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검사 결과를 손에 쥔 심미경은 병원 건물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의사의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심미경 씨, 교통사고로 유산을 하면서 자궁이 많이 다쳤어요. 아마 앞으로 임신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어요. 임신해도 태아로 성장하기 어려울 거고요. 혼전 검사 결과하신 것을 보면 앞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거죠?”창백한 얼굴로 차에 탄 심미경은 ‘쾅’하고 차 문을 세게 닫았다.보고서를 꽉 움켜쥔 심미경은 어느새 눈시울이 시뻘게졌고 눈가에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차올랐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이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통화’버튼을 누른 심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몇 초간 침묵하던 강이찬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 몇 번이나 머뭇거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미경 씨, 어디예요?”“병원이요.”그녀의 쉰 목소리를 들은 강이찬은 바로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어디 아파요? 어느 병원인데요? 내가 바로 갈게요.”“아픈 데 없어요. 혼전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온 거예요.”애써 울음을 참았지만 목소리는 이미 많이 떨리고 있었다.전화기 너머의 강이찬은 그녀의 이상한 목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그녀가 왜 이러는지도 아는 듯했다.강이찬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 심미경이 물었다.“내가 혼전 검사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나에게 숨길 생각이었어요?”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강이찬이 목을 가다듬더니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교통사고 때문에 원기가 많이 상하고 몸도 아직 회복이 안 돼서 말할 수가 없었어요. 몸이 좀 나아지고 결혼식이 끝나면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말하려고 했어요.”“내가 힘들어할까 봐 말을 하지 않은 거예요? 아니면 강이진을 원망할까 봐예요?”“그때는 저도 교통사고가 이진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심미경은 조롱하듯 피식 웃었다. “이제 알았잖아요. 강이진 때문에 내가 유산을 했고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지불한 대가는 매우 컸지만 심미경이 살아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경 씨, 만약 내가 이혼하고 싶지 않다면요?”남자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밤새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말투는 한없이 비굴하고 애달팠다.예전 같았으면 심미경은 분명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제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이도 없고 건강한 신체마저도 없다. 게다가 합법적인 남편은 범인의 도주를 도왔다. 신이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을 알고도 모른 척 용서할 수 없었다.이를 악문 심미경은 단호한 말투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강이진을 도와 진실을 숨기지 않았겠죠. 결국 내가 죽든 살든 이찬 씨는 별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그게 아니면 내가 이찬 씨를 사랑하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 나에게 어떤 짓을 하든 무조건 용서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강이찬 씨, 당신이 너무 밉지만 그런 당신을 사랑한 나 자신이 더 미워요. 당신을 알게 된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고요, 원주에서 같이 대제주시로 돌아온 것이 너무 후회돼요.”만약 그때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벌써 끝났을 것이다. 엄마의 말을 들어야 했었다. 아이를 지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든 동시통역 자격증을 따든 무엇이든 해야 했다. 굳이 사서 고생하며 강이찬의 아내가 될 필요가 없었다. 강이찬에게 시집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고 제일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인제 보니 그와 결혼하는 것은 나락으로 가는 시작이었다.“미경 씨, 어느 병원이에요? 내가 당장 갈게요. 우리 얘기 좀 해요.”심미경은 울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혼하기 전에 다시는 볼 일 없을 거예요. 강이찬 씨, 시간 나면 같이 가정 법원에 이혼수속하러 가요. 4억 원의 예단비는 돌려주지 않을 거예요. 당신 여동생 때문에 내가 유산하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도 없게 되었으니 이 돈은 의료비와 위자료로 생각할게요.”“꼭 이혼해야겠어요?”“강이진의 도
성남, 고급 사립병원.혼수상태에 빠진 엄준은 고급 장비에 의지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엄창민, 엄명월, 조유진과 친딸 백소미까지 한데 모였다.병실 밖에서 엄명월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아버지가 너무 갑작스럽게 쓰러지셨어. 구체적인 이유를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성행 그룹의 일은 한시도 늦출 수 없어. 회사 일은 나와 창민 오빠가 맡을게. 아버지가 깨어나면...”엄명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소미가 피식 웃었다.“명월 언니, 요 몇 년 동안 언니와 창민 오빠가 아버지의 오른팔이 되어 주었다는 것을 잘 알아요. 언니와 오빠가 저 대신 회사 일을 봐줘서 너무 고마웠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지금 이렇게 위독한데 빨리 새로운 후계자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회사 임원들이 마음을 못 잡고 소란을 피우면 어떡해요.”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엄명월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새로운 후계자? 설마 너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나는 아빠의 유일한 친딸이에요. 법적으로 상속권이 있는 건 저뿐이고요. 물론 언니와 오빠가 갖고 있던 성행 그룹 주식은 건드리지 않을...”