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고급 사립병원.혼수상태에 빠진 엄준은 고급 장비에 의지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엄창민, 엄명월, 조유진과 친딸 백소미까지 한데 모였다.병실 밖에서 엄명월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아버지가 너무 갑작스럽게 쓰러지셨어. 구체적인 이유를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성행 그룹의 일은 한시도 늦출 수 없어. 회사 일은 나와 창민 오빠가 맡을게. 아버지가 깨어나면...”엄명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소미가 피식 웃었다.“명월 언니, 요 몇 년 동안 언니와 창민 오빠가 아버지의 오른팔이 되어 주었다는 것을 잘 알아요. 언니와 오빠가 저 대신 회사 일을 봐줘서 너무 고마웠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지금 이렇게 위독한데 빨리 새로운 후계자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회사 임원들이 마음을 못 잡고 소란을 피우면 어떡해요.”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엄명월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새로운 후계자? 설마 너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나는 아빠의 유일한 친딸이에요. 법적으로 상속권이 있는 건 저뿐이고요. 물론 언니와 오빠가 갖고 있던 성행 그룹 주식은 건드리지 않을...”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명월이 코웃음을 쳤다.“네가 아버지의 유일한 친딸이라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의 숨이 붙어있는 한, 네가 성행 그룹의 권력을 잡는 일은 없을 거야. 백소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 혹시 네가 한 짓이야?”“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내가 어떻게 친아빠를 해치겠어요? 수양딸인 언니야말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권력을 잡기 위해 아버지를 해친 거 아니에요?”엄명월은 손가락으로 백소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아빠라는 단어는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엄창민이 나서서 그녀들의 싸움을 말렸다.“싸우려면 밖에 나가 싸워! 여기서 아버지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고!”백소미를 노려본 엄명월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회사 일에 아마추어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진 원인도 아직
갑자기 심장마비라... 설마 드래곤 파에서 엄 어르신에게 손을 썼단 말인가?한편 엄창민은 한쪽에 서 있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환희야, 저 사람... 좀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SY그룹과 성행 그룹은 협력 파트너 관계이기는 해도 사업이란 전쟁과도 같아서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SY그룹의 핵심 인물인 배현수가 엄준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알고 있다. 만약 뒤에서 수작이라도 부리면 성행 그룹은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이때 조유진이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하지만 배현수는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그는 몸을 숙여 선유를 안더니 담담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려 2층 테라스로 향했다.엄창민이 배현수를 꺼리는 것은 당연했다.배현수의 신분이 정말 특별하기 때문이다.엄준은 중환자실의 병상에 누운 채 가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유리창을 통해 엄준을 바라보고 있던 조유진은 가슴이 꽉 막혔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엄준은 그녀에게 부족했던 부성애를 아낌없이 주었다. 조유진에게 엄준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 산이 갑자기 무너져 버린 것이다.미처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그에게 보답도 못 했는데...옆에 서 있던 엄창민은 테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배현수가 느닷없이 조유진을 성남으로 데려왔다.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최근 SY의 행적에 대해 엄창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어느 한 집단에서 SY를 노리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배현수가 직접 조유진을 성남까지 데려다준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테라스에 서 있는 배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는 대제주시에서 온 낯선 번호가 표시되었다.“여보세요?”“혹시 배 대표님이신가요?”전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처음 듣는 듯한 목소리에 배현수가 물었다. “누구시죠?”“심미경입니다. 조유진 씨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요.”그
심미경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배현수는 바로 서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일주일 줄 테니 강이진을 찾아.”음흉한 그의 말투로 보아 강이진이 아마 큰일을 저질렀을 것이다.서정호가 물었다.“강 사장님에게 알릴까요?”“아니. 직접 내 앞에 데려오면 돼.”강이진이 정말로 살인자라면 강이찬은 그녀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사립병원에서 엄준의 상태를 확인한 사람들은 차를 몰고 엄씨 사택으로 돌아갔다.운전은 엄창민이 했고 배현수가 조수석에 조유진과 선유, 그리고 백소미는 뒷좌석에 앉았다.이 조합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차 안 분위기는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이때 백소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 언니, 이번에 성남으로 돌아오신 김에 엄씨 사택에 오래 묵으실 건가요?”“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르신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당분간은 성남을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운전석에서 차를 몰던 엄창민은 배현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환희는 원래부터 우리 엄씨 집안의 식구야. 