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평온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꿈은 끝없이 이어져 나갔고, 바람에 살랑살랑 스치는 보리밭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밝은 분위기였다.조유진은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발신자는 남초윤이었다.조유진은 일어나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잠기운이 묻어져 나왔다.“여보세요, 초윤아?”전화를 건 남초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져 나왔다.“유진아, 잘 지내?”“응? 난 잘 지내는데, 왜?”남초윤의 다급함과 걱정에 비해 조유진은 지나치게 담담했다.초윤이 물었다.“너 지금 어디야?”“전에 말했잖아. 현수 씨가 나랑 선유 스위스로 바래다줬다고. 스위스에 온 지 며칠 됐어. 아, 맞다. 여기 설경이 너무 예뻐.”조유진의 평온한 말투를 듣다 보니, 그녀가 배현수와 백소미의 약혼 소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남초윤은 조유진에게 사실을 알려줄지 말지 고민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네 인스타 봤어. 눈사람 너무 귀엽더라.”조유진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차분히 들려왔다.“임신만 아니면 선유 데리고 나가 돌아다니면서 이쁜 사진 많이 찍어 너한테 보태줄텐데. 의사 말로는 태아 상태가 불안정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집에만 틀어박혀 창밖 설경만 보고 있어.”“뭐? 너 임신했어? 배현수 애야...?”남초윤의 목소리가 흠칫하며 지나치게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조유진이 웃으며 답했다.“현수 씨 애 아니면 누구 애겠어.”남초윤은 입술은 짓씹으며 하려던 말을 거뒀다.“그러게... 현수씨 애 아니면 누구애겠어... 생각하는 것 좀 봐! 유진아, 너 정말 둘째 낳게?”“둘째 계획은 없었는데, 선유도 싫어하지 않고 와줬으니 지울 수는 없잖아?”조유진이 말을 이었다.“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저 안정을 취하고 흥분하지 않는다면 문제없을 거야.”‘큰일이네, 흥분하면 안 된다니...’남초윤이 입술을 짓이기며 혀끝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임신 초기니, 휴대전화 너무 오래 사용하지 마. 전화에도 방
남초윤은 심호흡하며 애써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태아가 불안정한 상태로 임신한 조유진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일을 얼마나 더 감출 수 있을까?전화를 끊은 남초윤은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었다.아래층 마당에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육지율이 본가에서 돌아온 것이었다.남초윤은 배현수에게로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지만, 배현수의 전화는 꺼져있었다.배현수와 백소미의 약혼 소식은 빅 뉴스인데, 육지율이 내막 정도는 알 것 같아 남초윤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막 집안으로 들어서던 육지율은 마중 나온 남초윤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웬일로 이렇게 적극적이에요?”남초윤은 귀찮다는 듯이 그의 농담을 흘려듣고 진지하게 물었다.“배현수와 백소미가 약혼한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요?”육지율은 놀랄 것 없다는 듯이 답했다.“알고 있었는데 왜요?”남초윤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배현수는 왜 유진이를 그렇게 먼 스위스까지 보내서 임신시키고, 본인은 엄씨 가문의 딸과 약혼하는 거예요? 지금 유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어요...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남초윤은 더 깊이 생각하기 무서웠다.육지율이 담담하게 답했다.“감정에 있어서 이유는 없어요. 이건 현수와 조유진의 일이에요. 옳고 그름은 우리가 판단하는 게 아니에요.”육지율은 겉으로 보기에는 따듯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은 냉정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 관련된 일에 끼어드는 건 싫어했다.특히 친구의 감정사에 그러했다. 감정사에 끼어들기 시작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이전 배현수가 3년 동안 감방에 갇혀있을 때, 육지율은 조유진이 이기적인 여자라 배현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 사람들의 감정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또한 이성 사이에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지 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육지율은 다이아몬드 커프스단추를 떼어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
