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떨어지면서 옥상 난간을 덥석 잡았다. 손바닥은 불에 덴 듯 아팠다.이때 배현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당황한 조유진은 그의 손을 바로 잡지 못했다.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윽박질렀다.“빨리 안 잡고 뭐 해!”조유진은 힘겹게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었다.배현수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옥상에 있던 다른 동료들도 급히 달려와 조유진을 끌어올렸다.한바탕 소동으로 조유진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신선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아까는 긴장되어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진 과장님은... 그대로 떨어졌나?’조유진은 동공이 확장되더니 무의식적으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이때 배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경찰이 15층 옥상에 에어백을 설치했어. 병신이 되었어도 죽지는 않았을 거야.”“…”조유진은 인명피해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옥상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각자 흩어졌다.커다란 옥상에는 배현수와 넋이 나간 조유진만이 남겨졌다.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조유진은 일어나고 싶어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힘을 쓸 수가 없었다.배현수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를 부축했다.그녀가 중심을 잡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배현수는 일관되게 차가운 모습이었다.조금 전 조유진을 살리기 위해 다급한 표정을 짓던 배현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조유진은 가쁜 숨을 안정시켰다.“대표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 살려준 건 사심이 있어서였어.”“사심이요?”배현수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도도하게 말했다.“죽음은 가장 간단하게 이번 생을 끝낼 수 있는 해탈에 가까운 짓이지. 그래서 쉽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네가 죽으면 누가 대신 속죄하겠어?”배현수는 말을 끝내자마자 옥상을 떠났다.조유진은 제자리에서 그가 시선에서 천천히 사라지기까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발신자는 남초윤이었다.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조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스트레스받게 일과 관련된 일은 꺼내지 말고. 가방 사고 싶다면서? 가방이나 보러 가자.”“아, 맞다. 이번 주 토요일 지율 씨 부모님 만나기로 했는데 아버님이 한 브랜드의 시가를 좋아하시거든. 이 쇼핑몰에도 있으니 일단 먼저 선물부터 사자.”“그래. 지율 씨 부모님 손자를 보고 싶어 하시지 않아?”이 문제 때문에 남초윤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너무 재촉하셔. 토요일에도 그냥 코 박고 밥이나 먹으려고. 무슨 말씀하시든지 그냥 대답만 하고 넘어가려고.”“너도 아이를 좋아하면 생각해 볼 수는 있지. 너 선유 좋아하는 걸 보면 아이가 싫지는 않은 것 같은데.”남초윤은 이마를 만지더니 말했다.“됐어! 선유 이모나 할 거야. 내가 직접 낳기는 싫어! 그리고 지율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놀기도 바쁜데 아이는 무슨!”조유진은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우리는 왜 이러냐? 내가 실패했으면 됐지, 왜 너까지. 너만 행복하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남초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면서 말했다.“어려움을 함께해야 진정한 친구라잖아! 우리 둘이 같이 살까? 내가 선유 아빠로 살고, 너는 선유 엄마로 살고 좋잖아? 남자 만나서 뭐 해?”“그러게. 남자가 바로 모든 죄악의 근원이야. 버리는 것이 낫겠어!”“가자, 쇼핑이 바로 여자의 즐거움이지!”……시가 가게.남초윤은 아주 빨리 시가를 선택했다.직원이 포장을 도와주고 있을 때, 조유진은 한 한약재의 이름을 발견하고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시가 가게에서 한약재도 팔아요?”직원은 웃으면서 말했다.“침향목이라고 합니다. 흡연하실 때 한대 꽂아 넣으시면 목의 불편함을 감소할 수 있고 탈 때 은은한 목향이 풍기면서 폐를 깨끗이 하고 목을 맑게 하므로 흡연으로 인해 신체에 가져다주는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조유진은 흡연하지 않아 이런 것에 대해 잘 몰랐다.“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정말 효능이 있는 거예요?”“그럼요. 저희 가게에서 많은 고객님들
말을 마친 남초윤은 조유진을 끌고 몰래 따라갔다.조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우리가 이대로 몰래 따라가는 거, 안 좋지 않아? 혹시 우리를 스토커로 신고하면 어떻게 해?”남초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런 걸로 신고해? 그럼 나 진작 감옥 갔을 거야. 여기는 쇼핑몰이야. 우리는 그냥 여기로 쇼핑을 온 거고. 저 사람이 쇼핑몰 사장도 아닌데 왜 우리가 겁을 먹어야 해? 가자, 나 가방 사야 한단 말이야.”조유진이 망설이던 사이에 남초윤은 그녀를 끌고 어떤 명품 매장으로 향했다.송인아는 방금 도착한 신상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든 채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배우인 것 같았는데 송인아에게 온갖 칭찬을 쏟아붓고 있었다.“인아 누나는 예쁘고 분위기 있게 생겨서 어떤 가방도 어울리잖아!”송인아는 사치스러운 사람이었다.가방 네다섯 개를 착용해 보더니 전부 직원에게 건넸다.“다 살게요.”남초윤은 가방 하나를 집고 착용하는 척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몰래 그들을 관찰하면서 휴대폰으로 몰래 사진 몇 장을 찍었다.곧이어 송인아는 매장에 아직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연희 언니한테 말했잖아요. 매장 사람 비우라고. 왜 쓸데없는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직원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두 분 어떻게 들어오셨죠? 송인아 님, 노여움을 푸세요. 지금 바로 두 분 나가라고 할게요.”남초진과 조유진은 송인아 그들을 등지고 있었다.조유진은 남초윤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가는 거 어때?”솔직히 그녀는 송인아 주위에 계속 맴도는 것도 귀찮았다.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두 분, 지금 이 시간대는 VIP 고객님께서 방문하셨기에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자리를 피해주실 수...”남초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VIP가 뭐 대단한 사람이에요? 1년에 이 매장에서 얼마나 쓰는데요? 4억? 6억? 10억? VIP 고객이 방
