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적은 계속 옆에 있었다.염수봉이 급하게 말했다.“배 대표, 지금 탄약이 부족해요. 그 늙은이가 이미 온 버지니아주에 우리를 잡을 사람을 퍼뜨렸어요. 재웅이 가짜 사람 머리를 갖고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채게 될 거고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어요.”배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우리가 버지니아주에 오기 전에 탄약을 가득 채워 온다고 해도 부족할 거예요. 버지니아주에 많아 넘치는 게 탄약과 세력인데 탄약이 부족하면 빌리면 되죠.”염수봉이 흠칫했다.“지금 누구한테서 빌려요? 시간은 될까요?”말이 끝나자마자.머리 위에서 전투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최신형의 젠 35였는데 전투 능력이 아주 강하다.염수봉과 백소미가 놀랐다.“우리를 치러 온 걸까요?”이 몇 명을 해치우러 젠 35를 보냈다는 것인가?상대편이 너무나도 손이 컸다.젠 35가 나오면 그들은 시체도 없이 죽을 수 있다.배현수가 이때 말했다.“우리를 도와주러 온 병사들이에요.”염수봉이 말했다.“어디서 온 병사들이죠?”배현수가 전투복을 꺼내 염수봉과 백소미에게 던져주고 말했다.“송씨 가문에서 빌린 거예요.”백소미가 흠칫하고 물었다.“버지니아주에서 지하 거래로 유명한 송씨 가문을 그러시는 건가요? 배 대표가 어떻게... 송하진? 송하진 씨가 송씨 가문의 사람이에요?”버지니아주의 송씨 가문은 기존의 사업을 합법화로 만들기 어려워 계속 이 자유로운 곳에서 탄약과 군대를 갖추고 사업을 아주 크게 했다.백소미는 이해가 안 됐다.“송하진 씨의 신분이 이렇게 복잡한데 어떻게 719에 들어온 건가요?”배현수가 웃으며 말했다.“백소미 씨 신분은 괜찮고요?”백소미의 신분도 평범하지 않았다.염수봉이 엄지를 척 하며 말했다.“배 대표가 탄약하고 사람을 데리고 오지 않은 건 버지니아주에 준비해 둔 창고가 있었군요!”...젠 35 한 대가 레비아단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레비아단은 조유진을 위협하며 제일 위층에 서서 소리쳤다.“얼른 폭발시켜! 죽으려면 같이 죽어!”
배현수가 저격총을 앞에 있는 헬리콥터의 날개 쪽을 조준했다.빠르고 정확하게 한 발을 쐈다.“펑!” 하는 소리가 울렸다!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심하게 흔들렸다.레비아단 쪽의 저격수 몇 명도 배현수가 타고 있는 헬리콥터를 향해 총을 쐈다.두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휘틀거렸다.염수봉과 백소미도 저격총을 들고 쏘려고 했을 때 레비아단이 조유진의 목을 조르면서 조유진의 몸 절반을 밖으로 내보냈다.백소미의 통신설비가 울리기 시작했다.마이크에서 레비아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헬리콥터를 추락시킨다면 난 조유진을 던져버릴 거야!”백소미가 헤드셋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물었다.“배 대표, 지금 어떻게 할까요?”만약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추락을 할 사람은 배현수 그들이다.하지만 총을 겨누면 조유진을 쏠 가능성이 크다.지금 헬리콥터가 아무리 낮은 구역에서 날고 있다고 해도 지면과의 거리가 천 미터는 되고 레비아단이 조유진을 밀어 내보내면 조유진은 떨어져 죽는다.좀만 더 날면 버지니아주 경내를 나가게 된다.배현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레비아단의 옆에 있는 고용병들이 배현수가 있는 헬리콥터의 날개를 쏴 망가뜨리기 직전이다.헬리콥터는 갑자기 평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었다.조유진이 헬리콥터 바닥에 떨어진 총을 쥐고 총구를 레비아단의 미간에 조준했다.“헬리콥터 착륙시키세요!”레비아단이 웃었다.“넌 총을 쏠 수 없어. 네가 총을 쏘면 내가 손을 놓겠지. 아래를 봐봐, 천 미터 정도 되는 높인데 떨어지면 넌 분신쇄골이 되는 거야.”배현수가 타고 있는 헬리콥터가 추락하기 직전이다.조유진이 눈을 붉히고 말했다.“셋 셀 테니까 그만하지 않으면 같이 죽는 거예요!”이때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의 머리는 심하게 아팠고 손에 있던 총을 떨어뜨릴 뻔했다.레비아단이 명령했다.“배현수를 죽여! 조유진, 기억 안 나? 배현수가 네 어머니를 죽였잖아!”“아니에요...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요!”조유진의 기억 일부분은 최면사가 뒤바
