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오빠, 오빠 자신을 속이지 마. 오빠와 조유진 사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야! 내가 가지지 못한 사람 조유진도 가질 수 없어! 오빠와 조유진을 항상 저주했어. 서로 배신하고 평생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강이진의 헛소리를 들은 배현수는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피식 웃었다.남자는 고개를 살짝 올리더니 입꼬리를 양옆으로 올리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말 다 했어?”배현수가 고개를 옆으로 한 번 갸웃하자 뒤에 있던 부하들이 다 같이 앞으로 나섰다.뒤돌아선 남자의 눈빛은 음흉하고 흉악했다.“아!”뒤에서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붉고 뜨거운 피가 배현수의 축 늘어진 손등 위로 튀었다.강이진의 입에는 피가 솟구쳐 흐르고 있었다.그저 ‘우우'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더러운 땅을 헤집고 배현수의 발아래까지 기어왔다.그녀의 손이 구두를 만지자 남자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에는 혐오함이 가득했다.강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그녀가 더럽다고 싫어하는 것일까?하지만 이제 그도 깨끗하지 않다.더러워지려면 같이 더러워져야 하지 않겠는가?떨리는 손으로 배현수의 양복바지를 쥐려고 하자 배현수는 그녀의 더러운 손을 발밑에 디딘 후 구두를 꽉 눌렀다.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찬이가 그동안 너무 버릇없게 키웠네. 말할 줄 모르면 입을 다물라는 기본도 안 가르쳤으니... 그렇게 고집을 부리겠다면야 마지막 숨통도 남겨둘 필요가 없겠지.”강이진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배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다시 수옥에 던져놓고 죽기 직전에 강이찬에게 전화해 시신을 데리고 가라고 해.”강이찬과 강이진, 두 남매에게 서로 마지막 얼굴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배현수는 단호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인정은 있었다.강이진을 본 서정호의 눈에 안타까운 눈빛이 스쳐 지났다. 그 모습은... 정말 이루 말할 데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그는 배현수 옆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답했다
조유진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조유진은 2초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헛기침을 하고 바로 말했다.“선유가 계속 전화하라고 재촉해서요. 보고 싶대요. 선유와 얘기 좀 할래요?”배현수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응. 그래.”조유진은 선유를 불러내 녀석에게 핸드폰을 건넸다.전화에서 녀석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아빠?”배현수는 신신당부했다.“엄마가 요즘 많이 피곤하다고 하니까 밤에 푹 주무시라고 하고 게임을 하자고 조르지 마. 알겠지?”“네. 아빠, 며칠 있으면 스위스 가는데 우리 배웅하러 올 거예요?”배현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직 잘 모르겠어.”선유는 작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아빠가 배웅하러 오지 않으면 엄마가 슬퍼할 거예요. 아빠가 가자마자 엄마가 하루종일 멍만 때리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요!”“응, 그래. 엄마에게 전화 좀 바꿔줘.”“네.”선유는 핸드폰을 다시 조유진에게 건넸다.조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설명했다.“선유가 헛소리하는 거예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정말 시간 내기 어려우면 배웅은 안 해줘도 돼요. 어차피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스위스에 가서 좀 살다 올 뿐인데요.”배현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서로의 감정 중 한쪽이 상대방을 압박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조유진은 이 감정을 유지하는 게 따분해지고 감정 자체의 의미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안 돌아올 것도 아니고 단지 스위스에 가서 잠시 머무는 것뿐이다.전화를 끊기 전 배현수가 조유진을 불렀다.“유진아.”“네?”배현수는 몇 초 동안 침묵한 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어.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보고 싶어.”전화기 너머의 조유진은 전화기를 손에 꼭 쥔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귀에 걸
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늘한 어조로 말했다.“할 얘기 없어요. 특히 남녀관계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백소미 씨, 똑똑한 사람은 적의 총구에 일부러 나타나지 않아요.”“배 대표님은 얘기도 안 해보고 내가 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혹시 알아요? 우리 서로 동맹을 맺을 수 있을지? 남녀관계는... 물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겠지만 저도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익 앞에서 감정은 쓸모없는 것이 되죠.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로 저에게 얘기할 기회를 주시지 않을래요?”배현수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더욱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배현수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백소미가 유유히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이 저와 협조하고 싶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목숨까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배현수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살기 어린 기운이 싹 스쳐 지났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협박하다니... 내가 볼 때, 그쪽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 같네요.”백소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저야 그저 다른 사람 손에 놀아나는 바둑알에 불과하죠. 저를 죽인다고 해도 배 대표님 본인 스스로 더 번거로워질 뿐 아무 이득이 없어요.”배현수는 코웃음을 쳤다.“잘 알고 있네요.”“배 대표님, 서심 독에 걸린 것을 알고 있어요. 엄 어르신도 중독되었고요. 배 대표님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겠죠. 드래곤 파의 보스 손에 서심 해독제가 두 개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이 말을 하는 이유는요?”“내 말은... 우리가 같이 협력해서 그 해독제를 얻는 거예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말해봐요.”“해독제 중 한 알은 반드시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배현수는 못마땅한 얼굴로 비꼬았다.“무슨 근거로요? 내가 그렇게 친절하게 보여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해독제를 줄 만큼?”“양보하고 싶지 않아도 양보해야 해요. 해독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그리고 드
