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남초윤을 손을 꽉 잡은 조유진이 침착하게 가격을 외쳤다.진행자가 말했다.“우와, 저분께서 지금 100억을 외치셨는데요. 더 올리실 분 계실까요?”유설영이 외쳤다.“102억!”“102억 나왔습니다!”조유진은 침착하게 가격을 올렸다.“120억!”그 순간, 경매 현장이 술렁거렸다.지금 조유진은 마치 경매 현장을 접수하러 온 사람 같았다.그 누가 감히 경매가의 중간 숫자부터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을까?남들은 2억씩 추가할 때 조유진은 100억씩 가격을 늘렸다.유설영이 이를 꽉 깨물었다.그녀도 지금 조유진이 일부러 가격을 미친 듯이 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 에메랄드 브로치는 유설영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브로치였다.무대 위의 경매 진행자는 이미 잔뜩 신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120억 나왔습니다!”“또 있으신가요?”유설영은 결심한 듯 번호표를 들었다.“122억!”하지만 조유진은 여전히 여유롭게 가격을 외쳤다.“140억!”그 말에 현장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조유진에게 집중됐다.“저분 누구셔? 가격 진짜 시원시원하게 부르네!”“어느 집안 딸이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뒷좌석에 앉은 주현성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조우진을 바라보았다.“조유진 저 녀석, 언제 저런 부자랑 엮인 거야? 한순간에 저 정도 큰 손이 됐다니!”주명은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비웃었다.“남자 돈이나 쓰면서 잘난 척이야. 나중에 현수 씨한테 버림받으면 이 경매장에는 발도 못 들일 거면서!”주명은은 조유진에게 배현수의 돈으로 저런 비싼 브로치를 살 용기가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녀의 눈에 조유진은 그저 주목받고 싶어 일부러 눈에 띄게 행동하는 사람으로만 보였다.무대 위에서 가격 중계를 해주던 진행자가 말했다.“오늘 경쟁 꽤 치열한데요! 이야, 이 에메랄드 브로치가 어느새 140억까지 올랐는데요. 더 부르실 분 계실까요?”“140억 나왔습니다!”“142억!”“네, 142억 나왔습니다!”상상도
조유진은 그 후로도 가끔 허위로 가격을 외쳐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러다가 엄준이 지정한 도자기가 나타나자 조유진은 처음으로 가격을 외치지 않았다.색깔도 선명하고 조화로운 그 도자기는 청나라 말기에 해외로 수출된 작품이었다.그리고 지금, 그 도자기는 경매장에 나와 있다.엄준은 조유진에게 그 도자기를 입찰해 성남의 박물관에 기증하라고 지시했다.시작가는 무려 12억이었다.경매장의 누군가가 외쳤다.“13억!”조유진도 뒤따라 번호표를 들었다.“13억 2천!”유설영은 아까 조유진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가격을 계속 올려 복수하고 싶었지만 조유진은 매번 가격을 외치고도 결국 입찰은 하지 않았다.마치 그저 경매장의 분위기를 흐리기 위해 온 사람 같았다.만약 유설영이 정말 여기서 가격을 올려버린다면 조유진이 그 가격을 계속해서 받아칠지 확신할 수 없었다.뒷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던 주명은은 조유진을 노려보며 말했다.“저 얍삽한 년! 주목받을 건 다 받아놓고 정작 사는 건 하나도 없잖아!”주현성도 함께 혀를 차며 말했다.“조유진 쟤, 예전부터 방송국에서 잔머리 잘 쓰기로 유명했지! 보통 가슴 크고 예쁜 애들은 멍청하다고 하던데…”그 말에 주명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쟤 가슴이 크다고요? 만져봤어요?”저렇게 마른 조유진인데 기껏 해봤자 B컵일 게 분명했다.주현성이 멋쩍게 대꾸했다.“그냥 눈대중으로 본 거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현성의 아내가 그의 뺨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다 늙어놓고 아직도 정신 똑바로 못 차리네!”주현성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보는 거야, 보기만 하는 것도 안 돼?”방송국에 갓 인턴으로 들어온 조유진은 고작 20대 초반이었다. 그 시절 조유진은 정말 싱그러운 꽃 같았다.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으면 골반이 부각돼 순수하고 요염한 뒷모습이 보는 이의 침샘을 자극했다.하지만 그 쓸데없는 계집애는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주현성이 매번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면 조유진은 항상 그와 1미터
