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찬의 목소리는 너무 울어 진작 쉬어 있었다.“미경 씨, 제발 나를 떠나지 마요... 잠깐만 이렇게 안아줘요. 잠깐만.”잠깐이라도 상관없다.심미경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를 살며시 껴안았다.강이진은 참혹하게 죽었고 이 죽음은 심미경과 관계가 있다.천우 별장에서 돌아왔을 때까지 심미경은 마음이 뒤숭숭했고 등골이 오싹했다.자고 일어났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온몸은 펄펄 열이 나고 있었다.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은 심미경이 가장 후회했던 일 중 하나이다.다음날 오후까지 잤더니 땀이 나면서 열이 내렸다.강이찬에게 2천만 원을 송금했다.이 돈은 강이찬이 그녀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라고 빌려준 돈이다.그때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어디서 돈을 빌릴지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강이찬에게 전화를 걸었다.뜻밖에도 대범한 이 후원자는 바로 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었지만 흔쾌히 2천만 원을 송금했다.처음부터 끝까지 강이찬은 한 번도 그녀에게 이 돈을 갚으라고 한 적이 없었다.아마 강이찬도 이 일을 잊은 것 같다.하지만 심미경에게 있어 그들의 이야기는 이 2천만 원에서 시작된다.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 끝도 그곳에서 이뤄지는 것이다.만약 그의 여동생 강이진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많은 일들에는 만약이라는 가설이 없다....성남 공항.엄창민은 커피 한 잔을 사 조유진에게 건네며 말했다.“비행기 탑승까지 30분 남았는데 배현수 씨에게 다시 전화해 보는 게 어때?”조유진은 뜨거운 라떼를 들고 머뭇거리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어젯밤 한밤중에 전화했어요. 지금쯤 회의 중이라 통화하기 불편할 수도 있어요.”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통화하고 싶지만 단지 핑계를 대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기에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가는 길에 가장 흥분한 사람은 선유였다.녀석은 밖에 나가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뉴스 속보를 본 엄창민은 순간 머리가 띵했다.뉴스 헤드라인에서 말하는 ‘엄환희’는 조유진일까, 백소미일까?선유는 엄창민의 다리 옆에 앙증맞게 서서 머리를 갸웃하고 물었다.“창민 아저씨, 왜 그러세요?”“응? 아무것도 아니야.”조유진이 돌아왔을 때 엄창민은 이미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이 뉴스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고 기사의 여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유진과 선유가 스위스로 떠난다는 사실은 아직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다.이때 홀 안내방송에서 탑승 알림이 울렸다.엄창민이 바로 말했다.“가자.”조유진은 어린 선유의 손을 잡았고 엄창민은 이들 뒤에서 걸으며 세 사람이 같이 탑승구로 향했다.성남에서 스위스까지 직항이지만 빨라야 10시간 정도 걸린다.이륙 전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힐끗 들여다봤다.부재중 전화도 부재중 메시지도 없었다.선유는 옆에 앉아 큰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엄마, 우리 곧 이륙하는데 아빠와 영상통화 안 해?”조금 있으면 휴대폰 신호도 끊길 것이다.조유진은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오후 3시 반이다.지금쯤 바쁜 배현수는 미팅 중일 가능성이 크기에 조유진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냥 스위스에 무사히 도착해서 아빠에게 영상통화 할까? 마침 스위스 풍경도 구경시켜주고.”그러자 옆에 있던 엄창민이 귀띔했다.“스위스와 국내 시차가 7시간 정도야. 스위스에 도착하면 빨라야 밤일 텐데 그때쯤이면 대제주시가 새벽일 거야. 배현수 씨가 너의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어.”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쥔 채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승무원이 걸어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녕하십니까, 저희 비행기는 곧 이륙합니다. 안전벨트를 잘 착용해 주시고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비행 모드를 전환했다.비행기가 이륙한 후, 선유는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먹기 시작했다. 중식에서 양식을 넘나들며 빵에서 비스킷, 그리고 우유에
손을 들어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약지 위의 은반지에 시선이 꽂혔다. 눈빛에는 근심이 서려 있었다.그러나 이내 자신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고 느꼈다.그저 엉뚱한 악몽일 뿐이다.아마 최근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휴식하지 않은 탓에 헛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배현수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겠는가?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그는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SY그룹, 회장실.서정호는 다리에 모터가 달린 듯 태블릿을 들고 급히 달려왔다.“배 대표님, 엄씨 집안의 외동딸 엄환희와 약혼한다는 기사가 떴는데 뉴스 본문에 첨부된 사진은 백소미... 원고를 보낸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바로 홍보팀에 기사를 내리라고 얘기하겠습니다.”이 기사를 보고 배현수가 화가 치밀어 백소미나 엄씨 집안에 따지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배현수는 아주 덤덤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그럴 필요 없어.” 순간 대표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서정호는 조심스럽게 귀띔했다.“그런데 조유진 씨가 이 뉴스를 보면 오해하지 않을까요?”배현수는 어두운 눈빛으로 시계를 힐끗 바라봤다.