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조금만 살짝 조사해봤을 뿐이야. 그나저나 조유진, 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너 정말 너무 겁 없는 거 아니야? 배 대표님 몰래 이런 큰일을 벌이다니. 대표님께서 아시면 널 정말 죽여버릴지도 몰라. 너 이 비밀은 정말 무덤까지 끌고 가는 게 좋을 거야.”송인아의 말에 남초윤은 버럭 화를 냈다. “송인아, 내 손에 네 약점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아? 만약 네가 감히 조유진과 선유를 건드린다면 나도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끌어내려 패가망신 시켜버릴 줄 알아.”“그럼 어디 두고 보자고.”송인아는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매장을 나섰다.사실 조유진은 송인아가 이 일을 폭로해버릴 것에 대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송인아가 자신한테도 불똥이 튈만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송인아가 배현수의 아내가 되고 싶다면 절대 배현수가 다른 여인과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저 송인아가 이제 선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선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었다.남초윤은 조유진의 걱정을 눈치를 채기라도 하였는지 조유진을 다독여주었다. “유진아, 걱정하지 마. 송인아에게 그럴 담은 없어. 만약 송인아가 정말 너와 선유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걔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유진이 조금 전의 상황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서정호의 전화가 걸려왔다.“아가씨, 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 산성 별장에 들르시라 하셨습니다.”조유진은 뜻밖의 통보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기고 싱숭생숭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사실 조유진은 배현수와 만나지 않은 지 가히 일주일은 되었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갑자기 그녀를 산성 별장으로 부르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조유진은 먼저 선유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그러고는 선유에 저녁을 차려준 뒤 떠날 생각이었다.떠나기 전, 조유진은 선
검은색의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정원으로 들어섰다.조유진은 다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손히 배현수를 맞이했다.이윽고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차에서 내리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조유진을 향해 걸어왔다.배현수는 질감이 좋아 보이는 검정 셔츠와 정장 팬츠를 차려입고 왼팔에는 벗어둔 양복 슈트가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넥타이는 느슨히 잡아당겨 흐트러져 있었고 셔츠 단추도 세 개정도 풀어헤쳐 섹시한 쇄골을 훤히 드러냈다.평소에 금욕적이고 싸늘하며 엄숙해 보이던 배현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은 그에게서 조금 더 나른한 야성 감이 느껴졌다.배현수는 이내 조유진의 곁에 다가왔다. 조유진은 그러한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를 맡았고 냄새가 깊지도, 하지만 결코 은은하지도 않은 것을 보아 꽤 마신 듯 싶었다.“얼마나 기다렸어?”7시부터 기다렸고 현재는 새벽 1시이니 거의 7시간이 되어갔다.하지만 조유진은 그 어떤 불평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저 담담히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별로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요.”배현수는 눈을 가늘게 치켜뜨고 묵묵히 조유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나도 깊은 눈빛에 조유진은 몸 둘 바를 몰랐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나 뭐 또 잘못했나?’배현수는 그러한 그녀를 그대로 지나쳐 현관문으로 걸어가 지문으로 잠금을 풀며 입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20170710이야. 다음부터는 그대로 바로 들어와.”2017년 7월 10일, 조유진이 법정에서 배현수를 증언한 날이었다.조유진은 순간 멈칫하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대표님께 안 좋은 기억을 심어드렸네요.”조유진의 실책이었다.“내가 이 날짜를 비밀번호로 해둔 건 그저 항상 네가 나의 원수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야. 기억이라면, 너와 나 사이의 기억이라면 그날 법정에서의 일 외에는 모두 잊었어.”배현수는 조유진을 등진 채 얼굴을 어둠 속에 묻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조유진은 눈시울을
마치 배현수가 무슨 짓을 해도 화를 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조유진이 이렇게 고분고분할수록 배현수는 오히려 점점 더 짜증이 났다.그때, 한줄기의 큰 검은 그림자가 조유진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방안에는 무드등의 불빛만이 은은히 비추고 있었고 배현수는 조유진의 눈앞에 멈춰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한테 고마우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 텐데.”“그러면 대표님은 제가 무얼 해주길 원하십니까?”배현수는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곧이어 배현수는 조유진을 그대로 소파로 밀어붙였다.그러고는 조유진을 자신의 품 아래에 가둔 채 무릎을 그녀의 몸 양켠에 꿇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스해줘.”까맣게 그을린 깊은 눈동자가 조유진을 지긋이 바라보았고 그 호수와도 같이 깊은 눈동자 속에는 애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차디찬 싸늘함만이 냄돌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현수는 여전히 조유진의 얼굴을 붉히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는 했다.