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산성 별장에서 조유진은 예삐에게 사료를 먹인 뒤 예삐를 안고 소파에 누워 잡지를 뒤적였다.대제주시의 겨울밤 하늘은 어둡다.시간을 보니 6시가 넘었다.예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혼자 놀고 있어. 샤워 좀 하고 올게.”조유진은 짐을 들고 2층 침실로 올라가 캐리어를 열었다. 그제야 잠옷을 두고 온 것을 발견했다.옷장을 열어 부드럽고 편안한 소재의 남성 셔츠를 골랐다.샤워하고 잠깐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휴대폰 카톡에서 친구 추가 메시지가 떴다.메시지창에는 ‘주명은’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주명은은 대학 룸메이트로 당시만 해도 사이가 좋았지만 이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내일 개교기념일에 참석하면 십중팔구 주명은과 마주칠 것 같아 친구 추가를 수락했다.이내 주명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조유진? 정말 너야?]조유진도 답장했다.[응, 오랜만이야.][날 기억하다니, 기억 못 하는 줄 알았어.][그럴 리가. 돈까지 빌려줬잖아. 기억나.]당시 조유진은 생활비가 늘 빠듯했다. 주명은의 집안은 부자는 아니지만 생활비는 넉넉한 편이어서 가끔 조유진에게 밥값으로 4만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정설혜가 호의를 베풀어 조유진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면 이내 주명은에게 돈을 갚았다.물론 밥값을 빌리는 일은 배현수와 연애하고 나서 다시는 없었다.당시 주명은은 배현수가 그녀를 ‘양육'한다며 놀리기도 했다.주명은에게서 답장이 왔다.[그때 배 선배와 오래오래 사귈 줄 알았어. 결혼까지 갈 줄 알았거든. 아쉽네.]조유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오랫동안 연락을 끊은 친구들은 사실 오래전에 서로의 생활 범위밖에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다시 모여 이야기할 것은 추억뿐일 것 같다.조유진은 이런 알면서도 ‘낯선' 관계에 제일 약하다. 친숙한 듯 낯선 듯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한참 동안 답장을 하지 못했다.주명은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방금 동
한편, 강성의 어느 작은 마을.예지수가 말했다.“그때 조범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어.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조범을 미워했어. 안정희를 찾아가서 증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안정희는 그때 임신 중이었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어. 안정희는 너의 어머니가 안타까웠지만 사람은 그 누구나 이기적인 부분이 있잖아.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이익이 먼저니까. 조범이 아무리 나빠도 남편이고 뱃속 아이의 아버지야.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부탁하러 갔을 때 물론 흔들렸지만 거절했어.”배현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래서 어머니가 안정희까지 미워서 안정희의 아이를 바꿔치기한 거예요?”예지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순순히 인정했다.지난 일을 생각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왠지 쓸쓸함과 부끄러움이 비쳤다.“그때 너의 어머니가 복수심에 불타 안정희의 출산 예정일을 알아보라고 했어. 원래는 안정희의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어. 아이를 잃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려고 말이야. 나는 그때 시립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어. 처음에는 너의 어머니의 생각을 바로 거절했어. 안정희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아이는 죄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의 어머니가 무릎까지 꿇으며 도와달라고 해서... 나와 너의 어머니는 비록 사촌 자매이지만 집안 조건이 차이가 많이 났어. 너의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와 결혼한 후 더욱 행복하게 살았어. 하지만 내 아버지는 도박과 여자에게 재산을 탕진했어. 내 대학 등록금까지 다 날렸지. 그때, 너의 어머니가 돈을 대줬어. 만약 너의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립병원에 취직할 수 없었을 거야. 예전에는 병원에 취직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거든. 그래서 나에게 너의 어머니는 언니이자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와 같은 존재야. 그런 언니가 나한테 부탁을 하고 무릎 꿇고 애걸복걸하니 내가 어떻게...”배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럼 안정희의 수양딸은 우리 어머니가 데려온 거예요?”예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너의 어머니와 얘기한 후 나는 이 모든
예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너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본인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아. 뼛속은 선량하지만 조범이 너무 나빴어. 그리고 너의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복수의 칼날만 다듬었지.”배현수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그럼 안정희의 아들은요? 죽었어요?“처음에는 안정희의 아들을 너의 어머니께 줬어. 아이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는데 막상 손을 대려니 안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 아이를 빗속에 던져버렸어...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어. 나와 너의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이 일을 몰라. 안정희는 죽을 때까지도 몰랐다. 애초에 낳은 것이 아들이었다는 것을... 이것도 본인의 업보라고 할 수밖에... 업보는 조범이 너의 아버지를 죽이게 내버려 둔 것이야. 나중에는 조범이 아들만 중시하는 바람에 조범에게 배신당하여 잘 지내지 못했어. 평생 자기 아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인생이 끝이 났지. 모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해. 안정희도 그렇고 너의 어머니도 그렇고... 너의 어머니는 이 일을 끝낸 후,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야. 좋은 사람이 아주 나쁜 일을 저질렀으니 많이 힘들었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예지수의 말을 들은 배현수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굴은 극도로 어두웠다.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모님, 육씨 집안과 우리 어머니에게 원한이 있는 집안 중에 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아니, 들어본 적 없어. 왜 그러는데?”배현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머니가 당시 안정희의 수양딸을 어떻게 만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데려온 그 여자아이를 말하는 거야?”“네.”“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주워왔다고만 했어. 진짜로 주워온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 너의 어머니만 알겠지. 하지만 지금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물어도 네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는 어려울 거야.”
