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68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6-11 19:00:00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중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만약 애초에 유괴되어 복지 시설에 입양되었다면 나는 분명 빨리 찾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충남 조씨 집안의 딸이 될 줄은 몰랐어.”

“아빠, 조범과 인맥이 있어요?”

엄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범과 안정희, 두 사람 모두 접해 본 적이 없어. 성행 그룹은 성남에서 유명해지고 나서 최근에야 대제주시에서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어. 비즈니스에서는 성행 그룹과 대제주시 충남 조씨 집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 사실 나도 궁금하고 이해가 안 돼. 그래도 인신매매범에게 팔려가지 않아 다행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 아빠와 만날 수도 있잖아.”

조유진은 엄준의 팔짱을 낀 채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 그때 유괴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쩌면 엄마도 계속 살아있었을 수 있었는데.”

엄준은 그녀의 손을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배현수를 못 만날 수도 있었겠네.”

그렇다. 만약 유괴되지 않고 충남의 조씨 집안 딸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배현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배현수와 얽히고설킨 일이 이렇게 많지도 않을 것이다.

선유는 더더욱 없다.

운명은 모든 사람을 연루시키며 삶을 이어나가게 했다. 그들을 떠돌게 하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했다.

거대한 운명의 룰렛 앞에서 모든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다.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때 엄준이 물었다.

“배현수를 만난 것을 후회해?”

조유진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대신 한마디 물었다.

“참, 아버지. 오늘 집에 와서 무슨 말 하지 않았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나와 같이 바둑 한판 뒀어. 오늘 지면 앞으로 엄씨 사택에 오지 말라고 했어. 너는 성행 그룹의 후계자이기에 너와 결혼할 마음은 일찌감치 버리라고 했어.”

엄준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은 조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누가 이겼어요?”

엄준은 장난기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69화

    ...차 안에서.배현수는 뒷좌석에 앉아 멀리 스위스에 있는 셀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스위스는 오후이다.셀리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배 대표님?”“조유진 유산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어?”배현수의 목소리는 바깥의 눈바람보다 더 매서웠다.당황한 셀리나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배 대표님, 죄송합니다... 사모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가 없어졌으니 말해봤자 한 사람만 더 괴로울 뿐이라고요. 귀국하면 화해할 줄 알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전화기 너머 배현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희로애락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셀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배 대표님?”“유진이가... 왜 유산한 거예요?”전화기 너머로 이미 물은 이상 셀리나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이 그날 아침 스위스를 떠나자마자 사모님에게 하혈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해서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의사 말로는 사모님의 몸이 좋지 않아 유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몸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돌아가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지나치게 걱정하면 안 된다고요. 그런데... 그런데 나중에 대표님이 다른 사람과의 약혼 소식을 보고 감정이 복받쳐서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대표님이 받지 않았어요. 홧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던지고 주신 블랙 카드도 잘라버렸어요. 원래부터 태아가 불안정했는데 감정이 동요하면서 아이가... 그냥...”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배현수는 심장이 욱신욱신했다.목젖이 격렬하게 굴렀고 한참 동안 응답이 없었다.무뚝뚝하고 아무런 반응 없이 셀리나의 말을 계속 들었다.“병원에 갔을 때는 바지에 피가 흥건했어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계속 옆에 있었는데 무서워하더라고요. 대표님께 계속 전화하라고 했어요. 제가... 서 비서님께도 전화를 여러 번 드렸는데 계속 전원이 꺼져있었어요.”셀리나는 상세히 말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바지가 피범벅이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

