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율은 이 말을 인정할 수 없다.“결혼하기 전에 정상적인 연애를 하는 것마저 안 되면 당신과 김성혁이 예전에 연애했던 것은요? 그럼 그것도 함부로 논 거겠네요?”남초윤의 과거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분명 말했다.과거의 사람은 과거에서 끝내야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옛사랑을 다시 언급하는 일은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며 과거는 바꿀 수 없다.육지율이라는 사람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영원히 현재에 포인트를 두고 살아가고 있으며 누가 더 소중하고 누구와 멀리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이 세상 남녀 사이는 조건만 나쁘지 않으면 결혼 전에 몇 번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아주 정상적이다.하물며 육지율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이다.유설영과 사귀었던 것이 뭐 어때서? 결혼하기 전에 누구와 연애를 하든 모두 그의 자유이다.남초윤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내가 지금 예전의 일을 말하는 거예요? 나 과거를 들추어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요.”그 당시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육지율의 배우자리스트에 없었다. 심지어 서로 알지도 못했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에게 이런 요구를 하겠는가?육지율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모처럼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결혼 후 한 번도 결혼생활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요.”바람피우는 일은 육지율에게 저급하기 그지없다.장난이 심하지만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예전에 연애하다가 질릴 것 같으면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빨리 헤어지고 깨끗하게 연락을 끊었다.상대방이 정말로 죽기 살기로 쫓아오면 경제적으로 약간의 보상을 해줬다.물론 다른 것은 더 이상 줄 수 없다.이 사람과 앞으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건드리면 정말 무책임하다.양다리, 환승연애, 바람... 이런 천한 일은 여태껏 해 본 적이 없다.안 좋게 얘기하면 이런 일은 자제력 없는 사람들이 자극을 찾거나 존재감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루하고 저속한 감정에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
육지율의 손에는 폭죽, 요술봉, 선녀봉... 없는 것 없이 전부 들려 있었다.마술봉 하나를 남초윤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들고 있어요.”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남초윤이 폭죽을 잡은 채 멍을 때리고 있을 때 어느새 불꽃이 일더니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육지율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뒤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는 얼어붙은 강가에 폭죽을 갖다 댔다.“내가 아무리 미워도 내 얼굴에 폭죽을 갖다 대면 안 되지 않을까요?”옅은 농담이 담겨 있는 목소리에 남초윤도 얼른 대꾸했다.“더 좋지 않아요? 괜히 밖에 나가 딴짓할 걱정도 없고.”육지율은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바람날까 봐 그렇게 두려워요?”남초윤은 차가운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원래 바람둥이니까.”육지율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대신 고개를 그녀 옆으로 떨구며 말했다.“내가 왜 바람둥이예요. 솔직히 얘기해 봐요. 내가 잘해주지 않아요?”그녀에게 준 블랙카드는 한도가 무제한이다.들고 있는 가방은 희귀 가죽 플래티넘 가방이고 옷도 최고급이다.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 말만 하면 전용기를 준비해 맞춤형 여행을 준비했다.다른 사람이 1년 동안 예약하지 못한 미슐랭 식당을 그는 바로 해결해 주었다.남재원이 사준 차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다시 차 한 대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남초윤이 거절햇다.남편으로서 의식주에 있어서 그녀를 홀대한 적이 없었다.전에 육지율 앞에서 그녀는 김성혁과 눈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육지율이 성깔이라도 부렸었던가?남초윤은 육씨 집안 사모님으로서 육지율의 눈에 합격이라고 말할 수 없을뿐더러 심지어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결혼도 다 했는데 이혼은 정말 번거롭고 육씨 집안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그녀와 김성혁이 결혼 존속 기간 동안 진짜로 원칙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면 더 이상 그녀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바람둥이도 아닌데 전 여자친구의 번호를 저장하
