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순간 정체되었다.배현수의 도도한 얼굴에 예지은의 손톱에 긁힌 옅은 핏자국이 두 줄 나 있었다.너무 깜짝 놀란 예지은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내가 그런 거 아니야. 정말 내가 그런 거 아니야. 너희 다 가, 모두 가!”예지은은 제정신이 아니지만 조유진을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했다. 자신이 그녀를 해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고 복수하러 온 것일까 봐 많이 두려운 듯했다. 만약 예지은이 말한 ‘원한'이 안정희와 무관하다면... 그럼 예지은의 ‘복수'는 무슨 복수일까?의심이 든 조유진은 예지은에게 무심코 물었다.“어머니, 혹시 이전부터 제가 누군지 아셨어요?”예지은은 머리를 감싸 쥐더니 울며 애원했다.“옥패를 돌려줄 테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내 아들을 탓하지 마. 이 아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옥패요?”조유진은 예지은에게 다가가 확실하게 물어보려고 했다.배현수의 미간은 벌떡벌떡 뛰고 있었지만 얼굴빛은 흔들리지 않은 얼굴로 조유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잠깐 밖에서 기다려. 감정이 불안정해서 또 다칠 수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어.”조유진은 배현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더 이상 묻지 않고 대꾸했다.“네, 나가서 기다릴게요.”조유진은 밖으로 나간 뒤 더 이상 병실로 돌아가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예지은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옥패를 돌려주겠다고 한 건 어떻게 된 일일까?배현수도 뭔가 숨기고 있는 듯했다.문득 연말에 진주시로 출장 갔을 때 배현수가 진주시까지 와서 함께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사이 간병인이 전화를 걸어와 실수로 예지은의 옥패를 부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배현수의 표정은 곤란한 일이 생긴 것처럼 복잡해 보였다.그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배현수는 대충 에둘러댔다.단지 배현수의 친어머니와 관련된 일이기에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일어난 사소한 것들을 연결해 보면... 그 옥패는 본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설마 다른 사람이 조유진을 데리고 갈 때 목
조유진은 깜짝 놀랐지만 그가 드디어 무슨 말이라도 털어놓으려는 줄 알았다.하지만 배현수는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에 네가 잠들었을 때, 손가락으로 너에게 약을 발라주다가 그만 또 통제력을 잃었어.”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조유진은 배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나에게 말할 게 이것뿐이에요?”배현수의 눈빛은 어두웠지만 평온한 안색으로 예전처럼, 심지어 장난까지 섞어서 말했다.“뭘 더 설명하라는 거야? 통제 불능한 뒤 어떻게 했는지 설명할까?”조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나와 결혼하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와 결혼하는 게 아니잖아. 우리 어머니가 싫으면 앞으로 그곳에 안 데려갈게. 오늘 너를 놀라게 한 것은 확실히 어머니가 잘못했어. 나도 생각이 짧았고.”“놀라지는 않았어요. 그냥 궁금해요. 옥패를 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엄씨 사택에서 전화한 것이다.걸려온 전화를 본 조유진은 잠시 멍해진 채 바로 받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는 배현수가 말했다.“엄 어르신이 섣달 그믐날 오라고 전화한 것 같은데 왜 안 받아?”조유진은 더 이상 옥패를 묻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배현수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조유진도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고문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조유진은 감정을 억누르며 일부러 한마디 했다.“아버지가 섣달 그믐날 성남으로 내려오래요. 친어머니 제사를 지내자고요. 특별히 한마디 했는데 호적에 없는 사람은 데려오지 말라고 했어요.”섣달 그믐날 바로 내일이다.그런데 배현수는 반박하기는커녕 바로 찬성했다.“그럼 내일 공항까지 데려다줄게. 성남으로 가서 엄 어르신과 선유랑 설 잘 보내.”그럼 그는?남아서 예지은과 함께 섣달 그믐날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대제주시에서 머물다가 예지은에 대해 뭔가를 알아낼까 봐 두려운 것일까?그날 밤, 서로 걱정이 많았는지
