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이 10살 되던 해, 온정희는 조범의 실수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었다.배현수는 조유진과 연애할 때 몇 번 온정희를 보러온 적이 있었다.그때 온정희는 아직 의식이 없을 때였고 이 요양원에도 있지 않았다.사실 온정희는 배현수 실물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그녀는 배현수에게 가까이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맞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는 줄 알았네.”온정희는 조유진의 핸드폰에서 배현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배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정희가 물었다.“가족 만나러 온 거예요?”“어머님, 별일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별로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배현수는 옛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차갑기만 했다.“현수 씨한테 줄 물건이 있어요.”온정희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더니 그에게 건넸다.배현수는 멈칫하고 말았다.“이 반지가 왜 어머님께 있는 거예요?”온정희는 사실대로 말했다.“저번에 유진이가 저 보러왔을 때 현수 씨한테 이미 약혼녀가 생겨서 이 반지를 다시 낄 자격이 없다면서 잔디밭에 버렸어요. 나중에 후회할까 봐 잔디를 깎으시는 직원분한테 부탁해서 찾아달라고 했어요. 이제 주인한테 돌려주려고요.”...블랙 마이바흐 차 안.뒷좌석에 앉은 배현수는 이미 닳고 닳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 안에는 S & Y라는 이니셜이 박혀있었다.이 커플 반지는 배현수와 조유진이 함께한 첫날 한 반지 가게에서 특수제작한 반지였다. S & Y 이니셜도 배현수가 직접 새겨넣은 것이다.그때까지만 해도 둘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 몰랐다.온정희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6년 전, 유진이가 일부러 배신한 거 아니에요. 조범 씨가 저를 이용해서 유진이한테 거짓 증언을 해달라고 협박했어요. 현수 씨, 탓하려면 저를 탓하세요. 유진이는 진심이었어요. 만약 복수하고 싶다면 저한테 하시고 제발 유진이는 놓아주세요. 몇 년간 너무 고통스러워했어요.”“이 반지는 유진이가 잃어버렸지만 돌고 돌아 다시 현수 씨 손에 갔으니 현수
조유진은 서정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산성 별장으로 향했다.비록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초인종을 눌렀다.문이 열리고, 조유진과 배희봉은 서로를 마주한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배희봉이 먼저 반응하면서 말했다.“아가씨... 어, 어떻게 오셨어요? 현수가 불렀어요?”배희봉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배현수가 드디어 조유진을 이미 용서했는 줄 알았다.배희봉은 얼른 그녀를 맞이했다.“아가씨,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오세요. 밖이 더워요.”배희봉은 예전처럼 반갑게 맞이했다.집에 들어선 조유진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아저씨, 저 조씨 가문에서 나온 지도 오래됐는데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으셔도 돼요.”“아가씨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조씨 가문에서 일했어요. 아가씨가 크는 것도 옆에서 지켜봤죠. 아가씨만은 착하셔서 저희 하인들한테 잘해주셨죠. 여름에 시원한 음료수도 챙겨주시면서요. 한번은 제가 아파서 조 시장님 스케줄이 지연되어 저를 해고하려던 것을 아가씨께서 막아주셨죠.”조유진은 더욱 미안했다.“사소한 일인데요, 뭐. 저 때문에 현수 씨가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아저씨는 저 원망스럽지 않으세요?”“저는 아가씨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믿어요. 아가씨처럼 착하신 분이 변한다고 해도 어디 쉽게 변하겠어요? 입장을 바꿔서 저였다면, 혹은 현수였다면 아가씨보다 더 잘 해내지도 못했을 거예요.”“아저씨, 잘못한 건 잘못한 거예요. 제 편을 들어주지 않으셔도 돼요.”오히려 자신을 미워했으면 했다.배희봉이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 죄책감이 들어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다.어떻게 해야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 도무지 몰랐다.“아가씨...”배희봉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문이 갑자기 열렸다.두 사람의 시선은 입구로 향했다.집으로 돌아온 배현수는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차가웠다.“밥하러 오라고 했지 수다 떨러 오라고 한 건 아니야.”조유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배희봉에게 물었다.