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진주 옷을 쥐고 웃으며 배현수의 곁을 지나갔다.“난 씻으러 갈게요.”배현수가 조유진의 팔을 당긴 동시에...조유진은 손이 있는 진주 옷을 침대 구석에 던졌다.배현수가 조유진의 뒤를 쳐다봤다.“면도 깨끗하게 안 됐어요. 내가 도와줄게요.”조유진이 배현수의 팔을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배현수가 턱을 만졌다.“면도 깨끗하게 안 됐어?”조유진이 눈을 크게 뜨고 배현수를 바라봤다.“네.”욕실에 가서 배현수가 면도칼을 조유진에게 주고 웃음기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뭐라도 기억이 난 거야?”아니면 왜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하는 건가? 면도를 해주겠다면?조유진이 말했다.“열심히 생각해 내는 중이에요.”배현수가 말했다.“이건 네가 두 번째로 면도를 해주는 거야.”첫 번째는 대학생 때 열애하던 시절 동거하던 때였다.조유진이 익숙지 않아 배현수의 턱에 상처가 났는데 그때 미안한 마음이 커서 그 뒤로는 다시는 면도를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조유진은 면도칼을 들고 배현수가 옛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손가락이 떨렸다.또 한 번... 배현수의 턱에 상처를 냈다.피가 나왔다.역시 조유진은 이 일을 하면 안 된다.매번 할 때마다 피를 보게 된다....장은숙과 장 셰프가 이미 돌아와 맛있는 아침을 준비했다.조유진은 레비아단에게서 고생을 많이 해 몸이 허약해져 장 셰프는 아침 일찍 닭백숙을 준비했다.장은숙이 말했다.“사모님, 이 닭은 제가 농가에서 가져온 거예요. 쌀을 먹고 자랐고 사료를 먹이지 않아서 아주 좋은 닭이에요. 느끼해하실까 봐 위에 있는 기름을 다 제거해서 버렸어요. 한 그릇 담아드릴 테니 먼저 마셔 보세요.”“네.”조유진이 국그릇을 받고 마셔 보니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었다.장은숙은 조유진이 잘 먹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사모님 몸조리 잘해서 살 좀 찌우시고 대표님하고 같이 선유 동생 만들어주시면 좋겠네요.”조유진은 사레가 들렸다. 귀가 뜨거워났다.배현수가 무표정으로 물었다.“우리 둘만의 시간을 뺐는
배현수가 조유진한테 어떻게 입는지 물어보다니?어떻게 입냐고? 어떻게 입는지 배현수가 모를 리가 없다.조유진은 얼굴과 귀가 빨개진 채로 옷방으로 걸어갔다.배현수는 더 놀리지 않고 예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디서 물어온 거야?”예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야옹~”“잘했어.”...옷방 안.조유진이 치마를 입으면서 등 뒤에 있는 지퍼를 급하게 잠가 천이 끼여 올라가지 않았다.배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신사행세를 하다니.이렇게 물어봤지만 손가락은 이미 조유진의 치마 지퍼를 잠가주고 있었다.조유진이 옷을 다 입고 외투를 하나 골라 나가려고 할 때 배현수가 앞길을 막았다.배현수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사용하고는 사람을 무시해?”배현수는 손가락으로 진주 옷에 있는 진주를 만지작거렸다.“오늘 밤에 어떻게 있는지 시범해 줄래?”그 말투는 마치 아주 진지한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조유진은 얼굴이 뜨거워 터질 것만 같았다.배현수의 손에서 진주 옷을 뺏어왔다.배현수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유진아, 왜 말을 안 해?”조유진이 배현수를 째려봤다.“어떻게 입는지 알고 싶다고 하니까 가르쳐줄게요.”이 옷을 여자만 입을 수 있다고 규정한 사람은 없다.조유진은 배현수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배현수와 조유진의 다툼의 패자는 배현수로 끝이 났다.육씨 가문의 고택에 도착하니 이미 손님들로 가득했다.배현수가 도착하자마다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러 육성일의 서재에 갔다.육지율도 갔다.조유진은 육씨 가문의 친척들을 잘 모른다.한 사람이 조유진에게 다가와 인사했다.“보지 못하던 얼굴인데 육씨 가문의 어느 쪽의 친척이신가요?”조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육씨 가문의 친척이 아니라 남초윤의 친구예요.”남초윤의 친구라는 말을 듣자 그 중년여성의 눈빛은 순간 변했다. 호기심으로부터 싫어하기까지 말투도 비아냥이 가득했다.“인맥을 쌓으러 온 거군요.”조유진은
