원이 먼저 주동적으로 우리 아시란치 가문을 찾아와서 같이 협력할 것을 요구했어!”“게다가 나조차도 그의 행방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놈을 구속할 수가 있어!”“그의 배후의 세력이 우리 아시란치 가문을 증오하여 우리가 그를 납치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 거야. 그것은 제대로 헛소리에 불과해. 한 선생, 나... 나는 이미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모두 털어놨어!”뭐라고? “유회원의 뒤에 또 세력이 있다는 거야?”한지훈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유회원은 틀림없이 여러 가지 신분을 갖고 있을 것이고 흑병대 간첩은 그의 많은 신분 중의 하나일 것이라 예상했다. “맞아. 광명존이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게다가 우리 할아버지조차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 내가 알고 있는 건 정말 이게 다야. 난 그저 평범한 아시란치 가문의 자제일 뿐이라고!”“이렇게 지위가 낮은 나를 잡아가서는, 당신한테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제이슨은 필사적으로 아시란치 가문을 내다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지훈은 여전히 마음을 열 의사가 없어 보였다. 광명존? 설마 광명 십존! 순간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났다. 제이슨의 말은 충분히 신빙성이 높았다. 광명파는 줄곧 용족 유적을 찾고 있었고, 용심이야말로 용족 유적의 비밀을 여는 유일한 열쇠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집트에 바로 남은 반쪽의 검은 용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번 작전이 광명존과 연관이 있다는 거야? 그럼 러셀로란 가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집트의 고수들은 저주를 받게 된 후로, 천왕계를 돌파한 후 화성의 장악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토스는 쉽게 5성 용급 천왕계를 돌파해 버렸다. 화성에 대한 그들의 장악과 운용은, 이미 두펑과는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비교할 수 조차 없었다. 그 기세는 에먼로도 막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에먼로의 두루마기에는 큰 불이 붙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두루마기는 아예 거지 꼴이 되었다. “죽여버릴 거야!”에먼로는 자신의 주교 두루마기가 불타는 모습에, 이성을 잃고는 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에게로 달려들었다. 곧바로 그중 한 제사장을 칼로 찔렀고, 동시에 그의 뒤에서는 산토스가 단도를 든 채 그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으윽!”잇달아 두 번의 신음 소리가 들렸고, 에먼로와 그 제사장은 거의 동시에 온몸에 피를 묻히게 됐다. 에먼로의 칼은 제사장의 아랫배에 박혔고, 산토스의 칼은 에먼로의 어깨에 박히게 됐는데 그 칼은 당장이라도 뼈에 닿을 정도였다. 겨우 고통을 참아가고 있는 에먼로의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움직이게 되면 그에게는 죽음의 길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산토스! 오늘 네가 벌인 짓에 위해, 언젠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에먼로는 모진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더 이상 잠시도 머물지 않고 고개를 돌려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다른 한 켠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한지훈의 오릉군 가시를 스쳐 지나간 카푸아의 눈앞에는 또 다른 악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가 없어, 월영이 단칼에 자신을 찌르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푸!”이내 카푸아는 피를 내뿜고는 몸이 옆으로 쏠리더니, 술상 두 개를 와르르 쓰러뜨렸다. 그가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오릉군 가시는 강력한 기세와 함께 또다시 순식간에 그의 눈앞으로 날아올랐다. “푸!”순간 약간의 한기가 카푸아의 눈앞에서 번쩍이더니 곧바로 그의 미간을 뚫어버
“한 선생, 당신도 방금 들었다시피 지금 유회원 그 사람은 여기에 없어. 만약 정말 그를 만나고 싶다면, 우리랑 함께 수십 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카만으로 가도 돼!”에먼로는 애써 가슴속의 노기를 억누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뭐? 유회원이 카만에 있다고? 그 말은 너희들, 나를 유럽까지 끌고 갈 생각이야?”그 말에 한지훈은 차갑게 웃었다. 사실 그는 두 제사장의 힘을 빌어 에먼로와 카푸아를 제거하고 제이슨까지 생포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손 안 대고 쉽게 코를 풀 생각이었다. 필경 아시란치 같은 강력한 가문을 상대하려면 수중에 당연히 회심의 카드가 있어야만 했다. 한편 어느새 한지훈의 의도를 알아차린 월영과 창월 두 사람은 잇달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한지훈의 옆에 서며, 자신들은 아시란치 가문과 무관하다는 뜻을 밝혔다. “산토스, 너도 알잖아. 내가 가기 싫은 게 아니라...”“그건 네 핑계고! 너희 교황청은 여태 천 년이란 시간 동안 자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을 죽여왔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량한 신도들이 너희 손에서 죽게 됐는데!”“그렇게 참담한 천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감히 천년 전 이 성도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명신에 대한 모독이야!”산토스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한지훈은 그의 말투에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 그동안 십자군이 죽인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배후의 진정한 장본인은 바로 교황청이었다. 산토스는 이 피맺힌 원수 관계를 생각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된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한지훈이 반격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내가 알기로는 교황청은 지금도 줄곧 비육을 노리고 있다고 하던데. 그러므로 교황청과 손을 잡고 있는 가문들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노려 비육의 신앙을 짓밟으려 할 거야! 난 동양인으로서 비육의 이 비참한 처지를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어!”에먼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이 바로 반박해 버
3자 국면이 어느새 4자 국면으로 바뀌게 되자 에먼로의 눈에는 달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지훈과 월영 두 사람만을 죽이는 일이었다면 딱히 어려울 건 없었지만, 이집트 대제사가 끼어들게 된 이상 일은 완전히 커질게 뻔했다. 만약 여기서 자칫했다가 선을 넘게 된다면, 이집트의 대제사가 충분히 끼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고로 열 명의 대제사들은 최소 천신계의 경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들은 얼마든지 손가락 하나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당신들 뭐야? 얼마나 한가한 사람들이기에 우리 아시란치 가문의 일에도 참견을...”제이슨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제이슨 도련님!”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에먼로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 상황이 너무 복잡했기에, 지금은 절대 그 어느 쪽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설사 한지훈과 결전을 치르려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당장의 번거로움을 일단 해결해야만 손을 댈 수 있었다. “애먼로! 너... 무슨 뜻이야?”제이슨은 여전히 현재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그들은 또 월영과 창월을 상대로 도발을 했기에,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우세란 전혀 우세가 없었고 2대 5의 결전이 펼쳐질 상황이었다. 사실 에먼로 또한 전세가 이렇게 순식간에 반전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제이슨, 만약 너희 아시란치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너 같은 병신들로 가득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이 멸망할 것 같은데?”이때 한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제이슨을 보고는 조롱했다. 그제야 카푸아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호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감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 조금만 방심하고 움직 했다 가는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격이 될 테니까. “젠장...”제이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먼로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한지훈과 두 대제사를 마주하고는 말했다. “다들 대체 어떻게 할 작정인 건데? 우리랑 죽을 각오로 한 판 붙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