여태껏 그는 무엇을 자제해야 하는지 몰랐다.키스도 잘해 남초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저 허리춤에 있는 옷을 움켜쥐고 리듬을 타며 호흡을 맞춰야 했다.육지율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달래듯 물었다.“불꽃놀이 더 할 거예요? 안 할 거면 차에 가요.”남초윤은 머리가 멍해진 채 차 안으로 들어갔다.그다음의 프로세스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강가에 정박해 있는 검은색 쿨리넌도 가볍게 흔들렸다.남초윤은 혼란스러웠다.분명 그와 이혼하기로 결정했고 나가서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계속 실패했다.육지율은 마치 사탕수수처럼 너무 달콤해 한 번, 두 번 더 맛보고 싶게 한다. 마지막에 입안에 쓰레기가 남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기 어려웠다....성남, 그믐날 밤 새벽.멀리 시골 마을에서 은은한 폭죽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아래층도 식사를 끝내 북적거리던 거실이 조용해졌다.조유진은 배를 끌어안고 생리통을 겪고 있었다.어젯밤 찬물에 몸을 한 시간 담근 탓에 이번 생리는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보다 못한 배현수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가서 차라도 끓여올까?”조유진은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을 부여잡고 말했다.“인기척을 들으면 밤에 취한 척한 거 들키잖아요.”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배현수는 피식 웃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먈했다.“이렇게 아픈데 그게 신경이 쓰여?”“들키면 내일 밤에도 3대 1로 싸워야 해요.”그의 팔을 꼭 감싸고 있는 조유진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아파하고 있었다.그런 모습에 배현수는 가슴이 아파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좀 자. 내가 아래층에 가서 진통제 찾아올게.”오늘 밤 술을 많이 마셔 위도 아프고 몸도 반응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통을 참고 그녀를 돌봐야 했다. 하지만 조금의 불평도 없었다.조유진은 배현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됐어요. 너무 늦었어요. 조금만 참으면 돼요. 잠들면 통증도 사라질 거예요.”배현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이렇게 아픈데 잘 수 있
평생.조유진의 입에서 나온 이 두 글자는 너무 듣기 좋았는지 이틀 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갑자기 맑아졌다.배현수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평생으로는 부족해.”조유진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배현수에게 안겨 있어 그를 살짝 아래로 내려봤다.고개를 숙이더니 그의 얇은 입술에 대고 부드럽게 뒤척이며 사랑스럽게 키스했다.키스를 하면 할수록 더욱 부드럽고 따뜻했다.냄비 안의 흑설탕 계란찜이 벌렁벌렁 끓고 있는 것을 느낀 배현수는 손을 들고 불을 껐지만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조유진은 배현수를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 지금 생리 중이에요.”배현수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 끝나면 오늘 못한 것까지 다 할게.”순간 조유진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정월 초하루의 새벽.배현수는 서정호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배 대표님, 술자리에서 조유진 씨에게 약을 먹인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컨벤션센터 옥상 CCTV가 모두 꺼져있었어요. 이상한 것은 강 사장님도 술자리에 참석했고 조유진 씨와 함께 옥상에 갇혔어요. 강이찬 씨가 대표님에게 복수하려는 것은 아닐까요?”배현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이찬을 주시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드래곤 파가 뒤에서 부추긴다는 것을 설명하니까.”“알겠습니다.”배현수가 또 물었다.“더안의 창업자는 찾았어?”더안의 창업자가 아마 당시 사람을 보내 조유진을 바꾸려 했던 사람일 것이다. 엄준의 원수이다.더안의 창업자를 찾아야 조유진이 바뀌었던 상세 사항을 물어볼 수 있다.“아직이요. 자취를 감춘 것 같아요.”배현수는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만약 더안의 창업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때 조유진이 바뀌어 예지은에게 어떻게 넘어갔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 있다.하지만 그는 조유진과 부담 없이 결혼해 정정당당하게 아내를 맞기를 원했다.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작은 손이 그의 양복바지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아빠! 여기 숨어서 뭐 하는
