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98화

Author: 남희은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5-13 19:00:00
강이찬이 블루브릿지 바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바깥에는 이미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12월의 대제주시는 진작 추운 겨울로 접어들었다.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 추웠다.

눈보라 속에 서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휴대폰이 울리자 발신인도 보지 않고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에서 날카로운 욕설이 들려왔다.

“강이찬 씨, 내 딸과 언제 이혼할 거예요? 당신 여동생 때문에 우리 미경이 배 속의 아이까지 잃었는데 어떻게 여동생만 감쌀 수 있어요. 재벌 집 사모님? 안 하면 그만이에요! 눈치 좀 챙기고 빨리 우리 미경이와 이혼하세요! 안 그러면 당장 대제주시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과 당신 여동생의 악행을 고발할 거니까!”

조윤미이다. 심미경을 위해 불평하고 있었다.

술을 잔뜩 마신 강이찬은 온몸에 술기운이 돌았고 목소리도 약간 취해 있었다.

그는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이혼 안 하면 어떡할 건데요? 항상 다른 사람 먼저 배려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조윤미가 다시 말하기 전에 그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

강이진은 이미 죽었다.

그의 유일한 친척은 이제 심미경뿐이다.

심미경은 그의 반쪽이자 배우자이며 아내이다. 두 번 다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강이찬은 휘날리는 눈을 무릅쓰고 성큼성큼 나정 아파트로 걸어갔다.

이곳에는 심미경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아파트 근처로 가기도 전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이찬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심미경도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은 눈 속에 선 채 서로를 바라봤다.

며칠 못 본 사이 강이찬은 많이 야위고 초췌해졌다.

비참하게 죽은 강이진이 그에게 큰 타격을 준 것 같다.

길 가다가 만난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심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찾으러 온 거예요?”

이곳은 천우 별장과 그의 회사 모두 꽤 거리가 있었다.

강이찬은 그녀 앞에 다가가 손에 든 슈퍼마켓 쇼핑백을 받아 들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무거워요. 내가 들게요.”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599화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의 물건이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강이찬은 그녀를 뒤에서 덥석 껴안으며 말했다.“미경 씨,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미경 씨가 천우 별장에 있을 때만 그곳이 집 같았고요.”강이찬은 그녀의 목덜미 뒤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당장 데일 것만 같았다.그의 잠긴 목소리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떨림이 있었다.따뜻한 액체가 그녀의 옷깃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목이 꽉 막힌 심미경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찬 씨만 원한다면 천우 별장으로 들어오려는 여자는 많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 수프를 만들고 숙취 후에 죽도 끓여 줄 거고요. 인터넷 검색만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강이찬 씨, 이런 일들은 나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에요...”강이찬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하지만 내가 사랑한 사람은 오롯이 미경 씨에요.”“뭐... 뭐라고요?”“심미경, 사랑한다고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미경 씨, 사랑해요.”심미경은 얼굴이 경직되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필사적으로 그를 따라다닐 때,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너무 많은 상처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 그는 사랑한다고 말했다.세상에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하지만 같은 시간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강이찬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돌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미경 씨, 나와 집에 가요, 네? 미경 씨가 곁에 없는 동안 정말 일조차 할 수 없었어요. 처음 알았어요. 오랫동안 함께 산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생활에 미경 씨가 있었어요. 꼭 마치 그림자처럼 내 주위에 항상 있었죠. 미경 씨, 나에게는 이제 당신밖에 없어요.”강이찬은 눈이 빨개진 채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자리에 얼어붙은 심미경은 그를 밀치지도 그렇다고 응답도 하지 않았다.강이찬은 그녀를 두 손으