    최신 업데이트 : 2024-06-12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0화

    이날 밤, 밖에 큰 눈이 많이 내렸다.조유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한밤중에 몇 번이고 일어났다.엄씨 사택 밖의 검은 차는 아직도 가지 않았다. 차 지붕에 눈이 두껍게 쌓였다.아래층에서 인기척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바스락거리는 낮은 소리였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이튿날 아침 일찍, 조유진은 세수를 마친 후 사택 현관 밖을 내다봤다.검은색 차가 보이지 않았다.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대충 때우고 성행 그룹으로 향했다.마당에는 눈사람 세 명 있었다.모양이 그럴듯하게 보였다.제일 작은 눈사람의 팔뚝 옆에 탕후루도 꽂혀있었다. 선유는 탕후루를 제일 좋아한다.엄씨 사택의 정원에는 많은 풀이 있다.눈사람 옆에는 머메이드 모양의 웨딩드레스 모델이 원목 레저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앙상한 어깨 위에 하얀 레이스 베일이 걸쳐져 있었다.웨딩드레스 눈사람은 시원하고 단정해 보였다.굳이 얼굴이 없어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또 하나의 눈사람이 신부 눈사람 옆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 눈사람의 목에는 짙은 색의 양털 목도리가 둘려 있었다. 남자 것이다.배현수가 가끔 코트에 맞춰 목에 걸치는 스카프이다.아침 일찍 일어난 도 집사도 마당을 들여다보았다.“아가씨, 눈사람을 없애버릴까요?”조유진은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휴대전화를 거두고 말했다.“선유가 눈사람 좋아하니까 일단 놔두세요.”좀 이따 녀석이 깨어났을 때, 이렇게 ‘놀랍고 무서운’ 작품을 본다면 두 눈이 얼마나 휘둥그레질지 모른다.도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하긴, 눈사람 세 개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었을 거예요.”조유진은 한밤중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떠올랐다.“아저씨, 저 출근할게요.”“휴, 아가씨 운전 조심히 하세요. 눈 오는 날에는 길이 미끄러워요.”“알겠습니다. 아저씨.”조유진은 차 안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흰색 벤츠가 나가자 검은 그림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녀를 따라다녔다.조유

    최신 업데이트 : 2024-06-12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1화

    이틀을 따라다닌 후, 영상이 갑자기 한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었다.지나가는 사람이 올린 것이다. 편집, 음악, 그리고 검은색 팬텀의 차량 번호가 너무 눈에 띄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네티즌들의 호기심이 폭발했다.“한 대표이사가 내연녀를 따라다니는 거 아니에요?”“차량 번호가 포인트에요! 88가8888이에요!”“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마침 흰색 벤츠 뒤에 있는 것이지 일부러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에요. 고작 이 행동이 여자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인다고요?”“그러니까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 검은색 팬텀을 운전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돈이 많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여자 한 명 없겠어요?”“하지만... 벌써 이틀째예요. 이 정도로 우연이라고요?”“아니, 흰색 벤츠 번호판은 왜 아무도 신경 안 써요? 11나1111이라고요. 차가 좀 평범하기는 해도 이 번호판도 예사롭지 않다고요.”“미친, 내 머릿속은 이미 두 재벌 집 남녀가 서로 연애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어요. 강제 사랑이라고 하죠!”“차주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그런 연애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죠. 그런데 저 사람들 운전 솜씨도 대단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따라다녔는데 그사이에 다른 차가 끼어들지 못한 거예요?”“팬텀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팬텀을 운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흰색 벤츠를 운전하는 사람은 성남 엄씨 집안의 사람일 겁니다. 11나1111 이 차량 번호는 성행 그룹 엄씨 집안이 확실해요.”“하늘이시여! 차가 따라다니는 영상의 조회수가 이렇게 많다고요? 내가 폭스바겐을 타고 와이프의 마쓰다를 따라다니는 것은 왜 인기가 없는 거죠?”“형님,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누가 폭스바겐이 마쓰다를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싶어 하나요?”“하하. 웃겨 죽겠어요. 저 사람들은 저 번호판을 달고 게다가 팬텀이 벤츠를 따라다녀요. 숙명 감을 갖고요. 마쓰다를 따라다니는 영상은 배경 음악부터 바꿔야 해요!”...엄명월

    최신 업데이트 : 2024-06-13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2화

    은빛의 차가운 총이 조유진의 허리춤을 겨눴다.휴대전화는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차를 몰던 여자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받아, 스피커 폰으로!”조유진은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엄명월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엄환희 씨, 어디에요? 오후에 누군가가 저를 기절시켰어요. 저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는데...”조유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운전하던 여자가 명령조로 지시했다.“배현수에게 통보해. 북쪽에 있는 오래된 화학 공장으로 오라고! 30분의 시간을 줄게. 늦으면 조유진의 시신을 수습하게 될 거야!”전화를 끊은 후,빨간색 페라리는 빠르게 블록을 지나 황량한 도시 북쪽으로 향했다.이 사람은 성남의 길을 잘 알고 있다. 손에 이렇게 위험한 무기를 들고 얼굴까지 둔갑했다. 조유진과 배현수 모두 연루시키는 것으로 봐서 아마 드래곤 파 사람일 것이다.조유진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백소미 씨?”조유진에게 들통난 백소미는 더 이상 위장하지 않고 조유진의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폐가 화학 공장으로 끌어갔다.도착하자마자 얼굴에 씌웠던 얇은 가면을 벗어 옆으로 내던졌다. 그녀의 진짜 얼굴이 나타났다.“조유진 씨, 또 만났네요!”여기 바닥이 다 젖었어요.공기 중에는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가 가득했다.백소미는 라이터를 꺼냈다.‘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를 켰다.불빛이 조유진의 얼굴을 스치자 긴장감과 창백함이 역력히 드러났다.백소미는 피식 웃었다.“배현수가 감히 나를 놀리다니! 그렇다면 나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내가 이 라이터를 바닥에 던지기만 하면...”조유진은 통제 불능에 가까운 그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기름에 불을 붙이면 그쪽도 나도 도망갈 수 없어요! 백소미 씨, 진정하세요! 백소미 씨가 먼저 우리 아빠를 중독시켰어요! 우리가 장난친 거라고 해도 백소미 씨가 먼저라고요! 그리고 배현수 씨가 언제 장난을 쳤는데요?”말이 끝나

