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그냥 둬.”노인은 손사래를 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지훈 씨 진짜 의술을 할 줄 알았네요? 아까 그 어르신 안색만 보고 질병이 있다는 걸 알아냈잖아요.”소예민이 팔짱을 낀 채 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생각보다 실력이 대단한데? 절대 나보다 떨어지는 실력은 아니야!’한눈에 술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수 있었던 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절대 알아내지 못할 내용이었다.한지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다물었다.“예민아!”이때, 맞은편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조막만한 얼굴에 단아한 매력을 가진 미인이었다.게다가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간 완벽한 몸매는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소예민도 물론 미인이었지만 그녀와는 다르게 성숙미까지 겸비한 화려한 매력의 여인이었다.“려한 언니.”소예민이 활짝 웃으며 달려가서 여자를 와락 끌어안았다.“드디어 만나네. 여기 왔으면서 왜 연락 한번 안 했어.”여자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소예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분은 누구야?”한지훈을 발견한 그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새로 사귄 친구야.”소예민은 다급히 한지훈을 소개하며 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한지훈은 살짝 당황했지만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친구?”여자가 살짝 놀라며 한지훈을 아래위로 훑었다.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며 하얀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림려한입니다. 예민이 사촌언니에요.”“한지훈입니다.”한지훈은 예의상 악수해 주고 얼른 손을 놓았다.“예민이 언제 너 남성 친구가 생겼어? 난 왜 몰랐지?”림려한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소예민에게 물었다.“말할 기회가 없었지. 어쨌든 이렇게 만났으니 됐잖아.”소예민이 림려한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십여 분 뒤.소예민은 한지훈의 팔짱을 끼고 림려한과 함께 룸으로 들어섰다.“
룸 안에는 열 명 남짓한 청춘 남녀들이 수다를 떨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물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남자들은 파트너와 함께 오지 않은 여자들을 훑었고 여자들은 비싼 옷을 걸친 남자들에게 접근하려고 아양을 떨었다.이곳에 모인 대부분이 재벌 2세들이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바람둥이거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우들이었다.“예민이 드디어 왔구나. 다들 너만 기다렸잖아.”소예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외모는 평균보다 조금 괜찮은 편인데 소예민이나 림려한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진한 화장에 섹시함을 강조한 타이트한 옷차림이 오히려 술집 여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저쪽은 조설련, 저와는 대학 동기예요. 저 친구가 이번 모임을 주최했어요. 거의 일년 만에 보는 거죠.”소예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조설련은 한지훈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림려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예민아, 이분이 네 사촌언니지? 정말 예쁘시다. 너희 가문은 정말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나 봐. 너희 때문에 내가 다 못생겨 보이잖아.”웃으며 다가온 조설련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다들 조용히 해봐.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나랑 같은 의대 다니던 캠퍼스 여신 소예민. 의학자 가문으로 알려진 소씨 가문의 외동딸이야. 어때? 예쁘지? 여자친구 없는 사람들 오늘 노력 좀 해봐.”장난처럼 한 말이겠지만 어쩐지 뼈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이쪽은 예민이 사촌언니. 완전 여신이야!”소개가 끝나자 림려한은 대범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했다.“안녕, 림려한이라고 해.”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남자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간질거렸다.사람들은 분분히 일어서서 열정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안녕, 소예민이라고 해.”소예민도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한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분은 내가 여기 와서 새로 사귄 친구, 한지훈 씨야.”사람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만 끄
그리고 이때, 검은색 정장에 느끼한 인상을 가진 한 남자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소예민에게 술을 권했다.그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하고 소예민과 림려한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생긴 건 꽤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에 피부가 하얘서 귀티가 났다.행동거지에서도 교육을 잘 받고 자란 티가 났다.소예민과 림려한을 바라볼 때 눈에 욕망이 가득했지만 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홍철수는 갑자기 잔을 들더니 한모금에 술잔을 비워버렸다.소예민은 그의 행동에 약간 당황하며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일면식도 없는 남자였다.“예민아, 뭐 해? 철수 씨도 잔을 비웠는데 너도 비워야지? 홍철수 씨 H시에서 인정받는 청년 기업가 출신이잖아. 너 얼굴 본다고 여기까지 온 분이야.”조설련이 소예민의 어깨를 툭 치며 재촉했다.사실 그녀는 혼자 주목 받는 소예민이 얄미웠다.상대는 H시의 F4라고 불리는 인기남 중 한 명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재력까지 갖춘 완벽한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자존심만 아니라면 나 한번 만나달라고 들이대고 싶었다.하지만 홍철수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소예민에게는 진한 흥미를 보였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설련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 뭔가 억지로 소예민과 홍철수를 이어주려는 의도가 보였다.유현빈은 구석에서 굳은 표정으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소예민을 좋아해서 H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사냥감이 되었는데 지켜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홍철수는 H시의 홍씨 무술관 후계자로 그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현빈이 오늘 좀 이상하네. 너 예민이 좋다고 쫓아온 거 아니었어? 철수가 예민이한테 대놓고 호감 드러내는데 왜 가만히 있어?”옆에 있던 재벌2세 한 명이 장난끼 어린 얼굴로 말했다.“닥쳐!”유현빈은 소예민이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분노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장난을 친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알아?