그룹 내부에도 맡고 있는 일이 있고. 성남으로 온 것은 자기 집으로 돌아온 거야. 환희야, 집에 돌아왔으니 네가 편한 대로 있어.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엄창민은 백미러로 조유진을 힐끗 바라봤다. 이 말은 조유진에게 한 말이었지만 배현수와 백소미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창민 오빠. 부탁드릴게요.”부탁드릴게요. 창민 오빠?귀를 찌르는 두 마디에 배현수는 왠지 너무 따끔했다.심지어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배현수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났고 안색은 한없이 어두웠다.배현수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엄창민은 계속 웃으며 조유진에게 말했다.“네가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아주머니더러 방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어. 너와 선유가 자는 건 문제없을 거야. 그런데 배 대표님까지 따라오실 줄 모르고 게스트 룸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배 대표님, 어떻게...”배현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나는 됐
”음... 아빠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저에게 사탕 사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잖아요. 당연히 좋죠! 그런데 우리 아빠가 안 좋아할 거예요. 창민 아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우리 아빠가 더 좋거든요!”이 말에 엄창민은 웃으며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문질렀다.“선유가 생각보다 효녀네?”선유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얼마나 효녀인데요. 창민 아저씨, 우리 아빠에게서 엄마를 뺏지 마요. 속상해서 오열할지도 몰라요.”엄창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아빠가 오열하는 거 봤어?”“네!”선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거짓말 같지 않았다.엄창민은 막대사탕을 건네주며 말했다.“그래? 아저씨에게 아빠 뒷담화 좀 해봐.”“너무 많은걸요? 사흘 밤낮 얘기해도 부족할 거예요! 창민 아저씨, 남의 뒷담화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잖아.”친딸이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는 엄창민에게 자기 뒷담화를 하는 것을 배현수가 알기라도 하면 선유 엉덩이가 아마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이때 엄창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 표시에 배현수의 이름이 떠 있었다.방금 떠난 사람이 바로 전화를 한다고? “여보세요?”배현수는 인사도 없이 주소를 읊었다.“18굽이 레이싱 트랙, 한 시간 후에 봐요.”18굽이 레이싱 트랙, 이곳은 레이싱용 산길이 아닌가?엄창민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베란다로 나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모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전화기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왜 내가 꼭 갈 거라고 생각하죠?”“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싫으면 됐고요.”엄창민은 이런 배현수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배현수 씨,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잔말 말고 올 거예요, 안 올 거예요?”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잔뜩 귀찮은 말투였다.“갈게요...”배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창민은 알 수 없었지만 조유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엄창민은 무조건 갈 것이다....성남의 18굽
차 문을 열고 긴 다리를 뻗어 레이싱 카에 올라탄 배현수는 나지막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질 일은 없을 거예요.”엄창민은 입꼬리만 올리며 겉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 자식, 정말 안하무인이네?’배현수의 차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엄창민은 손가락을 힘껏 움츠려 차 지붕을 툭툭 쳤다.“이겨도 그게 무슨 약속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죽으라고 하지는 않을게요.”그 말에 엄창민은 말문이 막혔다.“걱정 마세요, 합법적인 일이니까. 엄창민 씨에게 좋은 일이에요.”계속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창민에 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벌써 겁먹은 거예요?”승부욕이 불타오른 엄창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겁먹은 거로 보여요? 18굽이 레이싱 트랙이 누구의 땅인지는 알아요?”“성남에서 길에 떨어져 있는 동전 하나까지 전부 엄씨 집안 거, 아니에요? 18굽이 레이싱 트랙? 엄 대표님의 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엄씨 집안과 같이 거대한 사업에 몸담고 있는 가문이 회색지대의 어두운 사업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카지노, 레이싱 경기장, 경마장.성행 그룹에 입사하기 전, 18굽이 레이싱 트랙은 엄창민이 직접 관리했다.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레이싱을 한 횟수만 한두 번이 아니었고 18굽이 레이싱 트랙에도 매우 익숙했다.하지만 처음 온 배현수는 여기에 몇 개의 레이싱 코너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 사람이 엄창민과 겨뤄서 이길 수 있을까?그것은 헛된 망상이나 다름없었다.뼛속까지 의리를 지키는 엄창민은 쉽게 남의 덕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배현수를 보고 한마디 충고했다.“반 시간 줄게요. 우선 레이스라도 익히는 것은 어때요?”배현수는 바로 거절했다.“아니요, 일찍 도착해서 이미 한 바퀴 달렸어요.”엄창민은 그의 말이 우스울 뿐이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한 바퀴요? 한 바퀴 달리고 이미 익혔다고요? 이따가 사람이 차와