    최신 업데이트 : 2024-06-13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3화

    배현수의 모습을 본 순간, 조유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하지만 바로 외쳤다.“현수 씨, 오지 말아요. 손에 총이 있어요!”그러나 배현수는 멈추지 않고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기며 걸음을 계속했다.휘발유를 넘어 걸어오는 남자는 진지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유진, 놓아줘요. 독약은 내가 일부러 준 게 아니에요. 드래곤 파 짓이에요.”백소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드래곤 파가 준 독약이라면 배현수 씨와 엄 어르신은 왜 다 살았는데요?! 배현수 씨, 지금 날 바보로 봐요?”배현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약 두 알을 갖고 온 것은 맞지만 한 알에 독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사실 두 알 모두 검사하여 확인한 후에 건네주려 했지만 백소미 씨가 나를 믿지 않았잖아요. 혹시라도 내가 해독약을 받은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봐요. 백소미 씨, 이것은 내 탓이 아니에요. 조급해한 사람은 본인이에요.”백소미는 아예 믿지 않았다.“배현수 씨의 말 대로라면 해독제는 하나밖에 없어요. 엄 어르신이 약을 먹었다면 배현수 씨는 왜 살아있는데요?”“내가 복용한 해독제는 드래곤 파 기지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해독제 성분 비율에 따라 719부대의 연구개발센터에서 개발한 것이에요.”백소미는 황망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말도 안 돼! 당신이 혁진의 해독약을 먹은 거야!”배현수는 총을 잡았다.만약 시력에 문제가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분명 백소미의 이마를 한 방에 명중시킬 수 있다.속도도 백소미보다 더 빠를 것이다.엄씨 사택에 있을 때, 백소미와 맞붙은 적이 있다.백소미는 실력이 있긴 하지만 배현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안경을 끼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백소미와 조유진의 모습이 그의 시선에 겹쳐져 보였다.이런 상황에서 총을 쏠 수 없다.잘못 쏘았다가는 실수로 다칠 위험이 크다.백소미는 조유진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쏘고 싶으면 쏴요. 누구의 총알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명중하는지 보죠!”배현수는 총을 쥔 손을 단단

    최신 업데이트 : 2024-06-1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4화

    백소미는 벌컥 화를 냈다.“내가 아직도 당신들 말을 믿을 것 같아요? 그 독약만 아니었다면 혁진이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잖아요. 내가 알기로는 드래곤 파가 이미 백소미 씨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어요. 백소미 씨, 당신은 배신자예요. 그들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혁진의 복수는커녕 본인 목숨까지 잃을 거라고요. 719부대에 가입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하면서도 최고의 선택이에요. 그러니까 유진이를 풀어줘야. 나는 내가 뱉은 말은 지켜요.”배현수의 한마디 한 글자는 굳건하고 힘이 있었다.이렇게 큰 유혹에 백소미가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하지만 배현수를 믿지 못했다.“그렇다면 손에 있는 총을 내려놓아요. 그럼 믿을게요!”배현수는 손에 든 검은 빛이 번쩍이는 총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은 뒤 멀리 차버렸다.“배현수 씨, 한 말은 꼭 지키세요!”말을 마친 백소미는 조유진을 반대편으로 밀쳐냈다.그리고 옆에 있는 창문으로 훌쩍 뛰더니 눈 내리는 밤 속으로 사라졌다.조유진은 익숙한 품 안에 넘어졌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배현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다친 데 없어?”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아니요. 백소미...”“백소미도 별 방법이 없으면 알아서 나를 찾아올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조유진을 납치한 이상 719부대에 합류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더라도 그 전에 백소미에게 톡톡히 교훈을 줘야 했다.감히 배현수의 사람을 납치하다니? 그 대가로 혼 좀 내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배현수가 조유진을 끌고 떠나려 하자 조유진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조유진은 달려가 바닥에 있는 그 검은 총을 주워왔다.이런 위험한 물건을 누군가가 주우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조유진은 그에게 총을 건넸다.배현수는 바로 받지 않았다.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조유진은 그가 왜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는지 몰랐다. 총을 그의 손에 쥐여주려 하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덥석 움켜쥐더니 품