조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클러치를 꽉 쥐고 곧바로 뒤쫓아갔다.박람회장의 오래된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주위는 텅 비어 차 몇 대만 간단히 주차되어 있었다.조유진은 한 자동차를 골라 잔뜩 웅크린 채 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클러치 안에서 호신용 전기충격기를 꺼내 주변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렸다.그 순간, 여자의 꾸며낸 듯한 애교 섞인 목소리가 주차장에 가볍게 울려 퍼졌다.“나 임신했잖아, 살살 좀 해요. 그 뚱땡이는 어디 갔어요? 당신이 그 여자 제일 무서워했잖아.”“아무 핑계나 대면서 먼저 집으로 보냈어. 좀 만져보자, 내가 널 밤새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아!”“내 생각했다고? 조유진 그년 보고 혼자 흥분한 거 아니야?”“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수양딸이라곤 너 하나밖에 없는데. 아빠가 제일 아끼는 사람은 너야… 나 뽀뽀 한 번만 해줘.”주현성과 주명은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었다.조유진은 먼지가 잔뜩 쌓인 자동차 뒤에 숨어 그 부도덕한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조명이 어두웠던 탓에 그녀는 카메라 플래시를 끄고 두 남녀의 노골적인 사진을 찍어 남초윤에게 전송했다.그러고는 곧바로 휴대폰 녹음 어플로 들어갔다.그 상태로 조유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쪽에서는 제대로 불이 붙어버린 듯 상황이 점점 더 격해지는 듯했다.“…”정말이지 눈 뜨고 봐줄 수 없었다.만약 주현성의 부인이 이 사진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인은 내연녀들에게 인정사정없는 사람이라고 한다.일전, 조유진이 방송국에서 인턴 실습을 하던 때, 주현성의 아내는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직접 방송국까지 찾아와 남편의 불륜 현장을 잡아냈다.그리고 조유진을 주현성의 내연녀로 오해했던 그녀는 다짜고짜 조유진의 뺨까지 때린 적이 있었다.나중에 조유진이 진짜 내연녀를 밝혀내 주현성의 아내에게 알려준 후에야 조유진은 자신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었다
“조심해!”배현수는 염수봉의 어깨를 붙잡아 그를 힘껏 밀쳐내 예지은이 던진 무기를 피하게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인질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단 한 발의 일격으로 인질이 바닥에 쓰러졌다.베현수는 쓰러진 인질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걷어내고는 손들 들어 그 사람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냈다.역시나 함정이었다.그 사람은 예지은이 아니었다.인질의 정체가 예지은이 아니라는 사실에 배현수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그는 급히 부하직원들에게 명령했다.“당장 철수하고 귀국하도록!”배현수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유인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그들은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려 배현수를 19구역으로 유인했고 그 사이 이미 조유진에게 손을 댔을 것이다.철수하고 돌아가는 길, 배현수는 곧장 육지율에게 연락했다.그 소식을 들은 육지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박람회장으로 향했다.박람회장에 도착한 육지율은 입구에서 남초윤을 마주쳤다.“지율 씨?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유설영 씨는 방금 먼저 갔는데…”육지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유진 어디 있어!”남초윤이 대답했다.“안 그래도 방금 전화 해봤는데 전원이 꺼져있더라고요. 그래서 방금 화장실에서 나와서 계속 찾는 중이에요!”그 말에 육지율은 곧장 박람회장의 보안 실로 달려갔다.“지금 조유진이 납치당했을 가능성이 커.”“뭐라고요?!”…스페인, 안개로 뒤덮인 숲속.“유진아, 일어나봐!”조유진의 귓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했다.누군가가 계속 조유진을 부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며 깨우려고 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유진은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잠들어있기라도 한 듯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예지은이었다…환각인가?마취총을 맞자마자 눈을 뜬 조유진의 뇌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정