조유진은 요양원에서 예지은을 만난 후, 다시 산성 별장으로 갔다.배현수는 이미 회사로 출근한 터라 집에 아무도 없었다. 지문 인식으로 집안에 들어온 뒤, 곧장 2층 서재로 향했다.조유진의 추궁에 예지은은 깨진 옥패가 그녀의 손에 있지 않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배현수가 그 옥패의 출처를 알고 숨겨둔 것으로 조유진은 추측했다.그의 서재에는 두 개의 금고와 비밀번호 키가 있는 서랍이 하나 있다.이전까지 그녀는 함부로 배현수의 개인 물건을 들춰내지 않는다.하지만 이번에는 배현수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을 어겼다. 조유진은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배현수가 설정한 비밀번호는 어차피 그 몇 가지 날짜뿐이다.그녀의 생일을 입력하니 두 개의 금고가 모두 열렸지만 금고에서는 깨진 옥패가 없었다.다시 그녀의 생일을 입력하여 잠긴 서랍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배현수가 이 서랍의 비밀번호 변경했다.하지만 배현수는 절대 비밀번호를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비밀번호를 바꾸게 된 동기는 아마 한 가지이다. 바로 이 서랍 안에 그녀가 알 수 없는 중요한 것을 넣었다는 것이다.두 번째로 배현수의 생일을 입력했더니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왔다.세 번째로 선유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역시 틀렸다.이 비밀번호 잠금장치는 세 번 잘못 입력하면 다시 열지 못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잡친 기분에 힘이 빠져있는 사이 아래층 마당에서 엔진소리가 들렸다.순간, 조유진은 깜짝 놀랐다. 탁 트인 서재에는 숨을 곳이 없었다.서재를 나서려 할 때, 배현수가 막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잠시 멍해 있던 조유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회사에 간 거 아니에요? 왜 갑자기 돌아왔어요?”한쪽에 서 있는 배현수의 눈매는 차갑고 침울했고 검은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배현수는 담담하게 웃었다.“그 말은 내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유진아, 왜 다시 왔어?”조유진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
조유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나를 엄씨 사택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이 예지은이에요?”그녀의 직설적인 물음에 배현수도 숨기지 않았다.“예지은과 육씨 가문은 엄씨 가문과 아무런 인연도 원한도 없어. 누가 엄씨 사택에서 너를 데려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너를 조씨 가문으로 데리고 간 것은 예지은의 소행이야.”만약 애초에 엄환희가 조씨 집에 가지 않았다면 엄씨 집안에서 그녀를 빨리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조유진으로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만신창이 같은 인생을 살 필요도 없었다.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엄환희로 살았을 것이고 엄준의 보배였을 것이며 조씨 가문에서 억울하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엄환희는 이름처럼 평생토록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아리따운 공주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면... 조유진이란 사람은 없다.엄환희의 신분으로 배현수를 만날 리도 없고 배현수와 사랑할 리도 없다.조유진은 코를 훌쩍이며 눈시울을 붉혔다.“스위스에서 돌아온 후, 말했잖아요.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고. 현수 씨, 왜 또 나를 속이는 것인데요?”일이든 말이든 같은 실수는 세 번을 넘기면 안 된다고 했다.하지만 이번이 벌써 두 번째이다. 처음 한 번의 실수에서 교훈을 받지 못했단 말인가?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엄창민을 보고 조유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엄창민이 물었다.“환희야, 도착했어? 지금 너 픽업하러 공항으로 가는 중이야.”“아직이요. 항공권을 바꾸는 바람에 오후 두 시쯤 되어야 성남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았어. 그럼 내가 아버지에게 얘기할게. 그 시간 맞춰 공항 픽업 갈 테니까 그때 봐.”조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고 돌아서려 했다.그러자 배현수가 조유진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유진아, 너에게 숨긴 건 내가 잘못했어.”조유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지난번에도 약속했잖아요. 다시 한번 더 나를 믿지 않고 숨긴다면 이제 현수 씨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나는 현수 씨를 너무 믿지만 현수 씨는