“아저씨, 저녁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오픈식 주방에서 밥하고 있던 조유진은 이 말을 듣고 동작을 멈추었다.예전에 같이 바다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인천 앞바다도 보고, 동해도 보고, 대부도도 보러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잘못 기억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배현수는 굳은 표정으로 2층 서재로 향했다.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배희봉이 조유진을 위로했다.“아가씨, 현수가 고집이 세서 말만 저렇게 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조유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저씨, 저희 둘 엮느라고 애쓰지 마세요. 이미 약혼녀도 있고, 현수 씨는... 이제 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약혼녀요? 저는 모르는 사실인데요? 아가씨한테 거짓말한 거 아니에요?”조유진은 진상을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송인아가 약혼녀든 아니든 배현수와 더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배희봉은 어느 정도 눈치 있는 사람이었다.“아가씨도 그렇고 현수도 그렇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 감정을 어렵게 대하는 거예요? 만약 약혼녀가 있었다면 아가씨를 집으로 불렀겠어요? 만약 정말 미워한다면 보기도 싫은 마당에 집까지 불렀겠어요?”조유진은 침묵했다.배희봉은 주방에 가서 과일 접시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더니 말했다.“저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혈당이 높아서 이런 과일 먹지도 못해요. 현수가 멜론 좋아하는데 얼른 가져다주세요.”조유진은 머뭇거렸다.그러자 배희봉이 재촉했다.“얼른요. 말은 저렇게 해도 달래면 곧 풀려요.”...손에 멜론이 담긴 접시를 든 조유진은 2층 서재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그녀는 문을 열었다.“과일 좀 깎았는데 아저씨는 혈당이 높으셔서 못 드신다고 해서 현수 씨한테...”“아버지 저혈당이야. 고혈당 앓으신 적 없어.”“...”입구에서 들어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아저씨께서 현수 씨 멜론 좋아한다고 하셔서...”“나 단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날 알고 지낸 지 하루 이틀이야?”배현수는 쌀쌀맞게
조유진이 멈칫했다.“어... 어떻게 반지가 현수 씨한테 있어요? 분명...”“분명 버린 거라고?”배현수는 비웃듯이 말했다.“어디서 찾았어요?”“의미 없는 반지나 찾고 있을 시간이 없어. 요양원에 친척분 만나러 갔다가 어머님 만났어. 이 반지는 어머님이 직원분한테 찾아달라고 한 거야.”배현수는 뒤돌아 다시 자리에 앉더니 반지를 툭 책상에 던졌다.쓰레기 취급하듯이 말이다.조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대표님께서 이 반지가 아무 의미 없다고 하셔서 버린 건데, 뭐 잘못되었나요?”“잘못된 거 하나도 없어. 이 쓰레기 챙겨서 나가.”배현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그녀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말투는 아무 감정이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그가 말한 쓰레기는 바로 그 반지였다.조유진은 반지를 꼭 쥐더니 서재를 떠났다.책상 앞에 앉아있던 배현수는 손에 펜을 쥐고 있었다.조유진이 문을 닫은 순간, 그는 아무 표정도 없이 처참히 그 펜을 부러뜨렸다.눈빛은 어둡기만 했다.마치 조유진의 목을 부러뜨린 것만 같았다....조유진은 남초윤에게 조선유를 맡겼다.둘째 날 아침, 배현수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4시간의 운전 끝에 인천의 한끝에 도착했다.인천은 바다와 가까워 하늘이 푸르렀다.블랙 마이바흐는 해상 고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뒷좌석에 앉아있던 조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이 풍에 시선이 끌렸다.이때는 오후라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오후, 반짝반짝 빛나는 햇빛이 푸르른 해면을 비추고 있어 그 물색은 비단결처럼 고왔다.그녀는 차창 밖으로 바다를 내다보았다.배현수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6년 전 생일날, 조유진은 소원을 빈 적이 있었다.바로 배현수와 같이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그때 배현수는 방학이 되면 그녀와 같이 인천에 놀러 오기로 했다.하지만 그 후로... 이번이 처음 같이 바다를 보러 온 것이었다.앞에서 운전하던 서정호는 아름다운 바다 경치에 창문을 내렸다.습한 바닷바람이 열기와 함께 차 안까지 불어왔다.조유진은