조유진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뒤로하고 배현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젖히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하지만 그녀의 키스 속에는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무지 예전처럼 깊게 그의 입술을 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더욱 불을 붙이는 것만 같았다.배현수는 큰 손을 조유진의 머리카락 사이에 넣은 채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여 더욱 깊게 입술을 포개 숨을 붙였다.그렇게 두 사람의 혀가 섞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배현수를 마주할 때마다 조유진은 그를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다.조유진은 계속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현수에게 더욱 깊이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분명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계속하여 숨을 섞으며 조유진의 눈가에서 뜨거운 물기가 볼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순간 조유진은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아
선유는 말이 어찌도 많은지 배현수는 선유의 수다를 한참이나 가만히 들어주었다.그리고 그 수다는 조유진이 꿀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배현수는 전화 건너편의 선유에게 다시금 말을 건넸다. “인제 그만 자자. 그래도 무서우면 게임 좀 놀고.”배현수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럽고 인내심이 있었다.조유진은 방문 앞에 멍하니 서서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송인아와 통화하는 건가?’한편 조선유는 못내 아쉬운 듯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말을 건넸다. “알겠어요. 그럼 이만 전화 끊을게요, 아저씨. 잘 자요!”“그래, 잘 자.”조선유와 배현수는 서로 잘 자라는 인사말을 나눈 뒤에야 배현수가 전화를 끊었다.전화가 끊긴 뒤 배현수는 통화기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이 꼬맹이, 정말 너무 친근한 거 아니야?’‘그래도 귀엽기는 하네.’배현수는 분명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유만큼은 싫지가 않았고 마음이 잘 맞았다. 그 이유는 배현수도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같은 시각, 조유진은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배현수가 정말로 송인아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그가 핸드폰을 붙잡고 정말 너무 행복한 미소를 띠고 통화를 하는 것은 아마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일 것이다.조유진은 애써 마음속의 서운한 감정을 지우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꿀물 다 됐어요.”조유진은 꿀물을 배현수에게 건네주며 말을 건넸다.천천히 꿀물을 마시고 나니 통증도 많이 완화되는 느낌이었다.조유진은 갑자기 낮에 매장에서 송인아와 조선유를 마주했던 일을 떠올렸고 배현수가 너무 깊이 빠져들어 송인아가 그를 배신한 것을 알게 되면 더욱 절망하고 모든 것을 엎어버릴까 걱정되었다.조유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최근 인아 아가씨와는 잘 지내시나요?”배현수의 꿀물을 들고 있던 긴 손가락이 조유진의 물음에 순간 뜨끔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갈구 욕망이 가득 찬 깊은 눈망울에 조금 의아했다.‘조유진이 이렇게나 나
조유진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진 아가씨, 만약 아가씨가 대표님 약혼녀였다면 이렇게 저를 몰아붙이셔도 별말 안 할게요. 그런데 아가씨는 약혼녀도 아닌데 제가 대표님한테 달라붙든 말든 아가씨가 흥분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강이진은 단번에 자신의 심보를 들켜버리자 무척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강이진은 괜히 뜨끔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전 그저 그쪽이 여우 짓 하는 거 꼴 보기 싫어서 그래요!”“아니면 아가씨가 좀 대표님한테 저를 이만 놓아달라고 부탁해주세요.”말을 마치고 조유진은 몸을 돌려 고객을 접대하러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조유진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이 강이진으로 하여금 더욱 열불이 오르게 하였다.강이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귀국했다고 했지?”“당연하지! 돌아와서 놀러 다닌 지 일주일이나 되는데. 그럼 이진 아가씨는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을까?”“나 좀 도와줘.”“무슨 일인데?” 전화 건너편의 의문의 남성은 얄미운 목소리로 껄렁댔다.강이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너 여자에 미쳐 살잖아. 내가 방금 눈 봐둔 괜찮은 계집이 있거든? 어때?”“갑자기 이런 좋은 일이 있다고?”“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말해. 어떡할래?”“당연히 데리고 놀아야지!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그걸 놓치는 건 바보 아냐? 그런데…못생긴 여자는 아니지? 먼저 말해두는데 난 아무리 놀기 좋아해도 못생긴 여자랑은 안 놀아.”“사진 보내줄게. 네 마음에 들 거야.”“이야, 강이진, 꽤 의리 있는데?”“하지만 요구가 있어. 보름 안에 걔와 잠자리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서 나한테 보내. 네가 어떤 방식으로 얻든 상관없어. 강압적으로 하든, 부드럽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전화 건너편의 남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 더욱 껄렁대며 입을 열었다. “보름?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나 외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했어. 보름 동안 안 걸려드는 건 성교 불감증이지 않으면 밀당으로 더 큰