드래곤 파는 계략 하나를 짰다.그들은 먼저 예지은을 납치해 일부러 예지은이 미국에 있다는 소식을 흘려보내 배현수를 미국으로 가게 했다.그리고 드래곤 파가 진짜 잡고 싶었던 사람은 아마 조유진일 것이다.그렇게 호랑이를 직접 자신들의 아지트로 인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만약 안정희의 아들이 단순히 복수를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왜 굳이 조유진을 잡아들인 걸까?어찌 보면 그녀 역시 그때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을 텐데 말이다.조유진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아마 저까지 잡아들인 이유는 현수 씨를 위협하기 위한 게 아닐까요? 어머님, 그때 도대체 어떻게 저랑 안정희 아들을 바꿔치기하신 거예요? 그리고 또 어떻게 저를 장동원의 손에서 빼내 대제주시까지 데리고 가신 거죠?”“장동원이라고? 나는 그런 사람 모르는데.”조유진이 설명했다.“장동원은 제 친아버지랑 사업적으로 대립하던 사람이에요. 그때 그 사람이 저를 성남에서 데리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어머님께서 그 사람을 모르실 수가 있죠?”조유진을 바라보던 예지은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만약 저 사람들이 나한테 이 정도의 정신과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다면 나도 거의 다 까먹었을지도 몰라. 너무 오래된 일이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오래된 일들이 어제 금방 일어난 것처럼 너무 자세히 기억나.”“내가 널 처음 봤을 때, 넌 포대기에 싸여있었어. 그리고 중년 남자가 널 강물에 던지려고 하고 있더라. 아마 네가 말한 그 장동원이라는 남자가 바로 그때 내가 봤던 남자였을지도 모르겠구나.”“그때 너는 거의 물에 빠져 죽을 뻔했었지. 하지만 참 우연히도 내가 널 발견했지. 널 건져 올리고 보니까 목에 자수정으로 된 관음 옥패가 걸려있더라. 꽤 값져 보이던 옥패를 보자마자 난 네가 있는 집 귀한 자식일 거라 짐작했지.”“하지만, 미안하구나. 난 그때 너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지 않았어. 오직 내 개인적인 이득만 취하겠다고 너랑 안정희의 아들을 바꿔치기했어... 너랑 안정희 아들의 인생은
“저도 알아요, 어머님. 저도 현수 씨 탓까지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조유진의 대답에 예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말해주니까 나도 안심이 되네, 그럼 곧 결혼도 하는 거지?”조유진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했다.“네, 이번에 두 사람 다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다면요.”예지은은 자신의 손목에 있던 옥 팔찌를 풀어 조유진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손목에 팔찌를 끼웠다.그 행동에 조유진이 잠시 멍해졌다.“어머님?”예지은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 팔찌는 내가 성준 씨랑 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서 주신 거야. 이제 너도 현수랑 결혼할 테니까 선물로 줄게. 이게 아니면 나도 지금 너한테 줄 만한 게 딱히 없구나.”“그래도 어머님, 이건 너무 귀해요.”예지은이 끼워준 옥 팔찌는 불순물 하나 없이 맑고 깨끗했다. 이 정도로 투명한 보석이라면 지금 시가로 몇억은 호가할 것이다.예지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이건 네가 받아야 마땅해. 예전에 내가 이미 너의 자수정 옥패를 깨버렸잖니. 그에 대한 변상이라고 생각해줘. 그리고... 앞으로 너와 현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난 이미 오래 살긴 글렀어. 그러니까 너희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주렴.”“어머님, 현수 씨가 분명 저희 구하러 와 줄 거예요. 우리 둘만 여기서 나가면...”조유진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강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곧이어 헬리콥터가 내는 굉음이 두 사람에게 가까워졌다.헬리콥터는 두 사람의 근처에서 계속 맴돌았다.확성기에서는 변조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너희 중 한 명만 살아서 나갈 수 있다!”“조유진, 예지은을 직접 죽이면 너만은 여기서 데리고 나가주마.”그 말에 조유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내가 예지은을 죽인다고 해도 어차피 난 너희들 손아귀에서 못 벗어나! 너, 안정희 아들이지? 왜 날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난 너한테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그