마스티프는 이내 조용해졌다.배현수가 눈을 부라리며 다시 위협하자 마스티프는 낑낑 소리를 냈다.고개를 숙여 선유를 보며 말했다.“강아지 줄 잡아.”선유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온몸으로 거부했다.“싫어요. 아빠. 무서워요!”마스티프 개들의 외무는 흡사 사자와 같아 아주 사나워 보였다.5, 6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체형이 남산만 했고 선유의 두 배는 되었다.배현수는 개 줄을 선유에게 건네며 말했다.“네가 이름 지어줘. 이제부터 네가 주인이야.”선유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난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잡아 먹히면 어떻게 해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고양이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선유는 예전에 아빠에게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었다.하지만... 기르고 싶은 것은 작은 강아지였다. 아빠가 이렇게 큰 강아지를 데리고 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배현수가 설명했다.“이런 마스티프는 훈련을 받은 개들이라 너를 주인으로 생각하면 이후부터 너의 말만 들을 것이고 너를 보호해 줄 거야.”“진짜요?”배현수는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한번 해보면 알잖아.”선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스티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개야, 아빠를 물어!”마스티프는 어리둥절해 했고 배현수는 어이가 없었다.선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거짓말, 움직이지도 않잖아요.”정말 효성이 참으로 지극한 아이로구나...배현수의 교육하에 마스티프는 선유를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고 선유도 마지못해 강아지의 줄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작은 꼬맹이가 사자 같은 개를 끌고 오자 엄준과 도 집사는 깜짝 놀랐다.때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던 조유진도 깜짝 놀랐다.“선유야, 이렇게 큰 개는 어디서 난 거야?”“아빠가 준 생일선물이에요.” 선유는 개 줄을 잡고 말했다.“우리 엄마야, 짖으면 안 돼! 그러다가 아빠에게 혀가 뽑힐 거야!”그러자 마스티프는 바로 말을 듣고 조용해졌다.조유진은 걱정된 듯 물었다.“선유를 안 무는 거 확실해요?”배현수가 대답했
조유진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초윤아, 새해 복 많이 받아.”남초윤이 말했다.“선유 생일이 내일모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선물 사러 쇼핑몰에 가는 길이야. 선유가 특별히 갖고 싶어 하는 게 있을까?”조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요즘 이사한다고 하지 않았어? 귀한 건 필요 없어. 생일은 매년 쇠는 건데 뭐. 나중에 십 년 더 지났을 때 큰 거로 선물해줘.”남초윤은 블랙카드를 육지율에게 돌려줬고 이사도 나와야 하기에 돈이 빠듯할 것이다.남초윤이 미처 말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육지율의 목소리가 들렸다.“이 공주 스타일 신발이 녀석에게 어울릴 것 같아요.”조유진이 물었다.“육지율 씨와 쇼핑 중이야?”남초윤은 쑥스러운 듯 응이라고 했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말했다.“응, 선유에게 양아빠가 필요하잖아. 그래서 같이 선물 사러 왔어.”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한 조유진은 야유하듯 말했다.“계속 이사 나올 거야?”남초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얘기해.”아마 육지율이 옆에 있어 ‘민감’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기 어려운 것 같다.전화를 끊은 후, 남초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어젯밤에 이 사람이 유설영과의 관계에 대해 해명했어. 유설영의 전화번호도 삭제하고. 앞으로 유설영과 연락하지 않겠대.]조유진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조유진을 본 배현수가 물었다.“무슨 일이야?”조유진이 되물었다.“지난번에 육변팀과 유설영 엔터테인먼트가 협력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제 협력이 끝난 거예요?”“이제 막 계약서 체결했어. 엔터테인먼트와 법률사무소는 기본 일 년, 길면 3년 계약이야. 이제 계약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계약이 끝나.”조유진도 의아했다.“방금 초윤이가 그러는데 육 변호사가 앞으로 유설영과 연락 안 하겠다고 했대요.”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런데 아까 초윤이 말로는 육변이 유설영과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대요.”배현수는 바로 그 말을 부인했다.“엔터테인먼트