그녀는 의식적으로 어두컴컴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 입구는 많이 좁아 보였다.“여기 어디예요? 뭐 하러 온 거예요?”배현수가 말했다.“차에 있어. 잠깐 서 비서와 일 해결하고 올게.”배현수와 서정호는 차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갔다.조유진은 차창에 기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출장이라고 하더니 왜 이런 인적 드문 마을로 온 거지?’이 마을은 가로등마저 어두웠고 불을 밝히고 있는 집이 몇 집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 사는 사람이 적어 보였다.배현수의 핸드폰이 차에 남겨졌다.조유진은 안심되지 않아 그의 핸드폰을 들고 차에서 내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배현수와 서정호는 마을 끝자락에 있는 한 집 앞에 도착했다.“대표님, 바로 여깁니다. 여정민이 사는 곳입니다.”배현수가 문을 두드렸을 때, 안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은 헐레벌떡 문 앞까지 쫓아왔다.“대표님, 여기 핸드폰...”문이 열리고, 날카로운 비수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면서 배현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조심해요!”조유진은 배현수의 앞을 막아섰다.날카로운 비수가 조유진의 살을 푹 찔렀다.그대로 왼쪽 가슴에 박히고 말았다.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을 때 왼쪽 가슴에서는 피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배현수는 긴 다리를 뻗어 습객을 발로 차버렸다.습객은 반응이 빨라 벌떡 일어나더니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서정호가 뒤쫓으려고 하자 배현수가 말렸다.“여정민도 다쳤어! 사람부터 구해!”집 안, 여정민은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쓰려져있었다.서정호는 바로 기절한 여정민을 부축했다.배현수도 품속에 있는 조유진을 번쩍 들어서 안았다.“병원으로 가!”...블랙 마이바흐는 고속도로를 타고 제일 가까운 중구 병원으로 향했다.왼쪽 가슴에 비수가 꽂힌 조유진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여정민 역시 여러 군데 칼에 찔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중구 병원은 이런 환자를 살려낼 자신이 없었다.구급차로 바로 시 병원으로 옮겨졌다.배현수는 조유
“사실... 선...”조유진은 조선유가 배현수의 친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이때 배현수는 깨끗한 거즈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그녀의 상처를 꾹 누르더니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닥쳐! 조유진, 내 말 잘 들어. 곧 병원에 도착하니까 이대로 죽지 않을 거야! 지금 해야 할 것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거야!”조유진은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꽉 잡더니 귓가에 위협적인 말을 했다.“조유진, 나 아직 너 용서하지 못해. 나한테 빚진 거 다 갚고 죽어! 이대로 죽는 모습으로 속죄하는 거 두고 못 봐! 너무 쉽게 속죄하는 거잖아!”“칼받이 해준 거, 현수 씨가 옥중에서 칼에 찔린 그 일을 갚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수 씨, 난 현수 씨처럼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죽어도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어요. 더는 내 탓 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마요. 나는 현수 씨가 다시 새로운...”말을 끝내기도 전에 반지를 쥐고 있던 손이 아래로 축 처지고 말았다.“딸깍.”은목걸이에 걸려있던 반지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배현수는 그래도 얼어붙고 말았다.온몸이 굳어버린 채 조유진이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유진아...”조유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배현수의 두 눈은 마치 피가 흘러내릴 것만 같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녀를 다치지도 못하고 그저 옆에서 하염없이 이름을 부르기만 했다.“유진아... 깨어나봐... 유진아... 깨어나라고... 대부도 가고 싶다며? 같이 가줄테니까... 빨리 일어나...”하지만 조유진은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피가 묻어있는 두 손으로 정처 없이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찾았다.반지를 다시 주워 조유진의 손에 쥐어주었다.하지만 조유진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결국 반지가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었다.숨 막힐 듯한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와 배현수에게 덮쳤다.털썩 무릎을 꿇고 두