    Last Updated : 2024-05-13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0화

    인연은 있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 이 말은 강이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심미경의 손을 천천히 놓아준 후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한참 후, 강이찬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물었다.“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2천만 원을 보낸 거예요?”심미경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예전에 회사를 대표해 대제주시 이과대학에 장학금을 후원했던 거 기억나요?”강이찬은 뭔가 생각이 난 듯했다.2년 동안 그는 회사를 대표하여 학교에 찾아가 자주 강의를 했고 기업을 대표하여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이런 일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평범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상할 게 없었다.심미경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기억 안 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별 의미가 없으니까. 당신이 지원한 사람 중에 저도 있었어요.”물론 강이찬에게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다.그가 지원한 학생은 아주 많다.하지만 후원자에게 있어서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강이찬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그러니까 그때부터 나를 안 거예요?”심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나중에 대학 4학년 때 인턴을 하려고 준비 중일 때,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으셔서 수술해야 했어요. 하지만 2천만 원이 부족했죠. 나와 엄마는 어디서 돈을 구해야 할지 초조해하고 있었고요. 나도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막무가내로 이찬 씨에게 전화했어요. 그런데 이찬 씨가 흔쾌히 빌려줬어요. 비록 2천만 원이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돈이었어요.”강이찬의 눈빛이 반짝였다.“나중에 우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것도...”“대학교에 다닐 때 비즈니스 영어를 전공했어요. 동시통역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구인 사이트에서 이찬 씨의 회사에 프런트 안내원을 모집하는 것을 봤죠. 그래서 출근하면서 시험준비를 하려고 했어요.”심미경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사실

    Last Updated : 2024-05-1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1화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다. 배현수는 이 눈이 자기를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순간, 하늘마저 그를 버린 것 같다. 이렇게 큰 눈은 그가 걸어온 흔적을 이내 덮어버렸다.발자국은 이미 희미해졌다.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스위스의 겨울도 눈이 내리고 있다.밖은 온통 새하얗게 뒤덮여 있다.엄창민은 조유진과 선유를 무사히 이곳으로 모셔다드린 뒤 어제 남성으로 돌아갔다.조유진은 선유와 함께 근처 쇼핑몰을 둘러보며 매장에서 플래티넘 커플링을 고른 뒤 별장으로 향했다.녀석은 저녁을 먹은 후, 개인 선생님을 따라 단어 몇 개를 배웠다. 그러고는 태블릿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베이지색 양털 담요를 걸치고 개인 선생님을 배웅했다.대문을 열자마자 정원에 낯익은 커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검은색의 펑퍼짐한 코트를 입은 채 눈밭에 서 있는 그 사람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매우 눈에 띄었다.조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꿈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남자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유진아.”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조유진은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슬리퍼를 신은 채 뛰쳐나갔다.그의 앞까지 뛰어갔을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배현수가 그녀를 덥석 잡아주었다.조유진은 바로 그의 품에 안겼다.배현수는 이 떠밀림에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잡았다.실소를 터뜨리며 손을 들어 그녀의 콧등을 톡 쳤다. “왜 뛰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잖아.”하지만 조유진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싼 채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어떻게 갑자기 오게 된 거예요? 우리 보러 올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니죠?”몇 가지 질문을 연거푸 물었다. 희고 청순한 작은 얼굴에 희열이 선명했다. 배현수는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꼭 껴안았다.

    Last Updated : 2024-05-1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2화

    따뜻한 방 안에 들어갔다.배현수는 품에 안은 그녀를 소파에 내려놓고는 그녀 앞에 반쯤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차가운 그녀의 발을 어루만졌다.조유진은 소파에 두 손을 짚은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아직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안 했어요. 왜 갑자기 스위스에 온 거예요? 불시에 점검하러 온 거예요?”배현수는 일어나 그녀 옆에 앉더니 그녀를 자기 다리에 앉혔다. 두꺼운 담요를 잡아당겨 그녀의 다리를 덮었다.그리고 완전히 자기의 품에 안았다.그녀는 그렇게 배현수의 무릎에 앉은 채 온몸을 기대었다.“엄창민은? 갔어?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오후에 갔어요. 성행 그룹에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스위스에 있던 며칠간 전화가 끊이지를 않았어요.” 엄창민도 이렇게 바쁜데 배현수가 얼마나 바쁜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바쁜 사람이 어떻게 스위스로 그녀를 보러 왔을까?조유진은 이상한 마음에 물었다.“스위스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배현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난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널 채워주러.”깊은 눈 밑의 웃음은 농담이면서도 진지한 듯 보였다.조유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초롱초롱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이렇게 먼 곳에 왔다. 자그마치 비행시간만 열 시간이 넘는다. 그런데 단지 생리적인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배현수의 스타일 같지 않다.그녀가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배현수의 큰 손은 이미 그녀의 날씬한 등을 끌어안더니 소파 아래로 그녀를 눌렀다. 그리고 깊은 키스를 나눴다.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나 보고 싶었어?”“응...”그의 그윽한 눈빛에는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조유진은 귀가 빨개진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심장은 하염없이 두근거렸다.거실에는 때마침 하인과 집사가 없었다.게다가 배현수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났다. 며칠 동안 못 본 사이에 그리움은 배로 커졌다. 조유진은 소파에 누운 채 그에게 몸을 맡겼다. 키스