남초윤은 조유진을 데리고 마당으로 가려고 했다.조유진이 남초윤의 팔을 뿌리치고 그 여성에게 말했다.“고모님께서 말하신 게 맞아요. 사람은 끼리끼리라고요. 할아버님처럼 기품이 넘치는 분이 어떻게 고모님 같은 이런 저질스러운 친척이 있는 걸까요?”조안미는 당황했다. 조유진이 육씨 가문의 구역에서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나한테 욕한 거예요?”조유진이 말했다.“아니요,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남초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조안미를 보고 슬그머니 웃고 조유진을 데리고 갔다.두 사람은 옆에 있는 마당에 갔다. 분수가 있었는데 디자인이 예뻤고 물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과 남초윤이 그네를 탔다.내려가서 말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공 하나가 남초윤의 등에 맞혔다.말썽꾸러기, 조안미의 손자, 육정혁이었다.육정혁이 교만한 태도로 남초윤을 쳐다봤다.“내려와요, 내가 그네 놀 거예요!”남초윤은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는 사람이 공으로 나를 때려? 누가 그렇게 버릇없게 가르쳤어? 나는 네 작은숙모야.”“우리 할머니가 말했어요. 이제 곧 작은삼촌이랑 이혼 한다고. 이혼하고 나면 육씨 가문의 사람도 아니잖아요. 근데 내가 왜 작은숙모라고 불러야 하냐고요. 작은삼촌은 곧 아줌마를 버릴 텐데.”말을 하고 남초윤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남초윤은 화가 났다.“너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내 할머니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너 하나쯤 어쩌지 못하겠어?”“메롱, 나 때려봐요! 날 때리면 작은삼촌한테 나 괴롭힌다고 이를 거예요.”남초윤이 쫓아갔다.육정혁은 자리가 빈 그네로 달려가 앉았다.“메롱, 속았지요. 바보!”남초윤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이 녀석이…”조유진은 땅에 굴러떨어진 공을 주워 육정혁에게 힘껏 뿌렸다.육정혁은 머리를 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감히 나한테 뿌려요?”조유진은 다시 공을 주워 육정혁한테 뿌렸다.“넌 어른한테도 뿌리는데 내가 어른으로서 너한테 뿌리는 게 뭐 어때서?”“저 사
서재에서 육성일은 배현수와 육지율하고 레비아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육성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진짜 사령관은 아마 죽은 지 오래됐을 거야. 그 레비아단은 아마도 섞여 들어온 거고. 하지만 지금 폭로 됐으니 719에 간첩도 처리돼서 다행이야.”배현수는 이해가 안 됐다.“마스크를 쓰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을 하는 건 본 적이 있어요. 마스크를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당사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세히 쳐다보면 구분할 수 있어요. 사령관님하고 오래된 전우신데 만약 그 사령관님이 위장을 한 사람이라면 저희를 속인 거는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할아버님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었죠?”육성일이 말했다.“아마도 요 몇 년간 만난 적이 별로 없어서 내가 소홀했나 봐. 또 다른 가능성은 레비아탄이 사령관의 쌍둥이 동생일수 있어.”배현수와 육지율은 놀랐다.사령관님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고?“이 일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어. 나도 어쩌다가 알게 된 거야. 동생은 사령관 하고 똑같게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개인 실력도 사령관 못지 않고. 하지만... 동생은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어.”말이 끝나자마자 서재 밖에서 어린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연못 옆.조유진이 올라온 후 육정혁을 연못으로 밀었다.육정혁은 흙물을 마시고 소리를 질렀다.“미쳤어요? 감히 나를 밀어요?”조유진은 어이가 없었다.“먼저 나를 민건 너 아니었었나? 너만 다른 사람을 밀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널 밀면 안돼? 네가 내려가서 연못 안에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 보지 않으면 다음에도 이런 짓을 할 거고. 다음에는 네 작은숙모를 밀어 빠지게 할지 누가 알아. 할머니가 너한테 사람 된 도리를 가르치지 않았으면 나 이 외부인이 간섭해서 어떻게 작은숙모를 존중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게.”육정혁은 온몸을 떨며 조유진을 째려보며 명령했다.“날 잡아 올려다줘요!”조유진이 웃었다.“뭐라고 불러야지?”육정혁이 소리쳤다.“나쁜 아줌마!”“너 이 어린애가... 아직도 정신이