다른 한편, 한 헬리콥터가 버지니아주의 숲을 지나고 있었다.헬리콥터 안.재웅이 망원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사람은 찾았어?”은독이 말했다.“배현수 쪽에서 송씨 가문의 사람을 보내 찾고 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재웅이 말했다.“이 늙은이 아마도 도망쳤을 거야.”“하지만 이번에 보스께서 어르신을 드래곤 파에서 내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스페인 대통령 선거를 하고 있는 타이밍인데 먼저 드래곤 파의 낡은 세력부터 제거해야 합니다.”재웅이 망원경을 옆에 던지고 말했다.“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빠져나간 거로 하지. 배현수 쪽은 어떻게 됐어?”“조유진이 어르신에 의해 S1 바이러스를 직입해 지금쯤이면 배현수에게도 전염됐을 겁니다. 보스, 지금이라도 죽일까요?”은독의 제안이 끌리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송씨 가문이 보호를 하고 있어. 송씨 가문이 버지니아주에서의 세력이 아주 강해. 낡은 세력을 치우면 드래곤 파의 원래 세력이 약해지게 되는데 이때 배현수하고 다투면 진짜 그 늙은이의 음모에 빠지게 되는 거야.”지금에 와서 보니 레비아단은 재웅을 719에 맞서는 칼로 키워온 것이다.레비아단의 진정한 목적은 한국과 스페인의 전쟁을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충성하고 있는 미국을 위한 것이다.두 쪽에서 다투게 해서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은독이 걱정했다.“하지만 조유진은 이미 배현수의 곁에 돌아갔고 만약 예지은의 죽음을 배현수에게 알려준다면 지금 우리가 배현수를 건드리지 않으면 배현수가 먼저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요?”어찌 됐든 예지은은 배현수의 엄마니 말이다.블랙과 그레이가 예지은의 시체를 먹어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배현수가 알게 되면...재웅이 웃으며 말했다.“따지게 되면 조유진이랑 나는 공범이야. 예지은의 시체를 파내도 몸에 있는 총알은 조유진의 92F에서 나온 거야. 예지은이 나랑 조유진의 인생을 뒤바꾸어 고생을 많이 하게 했으니 조유진하고 같이 예지은을 죽였다고 해도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
배현수가 말했다.“그럼 해결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조유진 씨를 데리고 와서 연구를 해봐야 알아요. 어쨌거나 SA 바이러스는 오래전 것이지만 SI 바이러스는 신형 바이러스니까요.”전화를 끊은 후.침대 위의 조유진이 깨어났다.배현수는 방호복을 입은 의사더러 먼저 나가라고 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을 앉게 도와주고 뜨거운 물을 따라줬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조유진의 머리는 몇 초 동안 어지러웠다.머리를 들어보니 배현수가 아무런 보호조치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뒤로 갔다.“바이러스를 옮길 거예요. 나한테서 멀리해요.”“네가 바이러스에 감염했다고 내가 널 멀리하면 누가 널 보살펴?”배현수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컵을 조유진의 입에 대주고 물을 마시라고 했다.조유진은 아래를 매려다보며 가만히 있었다.손목에 있는 옥팔찌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배현수도 조유진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봤다. 아마도 예지은이 죽기 전 조유진이게 준 것일 것이다.이렇게 보니 예지은은 진짜로 죽었나 보다.사람이 죽었는데 적어도 시신을 화장해서 묻어야 하지 않겠는가.배현수가 물었다.“유진아, 내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시신은 어디에 있고?”조유진은 가만히 있었다.조유진의 반응은 무뎠다.“난, 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배현수는 조유진이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해 다른 말로 물어내려 했다.“그럼 손목에 있는 팔찌는 어떻게 온 거야?”조유진이 고개를 떨구로 머리를 저었다.배현수가 또 물었다.“그럼 드래곤 파에 어르신이 너한테 뭘 했는지는 기억나?”“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물어보는 것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조유진이 얼마나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배현수는 더 물어보지 않고 조유진의 어깨를 안고 가까이했다.“기억하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이야. 좀 있다가 대제주사에 가서 송하진이 널 치료해 줄거야.”조유진이 말했다.“난... 돌아갈 수 없어요.”레비아단이 원하는 것이 바로 배현수가 조유진을 데제주시에