남초윤은 육시율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필요 없어요.”그녀는 육씨 가문에서 지금까지 대접받아 본 적이 없었다.남재원이 비열한 방법으로 그녀를 육씨 가문이라는 높은 곳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에게 억지 부지리 말고 육씨 가문 어른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며느리가 되면 된다고 타일렀다.하여 육씨 가문의 어른들이 뭘 하라고 하면 뭘 했고, 육지율은 끊임없이 남씨 가문의 사업에 투자했다.하지만 이제 그녀도 남재원은 사업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자한 자금이 200억도 넘어가고 있지만 손실만 나서 그녀로 하여금 육씨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지금 꿈속에서조차 남씨 가문의 사업이 얼른 망하기를 바랐다.육씨 가문의 어른들이 뒤에서 어떻게 수군거리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 사람들은 제각각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었다.“육씨 가문에서 뭘 보고 그런 애를 들였는지 모르겠어요. 친정에 매번 사업자금을 대주기 위해 집에 들인 것도 아닌데, 2년이 지나도록 아이 하나 없으니... 지율이를 속박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집안에 들인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거만한 성격을 지닌 육지율에게서도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그냥 이 일자리가 싫은 거예요 아니면 육씨 가문에서 마련해준 일자리라서 싫은 거예요?”육지율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김성혁도 그녀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김성혁이 던져준 동아줄을 잡은 건가?’남초윤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침착히 답했다.“아직 일자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요. 어머님께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남... 초...”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소통을 거부한 것이다.무시당한 육지율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전에 자신의 월급이 적다고 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육지율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몸을 사리는 강 여사는 사적으로 사람을 꽂아주지는 않을 것이었다.육씨 가문의 기업에 가기 싫어하는
한편, 스위스.조유진은 하루 종일 멍하니 침대맡에 기대어 있었다. 핸드폰 보려고 한 순간, 셀리나에게 빼앗겼다.“사모님, 눈 나빠져요. 그러지 마시고 뭐 좀 드세요.”셀리나가 저녁을 챙겨왔다.입 맛이 없는 조유진을 위해, 셀리나는 주방에 부탁해 죽을 만들어 왔다.조유진은 침대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몸이 뻐근했다.“식탁으로 가서 먹고 싶어, 침대에서 먹으려고 하니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셀리나는 유난히 조심스럽게 조유진을 대하며 조언을 건넸다.“사모님, 배 속의 아기님을 위해서라도 조금 참으세요.”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조유진은 그래도 타협해서 죽을 다 먹었다.“셀리나, 오늘 하루 종일 핸드폰도 별로 안 봤어. 잘 만큼 다 잤고, 주식 좀 보고 싶은데, 핸드폰 좀 줄래?”하지만 셀리나는 고집스러웠다.“사모님, 임신 중이신데 그런 건 보지 마세요. 정신건강에 해로워요. 주식 상황을 보면서 정력도 써야 하고, 머리도 써야 하고, 걱정도 쌓이고 안정을 취하는 데 안 좋습니다.”조유진이 실소하며 답했다.“뭐가 그렇게 심각해?”하지만 셀리나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조유진은 점점 더 상황이 의심스러웠다.‘내가 핸드폰을 보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네... 초윤이도 그랬는데... 뭐 감추는 거라도 있나? 설마, SY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현수씨한테...?’셀리나가 나가자, 선유가 조유진을 찾아왔다.“엄마, 드디어 깨났네! 하루 종일 잤어!”조유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선유야, 태블릿 좀 가져다 엄마 좀 보여줄래?”“좋아! 근데 엄마 핸드폰은?”“셀리나가 가져갔어. 엄마 눈이 나빠질가 걱정스러운가 봐. 태블릿 챙겨올 때 셀리나한테 들키면 안 돼, 알았지?”선유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옷 속에 감춰서 올게! 엄마, 나 믿어!”조유진이 웃으며 답했다.“알았어.”선유가 태블릿을 챙겨와 조유진에게 건넸다.조유진은 바로 트위터에 접속했다.송인아의 팬들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잘 접속