그 순간, 육지율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두 손을 마주쳤다. “설마 조유진, 그 여자가 준 건 아니지? 나 방금 생각났어. 어제 남초윤이 조유진을 데리고 우리 아버지께 시가를 사드리려고 쇼핑몰로 갔었어. 이 침향목, 조유진이 사준 거지?”배현수는 잔뜩 굳어버린 얼굴로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야.”“그래.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뭐. 뭘 또 그렇게 엄숙하게 말해. 너는 다 좋은데 그 입이 문제야. 그런데 그 여자도 어차피 가는 김에 보이니까 너한테 사줬겠지. 이것 때문에 마음 약해지지는 마. 담배 같은 취미는 기껏해야 중독되는 게 다겠지만 사랑은 빠지면 답도 없어.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조유진은 배현수에게 있어서 맹독과도 같은 존재였다.육지율은 배현수가 또다시 절망하여 무너져버릴 가봐 두려웠다.배현수는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한 채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아. 난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지지 않아. 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조유진이 그럴 만큼의 매력이 있지도 않아.”육지율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엔 조유진이 그럴 만큼의 매력이 있는 건 확실히 아니야. 하지만 네가 정말 교훈을 섭취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은데.”한창 대학원을 다닐 때 배현수가 자기보다 5살 어린 후배와 연애하면서 그 여자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상대가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건넨 담배도 모조리 끊었다.배현수의 주머니 속에는 조유진의 박하 향 사탕이 가득했다.당시 배현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딸 미래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창창한 미래가 조유진의 손에서 모두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가끔 육지율은 배현수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조유진의 무엇이 그리도 좋아서 아직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지 말이다. 그 감정이 원망이라 할지라도 자그마치 6년 동안 배현수를 따라다녔다.“아 맞다. 곧 있으면
두 여직원은 잔뜩 화가 난 강이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욕을 읊조리며 자리를 피했다.“뭐 잘못 먹은 거 아니에요? 왜 저런대요?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성질 보니까 갱년기라도 왔나 보죠.”강이진은 손을 깨끗이 씻고는 안승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도착했어?”“도착했어. 안 그래도 지금 낚으려고 준비 중이야. 끊어.”강이진은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눈빛 속에는 사악함이 가득했다.…분양 사무실, 로비조유진은 한창 안승호에게 집을 소개해주고 있었다.안승호는 조유진의 설명을 한참 동안 듣고는 선글라스로 이마를 긁적이며 말을 건넸다. “아가씨, 이렇게 말로만 하면 전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데요. 집을 보려면 역시 실물을 봐야죠.”안승호의 요구는 매우 합리적이었다.“그럼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고객님. 제가 고객님을 모델하우스로 안내해 드릴게요.”“그럼 갑시다!”환우 그룹은 선분양 주택이었기에 모델하우스는 이미 다 지어졌고 기타 주택은 아직 공사 단계였다.환우 그룹의 단지에 도착하고 조유진은 계속하여 안승호에게 안내하며 소개해주었다. “비록 아직 완전히 완공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의 다 팔렸습니다. 안 선생님께서 방금 선택하신 55평짜리도 이제 세 개밖에 남지 않았는지라 만약 안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가능한 한 빨리 사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러면 올해 연말이면 집을 내놓을 수 있을 거예요.”“그래요. 그렇다면 그쪽한테서 집 한 채를 살게요. 얼마나 공제해줄 거예요?”조유진은 숨기려는 기색 하나 없이 털털하게 털어놓았다. “2퍼센트면 됩니다.”“그래도 몇천만 원이잖아? 집 파는 게 많이 힘드신가?”“괜찮습니다. 제가 고생은 잘 참아요.”모델하우스에 도착하고 조유진이 불을 켜러 가자 그녀의 뒤에 있던 안승호가 갑자기 발목을 삐고 말았다.“아이고!”조유진은 몸을 돌려 다급히 안승호를 부축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안 선생님?”안승호는 고
조유진은 원래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승호의 말은 점점 더 도를 지나쳤다.조유진은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당찬 목소리로 안승호를 거절했다. “안 선생님께서 업소녀를 찾으러 오신 거면 장소를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파는 건 오직 집뿐입니다.”안승호는 조유진의 대답을 그녀가 일부러 밀당을 하고 있는것이라고 여겨 더욱 교만한 말투로 답했다. “그럼 유진 씨는 새집입니까, 중고집입니까? 물론 전 중고집도 상관없습니다. 가끔 일부 중고집이 오히려 새집보다도 더 재밌거든요.”조유진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분노를 억눌렀다.“안 선생님께서는 중고집과 새집의 차이를 아주 잘 아시나 봅니다. 그럼 안 선생님은 새키인가요, 중고키인 건가요?”안승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조유진은 벌떡 일어나 다리를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안승호의 아랫도리를 가격했다.“헉…큭! 빌어먹을!”안승호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부여잡고는 몰려오는 고통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안 선생님, 본인 키 좀 잘 간수하시죠. 집은요, 저 안 팝니다. 정말 집을 사고 싶으시다면 다른 직원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말을 마치고 조유진은 한치의 미련도 없이 홱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안승호는 허리를 숙여 자신을 꽉 껴안고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조유진! 너 딱 기다려. 반드시 네가 오늘 한 행동에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빌어먹을…세게도 걷어찼다. 젠장!”…같은 시각, 모델하우스 반대편의 건물 안.이 창문을 통해 마침 모델하우스 내부의 상황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강이진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고는 확대하여 조유진과 안승호가 서로 부둥켜안고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듯한 사진을 무더기로 촬영하였다.그러고는 이 사진들을 모조리 그룹 내부의 단톡방에 뿌렸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단톡방은 순식간에 폭발해버렸다.[와, 집 하나를 팔겠다고 자신의 몸까지 팔다니. 역시 대단하다.][역시 여성 판매원이 남성 판매원보다 꿀 빤다니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