조유진은 남초윤의 기분이 좋은 걸 보고 차마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하여 말해야 할지 말지 한참 동안 망설였다.배현수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초윤 씨 기분 망가뜨리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마.”“근데 언젠가는 알게 될 거잖아요.”“그래도 그건 나중의 일이잖아. 사실 사람은 가끔 핑계 하나가 필요하기도 해. 누구나 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조유진이 말했다.“육 변호사님은 사랑 고수라서 초윤이는 절대 상대가 아니에요.”그러자 배현수가 말했다.“만약 지율이가 앞으로 다시는 사적으로 유설영 씨와 연락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초윤 씨도 아마 저도 모르게 그러길 바랄 거야.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지율이한테 소유욕이 그렇게 강한데 언젠가는 알게 될 진실을 알려줘봤자 며칠 미리 속상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어. 초윤 씨가 두 사람이 일적으로 연락한다는 거 알게 되더라도 마음을 접거나 이혼할 것 같아? 이혼 소리를 3년이나 했는데 이혼했어?”진짜 떠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떠나지, 절대 상대에게 떠난다고 말하면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조유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기 전에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던 것처럼 말이다.“...”배현수의 말에 조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배현수의 말이 다 맞았고 심지어 정곡을 찔렀다.조유진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적어도 너무 깊게 빠지진 않잖아요. 그럼 진짜 이혼할 때도 너무 힘들지 않을 거고.”“지금 말해줘봤자 며칠 더 고통스러울 뿐이야. 그것 말고는 진짜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어.”배현수가 생각하는 게 역시 일반 사람과 조금 달랐다. 조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이게 환상 속에서 사는 거랑 뭐가 달라요?”배현수는 조유진을 빤히 쳐다보았다.“감정은 원래 그래. 진실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거든.”조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남초윤에게 귀띔 문자를 보냈다.[남자가 하는 말을 믿어선 안 돼.]한참이 지난 후 남초윤이 답장을 보냈다.[배현수가 너한테 거짓말했어? 나쁜 놈
뉴스가 계속 이어졌다.“시신 목 부분에 목 졸린 흔적이 명확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끈에 목을 졸려서 죽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조유진은 옆에 있던 조선유를 품에 안고 눈을 가렸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조선유가 눈을 가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엄마, 누가 죽었어? 나쁜 사람이야?”뉴스가 끝나고 나서야 조유진은 조선유를 풀어주었다.“일단 올라가 있어. 엄마가 할아버지랑 할 말이 있어.”그러자 조선유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알았어. 루루야, 나랑 올라가서 레고하자.”루루는 폴짝폴짝 뛰어서 조선유의 옆으로 달려갔다. 조선유의 방에 가는 걸 루루는 가장 좋아했다. 안에 온통 장난감이니까. 그 장난감들은 사람도 놀 수 있고 강아지도 놀 수 있었다.조선유가 레고를 하면 루루는 옆에서 망가뜨리느라 여념이 없었다.조선유와 루루가 위층으로 올라간 후 조유진이 말했다.“아빠, 그때 사람 시켜서 날 성남에서 데려간 게 진짜 더안의 장동원이에요?”엄준은 조유진을 빤히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더안과 성행 그룹이 건축 자재의 공급 시장을 점령하려고 경쟁하고 있었어. 내 밑에서 일하던 애들이 나 몰래 언론사를 매수했는데 더안에 품질 불량의 건축 자재가 있다고 터트린 거야. 근데 언론사에서는 더안의 건축 자재에 방사성 물질이 있어서 암을 유발한다고 사실을 왜곡했어.”“20여 년 전의 언론사는 대중들한테 엄청 권위가 있는 존재라서 언론에서 뭐라고 하면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다 믿었거든. 여론 때문에 더안은 시장을 잃었고 나중에 부실 경영 때문에 자금도 부족해졌어. 성행 그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남의 각 은행과 금융회사와 손을 잡고 더안의 대출까지 싹 다 끊어버린 거야. 결국 3개월도 안 돼서 회사는 완전히 부도났어.”자본 시장은 참으로 잔인했고 피바람도 자주 불었다.조유진은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러니까 사실 그때 더안의 건축 자재가 암을 유발하는 건 아니었네요? 더안도 결국에는 모함당한 피해자고?”엄준의 두 눈에 미안함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