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스위스가 아침일 때 여기는 오후야. 오후엔 내가 제일 바빠. 유진아.”“그럼 어떡해요?”배현수는 너무 미안했지만 최대한 감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앞으로 매일 전화할 수 없을지도 몰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영상통화 할게. 응?”“그러니까... 그 말은 나더러 하지 말라는 거예요?”“해도 돼.” 잠시 멈칫했던 배현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못 받을 수 있어.”조유진은 다소 서운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그런데... 언제 나와 선유를 보러 스위스에 올 거예요?”“요즘은 안 될 것 같아.”“그럼 며칠에 한 번 전화할 거예요?”“일주일에 한 번, 괜찮아?”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오래요?”다른 사람들은 장거리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거나 영상통화 하는 것은 너무 적지 않을까?아니면 스위스에 오면 정말 이 정도로 사람이 달라진단 말인가?배현수는 연락을 끊을 작정일까?조유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눈에 띄게 다운된 모습이었다.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달랬다.“유진아,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여기 일들만 처리하면 너와 선유를 보러 스위스로 갈게.”이렇게 얘기하는데 조유진 입장에서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이렇게 낮은 자세로 그녀를 달래니 말이다.조유진도 자꾸 투정 부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정말 바쁜 것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대답했다.그러자 배현수가 다시 재촉했다.“빨리 자, 늦었어.”보아하니 그도 급한 일이 있어서 통화를 빨리 끝내야 하는 것 같았다.충분히 눈치가 있는 조유진이었지만 애틋한 마음도 사실이었다.“현수 씨.”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전화를 끊기 싫어서이다.배현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심호흡하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늦은 시간인데 아직도 안 졸려?”조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비행기에서 잠을
배현수가 다시 깨어났을 때 심장은 마치 짓밟혔다가 다시 붙어버린 것처럼 아팠다.조금만 움직여도 누군가가 잡아당기듯 아파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송하진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누워서 푹 쉬어요. 이런 몸으로 뭐하려고요?”배현수는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댄 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여긴 웬일이세요?”“하, 내가 안 왔더라면 저승사자가 진작 데려갔을 거예요. 쓰러진 후, 아주머니가 저에게 전화했어요.”장은숙은 송하진이 배현수의 개인 주치의라고만 생각할 뿐, 다른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배현수는 손을 뻗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움켜쥐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송하진은 호통을 쳤다.“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배현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송하진 씨, 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별로 없어요.”“전에 처방해드렸던 약이 독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오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저도 이제 얼마 남았는지 확답을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최대한 늦춰보도록 노력할게요. 해독제를 찾으면 저에게 먼저 주세요. 어떤 성분인지 분석해 볼게요. 만약 희소성분이 아니면 약재를 찾기 쉬우니 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독제를 복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을 하기 전에 배현수 씨는 꼭 살아 있어야 해요.”송하진의 말은 진실 반, 거짓 반, 위로 반, 사실 반이었다.해독제를 얻어서 성분을 테스트하고 약을 복제한다고 해도 저승사자와의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매우 낮았다.배현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독성을 지연할 수 있는 약이 있나요?”송하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또 먹으려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약은 독의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먹고 나서 다시 독이 발작할 때 더 아플 거예요. 독이 더 심하게 발작할 거고요. 그저 겉으로만 발병을 지연시킬 뿐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에요.”“괜찮아요,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하루라
그리고 실제로 스위스로 날아간다고 해도 전용기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여객기를 타고 가면 출입국 정보가 있을 것이고 드래곤 파에게 바로 들킬 것이다. 그러면 백소미와의 약혼 소식이 거짓이라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그동안 인터넷에서 한 모든 일은 드래곤 파 사람들에게 조유진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조유진을 곁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조유진은 절대 그의 약점이 아니었다.백소미가 엄씨 집안의 외동딸이 된 후, 드래곤 파 사람들은 진짜 외동딸을 찾는 것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었다. 어젯밤, 성행 그룹은 최신 속보를 발표했다.엄준의 딸 엄환희가 순조롭게 그룹 이사회에 들어가 그룹 업무를 주관할 것이다....대제주시 블루브릿지 바에서 강이찬이 테이블을 잡아 술을 마셨다.얼굴이 시뻘게진 그는 분명 많이 취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마지막 잔을 들고 원샷을 하려고 할 때 다른 한 손이 그의 잔을 낚아챘다.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은 슬플 때일수록 취하기 어려워요. 취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질 거예요.”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전혀 모르는 낯선 얼굴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나를 알아요?”상대방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SY그룹 강 사장님, 맞으시죠? 당연히 알다마다요.”강이찬은 입꼬리를 가볍게 잡아당기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SY 그룹에서 진작에 나왔어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과찬 받아들이기 어렵네요.”말을 마치자마자 벗어 놓은 양복 외투를 들고 일어나 가려고 했다.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은 오른손으로 왼손가락에 있는 암룡반지를 돌리며 말했다.“SY그룹과 배현수와의 관계를 그렇게 끊고 싶으시다면 저에게 주식을 팔지 않을래요? 가격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줄게요.”강이찬은 이 사람이 SY그룹의 라이벌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지분을 인수해 배현수에게 대항하려는 것이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생각하는 금액이 워낙 높아서요.”그러자 그 사람