“꼭 이 가게에서 사나 하나요? 대제주에 매장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 매장 왔을 때 당신이 매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신이 나를 못 본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 아니에요? 그리고 나 같은 고귀한 사람은 직접 매장에 와서 사는 일은 거의 없어요. 집사나 비서가 와서 대신 사지. 아니면 매장 매니저가 직접 택배로 보내주거나.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말을 마친 남초윤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더니 턱을 쳐들고는 건방진 눈빛을 선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귀부인이었다.조유진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콜록콜록.”남초윤은 귀부인 역할을 꽤 잘 연기하고 있었다.직원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송인아 님이 먼저 오셨어요. 혹시 여기 잠깐 앉으셔서 디저트 드시면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시간이 아깝거든요. 기다리기 싫어요.”직원은 난처한 얼굴을 보였다.“그럼 송인아 님과 상의를 해볼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송인아가 그 말을 듣더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먼저 왔잖아요!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만약 이 매장에서 누가 나를 몰래 도촬해 나중에 실검까지 오르게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죄송합니다. 화를 푸세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습니다...”“뭘 해결할 수 있다고 그래요?”송인아는 화가 난 바람에 선글라스를 확 벗었다!그녀는 기세등등한 채로 이쪽으로 걸어가더니 남초윤을 보고는 씩 웃었다.“누군가 했더니, 스타 엔터테인먼트 파파라치 아니야? 지금 세상에 파파라치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버나? 1년 동안 샤넬에서 20억이나 쓸 수 있을 정도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여기 가방 하나 못 살 텐데 말이야! 연기하지 말고 당장 꺼져! 당신이랑 말 섞는 것도 시간 낭비야. 나 몰래 찍고 싶은 거잖아? 찍으려면 빨리 찍어. 내 사생활 방해하지 말고 말이야!”남초윤은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송인아 씨, 정말 뻔뻔스럽네요. 자기가 어딜 가나 스타인 줄 아나 봐요? 선글라스를 끼면
성 매니저는 마침 점심 휴식 시간이라 매장에 없었다.하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고, 또 두 사람 모두 중요한 VIP 고객이었으니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성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 매니저는 다급하게 매장으로 돌아왔다.들어오자마자 성 매니저는 남초윤에게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사모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오실 일이 있으면 저에게 미리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제가 잘 모실 수 있지요.”“성 매니저님, 아까 매장 직원분께서 제가 VIP 손님이 맞는지 계속 의심하더라고요. 지금 성 매니저님도 왔으니 저를 도와 증명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매장에서 나가줬으면 하는데요. 상관없는 사람은 모두 내쫓으세요!”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신분이야 증명할 거 있겠습니까? 육씨 사모님을 따라 VIP 패션쇼에도 몇 번이나 참석하셨잖아요. 직원들이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실례를 범한 모양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방금 남초윤을 무시하던 직원은 난감하면서도 황송한 얼굴을 보였다.“사, 사모님이요?”대제주 육씨 가문의 사모님인가?매니저는 얼굴이 굳더니 직원에게 말했다.“윤아 씨, 얼른 사모님께 사과 안 해?”“사모님, 방금은 제가 실수했습니다. 사모님도 못 알아보고...”남초윤은 직원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없어 손을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송인아 씨를 내쫓으면 사과를 받은 거로 할게요.”윤아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그게... 송인아 님은 배현수 대표님과 약혼하실 분이시잖아요. 제가 감히 사모님도, 송인아 님도 건드릴 수 없어요. 배현수 대표님과 육지율 대표님 두 분이 가까운 친구 사이시잖아요. 두 분도 서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이 기회를 빌려 화해를 하시는 건 어떨까요? 배현수 대표님과 육지율 대표님 두 분의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되잖아요.”직원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으나 소용이 없었다.남초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야 육씨 가문의 며느리가 맞죠, 육지율
“그저 조금만 살짝 조사해봤을 뿐이야. 그나저나 조유진, 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너 정말 너무 겁 없는 거 아니야? 배 대표님 몰래 이런 큰일을 벌이다니. 대표님께서 아시면 널 정말 죽여버릴지도 몰라. 너 이 비밀은 정말 무덤까지 끌고 가는 게 좋을 거야.”송인아의 말에 남초윤은 버럭 화를 냈다. “송인아, 내 손에 네 약점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아? 만약 네가 감히 조유진과 선유를 건드린다면 나도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끌어내려 패가망신 시켜버릴 줄 알아.”“그럼 어디 두고 보자고.”송인아는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매장을 나섰다.사실 조유진은 송인아가 이 일을 폭로해버릴 것에 대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송인아가 자신한테도 불똥이 튈만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송인아가 배현수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 절대 배현수가 다른 여인과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저 송인아가 이제 선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선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었다.