    최신 업데이트 : 2024-06-1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5화

    두 사람은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배현수가 고개를 숙이자 조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피했다.그러나 상대방은 거절할 틈을 주지 않고 뒷덜미를 잡더니 강제로 키스했다.포악하고 용맹스러웠다.조유진은 피할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지만 풀 곳도 없었다. 입을 벌려 그를 한 번 물었다.배현수는 살짝 신음소리를 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성남에 오더니 사람을 무는 법을 배운 거야? 엄명월과 같이 바가지를 씌운 것도 모자라 무는 것까지 배웠어?”조유진만 보면 배현수는 늘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렇게 물어뜯을 줄 몰랐다.게다라 이렇게 세게 물어버릴 거라고는...입안에서 은은한 피비린내가 퍼졌다.조유진의 빛나는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험상궂게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눈시울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그러더니 또박또박 말했다.“바가지 씌우는 것도 현수 씨가 가르쳐준 거예요. 사업하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고 했잖아요.”그 말에 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무는 것은 나에게서 배운 게 아니니?”“나 물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한 번쯤 무는 게 뭐 어때서요?”배현수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고 씩 웃었다.“그래서 나에게서 배운 것을 가지고 나와 맞서려는 거야?”“현수 씨가 나를 먼저 속였어요. 중독되면 어때서요? 중독되면 선유를 납치해서 스위스로 보낼 수 있는 거예요? 중독되면 나를 따돌리고 나에게 숨기고 나 혼자 내버려 둘 수 있는 거예요?”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가볍게 대답했다.“그건 내가 잘못했어.”조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메어 시큰거렸다.“현수 씨가 곧 죽을 것 같으니까 창민 오빠에게 나를 떠넘기고 스위스로 가라고 강요한 거죠? 배현수 씨, 당신 대체 뭐냐고요. 무슨 근거로 나를 속이고 나 대신 창민 오빠를 선택하냐고요?”배현수는 한마디 내뱉었다.“나야말로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반문 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같기도 했

    최신 업데이트 : 2024-06-15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76화

    “나 조유진, 배현수만큼 강하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왜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요? 만약 방해된다고 생각하면 직접 얘기해 주면 되잖아요. 내가 협조해서 한국을 떠날게요. 현수 씨가 없는 6년 동안 나 혼자서 선유와 양어머니를 모시고 잘 버텼어요! 배현수 씨, 조유진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생각보다 약하지도 않아요.”조유진은 하이톤으로 말했다.텅 빈 황폐한 공장 안에서 배현수의 고막을 찌르는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그녀는 마음속의 불쾌함을 한꺼번에 모두 소리쳤다.며칠 동안 가슴에 묵직하게 쌓여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했다.마음 깊이 드리워졌던 그늘이 강풍에 휘날려 간 듯 마음속이 순간적으로 후련해졌다.화가 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조유진은 마치 작은 짐승처럼 배현수를 노려보고 있다.배현수는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었다.“말 다 했어?”조유진의 강한 펀치가 그에게는 솜사탕처럼 가벼운 듯한 공격 같았다.배현수가 그녀의 가는 손목을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그의 얇은 입술과 그녀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했다.조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거야?”“몇 번 더 물라고요?”조유진은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입을 벌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배현수는 피식 웃었다.“새끼 강아지, 왜 아직 안 물어?”“누가 강아지예요!”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귀밑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다.“사람을 이렇게 무는데 강아지가 아니라고?”조유진은 그를 힐끗 쳐다봤다. 손을 뿌리치고 하이힐을 또각또각 밟으며 자리를 뜨려 했다.‘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힐이 바닥에 던져진 안경을 밟아 부쉈다.조유진은 깜짝 놀라 천천히 발을 떴다. 안경알은 이미 그녀의 하이힐에 깔려 산산조각이 났다...배현수는 눈을 살짝 치켜들며 물었다.“어떻게 배상할 거야?”조유진은 다급히 설명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칠흑같이 어두운 바람에 진짜로 앞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그런

    최신 업데이트 : 2024-06-15

최신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