“그 성행 그룹의 엄씨 가문이 맞아! 재력으로는 SY 그룹이랑 맞먹는데,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달라! 성행 그룹은 제일 처음에 부동산 자재로 시작한 기업이야. 이후에는 배터리, 에너지 사업으로 돌렸지!”“그건 알고 있어! 지난해, 성행 그룹과 SY 그룹이 협력했잖아. SY 그룹에서 전기차를 만들 때, 성행 그룹과 협력했지. 성행 그룹에서 SY 그룹에 배터리를 공급해 줬잖아. 설마, 협력할 때 엄씨 가문의 아가씨랑 배 대표님께서 눈이 맞은 건가?”“맙소사! 비즈니스로 맺어진 커플! 결혼 후, 사랑으로 이어지는 커플! 너무 좋아!”“조햇살 같은 신데렐라가 재벌 그룹의 대표와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너무 올드해! 그런 이야기는 지겹다! 엄씨 가문의 아가씨와 배 대표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근데... 조햇살도 신데렐라는 아니지 않아? 조햇살도 이전 충남 시장의 딸인데? 비록 아빠의 권력은 끝이 났지만, 그래도 신데렐라는 아니지 않아?”“권력이 끝이 났다며, 그럼 신데렐라지! 그것도 소문이 안 좋은 셀럽!”조유진도 무슨 정신으로 댓글들을 다 읽었는지는 몰랐다.이틀 전의 뉴스였다.배현수가 어제저녁 스위스로 오기 전, 이미 발생한 일이었다.하지만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해줄 수 있지?뉴스를 본 그녀는 가슴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다.‘아니야,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어제저녁, 배현수는 그녀를 업고 대성당 안으로 가, 무릎 꿇으며 프러포즈했다. 그리고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워주며 귀국 후, 혼인신고하고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다.그는 언제나 조유진의 것이라고, 그녀만의 것이라고 했다.조유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묵묵히 태블릿을 선유에게로 건네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선유야, 엄마 갑자기 목이 마르네. 셀리나 아줌마한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해줄래?”조유진은 선유를 내보냈다.한참을 회복한 후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심란했던 탓일까, 복부가 당겨왔다.심호흡을 몇
배현수의 핸드폰은 계속 꺼져있는 상태였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그는 이미 도착한 지 한참이 되었을 시간이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핸드폰이 계속 꺼져있을까?뉴스의 내용을 생각하며, 조유진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셀리나는 더 이상 조유진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사모님, 흥분하지 마세요. 일정이 늦어졌을 수도, 혹은 시차 때문에 적응 중일 수도 있잖아요. 아직 상태가 불안정하신데 감정이 격해지면 안 돼요.”이렇게 큰일을 마주했는데, 어떻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말인가?조유진은 거실로 가 여권을 찾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서랍 안에 넣어뒀는데 말이다.조유진은 서랍을 뒤지며 물었다.“셀리나, 내 여권 못 봤어?”“사모님, 저는... 저는 못 봤습니다.”셀리나가 말을 더듬었다.조유진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고개를 들어 캐물었다.“내 여권 가져갔어?”셀리나가 어찌 감히 그런 일을 하겠는가. 그녀는 다급히 해명했다.“사모님, 아니에요. 다른 곳에 뒀을 수도 있죠,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하지만 조유진은 분명 모든 여권과 증명서를 이곳 서랍에 두었다. 이틀 전에도 봤었다.위치를 잘못 기억할 리는 없었다.중요한 여권과 증명서를 어떻게 아무렇게나 놓을 수 있었을까.셀리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조유진이 차갑게 말했다.“여권 돌려줘. 안 주면, 재발급받을 거야.”조유진의 단호한 태도를 본 셀리나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께서 여권 재발급을 받으러 가신다면 제가 운전해 대사관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받으려면 최소한 일주일, 아무리 급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삼일은 걸렸다.아침, 배 대표가 떠나기 전, 사모님의 여권과 증명서들을 그녀에게 맡기며 절대 돌려주지 말라고, 귀국시켜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전공 석화 사이, 조유진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온몸이 그 자리에 굳어 있었고,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입술을 짓씹으며 웃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이아몬드 반지가 바닥에 팽개쳐졌다. 