재웅이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아직 생각할 시간 1분 정도 있어. 조유진, 오늘 예지은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건 너야.”헬리콥터 안에서 재웅의 옆에 있던 은독의 손에는 원거리 저격용 총이 있었다.조준경 안에 있는 빨간 점을 조유진의 얼굴에 조준했다.예지은이 떨고 있는 조유진의 손을 잡으며 다독이며 말했다.“얘야, 무서워하지 마.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일이야. 사실 난 예전부터 현수 아빠 보러 가고 싶었어. 근데 내가 이 몇 년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지금 정신을 차렸고 더 살고 싶지도 않단다.”조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조유진의 총을 쏘는 기술은 배현수가 가르친 것이고 이 총도 배현수가 선물해 준 것이었는데 지금 이 총으로 배현수의 엄마를 겨누고 있다니...“어머니, 전 그럴 수... 전 총을 쏠 수 없어요...”“유진아, 엄마라고 한 번만 불러 봐 봐. 응? 한 번만 듣고 싶어.”마지막 10초만 남았다.재웅이 무표정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10, 9, 8... 3, 2...”예지은이 조유진의 손을 꼭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조유진의 검지를 눌러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어머니!”조유진의 낯빛이 순간 창백해졌다. 온 힘으로 총구를 치우려고 했다.하지만 늦었다.“펑!”큰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예지은의 왼쪽 가슴팍에는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총을 꽉 쥐고 있던 손이 점점 풀리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어머니!”조유진이 예지은을 안았다. 손으로 피가 나고 있는 총상 부위를 꾹 눌렀지만 피가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그 뜨거운 피에 조유진의 손가락은 데는 것 같았다.안정희도 이렇게 조유진의 품에서 서서히 몸이 굳어지며 차가워졌었다...조유진의 두 눈은 새빨개났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 조금만 버텨보세요. 현수 씨가 곧 있으면 우릴 구하러 올 거예요.”예지은은 차가워진 손으로 다독이며 말했다.“유진아, 아직도 날 안 불렀잖니.”조유진은
스페인, 기지 훈련장 내.링 위, 재웅은 한 명 또 한 명을 쓰러뜨렸다. 끌려 내려간 사람은 거의 불구자가 되기 직전이었다.재웅의 기분이 몹시 나빠 그 누구도 신경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링 아래에서 올라갈 준비를 하는 수하들은 모두 겁에 가득한 눈빛으로 은독을 바라보며 도와주기를 바랬다.은독은 어려서부터 재웅의 곁에 있어 함께 시체속에서 기어 나왔었고 수많은 위기를 함께 겪어 막역지우라고는 못해도 은독이 재웅 앞에서 몇 마디 말리는 것은 쓸모가 있다.재웅이 상대방의 위험한 곳만 때려 여러 명이 이미 피를 토해 누워 끌려 내려갔다.은독은 더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말했다.“보스, 모래주머니로 연습하는 게 어떠세요. 요즘 임무가 있어 나가야 하는데 만약 다쳐서 임무에 실패하면 어르신 쪽에...”재웅이 피식 웃고는 힘껏 주먹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얼굴을 때려 이빨 하나가 빠졌다.“쓸모없는 자식들! 세 주먹도 견디지 못하는데 그 늙은이한테 가면 살아남을 수는 있고?”맞아서 이빨이 빠진 남자가 링위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보스 살려주세요. 제 실력은 보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꺼져!”수하는 급히 내려갔다.은독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너희들도 나가봐.”“네!”훈련장이 다 비었다.재웅이 복싱글러브를 벗어 옆에 던지고 비웃으며 말했다.“네가 언제부터 감히 나 대신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 거지?’은독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그럴 담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형제들을 때려 다치게 하는 건 보스한테 이익이 될 건 없습니다. 근데 보스가 제일 증오하는 원수도 이미 죽었는데 왜 아직도 후련해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재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내가 제일 증오하는 원수? 예지은은 첫 번째가 아니야.”어르신이 재웅을 계속 죽음에 몰아넣고 재웅의 몸에 얼마나 많은 고추즙을 묻힌 채찍을 휘둘렀는지 모른다.재웅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은독이 물었다.“예지은의 시체는 구덩이를 파서 묻을까요?”재웅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