지금쯤 조유진과 선유가 탄 비행기는 이미 출발했을 것이다.물론 이 기사는 배현수가 외부에 뿌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다만 백소미와 약속하자마자 저쪽에서는 지체 없이 기사를 낼 줄 몰랐다. 보아하니 백소미가 그보다 더 빨리 해독제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다.여기까지 생각한 배현수는 한마디 지시했다.“성행 그룹과 백소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보고해.”서정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배 대표님, 백소미와 진짜로 약혼하실 겁니까? 그러다가 혹시라도 조유진 씨가 알면...”조유진의 외유내강인 성격상 이 일을 안다면 아무리 배현수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곁에 계속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우선 해독제를 얻는 것이 제일 급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아.”해독제를 얻어야만 그와
조유진과 선유는 해외에 왔지만 배현수는 모든 것을 매우 적절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중년쯤 되어 보이는 집사 셀리나는 조유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사모님, 배 대표님이 미리 저에게 다 얘기했습니다. 한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식 요리사를 배치했고요. 배가 고프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배가 고프면 바로 알려 주세요. 요리사에게 마침 상을 차리라고 얘기했는데 입맛에 맞는지 드셔보실래요? 맞지 않으면 다른 요리사를 찾겠습니다.”늦은 시간이라 조유진도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비행기 안에서 기내식 먹었어요. 준비 안 해도 됩니다.”“알겠습니다. 방은 이미 제가 다 깨끗이 치웠어요. 오시느라 피곤했을 텐데 욕조에 몸 좀 담그세요. 방금 하인에게 뜨거운 물을 받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오일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조유진은 사실 그렇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셀리나,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번거롭게 준비할 필요 없어요.”셀리나는 공손히 말했다. “스위스에 오시면 초반에 적응하기 어려우실 거라고 배 대표님이 저희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사모님이 주인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게 당연하고요. 요청 사항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저희가 개선하겠습니다.”집 안에 들어서니 실외에서 느꼈던 한기가 싹 가시고 금세 몸이 따뜻해졌다.잠시 휴식을 취한 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욕실에는 하인이 이미 뜨거운 물을 받아 놓았고 조유진이 옷을 벗는 것을 도우려 하고 있었다.불편함을 느낀 조유진은 바로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하면 돼요. 나가보세요.”하녀는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무슨 일 있으면 다시 불러주세요.”“네.”하녀가 나가고 나서야 조유진은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탄 탓에 피곤했는지 욕조에 기대어 잠이 들 뻔했다.선유가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를 목청껏 부르며 달려왔다.“엄마! 아빠에게서 영상통화가 왔어!”조유진은 아직 욕조에 몸을 담근
“혼자 가지러 갈 수 있어.”선유는 순진한 작은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엄마, 할 수 있어?”조유진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선유가 욕실을 나간 후에야 그나마 난감한 기색이 줄었다.“일단 일어나서 몸 좀 닦고 다시 영상통화 할게요.”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고 할 때 배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냥 이대로 해.”영상 너머 배현수는 책상에 앉아 회사 일을 하고 있는 듯 가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휴대전화 영상 속 조유진을 보기도 했다.진지하고 금욕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말에 조유진의 얼굴은 빨개졌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유진아, 화면이 비뚤어졌어.”조유진 헛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삐뚤게 논 거라고 말해도 될까?이렇게 놓지 않으면 완전히 노출된다.그녀는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물이 좀 차가워요, 일어나야겠어요.”핸드폰을 욕조 위에 ‘탁’하고 놓았다. 배현수 쪽 영상에는 순식간에 커다란 천장만 보였다.조유진은 옆에 서서 몸의 물기를 닦았다.휴대전화 너머로 남자의 나지막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농담하듯 들려왔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영상통화 했는데 천장만 보여줄 거야?”조유진은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천장을 안 보면 뭘 보고 싶은데요?”“애기야, 너도 알잖아.”알고 싶지 않다.하지만 ‘애기’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조유진은 잠옷을 입은 뒤에야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얼굴로 마주 보며 말했다.“이제 봐도 돼요.”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지만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필요한 게 있으면 셀리나에게 얘기해. 알아서 해줄 거야.”조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만족시켜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떤 것들은 충족시키지 못하죠.”배현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필요한 게 있어?”조유진은 얼굴이 빨개졌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을 시켜 나와 선유를 챙겨주는 것보다 차라리 직접 우리 옆에 있는 게 어때요?”