소예원은 살짝 멈칫거리더니 난처해하며 말했다.“근데 제가 술을 마실 줄 몰라요……”이쯤 돼서 소예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오늘 이 자리는 온전히 홍철수의 파트너로 조설련이 일부러 자기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소예원은 그녀가 홍철수의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이용할 줄은 몰랐다.“흥! 몰라! 마실 줄 몰라도 오늘은 꼭 마셔야 해! 아니면 우리 친구고 뭐고 다 끝이야!”조설련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괜찮아요. 마실 줄 모르면 예원 씨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홍철수는 다정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철수 도련님, 부탁인데 성은 떼지 마시고 소예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성까지 떼고 부르시면 뭔가 다정해 보이잖아요. 제가 좀 듣기 거북해서 그래요.”소예원은 인제 어리고 순정한 소녀가 아니다.자기 생각을 똑바로 밝히며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사람들을 앞에 두고 홍철수의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똑부러지게 말했다.그러자 홍철수는 단번에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그는 헛기침하며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예원 씨 보기보다 꽤 도도하네요.”이 말을 입 밖으로 뱉을 때, 홍철수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당장이라도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만 같았고 눈 밑 깊은 곳에서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묵묵히 자리에 앉으며 소예원 옆에 앉아 있는 한지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러다가 문득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소예원 씨, 곁에 있는 친구분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똥이 결국은 자기한테까지 튕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러한 하찮은 수단도 재벌 2세들이나 할 법하다.“저는 S시 도영 그룹의 경호원입니다.”한지훈은 덤덤하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와아, S시 도영 그룹이라면 대기업인데, 엄청 훌륭한 분이셨네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홍철수는 마냥 부러워하고 추앙하는 듯이 말했다.한지훈을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것이 알리지도 않을 만큼 연기력이 대단했다.“하하! 철수 도련님, 지금
한지훈의 말 한마디에 룸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졌다.“집에 밥이 없다고요? 하하하, 역시 대단한 분이세요! 소예원 씨는 어쩌다가 저런 친구를 옆에 두게 된 거예요? 같은 남자로서 너무 부끄럽네요.”호지명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그는 소예원에 대한 홍철수의 마음을 뻔히 알고 있다.그리하여 기회를 틈타 한마디 해주면서 홍철수를 밀어주려고 했다.그럼, 홍철수도 그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셈이다.어쩌면 앞으로 H시 한씨 가문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게 될지도 모른다.“하하하! 너도 좀 그만해. 딱 봐도 가난해 보이는데, 좀 절약하면서 사는 것도 당연한 거잖아. 여기서 밥을 먹은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하며 다닐 수 있어. 이곳은 일반인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그런 곳이잖아.”윤기가 좔좔 흐르던 남자가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그러나 한지훈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삐에로를 보듯이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반면, 소예원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지며 참다못해 소리쳤다.“다들 그만 하세요! 제 친구한테 지금 무슨 막말을 하시는 거예요?”“예원아, 너무 화내지 마. 우리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였어. 이렇게 보잘것없는 친구는 도대체 왜 만나는 거야? 게다가 문이나 지키는 경호원이라며? 마을 지키는 똥개하고 별반 다를 게 없잖아. 명색에 H시 소씨 가문 천금인데, 창피하지도 않아?”“철수 도련님이 어디가 뭐 어때서 싫다는 거야? 인물도 훤하지, 돈도 많지, 사업도 잘되고 있지 도련님 좋다는 여자들 줄섰어. 넌 내가 특별히 가장 앞줄에 서게 해 준 거야.”조설련은 소예원을 위하는 척하면서 말끝마다 한지훈을 폄하하고 홍철수를 높였다.“지금 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했어? 나를 위한다는 사람이 내 친구를 이렇게 깔봐도 되는 거야?”소예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가방을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제가 어떤 친구를 사귀든 그건 모두 제 마음이에요! 당신들이 감히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제가 보기엔 한지훈은 평생 부모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대박! 미친놈!’한지훈의 말에 사람들은 들숨을 쉬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감히 홍철수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것은 죽고 싶어 안달 난 것과 다른 바가 없는 일이다.그의 말을 듣고 홍철수의 얼굴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한낱 보잘것없는 놈이 건방 하기 짝이 없어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미친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네가 감히 뭔데 철수 도련님보고 무릎 꿇으라 말아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넌 철수 도련님 개도 될 자격도 없는 새끼야! 주제 파악 제대로 해!”한지훈을 비아냥거리던 호지명이 벌떡 일어서서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쳤다.홍철수가 할 수 없는 말들을 그가 대신한 셈이다.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호지명을 덤덤하게 훑어보았다.