배현수는 조유진과 함꼐 방호복을 입고 전용기를 타고 대제주시로 돌아왔다.조유진만 잘 격리하면 SI 바이러스가 대제주시에서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719 기지에 도착해 격리를 하려고 할때 뉴스 보게 됐다.[성남, 신형 바이러스 전면 폭발!]배현수는 이 문자를 보았을때 엄씨 가문에 연락을 하려 했다.그때 배선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할아버지, 삼촌, 그리고 도 할아버지까지 다 아프세요!”배현수는 심장이 철렁했다.“넌? 넌 괜찮아?”“난 괜찮아요. 집에 의사 선생님이 잔뜩 오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방에서 나오지 말래요. 거실에 가면 마스크 끼라고 그랬어요.”배선유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명랑했고 어딘가 불편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배현수는 시름을 놓았다.드래곤 파 지하감옥에서 구해온 아이가 생각이 났다.“민아는 어때? 어디 불편한 곳은 없대?”“없어요.”설마 그 여자아이 몸에도 SI 바이러스가 있는 게 아닌가? 그저 무증상인 건 아닌가?배현수가 말했다.“민아랑 먼저 접촉하지 마. 할아버지랑은 어떠셔?”배선유가 말했다.“할아버지가 제일 심각하세요.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할머니를 봤다고 그러세요.”“요즘 방안에 얌전히 있고 꼭 거실에 가야 하면 마스크 끼고 손 자주 씻어.”배선유는 이미 방안에 갇힌 지 이틀째였다. 전에 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었지만 오늘에서야 통했다.“알았어요. 아빠랑 엄마가 보고싶어요.”“바이러스가 없어지면 엄마랑 같이 성남에 갈게. 어디 불편한 곳 있으면 의사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네, 알겠어요.”...성남에서 SI 바이러스가 터진 후 긴급히 도시를 폐쇄하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의료팀을 지원했다.기지 쪽.배현수와 조유진은 한 병실에 격리됐다.조유진의 혈액검사에서 SI 바이러스를 발견해 냈다. 하지만 배현수는 조유진과 같이 4, 5날을 같이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송하진은 배현수를 연구 대상으로 피를 여러 번 뽑아 유효한 항체를 찾아내려
SI 바이러스가 성남에서 전면 폭발하고 전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네티즌들이 추측했다.[이런 바이러스는 황인종만 공격하고 백인은 공격하지 않는다던데.][무서워. 이건 또 미국이 벌인 짓 아니야!][하필 왜 성남에서 터진 거냐고!][성남이 경제가 발달하고 남북 거래의 중심지 이기도 하지. 국제공항이 있고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고속철도역도 있어.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SI 바이러스는 이미 전국 각지에 퍼졌다고!][여기에서 음모론을 따지지 마. 아무거나 막 먹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어.][성남 사람은 야생동물을 먹지도 않는데 어떻게 먹어서 나온 건데?]...SI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은 들끓었다.사람들은 연예계 찌라시를 볼 생각도 없어지고 다 같이 미국의 악행을 열변했다.기지에서, 금방 열이 내린 조유진이 남초윤의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남초윤의 물음에 핸드폰이 터질 것 같았다.“유진아, 육지율한테서 들으니까 너하고 배현수 격리했다면서? 지금 어떤데? 열이 심해? 성남은 지금 엄청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던데 선유는 어때?”요 며칠 조유진은 열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 원래도 기억이 혼란스러운데 남초윤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조유진이 핸드폰을 쥐고 멍을 때리다가 반응했다.조유진의 목소리는 아주 거칠었다.“나 지금 열이 심하게 오르지는 않아서 아마도 죽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너 목소리가 왜 이래? 내가 듣기로는 이런 바이러스는 면역력에 상관된다던데. 배현수가 너보다 면역력이 좋잖아. 배현수는 어때? 한 병실에서 격리하고 있어? 널 잘 챙겨 주고 있고?”배현수의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요즘 매일 드나드는 의료진 말고는 배현수가 조유진을 챙겨주고 있었다.열 때문에 정신이 흐리멍텅 하지만 저녁에 목이 마르고 정신이 흐릿할 때 누군가 자신을 부축해서 일으키고 온수를 입가에 대주었다는 것을 기억한다.조유진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잠에 들지 못할 때 큰 손이 허리를 눌러 주었다는 것도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SI 바이러스가 폭발했다.조유진이 아프다.예지은의 시신을 아직 찾지 못했다.레비아단은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다.