차에 앉은 배현수는 여러 번 저울질한 끝에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쪽과 손을 잡으면 해독제를 꼭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배 대표님도 장사꾼이니 잘 알잖아요. 세상의 모든 장사에는 언제든 밑질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어쩌면 수익률이 제일 높은 장사겠죠. 해독제 한 알로 배 대표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이 비즈니스도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배현수는 당연히 이익의 대가를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공짜란 절대 없다.공짜 음식인 것 같지만 실제 가격 표시가 다 되어 있으며 공짜 음식일수록 더 비싸진다.배현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내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배 대표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으니 저도 빙빙 돌리지 않을게요. 드래곤 파는 저에게 가능한 한 빨리 엄씨 가문의 후계자임을 알리고 성행 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라고 해요. 그리고 해독제로 당신을 협박하여 당신과 결혼하라고 강요했고요. 이것을 SY그룹의 문을 두드리는 첫 단계로 삼아 드래곤 파가 점차 그 속에 파고들려 하고요.”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드래곤 파가 이미 판을 다 짜 놓았네요. 그쪽 계획은 뭔데요?”백소미는 조금 전보다 좀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쇼하면서 반항을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해독제를 손에 넣기 전에 외부에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려야 해요. 빨리 결혼해서 드래곤 파가 우리 쪽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해요. 그들의 신뢰를 얻으면 드래곤 파의 한국 아지트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요. 첫 번째 해독제를 받으면 먼저 드릴게요. 하지만 배 대표님이 반드시 끝까지 협조해주셔야 합니다.”백소미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더 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배신으로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백소미가 허심탄회하게 이렇게 많은 정보를 말하는 것을 보니 분명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하지만 배현수는 여전히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하지만
배현수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반지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그러고는 백소미에게 말했다.“오늘 밤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네.”...한밤중이었지만 조유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아마 낮에 잠을 많이 잔 탓에 밤이 되자 오히려 졸음이 싹 가셨다.저녁에 엄창민은 스위스 비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만약 급하면 내일 바로 스위스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조유진은 많이 서운했지만 성남이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내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드래곤 파가 또 무슨 일을 저질러 선유에게 위협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배현수에게 이미 전화 한 통 했다.또 걸면 하루에 두 번 전화를 건 셈이다.사실 조유진은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방해가 될까 봐 걱정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배현수가 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평소 적극적인 조유진이 아니었지만 몸이 뇌보다 더 성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배현수가 진짜로 자고 안 받아도 상관없다.그런데 뜻밖에도 전화가 잠시 울리더니 정말로 연결되었다.조유진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얼굴에 희열이 스쳐 지났다.배현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아직도 일해요? 왜 아직 안 자요?”지금은 새벽 2시이다.보통 때라면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전화기 너머로 배현수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에 그을린 듯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잘 준비 중이야. 너는? 왜 아직도 안 자는데?”“잠이 안 와서요. 창민 오빠가 그러는데 비자가 나왔대요. 내일 오후에 나와 선유를 스위스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현수 씨... 는요? 우리를 배웅하러 올 수 있어요?”“내일 오후에는 못 갈 것 같아.”일부러 미루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대제주시에 이제 막 도착한 상황이라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조유진 또한 그가 바쁜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운한 내색은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지
