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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결혼이라는 무덤에 발을 들이기 전에 육지율은 연애를 몇 번 했었고 이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젊고 혈기왕성할 때는 심지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밤 비행기를 타고 5,000마일이 넘는 거리를 날아가 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한가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일도 없고, 돈은 넘쳐나서 전 세계를 누비던 시절이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다 둘러보고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봤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시간을 들여 밤 비행기를 타고 연애를 하러 간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조건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과 몇 번 사귀었고 결혼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서로 나이가 어렸다. 그를 포함한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성적이고 가정의 결정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의 조건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가 상대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유설영과 연애하던 시절이 바로 결혼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유설영이라는 존재 때문에 결혼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설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는 좋아했던 것 같다.

육지율은 거짓말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초윤을 무릎 위에 앉히며 솔직하게 말했다.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다 과거일 뿐이에요.”

그는 결코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와 미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남초윤은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왜 유설영 씨랑 결혼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끝까지 맞서지 않았어요?”

그가 홧김에 자신과 결혼한 결과를 보면 육지율이 결심만 한다면 할아버지가 아무리 강경해도 결국은 그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유설영은 뉴욕으로 가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어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말이에요.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지, 미래를 약속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늘 당장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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