조유진은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아빠, 뭘 찾으세요?”엄준은 아쉬운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야.”시집도 안 간 사위가 왜 안 따라왔지?이때 엄창민이 바로 입을 열었다.“아버지, 찾지 마세요. 도둑놈 매부 안 왔어요.”선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더러운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삼촌, 도둑놈 매부가 누구예요?”엄창민은 바로 대답했다.“너의 아빠.”“우리 아빠가 왜 도둑놈이에요?”아빠가 그렇게 부자인데 도둑질할 리가 없지 않은가!엄창민은 녀석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장난을 쳤다.“너의 엄마를 데려갔으니 도둑놈이지.”꼬마 녀석은 바로 알아채고 대답했다.“어... 알겠다! 삼촌도 우리 엄마를 좋아하지만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아빠가 도둑놈이라고 생각하는 거군요!”조유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선유야, 헛소리하지 마.”하지만 엄창민은 바로 인정하며 녀석을 칭찬했다.“꼬마 친구, 아주 똑똑하네.”조유진도 손을 씻고 테이블에 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주방 셰프가 냉이 돼지고기, 표고 돼지고기, 새우 옥수수 등 여러 개의 소를 미리 준비했다.보물섬을 다 지은 선유는 조유진의 모습을 보고 같이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엄마, 아빠는 어떤 만두소를 좋아해? 내가 많이 만들어서 아빠에게 줄게.”녀석이 빚은 만두는 정말 못생겼지만 아빠를 생각하는 효심은 자랑할 만 했다.녀석은 만두를 빚다가도 또 작은 손으로 코를 후볐다.그 모습에 조유진이 말했다.“네가 빚은 것은 네가 먹어.”선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요? 아빠 혼자 대제주시에서 설을 쇠는데 불쌍하잖아요. 아빠에게 잘 해줘야죠!”엄준이 녀석을 칭찬했다.“우리 선유의 효성이 아주 지극하네.”칭찬을 받은 선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에게도 몇 개 빚어 드릴게요. 못생기긴 했지만 맛있을 거예요!”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집안 분위기는
전화가 오랫동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선유는 작은 손에 큼직한 휴대전화를 들고 귓가에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모니터에 대고 말했다.“나쁜 아빠, 왜 전화 안 받아!”조유진의 눈빛이 다시 한번 멈칫했다.설마 그를 버리고 성남으로 돌아간 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일까?하지만 먼저 숨긴 사람은 배현수이다.화낼 사람은 오히려 그녀이다.깊은 눈빛으로 조유진을 지켜보던 엄준은 그녀의 눈빛에 스친 못마땅한 감정을 읽어냈다.“그 자식과 싸웠어?”“아니요.”조유진은 혹시라도 엄준이 그 옥패에 대해 알게 될까 봐, 그녀를 조씨 가문으로 데려간 사람이 예지은이라는 것을 알아챌까 봐 말을 아꼈다.그녀는 배현수가 숨긴 것을 용서할 수 있지만 엄준은 가능할까?예지은이 정말 그녀를 엄씨 사택에서 데려간 사람이라면 엄준이 배현수를 지금처럼 받아줄 수 있을까?조유진에게 예지은은 예지은이고 배현수는 배현수이다.그러나 엄준에게는 당시 엄환희를 엄씨 사택에서 데려간 유괴범이고 그의 아내 신희수를 간접적으로 죽인 살인범이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엄준이 재혼하지 않은 것을 보며 신희수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조유진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할 수 없었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려서 물었다.“아빠, 그때 복수하기 위해 나를 데려간 사람이 혹시 누군지 짐작이 가요?”엄준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내가 성남에서 사업을 했어. 사업이 커지면서 자연히 많은 사람이 이익을 해치게 되었어. 그 시절 사업 인맥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파트너이자 경쟁자인 사람도 많고.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추측하기 어려워. 20여 년 전 건축자재를 주로 만들던 더안이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당시 성행 그룹과 경쟁이 치열했어. 하지만 재료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얼마 안 지나 부실운영까지 겹쳐 파산했고 창업자는 사라진 지 오래야.”조유진은 더안이라는 회사 이름이 왠지 귀에 익숙했다.“더안과 지금의
