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949화

육지율은 살벌한 기세로 제일 병원의 남성 클리닉에 도착했다.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전문의가 안경을 쓰며 그를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젊은이, 어디가 불편한가? 어떤 검사를 하고 싶나?”

남자의 자존심은 목숨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무력 정자증’이라는 단어는 육지율에게 마치 폐에 꽂히는 비수처럼 느껴졌고 입에 담는 것조차 불쾌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얼굴은 어두웠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정자가 정상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죠?”

“뭐라고?”

노년 전문의는 잠시 멍하더니 상황을 이해하고 대답했다.

“문제가 있다는 소린가? 정액 검사를 하려는 거지?”

“...”

육지율의 얼굴은 더 검게 변했다.

“아니요. 문제는 없는데 검사를 해보고 싶어서요. 증명하려고요.”

전문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익숙한 듯이 대답했다.

“남성 클리닉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자네처럼 문제없다고 우기지. 검사 전에야 누구나 문제없다고 말하지.”

문제가 정말 없으면 검사를 하러 올 이유가 있을까?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육지율은 미간을 찡그리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말씀하시고 검사만 해주세요. 제가 문제 있다면 선생님 성씨로 바꾸죠.”

전문의는 기가 차서 웃으며 말했다.

“젊은 친구! 내가 이 나이에 갑자기 아들을 얻게 생겼네? 너무 화를 내면 정자에도 안 좋아.”

“...”

이 전문의의 입이 이렇게 독할 줄이야.

그의 뒤에는 ‘인심인술’이라는 글씨가 적힌 깃발이 걸려 있었다.

육지율은 그 깃발을 뜯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남초윤은 오늘 일찍 퇴근했다.

그녀의 결혼 지참금으로 들어왔던 카이엔을 이미 팔아버린 덕분에 교통수단은 이제 고급 차에서 지하철로 바뀌었다.

대제주의 저녁 출퇴근 시간은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겨우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남초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