    Last Updated : 2024-05-15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3화

    조유진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그거 없어요.”그녀에게 키스하던 배현수는 미처 반응을 못 한 듯 쉰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없어?”조유진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콘돔.”뜨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조유진은 다시 옷을 입더니 겉옷을 걸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선물을 가지러 갔다.배현수는 허탈함에 빠져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한밤중에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했다. 조유진이 다시 왔을 때 배현수는 이미 풀었던 벨트를 맸고 긴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조유진은 선물을 들고 걸어왔다.“사이즈 맞을 것 같은데 한번 해볼래요?”짙은 파란색 벨벳 상자를 열었다.안에 두 개의 스터드가 박힌 플래티넘 커플링이 있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으로서 화려함은 없었지만 대범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침대 옆에 앉아있는 배현수가 말했다.“네가 산 거니까 네가 끼워줘.”조유진은 그의 약지에 있던 은반지를 빼고 새 플래티넘 반지로 갈아 끼웠다.사이즈가 딱 맞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피부가 하얗고 뼈마디가 뚜렷한 배현수의 긴 손가락에 플래티넘 반지가 끼워졌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은은하고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다. 욕망이 가득해 보이는 손에 반지가 끼워지자 족쇄처럼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났다.하지만 욕망은 더욱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금욕을 외칠수록 더 참을 수 없는 법이다. 배현수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너의 것은?”조유진이 여자 커플링을 그에게 건네줬다.배현수는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줬다. 약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약지에 입술을 맞췄다. 두 사람은 또 한참이나 한데 부둥켜안고 있었다. 이때 조유진은 문득 무슨 생각이 난 듯 말했다.“아 참, 선유가 아직 현수 씨가 온 줄 모르니까 가서 불러올게요.”자리에서 일어나서 선유를 부르러 가려고 했다.그러자 배현수는 그녀를 덥석 끌어당기며

    Last Updated : 2024-05-15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4화

    조유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를 켰다.‘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같이 사진 한 장을 찍었다.사진 속 조유진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껴안고 V를 그리고 있었다.배현수는 그녀를 업고 있다가 표정 관리를 미처 하지 못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유진의 배경이 아주 잘 되어줬다.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나와 같이 찍는 거야, 아니면 셀카를 찍는 거야?”조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탐구하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현수 씨의 얼굴은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못생기게 안 나와요.”정확히 말하면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다 잘생겼다.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사각지대가 없이 곳곳에서 심각한 분위기 풍기고 있었다.선명한 이목구비는 자체적으로 필터와 고급스러움을 갖추고 있다.배현수도 사진이 잘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위로 올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물었다.“사진 나에게도 보내줘.”“필터로 포토샵 좀 해서 보내줄게요.”배현수는 인상을 찌푸렸다.“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못생기지 않았다며? 그런데 왜 포토샵 하는데?”“나만 포토샵 할 거예요.”그러니까 남은 못생기게 나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이거지?...이내 두 사람은 대성당에 도착했다.늦은 밤이라 그들은 옆문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교회 안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텅텅 비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이 사진을 찍기 위해 교회에 들어온 줄 알았다.옆에 있던 조유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목사님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갑자기 목사님을 찾아서 뭘 하려고?”조유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옆에 선 배현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위스예요. 한국의 언론 기자들도 없고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요. SY그룹의 주식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신경 쓸 필요 없고요. 현수 씨, 우리를 방해하던 모든 외력들이 여기 스위스에는 없어요. 나와 결혼해 줄래요?”비록 조유진은 애국심이 강한 사람으로서