강이찬이 블루브릿지 바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바깥에는 이미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12월의 대제주시는 진작 추운 겨울로 접어들었다.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 추웠다.눈보라 속에 서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휴대폰이 울리자 발신인도 보지 않고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전화에서 날카로운 욕설이 들려왔다.“강이찬 씨, 내 딸과 언제 이혼할 거예요? 당신 여동생 때문에 우리 미경이 배 속의 아이까지 잃었는데 어떻게 여동생만 감쌀 수 있어요. 재벌 집 사모님? 안 하면 그만이에요! 눈치 좀 챙기고 빨리 우리 미경이와 이혼하세요! 안 그러면 당장 대제주시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과 당신 여동생의 악행을 고발할 거니까!”조윤미이다. 심미경을 위해 불평하고 있었다.술을 잔뜩 마신 강이찬은 온몸에 술기운이 돌았고 목소리도 약간 취해 있었다.그는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이혼 안 하면 어떡할 건데요? 항상 다른 사람 먼저 배려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조윤미가 다시 말하기 전에 그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강이진은 이미 죽었다.그의 유일한 친척은 이제 심미경뿐이다.심미경은 그의 반쪽이자 배우자이며 아내이다. 두 번 다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강이찬은 휘날리는 눈을 무릅쓰고 성큼성큼 나정 아파트로 걸어갔다. 이곳에는 심미경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아파트 근처로 가기도 전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강이찬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심미경도 그를 보았다.두 사람은 눈 속에 선 채 서로를 바라봤다.며칠 못 본 사이 강이찬은 많이 야위고 초췌해졌다.비참하게 죽은 강이진이 그에게 큰 타격을 준 것 같다.길 가다가 만난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심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 찾으러 온 거예요?”이곳은 천우 별장과 그의 회사 모두 꽤 거리가 있었다.강이찬은 그녀 앞에 다가가 손에 든 슈퍼마켓 쇼핑백을 받아 들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무거워요. 내가 들게요.”심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의 물건이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강이찬은 그녀를 뒤에서 덥석 껴안으며 말했다.“미경 씨,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미경 씨가 천우 별장에 있을 때만 그곳이 집 같았고요.”강이찬은 그녀의 목덜미 뒤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당장 데일 것만 같았다.그의 잠긴 목소리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떨림이 있었다.따뜻한 액체가 그녀의 옷깃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목이 꽉 막힌 심미경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찬 씨만 원한다면 천우 별장으로 들어오려는 여자는 많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 수프를 만들고 숙취 후에 죽도 끓여 줄 거고요. 인터넷 검색만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강이찬 씨, 이런 일들은 나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에요...”강이찬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하지만 내가 사랑한 사람은 오롯이 미경 씨에요.”“뭐... 뭐라고요?”“심미경, 사랑한다고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미경 씨, 사랑해요.”심미경은 얼굴이 경직되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필사적으로 그를 따라다닐 때,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너무 많은 상처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 그는 사랑한다고 말했다.세상에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하지만 같은 시간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강이찬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돌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미경 씨, 나와 집에 가요, 네? 미경 씨가 곁에 없는 동안 정말 일조차 할 수 없었어요. 처음 알았어요. 오랫동안 함께 산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생활에 미경 씨가 있었어요. 꼭 마치 그림자처럼 내 주위에 항상 있었죠. 미경 씨, 나에게는 이제 당신밖에 없어요.”강이찬은 눈이 빨개진 채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자리에 얼어붙은 심미경은 그를 밀치지도 그렇다고 응답도 하지 않았다.강이찬은 그녀를 두 손으