배현수는 육지율을 한눈 째려보고 말했다.“어느 쪽 눈으로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걸 봤는데?”육지율이 웃었다.“당연히 두눈으로 똑똑히 봤지.”조유진은 항상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배현수의 앞에서는 연약한 모습으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다.배현수가 없는 곳에서는 말로 사람의 기를 채우고 손으로는 따귀를 날린다.연못에 있던 육정혁은 구세주를 찾았다.연못 곁에 있는 조유진과 남초윤을 짚으며 말했다.“작은삼촌! 이 두 사람이 짜고 날 연못에 밀었어요! 날 연못에 눌러 죽이겠다고 했어요!”남초윤이 말했다.“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 널 눌러 죽이겠다고 했어!”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배현수가 빠른 걸음으로 조유진의 곁이 갔다.조유진이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외투를 벗어 조유진의 어깨에 걸쳐줬다. 조유진을 안으며 말했다.“먼저 옷부터 갈아입자.”육지율은 육정혁을 연못에서 올려왔다. 조카가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육정혁이 먼저 말했다.“저기 그네가 두 개 있었는데 작은 숙모하고... 이 사람은 누구예요?”육지율이 대답했다.“이모라고 불러.”육정혁이 이어 말했다.“한 사람이 그네를 하나씩 차지했는데 제가 공을 저쪽에서 오래 놀아서 그네 하나를 놀게 해주면 안 되냐고 했는데 작은숙모가 싫다고 해서 좀 말다툼이 있었어요.”육지율이 계속 물었다.“그리고?”“그리고… 그리고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르는 이모가 작은숙모 대신 화풀이를 해주겠다고 달려와서 절 때렸어요! 제가 반격하다가 잘못하고 연못에 밀었는데 절대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이 이모가 올라오자마자 절 연못에 밀고 작은숙모대신 가르치겠다고 했어요! 이 이모도 절 올려오지 않았고 작은숙모가 절 도와주려는 것도 막았어요! 완전 악독한 이모예요.”어이가 없었다.거짓을 눈 깜빡하지 않고 말하는 반응 능력은 역시 육씨 가문 사람이다.조유진이 육정혁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네가 먼저 날 연못에 민 건 인정하는 거지?”육정혁이 반격했다
“난 그냥 공 던져서 한 번 맞췄을 뿐이야! 그런데 너는 공을 두 번이나 던져서 날 맞췄잖아! 누가 더 심해?” 조유진은 다시 조안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손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스스로 인정했잖아요. 저는 정당방위였을 뿐이에요.” 어린 녀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내 말을 따라 하다니!” 그러자 옆에서 육지율이 웃음을 참으려다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크흠.” 배현수는 육지율을 흘겨보며 말했다. “넌 맨날 구경만 하고 있냐?” 육지율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 별일도 아닌데 좀 떠들게 놔둬. 오늘 사람도 많고 재밌잖아. 근데 너 혹시 아내가 걱정되냐?” 배현수는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물에 빠진 건 내 아내야. 내가 안 걱정하면 네가 걱정해줄 거냐?” 육지율은 그제야 배현수의 턱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 턱 상처, 조유진이 낸 거야? 에휴,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했는데 벌써 네 얼굴에 손을 대네. 앞으로는 더 심해지겠는데?” 배현수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뭘 알아? 이건 우리만의 재미라고.” “재미? 너희 부부만의 놀이는 서로 때리면서 노는 거냐?” 육지율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현수는 일부러 그를 자극하듯 말했다. “침대에서 칼 노는 거, 해본 적 있어?” “...칼에 베이고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다니. 배현수, 너 참 변태구나!” “해보면 알겠지. 하지만 너는... 안타깝게도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네.” 한편, 조안미는 화난 얼굴로 조유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어른이 애를 물에 빠뜨리다니, 말이 되니? 우리 손자한테 사과해!” 배현수는 더 이상 육지율과 말다툼을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조유진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 손자가 내 아내한테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당신이 왜 큰 소리예요?” 조안미는 배현수를 알지 못했기에 비웃으