밤 10시가 넘은 시각.산성 별장에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다.배현수가 밖에서 술을 마신 탓에 서정호가 차로 데려다주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예삐가 계속 울었다.하지만 예지수의 입에서 과거의 원한에 대해 알게 된 후, 마음이 무거웠다. 입구에 여자 신발이 놓여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손을 들어 넥타이를 풀고 우는 예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센서 등이 켜졌다.문을 밀고 안방으로 들어간 후 문을 휙 닫았다. 센서 등의 희미한 빛은 문에 의해 철저히 차단되었다.모든 감정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배현수는 온몸으로 우울한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알코올이 몸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관자놀이가 따끔거렸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경각심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상대의 연약한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누구야?”“웁... 나예요.”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던 조유진은 깜짝 놀랐다.본능적인 삶의 욕구가 그녀의 목을 조른 배현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배현수는 놀라서 얼른 손을 떼었다.딸깍.침대 머리맡에 무드등이 켜지자 따뜻한 오렌지색 빛이 안방 전체를 비추었다.조유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몸은 이미 그 팔에 안겨 있었다.배현수는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아파?”그녀의 하얀 목덜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 단지 약간의 홍조만 있을 뿐이다. 방금 배현수가 힘주어 꽉 쥔 자리이다. 곧 가라앉을 것이다.조유진이 괜찮은 것을 본 배현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왜 갑자기 대제주시로 돌아온 거야?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방금 난 또...”조유진은 정신을 차렸다. 졸음이 싹 가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눈빛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또 뭐요?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이 침대에 누워 잤단 말이에요?”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과민반응이 이토록 심할 수 있을까?배현수의 팽팽했던 신경은 완전히 풀렸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살인자가 집에 침
그녀의 등허리를 껴안은 큰 손은 점점 더 조여졌다. 서로의 가슴이 딱 달라붙었다. 심장 박동도 같은 빈도로 뛰는 듯했다. 두 심장이 서로 엉켜서 함께 뛰는 것 같았다.숨이 막힐 때까지 키스하고서야 배현수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조유진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은 채 시선을 피했다.하지만 배현수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깊은 욕망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삼킬 것 같았다.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잠깐 멈칫했지만 두 입술은 다시 뒤엉켰다.조용하고 따뜻한 안방에서 키스가 점점 더 깊어졌다.배현수는 넥타이를 풀더니 키스를 하며 말했다.“오늘 네가 너무 보고 싶은 줄 어떻게 알았어? 얼마나 기다린 거야?”“오후 2시에 도착했어요.”“그럼 왜 공항으로 마중 나오라고 전화하지 않았어?”그 시간이면 배현수는 대제주시에 있을 때이다. 그녀가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예지수를 찾으러 강성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조유진의 볼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어요.”배현수는 피식 웃었다.“나에게는 서프라이즈지만 너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까 봐 걱정이네.”조유진은 잠시 숨을 돌렸다. 기복이 심했던 가슴이 드디어 진정되었다.배현수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 쉬었어? 계속할까?”조유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 밤 그녀는 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6시부터 지금까지 저녁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배고파.”배현수는 그녀와 이마 맞대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를 먹어.”조유진은 그의 어깨를 밀쳤다.“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너무 심해요.”한 시간 넘게 술집에 있은 탓에 옷에서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많이 났다.“뭐 먹고 싶어?”조유진이 물었다.“집에 국수 있어요?”“냉장고에 있을 거야. 내가 끓일게.”조유진은 배현수보고 샤워하라고 했다.“내가 끓일게요.”초저녁 내내 잤으니 움직일 때도
조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현수 때문에 목이 간지러웠다.“예삐랑 점점 닮아가요? 내가 일할 때만 와서 괴롭히냐 말이에요.”배현수는 깨끗한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나도 예삐처럼 여주인을 좋아하나 봐.”조유진은 가스 불을 끄고 야채와 달걀을 건져냈다.먹음직스럽고 영양가 있어 보이는 청경채 계란국수 두 그릇이 완성되었다.“들고 가서 먹어요.”배현수는 가만히 있었다. 두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그녀의 목덜미에 기대 말했다.“유진아, 우리 혼인신고 하러 가자.”그는... 하루라도 빨리 행복해지고 싶다.조유진이 여기에 서서 그의 셔츠를 입고 간단한 국수 한 그릇 끓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상황에 빠져들었다.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조유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호적등본도 여기 없어요. 혼인신고 하기 전에 아빠께 말씀드려야죠.”배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섣달 그믐날에 찾아뵐게.”