    Last Updated : 2024-05-1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5화

    조유진은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대사가 틀렸잖아요.”가난하든 부유하든, 아프든 건강하든 이어야 맞지 않을까?배현수는 담담하게 웃더니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틀리지 않았어. 나와 같이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와 결혼하는 이유는 당연히 더 나은 삶을 위해서지. 만약 조유진이 배현수에게 시집가서 고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야. 결혼도 무의미하고.”조유진은 웃으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와 함께라면 고생쯤은 기꺼이 할 수 있어요... 현수 씨, 좋아요.”“후회 안 할 자신 있어?”조유진은 코를 훌쩍이며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하지 않아요.”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녀의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끼워졌다.배현수는 일어나 살짝 몸을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신랑이 신부에게 키스해도 될까요?”하지만 묻는 동시에 키스가 시작되었다.배현수는 한 손으로 조유진의 볼을 감싸 안더니 부드럽고 정감 있게 키스를 나눴다.두 사람은 코끝을 살짝 맞대고 있었다.조유진은 눈을 살짝 뜨고 물었다.“우리 이제 부부가 된 건가요?”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알고 있던 배현수는 위로하듯 말했다.“귀국하면 혼인신고도 하고 결혼식도 해야 해.”조유진은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고개를 살짝 젖히며 말했다.“당신은 이제 내 거예요.”“응, 나는 이제 네 거야. 배현수의 마누라님.”배현수는 지갑에서 가족 카드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조유진은 카드를 손가락에 끼운 채 말했다.“가족용이에요?”남자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이번에는 돌려주지 마, 배씨 부인.”“그럼 원하는 만큼 써도 돼요?”“얼마든지.”돌아가는 길, 그의 어깨에 엎드려 있는 조유진은 궁금한 듯 물었다.“우리 둘이 싸우면 카드를 정지시킬 거예요?”배현수는 실소를 터뜨렸다.“유진아, 내가 그렇게

    Last Updated : 2024-05-1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606화

    하지만 배현수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욕을 하면 더 울 거잖아.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달래야 하고.”조유진은 흐느끼며 배현수와 같이 교실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샅샅이 뒤졌다. “600만 원짜리 목걸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잃어버렸어요. 그냥 팔아도 돈이 되는 건데.”배현수는 그녀를 덥석 끌어안고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찾지 마. 계속 찾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 더 사줄게.”그러자 조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급히 말했다.“아니요, 됐어요. 하나 더 샀다가 또 잃어버리면 그때는 진짜 현수 씨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을 거예요.”배현수는 그녀의 작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일부러 혼내는 척했다.“또 울면 진짜 사줄 거야.”“그럼 다음 달에 쫄쫄 굶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그때, 조유진은 이제 막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배현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그는 교수님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유망한 주식 몇 개를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조유진과 열애 후 그는 공동계좌를 개설했다. 주식에 넣어두고 팔기 힘든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금을 공동계좌에 넣어두었다.명목상 공동계좌였지만 그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조유진이 전부 관리했다.평소 월세와 수도세, 전기, 가스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뺀 나머지 돈은 거의 조유진의 용돈이었다.하지만 당시 조유진은 나이가 어리고 재테크도 서툴렀다. 게다가 배현수가 그녀를 아끼는 바람에 매달 중순이 되기 전에 조유진이 카드 속 생활비를 다 써버려도 말다툼 한번 한 적이 없었다.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더더욱 따지지 않았다.조유진은 결국 미안한 마음에 카드를 돌려주며 돈 관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관리하면 물 쓰듯 펑펑 쓴다고...하지만 배현수는 미안한 듯 말했다.“내가 돈을 너무 적게 벌어서 쓸 돈이 부족하네.”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충분히 많다면 생활비를 어떻게 다 쓸 수 있겠는가?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계좌에 0이 몇 개 있는지와 무

    Last Updated : 2024-05-17

Latest chapter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