경도가 강한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힘껏 던지다 보니 나무 바닥에 작은 홈이 파였다.빛을 잃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는 그렇게 외롭게 구석에 박혔다.셀리나가 앞으로 나서며 위로하려 했다.“사모님...”그 호칭을 듣자, 조유진은 바로 말을 잘랐다.“사모님? 내가 무슨 사모님이야.”그녀는 배 대표의 사모님이 아니었다.그녀와 배현수는 정당한 명분이 없었다.순진하게도 몇 마디의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갔다.셀리나는 한편에서 속수무책으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면 할수록 실수만 쌓이고, 조유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다.조유진이 쓴 웃음을 지었다.그녀의 처지가 배현수가 해외에 숨겨둔 정부와 무슨 다를 바가 있다는 말인가.정말 다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라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다면, 그녀도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그에게 매달리지 않을 터였다.하지만 배현수는 왜 이런 방식을 선택해 그녀를 능욕하는 것일까?심지어 어젯밤 깊은 스킨십을 나눌 때,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키스하며 수없이 그녀에게 속삭였다.“유진아, 나는 네 거야. 너만의 것이야.”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배현수도 뱉은 말을 안 지킬 수 있구나, 배현수도 사람을 솎 일수 있구나 싶었다.조유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손톱을 손바닥 깊이 박아 넣었다.‘거짓말쟁이, 정말 거짓말쟁이야!’온 세상 사람들이 배현수가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만 제일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 큰 그림이었다.어젯밤, 배현수가 그녀에게 SY의 우 씨 영감의 본처는 대제주시, 첩은 미국에 있다고 한 사실이 떠올랐다. 어느 날 그의 부인이 갑자기 스위스로 찾아와 어린 선유를 납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우스웠다.고상함의 대표인 조유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첩이 되겠는가.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더욱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셀리나, 여권 재발급 받으러 갈 거야. 귀국할 거야.”
조유진은 임신한 지 4주밖에 되지 않았다자궁 적출술은 매우 빨랐다. 그녀는 30분 만에 수술실에서 나왔다.마취가 끝난 후, 그녀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누워있었다.셀리나가 그녀의 병상을 지켰다.“사...”사모님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셀리나는 의도적으로 말을 바꿨다.“아가씨, 선유는 아직 집에 있어요. 기분도 안 좋으실 텐데 선유를 데리고 와서 말동무라도 하게 해드릴까요?”조유진이 고개를 저었다.“혼자 있고 싶어. 선유는 아직 어리니 이런 일은 알면 안 좋아.”“그러면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주방장한테 얘기해서 만들어 올게요. 금방 수술을 마쳤으니, 체력도 떨어지고 영양 보충하셔야죠.”“그냥 가볍게 죽이나 먹자.”“알겠습니다.”한참 침묵을 지킨 조유진이 쉰 목소리로 불쑥 물었다.“배현수, 이제는 연락돼?”셀리나가 숨을 들이 삼켰다.조유진이 수술실로 들어간 이후, 셀리나는 계속하여 배현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핸드폰이 꺼져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셀리나는 조유진이 충격을 받을지 걱정되어 결과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셀리나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배 대표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핸드폰이 계속 꺼져있는데, 어려운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조유진이 실망한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다.“됐어. 어차피 아이도 유산됐는데. 연락이 닿으면 또 뭐해.”그녀가 제일 필요로 할 때, 배현수는 그녀의 옆에 없었다.그녀의 옆에 있었던 사람은, 그가 배정해 준 셀리나 집사뿐이었다.조유진이 임신의 기쁨을 공유하기도 전에, 아이는 곁을 떠났다.올 때도, 갈 때도 뜻밖이었다.조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납작한 복부를 쓰다듬었다.이미 잃은 아인데, 아이의 아빠가 모른다고 무슨 일이 생길까?조유진이 그를 미워할 수 있다면, 그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는 기꺼이 이 소식을 그에게 알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배현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