남초윤은 조유진의 걱정을 눈치를 채기라도 하였는지 조유진을 다독여주었다. “유진아, 걱정하지 마. 송인아에게 그럴 담은 없어. 만약 송인아가 정말 너와 선유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걔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유진이 조금 전의 상황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서정호의 전화가 걸려왔다.“아가씨, 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 산성 별장에 들르시라 하셨습니다.”조유진은 뜻밖의 통보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기고 싱숭생숭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사실 조유진은 배현수와 만나지 않은 지 가히 일주일은 되었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갑자기 그녀를 산성 별장으로 부르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조유진은 먼저 선유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그러고는 선유에 저녁을 차려준 뒤 떠날 생각이었다.떠나기 전, 조유진은 선
검은색의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정원으로 들어섰다.조유진은 다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손히 배현수를 맞이했다.이윽고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차에서 내리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조유진을 향해 걸어왔다.배현수는 질감이 좋아 보이는 검정 셔츠와 정장 팬츠를 차려입고 왼팔에는 벗어둔 양복 슈트가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넥타이는 느슨히 잡아당겨 흐트러져 있었고 셔츠 단추도 세 개정도 풀어헤쳐 섹시한 쇄골을 훤히 드러냈다.평소에 금욕적이고 싸늘하며 엄숙해 보이던 배현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은 그에게서 조금 더 나른한 야성 감이 느껴졌다.배현수는 이내 조유진의 곁에 다가왔다. 조유진은 그러한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를 맡았고 냄새가 깊지도, 하지만 결코 은은하지도 않은 것을 보아 꽤 마신 듯 싶었다.“얼마나 기다렸어?”7시부터 기다렸고 현재는 새벽 1시이니 거의 7시간이 되어갔다.하지만 조유진은 그 어떤 불평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저 담담히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별로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요.”배현수는 눈을 가늘게 치켜뜨고 묵묵히 조유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나도 깊은 눈빛에 조유진은 몸 둘 바를 몰랐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나 뭐 또 잘못했나?’배현수는 그러한 그녀를 그대로 지나쳐 현관문으로 걸어가 지문으로 잠금을 풀며 입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20170710이야. 다음부터는 그대로 바로 들어와.”2017년 7월 10일, 조유진이 법정에서 배현수를 증언한 날이었다.조유진은 순간 멈칫하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대표님께 안 좋은 기억을 심어드렸네요.”조유진의 실책이었다.“내가 이 날짜를 비밀번호로 해둔 건 그저 항상 네가 나의 원수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야. 기억이라면, 너와 나 사이의 기억이라면 그날 법정에서의 일 외에는 모두 잊었어.”배현수는 조유진을 등진 채 얼굴을 어둠 속에 묻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조유진은 눈시울을
마치 배현수가 무슨 짓을 해도 화를 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조유진이 이렇게 고분고분할수록 배현수는 오히려 점점 더 짜증이 났다.그때, 한줄기의 큰 검은 그림자가 조유진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방안에는 무드등의 불빛만이 은은히 비추고 있었고 배현수는 조유진의 눈앞에 멈춰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한테 고마우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 텐데.”“그러면 대표님은 제가 무얼 해주길 원하십니까?”배현수는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곧이어 배현수는 조유진을 그대로 소파로 밀어붙였다.그러고는 조유진을 자신의 품 아래에 가둔 채 무릎을 그녀의 몸 양켠에 꿇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스해줘.”까맣게 그을린 깊은 눈동자가 조유진을 지긋이 바라보았고 그 호수와도 같이 깊은 눈동자 속에는 애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차디찬 싸늘함만이 냄돌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현수는 여전히 조유진의 얼굴을 붉히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는 했다.조유진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뒤로하고 배현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젖히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하지만 그녀의 키스 속에는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무지 예전처럼 깊게 그의 입술을 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더욱 불을 붙이는 것만 같았다.배현수는 큰 손을 조유진의 머리카락 사이에 넣은 채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여 더욱 깊게 입술을 포개 숨을 붙였다.그렇게 두 사람의 혀가 섞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배현수를 마주할 때마다 조유진은 그를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다.조유진은 계속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현수에게 더욱 깊이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분명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계속하여 숨을 섞으며 조유진의 눈가에서 뜨거운 물기가 볼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순간 조유진은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