인연은 있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 이 말은 강이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심미경의 손을 천천히 놓아준 후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한참 후, 강이찬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물었다.“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2천만 원을 보낸 거예요?”심미경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예전에 회사를 대표해 대제주시 이과대학에 장학금을 후원했던 거 기억나요?”강이찬은 뭔가 생각이 난 듯했다.2년 동안 그는 회사를 대표하여 학교에 찾아가 자주 강의를 했고 기업을 대표하여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이런 일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평범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상할 게 없었다.심미경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기억 안 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별 의미가 없으니까. 당신이 지원한 사람 중에 저도 있었어요.”물론 강이찬에게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다.그가 지원한 학생은 아주 많다.하지만 후원자에게 있어서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강이찬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그러니까 그때부터 나를 안 거예요?”심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나중에 대학 4학년 때 인턴을 하려고 준비 중일 때,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으셔서 수술해야 했어요. 하지만 2천만 원이 부족했죠. 나와 엄마는 어디서 돈을 구해야 할지 초조해하고 있었고요. 나도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막무가내로 이찬 씨에게 전화했어요. 그런데 이찬 씨가 흔쾌히 빌려줬어요. 비록 2천만 원이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돈이었어요.”강이찬의 눈빛이 반짝였다.“나중에 우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것도...”“대학교에 다닐 때 비즈니스 영어를 전공했어요. 동시통역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구인 사이트에서 이찬 씨의 회사에 프런트 안내원을 모집하는 것을 봤죠. 그래서 출근하면서 시험준비를 하려고 했어요.”심미경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사실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다. 배현수는 이 눈이 자기를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순간, 하늘마저 그를 버린 것 같다. 이렇게 큰 눈은 그가 걸어온 흔적을 이내 덮어버렸다.발자국은 이미 희미해졌다.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스위스의 겨울도 눈이 내리고 있다.밖은 온통 새하얗게 뒤덮여 있다.엄창민은 조유진과 선유를 무사히 이곳으로 모셔다드린 뒤 어제 남성으로 돌아갔다.조유진은 선유와 함께 근처 쇼핑몰을 둘러보며 매장에서 플래티넘 커플링을 고른 뒤 별장으로 향했다.녀석은 저녁을 먹은 후, 개인 선생님을 따라 단어 몇 개를 배웠다. 그러고는 태블릿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베이지색 양털 담요를 걸치고 개인 선생님을 배웅했다.대문을 열자마자 정원에 낯익은 커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검은색의 펑퍼짐한 코트를 입은 채 눈밭에 서 있는 그 사람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매우 눈에 띄었다.조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꿈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남자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유진아.”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조유진은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슬리퍼를 신은 채 뛰쳐나갔다.그의 앞까지 뛰어갔을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배현수가 그녀를 덥석 잡아주었다.조유진은 바로 그의 품에 안겼다.배현수는 이 떠밀림에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잡았다.실소를 터뜨리며 손을 들어 그녀의 콧등을 톡 쳤다. “왜 뛰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잖아.”하지만 조유진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싼 채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어떻게 갑자기 오게 된 거예요? 우리 보러 올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니죠?”몇 가지 질문을 연거푸 물었다. 희고 청순한 작은 얼굴에 희열이 선명했다. 배현수는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꼭 껴안았다.
따뜻한 방 안에 들어갔다.배현수는 품에 안은 그녀를 소파에 내려놓고는 그녀 앞에 반쯤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차가운 그녀의 발을 어루만졌다.조유진은 소파에 두 손을 짚은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아직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안 했어요. 왜 갑자기 스위스에 온 거예요? 불시에 점검하러 온 거예요?”배현수는 일어나 그녀 옆에 앉더니 그녀를 자기 다리에 앉혔다. 두꺼운 담요를 잡아당겨 그녀의 다리를 덮었다.그리고 완전히 자기의 품에 안았다.그녀는 그렇게 배현수의 무릎에 앉은 채 온몸을 기대었다.“엄창민은? 갔어?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오후에 갔어요. 성행 그룹에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스위스에 있던 며칠간 전화가 끊이지를 않았어요.” 엄창민도 이렇게 바쁜데 배현수가 얼마나 바쁜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바쁜 사람이 어떻게 스위스로 그녀를 보러 왔을까?조유진은 이상한 마음에 물었다.“스위스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배현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난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널 채워주러.”깊은 눈 밑의 웃음은 농담이면서도 진지한 듯 보였다.조유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초롱초롱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이렇게 먼 곳에 왔다. 자그마치 비행시간만 열 시간이 넘는다. 그런데 단지 생리적인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배현수의 스타일 같지 않다.그녀가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배현수의 큰 손은 이미 그녀의 날씬한 등을 끌어안더니 소파 아래로 그녀를 눌렀다. 그리고 깊은 키스를 나눴다.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나 보고 싶었어?”“응...”그의 그윽한 눈빛에는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조유진은 귀가 빨개진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심장은 하염없이 두근거렸다.거실에는 때마침 하인과 집사가 없었다.게다가 배현수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났다. 며칠 동안 못 본 사이에 그리움은 배로 커졌다. 조유진은 소파에 누운 채 그에게 몸을 맡겼다.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