“그래? 아까부터 개 짖는 소리 들었는데, 그게 너였어? 네가 바로 철수 도련님 개야?”“쓰읍!”사람들은 다시금 들숨을 내쉬었다.호지명 또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히스테리를 부렸다.“너…… 진짜 죽고 싶지!”호지명은 대문 지키는 촌놈 경호원이 이렇게 극악무도할 줄은 몰랐다.그는 한지훈을 손 좀 봐주려고 달려들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홍철수가 그를 말렸다.“다들 그만 해요. 기분 좋게 놀러 나온 건데, 사소한 일로 분위기 망칠 필요 없잖아요.”홍철수는 그런대로 사람 됨됨이가 잘 되어 있어 보였다.그는 잔을 들며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자, 우리 다 같이 건배해요. 설련 씨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해요!” 사람들은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었다.하지만 한지훈, 소예원, 림려한은 일어서지 않았다.물론, 이미 술에 취한 유현빈도 일어서지 못했다.그는 이미 눈이 풀리고 고개를 제대로 들 수도 없었다.소예원은 지금 화가 제대로 치밀어올라 얼굴까지 일그러졌다.그녀는 오늘 이러한 몰골을 당
한지훈의 말 한마디에 순간 공기마저 흐름을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다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지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맙소사!’‘미친놈이 분명해!’‘감히 홍철수보고 자존심 따위를 개한테 줘버렸다고 하다니!’그들은 어처구니없는 말에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한지훈이 곧 닥칠 불행에 기뻐해 마지 못했다.모두 오늘이 바로 한지훈의 제삿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홍철수에게 미움을 샀으니 아마 오늘 룸에서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어쩌면 사지를 부러뜨려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릴지도 모른다.홍철수도 이미 인내의 한계에 이르러 얼굴이 차갑기 그지없었다.두 눈에서 차가운 빛이 더없이 반짝이며 한지훈을 노려보고 있다.“한지훈! 지금까지 봐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걸 왜 자꾸 들이대는 거야?”그 누구도 홍철수를 이처럼 모욕한 적이 없다.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화를 꾹 참고 있었다.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미 한지훈을 내리쳤을 것이다.“철수 도련님, 저 새끼 너무 까불고 있습니다! 도련님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무시하고 있잖습니까! 옷도 촌놈처럼 입고 와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막말만 하고 있습니다!”한지훈에게 한 방 먹은 호지명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진상을 부렸다.“맞습니다! 저 미친놈 본때 보여줘야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우리가 한 번 손 보겠습니다. 도련님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게 하겠습니다.”홍철수의 얼굴은 비할 데 없이 어두워졌고 차가운 억새가 두 눈에서 번쩍이고 있다.“한지훈, 난 너 같은 놈 안중에 둔 적도 없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은 오로지 소예원씨를 위해서야. 그러니 이쯤에서 당장 대가리 조아리고 사과하고 꺼져! 아니면 네 제삿날로 만들어 주겠어.”홍철수는 종래로 아무에게나 무시당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일단 정색하기만 하면 그가 해낼 수 없는 일이 없다.게다가 홍철수는 평소에도 운동을 빼놓지 않고 태권도 고
허공을 찌를 듯한 소리가 진동했다.“죽어!”홍철수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주먹이 한지훈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그의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표정까지 일그러졌다.홍철수가 내리꽂은 주먹은 모든 이들의 눈에서는 강하기 그지없었다.역시 홍철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역시 태권도 검은 띠 고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H시 홍씨 가문은 듣던 대로 보통이 아니라고 다시금 느껴졌다.‘저 주먹에 맞으면 소라도 힘없이 넘어가겠지?’홍철수는 그들의 놀라움과 숭배하는 시선을 누리면서 험상궂게 웃기 시작했다.한지훈이 피가 터지도록 맞아서 자기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했다.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이 일어났다.한지훈은 시종일관으로 덤덤한 모습으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대박!’‘이 상황에서 잘난 체하는 거야?’‘정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어?’‘아니면, 소예원 앞에서 이미지라도 지키고 싶은 걸까?’상대가 홍철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한지훈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홍철수는 H시에서 3년 연속으로 킥복싱 우승을 거머쥔 인물이다.조설련, 호지명 그들도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일어날 광경이 미리 보이기라도 하는 듯했다.하지만 바로 이때 한지훈이 손을 내밀었다.그도 마찬가지로 주먹을 들어 정면으로 맞이했다.이 광경을 목격한 홍철수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하찮다는 듯이 비웃었다.‘죽으려고 환장했어!’‘감히 주먹을 내밀다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뭐가 달라?’“펑!”삽시간에 우렁찬 소리가 룸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두 주먹이 허공에서 만나 세차게 부딪쳤다.“찰칵!”뼈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홍철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한지훈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저놈 분명 팔 부러졌을 거야.’조설련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어내며 소예원에게 말했다.“들었어? 뼈가 부러진 소리 맞지? 참, 안 됐다……”그러나 곧 모든 이들이 뒷걸음을 칠 정도로 믿어지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