배현수가 차에 올라타자 백소미의 목소리가 들렸다.“해군, 육군, 공군과 같이 주위를 다 찾아봤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어요. 예지은 씨, 아직 대제주시에 있을 거예요.”하지만 3시간째 뒤지고 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배현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그 어떤 정보가 나와도 내선으로 연락하지 마세요.”백소미는 순간 멈칫했다.“배 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배현수는 한마디만 했다.“귀신이 있어요.”게다가 국내에서 레벨이 있는 사람이다.드래곤 파가 719부대에 내부 간첩을 두었다면 예지은이라는 쓸모없는 인간을 잡아간 목적은 무엇일까.예지은으로 배현수를 견제할 수 없다. 차라리 조유진을 잡는 게 훨씬 가성비가 있을 것이다.그들이 조유진을 잡지 않는 것은 지난번 스페인 기지의 폭파로 드래곤 파가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지은을 잡아가는 것은 적어도 배현수에게 위협은 될 수 있다. 설마 도발하는 것일까?...오후 8시 성남컨벤션센터.조유진은 드레스를 입고 엄창민의 팔짱을 낀 채 들어왔다.몇몇 비즈니스 지인들이 엄창민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지난번에 엄 이사님께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했는데 거절하시더니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어서였네요.”조유진의 정체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이렇게 오해하는 것은 당연했다.엄창민은 웃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조 대표님, 농담도 참. 여동생인데 회사에 들어온 지는 꽤 됐어요. 앞으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만나게 될 겁니다.”조유진은 당당한 모습으로 디너백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조 대표님, 제 명함입니다.”조 대표는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다. 리셉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맥을 넓혔다.“네, 네. 나중에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죠.”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엄명월이 샴페인 한 잔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조유진 곁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 대표님은요?”조유
그와 한바탕 따지려 했지만 돌아선 얼굴에 엄명월은 어리둥절했다.김씨는 생김새가 옹골찬 편이지만 사악하고 제멋대로인 눈앞의 사람은 한눈에 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두 눈이 마주친 순간 엄명월은 약간 어리둥절했고 맞은편에 있는 그 사람의 눈빛은 매우 공격적이었다.눈빛에 어색함을 느낀 엄명월은 헛기침하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사람을 잘못 봤어요. 그 인간인 줄 알았습니다.”재웅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그 인간? 저를 욕하는 것인가요?”엄명월은 맞은편의 사람을 몇 번 더 훑어본 후 말했다.“그건 아닙니다. 전에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성남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익숙한데 그쪽은 아니어서요.”재웅은 샴페인을 들며 말했다.“바다가 크니 낯선 얼굴이 있는 게 이상할 것은 없잖아요.”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비즈니스를 하러 온 사람들이라 어느 정도 인맥이 있다.엄명월은 잠깐 생각하다 물었다.“혹시 성함이 어떻게 될까요? 성남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재웅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성은 재, 이름은 오라고 합니다. 재오요. 실례지만 아가씨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엄명월은 가볍게 웃더니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저요? 제 성은 이, 이름은 사예요. 이사.”재웅의 얼굴에 눈웃음까지 더해졌다.“이사 씨, 이름이 매우 특이하네요.”“그쪽도요.”...한편 반대편에서 조유진은 연회장 내 사람들과 한 바퀴 돌며 인사했다. 십여 장의 명함을 주고받은 뒤 하얀 모피 조끼를 두르고 맨 위층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스카이라운지는 하늘과 별을 볼 수 있는 라운지이다.조유진은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선유에게 보내려다 즐겨찾기에 있는 카톡 메시지에 눈길을 돌렸다.[대답 좀?]이게 지금 반성하는 태도란 말인가?오후에 선유가 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지금은 오히려 조유진의 휴대폰에 배현수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하지만 늘 방해금지 모드로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