조안미는 조유진을 노려보며 속으로 말했다.‘또 연기하네. 계속해 봐, 지켜볼 거야.’ 그때 배현수는 조유진이 미열이 난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많이 힘들어?” 조유진이 대답도 하기 전에 조안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른인 네가 아이보다 더 약한 척 하겠다는 거야? 내 손자는 연못에 빠져서 흙탕물까지 삼켰어. 지금도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데 네가 겪은 게 뭐 대단하다고!” 그러면서 조안미는 손자에게 눈짓을 보냈고 어린 녀석은 즉시 몇 번 기침을 하며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연기를 했다. 방 안의 사람들은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조안미의 말은 배현수의 귀에 매우 불쾌하게 들렸다. 그는 조유진을 품에 안고 조안미에게 쏘아붙였다. “아주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제 아내가 당신 손자보다 더 약하죠.” “뭐?” 조안미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배현수를 바라보았다.‘지금 눈뜨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조안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표정을 다듬으며 말했다. “내 손자는 겨우 열 살이야. 그런데 네 아내는 성인이잖아! 어느 집안에서 어른이 아이를 괴롭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단 말이야? 도대체 너희들 예의범절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조유진은 냉정하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참 예의범절을 잘 아시네요. 그래서 당신 손자가 작은 숙모를 욕하게 가르친 거군요.” 육지율은 그제서야 아이를 바라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육정혁, 네가 작은 숙모를 욕했어?” “아, 아니에요! 저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조유진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욕하는 정도야 뭐, 할 수 있죠. 당신 손자가 할머니에게서 무례함을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육 변호사님, 당신 조카가 당신들 이혼하라고 빌던데요!” 육지율은 남초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육씨 집안 남자들은 이혼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육성일은 너무 잔혹했던 게 분명했다! 조안미는 육지율에게는 감히 화를 내지 못하고 대신 조유진에게 화풀이를 했다. “어디서 굴러온 외부인이 우리 육씨 집안 일을 왈가왈부해? 너야말로 어머니만 있고 교육은 못 받은 애겠지!” 조유진은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조안미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말했다. “너, 어머니만 있고 교육은 못 받은 애라니까!” 조유진은 바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없이 자란 제가 당신처럼 하루 종일 이간질하고 손자를 망치는 사람은 아니에요!” 조안미는 그 한 대에 멍해졌다. 여기는 육씨 집안이었다.이 여자가 대체 어떤 용기로 그녀의 뺨을 때린 거지? 살기 싫은 건가! 조안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경비! 경비 어디 있어! 당장 이 여자를 쫓아내!” 밖에서 듣고 있던 경비들은 무슨 소란이 벌어진 줄 알고 달려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배현수는 조유진을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누가 감히 유진이를 건드려?” 육지율도 배현수 편을 들며 경비들에게 말했다. “이 노파를 당장 쫓아내.” 경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노파요? 변호사님,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육지율은 눈을 반쯤 뜨며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숙모 외에 누가 있겠어. 할아버지 팔순 잔칫날에 기분 좋은 날을 다 망쳐놨잖아! 당장 끌어내!” 경비는 조안미를 향해 예의를 차리며 물었다. “스스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끌어내야겠습니까?” 다른 경비가 제안했다. “스스로 나가시는 게 체면을 지키는 일입니다.” 힘들게 사람을 끌어내는 수고를 덜자는 것이었다. 조안미는 어이없어 외쳤다. “너, 너희들?!!” 그녀의 조카인 육지율이 외부인을 위해 자신을 쫓아내겠다고? “육지율! 난 너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이야! 네가 어른을 무시하는구나! 내가 네 할아버지를 불러서 너를 혼내주게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