조유진은 서슴없이 세 글자를 내뱉었다. 배현수는 잠깐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사랑해’라는 세 글자는 다른 커플에게는 너무 평범한 표현일 수 있다.하지만 그와 조유진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변고가 있었다. 너무나 많은 애증과 원한이 가로놓여있었기에 ‘사랑해요’라는 그녀의 말이 더욱 무겁게 들렸다.지극히 내성적인 사람들이라 먼저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하지만 이 말을 직접 들으니 더 감회가 새로웠다.전화기 속의 분위기가 미묘해졌다.조유진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못 들었으면 됐어요. 졸려요. 이만 잘 거예요.”“유진아, 다시 한번 말해줄래?”“말하고 싶지 않아요.”아까는 자연스럽게 툭 내뱉더니 또박또박 말하라고 하니까 오히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배현수가 아니었다. 그는 직접 말했다.“한 번만 더 듣고 싶어.”조유진은 오늘따라 투정을 부렸다. 그러고는 살짝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 갑자기 말하기 싫어졌어요. 스위스에 나와 선유를 보러 오면 다시 말할게요.”“유진아...”“현수 씨, 지금...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러면 그를 안고 그의 귀에 대고 여러 번이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완전히 배현수에게 반쯤 미친 조유진이었다. 계속 말하다 보면 정말 충동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 밤새 대제주시로 돌아가 그에게 한사코 매달린 채 두 번 다시 스위스에 가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전화를 끊으려 하자 배현수가 갑자기 물었다.“엄 어르신의 상태는 어때?”“아직도 안 좋아요. 중환자실에서 겨우 숨만 붙어있는 정도예요. 내일 가기 전에 선유를 데리고 다시 가보려고요. 엄 어르신과 같은 좋은 사람은 평안하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엄 어르신을 많이 좋아해?”묻는 이 말은 의미가 너무 모호했다.조유진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박했다.“엄 어르신마저 질투해요? 엄 어르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많이 도와주셨고요. 말하자면 이상하긴 한데 엄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서정호의 목소리가 들렸다.“강 사장님, 동생이... 거의 죽어갑니다.”큰 이명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며 주위의 모든 잡음을 차단했다.온 세상이 순식간에 빙빙 도는 것 같았다.“강 사장님? 주소를 보내드릴 테니 마지막은 보러 오셔야죠.”머릿속은 윙윙 소리가 났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휴대전화를 쥐고 억지로 버티며 일어선 그는 몸을 비틀거렸다. 얼굴에는 핏기 한 점 없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서정호가 불렀다. “강 사장님?”강이찬은 몇 초 후에야 겨우 쉰 목소리를 냈다.“알… 알겠어요.” 강이찬은 액셀을 힘껏 밟아 서정호가 알려준 주소로 질주했다.연달아 신호 위반도 몇 개 했다.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강이진은 이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몸 전체에 성한 곳 하나 없었고 피부는 짓눌러져 있었다. 입 주위에 마른 핏자국을 그대로 남긴 채 하수구 속에 누워있었다.손을 내밀고 한사코 대문 쪽을 주시하던 그녀는 꼭 마치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았다.강이찬은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이진아?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강이찬의 팔을 움켜쥔 강이진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강이진은 혀가 잘려 그저 ‘윙윙’ 거친 소리만 낼 수 있었다.강이찬을 집요하게 쳐다보더니 그의 손을 잡고는 손바닥에 한 글자씩 적었다.[배.현.수.] 배현수가 이렇게 만들었다.눈을 꼭 감은 강이찬의 두 눈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이진아, 애초에 내 말 듣고 배현수에게서 좀 떨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아. 왜 그렇게 배현수에게 집착한 거야?”만약 강이진이 강이찬의 말을 듣고 좀 조용히 살았다면 적어도 이런 결말은 아닐 것이다.배현수는 악랄하고 수완이 사나워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이찬은 여러 번 일깨워 주었다.강이진은 그의 손바닥에 또 글자를 썼다.[복.수.] ‘오빠, 꼭 복수해 줘.’눈시울이 시뻘게진 강이찬은
천우 별장의 거실은 이미 빈소로 꾸며졌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강이진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심미경이 도착했을 때 강이찬은 밤새 무릎을 꿇은 채 조문하고 있었다.얼굴은 아무런 표정 없이 차가웠고 두 눈만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이진이가 비참하게 죽었어요. 이진이에게 너무 미안해요.”심미경은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인 강이진을 단지 자수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하지만 강이진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강이진이 안정희를 죽인 사실을 배현수에게 폭로한 것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간접적으로 강이진을 죽인 셈이다.심미경은 천천히 몸을 숙인 뒤 손을 뻗어 강이찬을 끌어안았다.“미안해요.”강이찬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미경 씨가 왜 사과해요. 사과할 사람은 저예요.”심미경은 차마 강이찬을 속일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배현수 씨가 그런 수법을 쓸 줄 몰랐어요. 기껏해야 강이진을 몇 번 겁주고 무기 또는 사형에 처하게 할 줄 알았어요...”심미경은 강이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줄 몰랐다. 강이찬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이것들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데요?”“미안해요, 이찬 씨.”강이진이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은 확실히 심미경과 관계가 있었다.강이찬은 두 손으로 심미경의 어깨를 감싸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미경 씨, 왜 당신까지 배현수 편을 드는 거예요? 이진이의 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그녀를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 죽는 순간 온몸에 성한 피부가 한 곳도 없었어요. 모두 썩어 있었어요. 이진이가 갇힌 수옥에는 전부 죽은 쥐들이... 배현수가 얼마나 지독한 인간인데 왜 미경 씨마저 배현수를 돕는 거예요? 미경 씨는 저의 아내예요.”강이찬을 보는 심미경의 마음도 점점 미안함이 번졌다.“미안해요.” 강이진은 이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