서정호는 단 한 번도 이토록 모순적인 배현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마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굳건한 신념이 조유진에 의하여 세차게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오늘 밤 조유진이 배현수를 대신해 맞게 된 칼은 배현수 마음속의 그 단단한 벽을 부숴버리는 데 충분했다.…한편 조유진은 기나긴 꿈을 꾸었다. 꿈속의 그녀는 늪지에 빠져있는 것만 같았다.조유진이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기만 할 뿐이었고 가슴에는 둔탁한 통증이 전해져왔는데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이윽고 조유진은 온통 희고 아득한 빛으로 감싸진 곳에 놓였다.그리고 그녀의 뒤편에서 선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가지 마!”조유진이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조선유가 조유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유진은 선유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선유는 그러한 그녀가 보이지 않는지 그대로 조유진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갔다.조유진은 얼떨떨하게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은 어느새 점점 투명해져 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같은 시각, 수술실.“큰일 났습니다! 환자분 혈압이 40까지 떨어졌습니다.”“삐—”…‘나 곧 죽는 건가?’‘하지만, 나 아직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선유와 남초윤이 조유진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날, 조유진은 촛불을 불기 전 케이크에 대고 세 가지 소원을 빌었었다—배현수가 자신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기.돈을 모아 선유와 어머니를 모시고 대제주시를 떠나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곳으로 가 영원히 함께하는 것.그리고, 배현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었다.하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배현수는 그녀를 용서해주지 않았고 또한 조유진이 죽게 된다면 홀로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와 선유는 또 어떻게 산단 말인가.여러가지 생각이 미치자 조유진은 너무 슬퍼졌다.그 순간 사방이 삽시에 어둠에 휩싸였다.그리고 조유진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배현수를 보았다. 배현수는 차가운 얼굴로 한 글자 한마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조유진, 난 영원히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이윽고
수술이 끝난 뒤, 조유진은 온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그리고 이튿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배현수는 침대 머리맡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든 것 같았다.조유진은 순간 자신의 상처를 잊은 채 양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다가 왼쪽 가슴에 박힌 상처를 건드려 몰려오는 극심한 고통에 연신 숨을 토해냈다.얕은 잠을 자고 있던 배현수는 곧 조유진의 동정에 잠에서 깨어났다.배현수는 조유진을 눌러 침대에 다시 눕힌 뒤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왜 멋대로 움직여?”“대표님이 제 곁을 쭉 지켜주셨어요?”배현수는 단번에 부정했다. “아니. 전에는 서정호가 계속 지켰어.”‘정말?’하지만 배현수의 눈 밑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한 듯 회청색의 다크써클이 깊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는 전의 그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핸드폰을 전해주며 입을 열었다. “네가 혼수상태일 때 전화가 울려서 내가 대신 받았어.”‘설마 선유가 전화한 건 아니겠지?’조유진은 가슴이 철렁하여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누가 전화한 거예요?”“네 그 베프, 남초윤. 그리고 난 네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려줬어.”그렇다면 배현수는 아직 전화 건너편에 선유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조유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유진이 남초윤에게 전화를 하여 안부를 전하려고 하자 배현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나 대신 칼 맞았어?”왜?조유진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발생했고 조유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 간에 배현수의 앞에 막아섰다…그 순간, 조유진은 그 어떤 결과도 생각하지 않았다.“빚진 거잖아요. 현수 씨가 감옥에서 칼을 맞았으니 이건 제가 돌려드리는 거예요.”조유진은 고개를 떨군 채 핸드폰을 바라보며 마치 칼을 맞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가벼운 말투로 답했다.“네가 이렇게 한다고 내가 널 용서할 것 같아?”조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