“아빠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해요?”배현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그럼 엄씨 사택에서 허락할 때까지 눌러 있을 거야.”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배현수라는 사람이 떼를 쓸 줄도 안다고요?”“유진아, 너와의 결혼 생활을 8년 동안 생각했어.”8년, 충분히 긴 시간이다.분명 달콤하리라 생각했다.조유진은 코가 찡했다.두 사람은 오픈 키친의 테라스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지난번 조유진이 국수를 만들어준 지가 벌써 반년 전이다.서로 그렇게 깊은 갈등을 겪었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은 극히 드물다.하지만 조유진은 밥을 거의 하지 않는다. 폐가 안 좋아 기름 연기만 맡아도 기침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같이 있을 때 배현수가 그녀에게 요리를 못하게 했다. 가끔 국수를 삶는 것만 했다.조유진은 고개를 숙여 면을 먹었다. 배현수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조유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국수가 불겠어요. 찍을 게 뭐가 있다고...”배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 가볍게 안았다. 그녀의 허리에 쌓여 있던 셔츠가 천천히 미끄러져 떨어졌다.몸이 갑자기 싸늘해졌다.배현수의 목을 감싸고 있는 조유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코알라가 아이를 안고 있는 자세에서 키스를 나눴다.서로를 오랫동안 기다린 탓에 불타오른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펑' 하는 소리가 났다.조유진은 냉장고 문에 밀쳐졌다. 등 뒤로 전해지는 차가운 촉감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주방은 어둡고 창문은 늘 블라인드 커튼이 쳐져 있다. 이 일대는 단독 빌라 구역으로 낮이든 밤이든 사생활 보장이 아주 잘 된다.어두운색의 냉장고가 그녀의 피부를 더욱 눈부시고 하얗게 보이게 했다.배현수는 거의 통제력을 잃었다.조유진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은 남자의 목덜미에 감겨 있었다. 손끝에 힘을 주자 손등의 가느다란 힘줄이 조금씩 솟아올랐다.조용한 부엌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었다.조유진의 목에 뜨거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쪽 다리에 힘이 빠져 미끄러질 것 같았지만 큰 손에 잡혀 다시 그를 감싸 안았다.배현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짝 시선을 피했다.이때 주방 입구에서 때아닌 ‘야옹’하는 소리가 들렸다.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그녀의 목덜미와 가슴 앞에 엎드린 사람도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잠깐 멈추었을 뿐 배현수는 이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더니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왜 쟤를 봐, 나 좀 봐.”두 입술이 다시 포개졌다.한참 동안 입을 맞추던 배현수는 뭔가 생각난 듯 동작을 멈췄다. 그녀를 위로 받쳐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꼭 잡아. 안고 침실로 갈 테니.”인제야 침실이 생각난 것인가?조유진을 안고 계단을 오르자 예삐도 따라왔다.배현수는 호통쳤다.“꺼져!”예삐는 순간 멍해졌다.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예삐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온몸을 움츠리며 반걸음 물러섰다.조유진도 깜짝 놀랐다.“괜히 고양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요.”고양이가 깜짝
배현수는 이런 활동에 흥미가 없다.특히 부드러운 그녀의 품속에서 학교 행사 같은 것은 더더욱 참석할 마음이 없다.조유진은 어리둥절했다.“안 가요? 하지만 나는 초윤이와 같이 가기로 약속했어요.”배현수가 그녀의 등을 짓누르며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부드러움과 거침이 동반했다. 온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네가 가면 나도 갈게.”조유진은 발등에 힘을 줬다. 당장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다....이튿날, 겨울날의 쓸쓸하고 따뜻한 햇볕이 방안을 비췄다.조유진은 아직 자고 있다. 얼굴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배현수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손을 뻗어 밀치려 할 때 손에 보송보송한 털이 잡혔다.눈을 뜨자 예삐는 침대에 올라가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조유진은 ‘으’ 하고 탄식하며 예삐를 밀었다.예삐는 사람을 잘 따른다. 특히 조유진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얼굴을 핥지 못하게 하자 벗은 그녀의 팔뚝 옆으로 다가갔다.조유진은 침대에 누운 채 머리를 비웠다.팔을 굽혀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이 시큰시큰했다.욕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배현수가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할 때는 진짜 늑대보다 더 못한 짐승이 되는 것 같다.손을 뻗어 협탁의 핸드폰을 집어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가 되었다.다행히 개교기념일은 오후 2시에야 정식으로 시작한다.조유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예삐를 품에 안고는 무의식적으로 고양이 털을 만졌다.이때 문을 밀고 들어온 배현수는 예삐가 조유진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유진의 목을 핥으려 하는 행동을 보고 성큼성큼 다가가 옆으로 내동댕이쳤다.예삐는 구석에 움츠린 채 억울한 듯 울었다.야옹.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예삐에게 왜 그렇게 매섭게 굴어요? 놀란 거 봐요...”“마음이 불순해.”조유진은 피식 웃었다.“고양이 한 마리가 무슨 나쁜 마음을 가지겠어요?”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몸에 있는 이불이 살짝 흘러내리며 아름다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하얀 어깨와 팔을 드러냈다.배현수는 이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