곧이어 빨간색 차와 파란색 차는 두 개의 화살처럼 정상으로 돌진했다.때로는 빨간색이 앞섰고 때로는 파란색이 앞섰다. 또 가끔은 나란히 어깨를 겨누기도 했다.88번 코너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코너였다. 힘껏 액셀을 밟은 엄창민은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산꼭대기에는 거대한 레이싱 플랫폼이 있었다.결승점의 노란색 선을 먼저 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엄창민이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뒤따라오던 파란색 차가 앞으로 돌진하더니 옆으로 홱 돌았다. 파란색 차는 빨간색 차 앞에 가로로 세워졌다.“시X!”속도가 너무 빨라 엄창민은 브레이크를 밟을 겨를도 없었다. 아무리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해도 배현수의 차를 먼저 결승선으로 밀 것이다.가로로 있는 파란색 차와 세로로 있는 빨간색 차의 바퀴는 빠른 속도로 회전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두운 밤, 두 차는 눈부신 불꽃을 내뿜었다.빨간색 차는 어쩔 수 없이 파란색 차를 결승점으로 밀었다.파란색 차의 바퀴가 먼저 노란 선을 넘었다.이번 경기로 엄창민은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간사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장사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배현수... 이렇게 험한 길에서 이 정도로 거칠게 달린다고? 파란색 페라리의 옆구리 중간 부위는 이미 움푹 패어 있었다.엄창민은 빨간색 차를 일정 거리 후진한 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배현수! 당신 미쳤어요? 이러다가 내 차에 치여 죽으면 어떡하려고요! 환희가 일부러 나를 원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거예요?”침착하게 차에서 내린 배현수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엄창민 씨 때문에 죽는 일은 없을 거예요. 죽어도 내 탓이고요.”“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배현수 씨 차의 운전석을 들이받았을 거예요.”“그래서 빠른 속도로 달렸잖아요. 엄창민 씨도 차 운전석을 들이받지 않았고요.”배현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조금 전의 모든 것이 자기와 무관한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그러자 엄창민이 큰소리로 외쳤다.“우리는 목숨을 건
딸깍.작고 밝은 불꽃이 반짝 피었다.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인 배현수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엄창민에게 던졌다.엄창민은 일단 받긴 했으나 피울 생각이 없었다.“평소에 담배를 안 피워서요.”배현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엄창민 씨의 인생에 유진이를 얻지 못하는 것 말고는 다른 걱정거리는 없었을 것 같은데.”농담인 듯 아닌듯한 말투였지만 결코 경멸스럽지는 않았다.“지금 잘난 척하는 거예요?”“부러워요.”차 옆에 기댄 배현수는 입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윽한 이목구비가 희미한 연기에 가려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주 담백하게 한마디만 내뱉었을 뿐이었다.잠시 멍해 있던 엄창민은 이내 피식 웃었다.“내가 부럽다고요? 나에게 있는 것은 배현수 씨도 다 갖고 있잖아요. 나에게 없는 것까지도 다 갖고 있고요. 뭐가 부러운데요? 내가 자유로운 게? 그래서 혼자인 게?”엄창민을 힐끗 본 배현수는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말했다.“시간이 많은 게 부러워요. 유진이를 얻지 못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옆에서 평생 지켜줄 수 있잖아요.”조롱인 듯하면서도 진심인 것 같았다.엄창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뜻이에요? 내가 아무리 스위스에 유진이와 선유를 데려가려 한다고 해도 유진이와 선유가 저를 따라오지 않을 거예요.”배현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했다.“같이 갈 거예요. 그건 내가 설득할 수 있어요.”정말 싫다고 하면 납치해서 보낼 수도 있다.엄창민은 배현수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어떻게 설득할 건데요? 유진이를 속이기라도 하려는 거예요?”“속여서 떠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남은 인생을 안전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거짓말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엄창민은 점점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성남에 엄씨 가문이 있는 한, 유진이를 건드릴 사람은 없어요.”“드래곤 파가 접근할 거예요.”고개를 든 배현수의 눈빛에 음흉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엄창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드
엄창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뭐라고?”전화기 너머의 엄명월은 다급히 말했다.“당장 홍보팀을 통해서 정식으로 입장발표를 해야 될 것 같아. 안 그러면 내일 주주총회에서 임직원들이 난리를 칠 거야. 일단 나는 엄씨 사택으로 먼저 돌아갈게. 근데 오빠는 어디야?”“금방 갈게.”...엄씨 사택으로 돌아가니 집안 분위기는 한껏 더 긴장된 상태였다.엄준이 혼수상태에 빠진 소식은 이미 각종 플랫폼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성행 그룹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추측도 분분했다.정식으로 입장발표를 하지 않으면 내일 주가가 반드시 내려갈 것이다.엄명월은 검색어 화면이 켜진 휴대전화를 ‘쾅’하고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빠, 누가 한 짓일까? 아버지는 어제 쓰러지셨어. 병원에는 우리 몇 명밖에 없었고. 외부인이 이렇게 빨리 소식을 퍼뜨릴 리가 없잖아?”엄명월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엄창민? 조유진? 백소미? 아니면 배현수?그녀의 매서운 눈빛은 이내 구석에 앉아 초콜릿을 먹고 있는 선유에게로 향했다.선유는 초콜릿으로 물든 시커먼 앞니를 드러내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이모, 저 아니에요.”그러자 엄명월은 코웃음을 쳤다.“너에게 그럴 능력이 어디 있겠어?”선유는 다시 대꾸했다.“우리 엄마도 아니에요. 오후 내내 엄마와 같이 있었는데 핸드폰도 별로 보지 않았어요.”아이가 이런 상황에 끼면 안 된다고 판단한 조유진은 선유를 달래 위층으로 보내서 먼저 자게 했다.아래층에서 몇몇 어른들은 아직도 눈치싸움을 하고 있었다.이때 백소미가 목적이 있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아빠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는 게 엄씨 가족에게는 좋을 게 없지만 외부인에게는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겠어요.”그것은 옆에 있는 배현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어쨌든 지금 여기에 외부인은 배현수 말고 아무도 없었다.배현수가 입을 열려 할 때, 조유진이 나섰다.“현수 씨는 내가 데려온 거예요. 어르신이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