배현수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마음이 급해진 조유진은 뭔가 확인하려는 듯 다시 물었다.“혹시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거예요? 현수 씨가 다른 사람과 결혼반지를 끼는 꿈을 꿨어요.”배현수는 겉으로는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커플링까지 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어?”길쭉한 약지에 확실히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밤새 마음이 불안했던 조유진도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그러고는 오른손을 들어 약지의 은반지를 눈앞에 흔들었다. “나도 끼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은반지를 너무 오랫동안 껴서 다 산화된 것 같아요. 바디워시로 깨끗하게 안 씻기고요. 치약으로는 좀 깨끗하게 닦을 수 있을까요?”“종이 호일에 소금 한 숟가락을 넣고 끓인 물을 부어 잠시 담가두면 표면의 산화물이 사라질 거야.”조유진은 처음 듣는 방법이었다.“정말요?”배현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응, 전기화학 반응이야. 호일에 소금을 넣으면 알루미늄이 좋은 촉진제가 되거든, 그러면 소금이 제공하는 전해질 환경에서 산화은을 은으로 환원시켜. 그리고 뜨거운 물은 실험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어. 세척하고 나면 은반지가 광택이 날 거야.”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배 대표님은 교과서 지식을 생활 팁으로 잘 사용하시네요.”하지만 이 은반지는 너무 낡았다.당초 배현수가 선물한 것이라 조유진은 계속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하지만 높은 지위에 있는 지금의 배현수에게 약지에 낀 은반지는 왠지 그의 신분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조유진은 컬러가 변하지 않는 플래티넘 반지를 사서 커플링으로 선물할까 생각 중이었다.백금은 금속의 성질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색이 변하거나 산화가 되지 않는다. 꼭 마치 그들의 감정처럼 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 은반지처럼 좋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머릿속의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입이 먼저 움직였다.“나와 선유를 보러 스위스에 오면 선물 하나 줄게요.”“무슨 선물?”밀당하는 조유진도 꽤 오랜만이다.“일단 비밀이에요. 나중에
배현수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스위스가 아침일 때 여기는 오후야. 오후엔 내가 제일 바빠. 유진아.”“그럼 어떡해요?”배현수는 너무 미안했지만 최대한 감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앞으로 매일 전화할 수 없을지도 몰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영상통화 할게. 응?”“그러니까... 그 말은 나더러 하지 말라는 거예요?”“해도 돼.” 잠시 멈칫했던 배현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못 받을 수 있어.”조유진은 다소 서운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그런데... 언제 나와 선유를 보러 스위스에 올 거예요?”“요즘은 안 될 것 같아.”“그럼 며칠에 한 번 전화할 거예요?”“일주일에 한 번, 괜찮아?”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오래요?”다른 사람들은 장거리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거나 영상통화 하는 것은 너무 적지 않을까?아니면 스위스에 오면 정말 이 정도로 사람이 달라진단 말인가?배현수는 연락을 끊을 작정일까?조유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눈에 띄게 다운된 모습이었다.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달랬다.“유진아,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여기 일들만 처리하면 너와 선유를 보러 스위스로 갈게.”이렇게 얘기하는데 조유진 입장에서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이렇게 낮은 자세로 그녀를 달래니 말이다.조유진도 자꾸 투정 부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정말 바쁜 것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대답했다.그러자 배현수가 다시 재촉했다.“빨리 자, 늦었어.”보아하니 그도 급한 일이 있어서 통화를 빨리 끝내야 하는 것 같았다.충분히 눈치가 있는 조유진이었지만 애틋한 마음도 사실이었다.“현수 씨.”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전화를 끊기 싫어서이다.배현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심호흡하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늦은 시간인데 아직도 안 졸려?”조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비행기에서 잠을
배현수가 다시 깨어났을 때 심장은 마치 짓밟혔다가 다시 붙어버린 것처럼 아팠다.조금만 움직여도 누군가가 잡아당기듯 아파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송하진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누워서 푹 쉬어요. 이런 몸으로 뭐하려고요?”배현수는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댄 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여긴 웬일이세요?”“하, 내가 안 왔더라면 저승사자가 진작 데려갔을 거예요. 쓰러진 후, 아주머니가 저에게 전화했어요.”장은숙은 송하진이 배현수의 개인 주치의라고만 생각할 뿐, 다른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배현수는 손을 뻗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움켜쥐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송하진은 호통을 쳤다.“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배현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송하진 씨, 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별로 없어요.”“전에 처방해드렸던 약이 독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오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저도 이제 얼마 남았는지 확답을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최대한 늦춰보도록 노력할게요. 해독제를 찾으면 저에게 먼저 주세요. 어떤 성분인지 분석해 볼게요. 만약 희소성분이 아니면 약재를 찾기 쉬우니 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독제를 복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을 하기 전에 배현수 씨는 꼭 살아 있어야 해요.”송하진의 말은 진실 반, 거짓 반, 위로 반, 사실 반이었다.해독제를 얻어서 성분을 테스트하고 약을 복제한다고 해도 저승사자와의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매우 낮았다.배현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독성을 지연할 수 있는 약이 있나요?”송하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또 먹으려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약은 독의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먹고 나서 다시 독이 발작할 때 더 아플 거예요. 독이 더 심하게 발작할 거고요. 그저 겉으로만 발병을 지연시킬 뿐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에요.”“괜찮아요,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하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