확실히 결혼식을 올릴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배현수가 말했다.“송지연은 최정상급 최면사야. 격리기가 끝나고 송지연한테 가서 치료하면 흐트러진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거야.”하지만 어떤 일을 조유진이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거라면?예지은의 죽음은 마치 지옥을 갔다 온 것 같았다.지금까지도 조유진은 그 일을 마주할 수 없었다.배현수에게 한 글자라도 내뱉을 담이 없었다.하지만 고개를 들고 자신을 보살피느라고 핏줄이 가득한 눈을 보면서 조유진은 죄책감이 들었다.“난 지금 이미 위험한 시기를 지나서 계속 보살피지 않아도 돼요. 여기에 있으면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는데 송 의사 선생님한테서 검사받고 아무 문제 없으면 먼저 나가세요.”배현수가 바이러스에 감염하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조유진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배현수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널 혼자 이곳에서 격리하게 놔둘 거면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하지만...”배현수가 말했다.“유진아, 네가 살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어.”격리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송하진이 방호복을 입고 배현수의 말투를 따라 했다.“유진아, 네가 살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어.”조유진이 웃었다.배현수가 말했다.“점심 배불리 못 먹었나 봐요? 여기 와서 꽁냥대는거 보러 온 걸 보면?”송하진이 말했다.“사람 개 취급하세요?”돌아가서 송지연보고 조유진의 기억 회복을 시켜 주지 말라고 할 것이다.조유진이 누구나 다 기억하는데 배현수만 기억을 하지 못한다.계속 기억을 해내지 못하면 배현수가 어떻게 꽁냥대는지 두고 볼 것이다.배현수가 말했다.“무슨 좋은 소식이 있길래 이렇게 웃어요?”“혈청에서 유효한 항체를 체취해 냈어요. 만약 혈청을 처리하고 유효한 항체를 체취해 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체내에 주사한다면...”송하
배현수는 맞출 기분이 아니었다.“말하든지 말던지요.”배현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송하진이 말했다.“재웅이 특효약을 한 알 보내왔는데 검사해 보니 확실히 SI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복제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어요.”배현수는 의외였다.“다른 조건은 말하지 않던가요?”“백소미 씨하고 연락을 했는데 한마디만 했어요.”“무슨 말이요?”송하진은 이해가 안 됐다.“만약 성남 엄씨 가문에 한 사람을 위해 찾아간다면 엄씨 가문의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주길 바란다고 했어요.”조유진이 흠칫했다.재웅과 엄씨 가문이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송하진이 생각을 하다가 배현수를 보고 눈치챘다.“설마... 조유진 씨를 좋아하는지?”그래서 특효약을 그냥 보내준 건지?송하진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말했다.“대마왕이 빌런인게 무서운게 아니라 대마왕이 사랑꾼인 게 제일 무서운 일이죠.”배현수는 어이가 없었다.“이 상상력으로 의사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게 더 어울릴 거 같네요. 만약 보내온 약에 문제가 없다면 생산을 시작하세요.”“네, 그럼 성남은 안전해질 수 있겠어요.”송하진이 나갔다.조유진은 의심스러웠다.“재웅이 보내온 약이 진짜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재웅은 예지은이 자신을 안아가 지옥에서 살게 해 조유진을 협박해 예지은을 죽이게 했다.시신도 남기지 않고 늑대가 시신을 전부 해치우게 했다.겉으로도 악하고 마음은 더 악한 사람이다.배현수가 말했다.“재웅도 사심이 있는 거야. 네 동생 엄명월을 위해서.”만약 SI 바이러스가 대제주시에서 터졌다면 특효약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손 놓고 지켜볼 가능성이 더 크다.“명월이요? 명월이랑은 어떻게?”배현수가 재웅과 엄명월 사이의 일을 말해줬고 조유진의 표정은 복잡했다.재웅같은 악마가 엄명월한테는 특별하게 대해줘도 그게 뭘 어쩔 수 있다는 것인가?배현수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내 어머니가 복수를 하기 위해 재웅을 안아가서 재웅이 지금 이 모습이 된 거야. 따지고 말하면 어머니가 원흉이지.”“탓하지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