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명월이 코웃음을 쳤다.“네가 아버지의 유일한 친딸이라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의 숨이 붙어있는 한, 네가 성행 그룹의 권력을 잡는 일은 없을 거야. 백소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 혹시 네가 한 짓이야?”“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내가 어떻게 친아빠를 해치겠어요? 수양딸인 언니야말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권력을 잡기 위해 아버지를 해친 거 아니에요?”엄명월은 손가락으로 백소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아빠라는 단어는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엄창민이 나서서 그녀들의 싸움을 말렸다.“싸우려면 밖에 나가 싸워! 여기서 아버지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고!”백소미를 노려본 엄명월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회사 일에 아마추어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진 원인도 아직
갑자기 심장마비라... 설마 드래곤 파에서 엄 어르신에게 손을 썼단 말인가?한편 엄창민은 한쪽에 서 있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환희야, 저 사람... 좀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SY그룹과 성행 그룹은 협력 파트너 관계이기는 해도 사업이란 전쟁과도 같아서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SY그룹의 핵심 인물인 배현수가 엄준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알고 있다. 만약 뒤에서 수작이라도 부리면 성행 그룹은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이때 조유진이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하지만 배현수는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그는 몸을 숙여 선유를 안더니 담담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려 2층 테라스로 향했다.엄창민이 배현수를 꺼리는 것은 당연했다.배현수의 신분이 정말 특별하기 때문이다.엄준은 중환자실의 병상에 누운 채 가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유리창을 통해 엄준을 바라보고 있던 조유진은 가슴이 꽉 막혔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엄준은 그녀에게 부족했던 부성애를 아낌없이 주었다. 조유진에게 엄준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 산이 갑자기 무너져 버린 것이다.미처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그에게 보답도 못 했는데...옆에 서 있던 엄창민은 테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배현수가 느닷없이 조유진을 성남으로 데려왔다.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최근 SY의 행적에 대해 엄창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어느 한 집단에서 SY를 노리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배현수가 직접 조유진을 성남까지 데려다준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테라스에 서 있는 배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는 대제주시에서 온 낯선 번호가 표시되었다.“여보세요?”“혹시 배 대표님이신가요?”전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처음 듣는 듯한 목소리에 배현수가 물었다. “누구시죠?”“심미경입니다. 조유진 씨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요.”그
심미경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배현수는 바로 서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일주일 줄 테니 강이진을 찾아.”음흉한 그의 말투로 보아 강이진이 아마 큰일을 저질렀을 것이다.서정호가 물었다.“강 사장님에게 알릴까요?”“아니. 직접 내 앞에 데려오면 돼.”강이진이 정말로 살인자라면 강이찬은 그녀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사립병원에서 엄준의 상태를 확인한 사람들은 차를 몰고 엄씨 사택으로 돌아갔다.운전은 엄창민이 했고 배현수가 조수석에 조유진과 선유, 그리고 백소미는 뒷좌석에 앉았다.이 조합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차 안 분위기는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이때 백소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 언니, 이번에 성남으로 돌아오신 김에 엄씨 사택에 오래 묵으실 건가요?”“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르신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당분간은 성남을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운전석에서 차를 몰던 엄창민은 배현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환희는 원래부터 우리 엄씨 집안의 식구야. 그룹 내부에도 맡고 있는 일이 있고. 성남으로 온 것은 자기 집으로 돌아온 거야. 환희야, 집에 돌아왔으니 네가 편한 대로 있어.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엄창민은 백미러로 조유진을 힐끗 바라봤다. 이 말은 조유진에게 한 말이었지만 배현수와 백소미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창민 오빠. 부탁드릴게요.”부탁드릴게요. 창민 오빠?귀를 찌르는 두 마디에 배현수는 왠지 너무 따끔했다.심지어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배현수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났고 안색은 한없이 어두웠다.배현수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엄창민은 계속 웃으며 조유진에게 말했다.“네가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아주머니더러 방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어. 너와 선유가 자는 건 문제없을 거야. 그런데 배 대표님까지 따라오실 줄 모르고 게스트 룸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배 대표님, 어떻게...”배현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나는 됐
”음... 아빠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저에게 사탕 사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잖아요. 당연히 좋죠! 그런데 우리 아빠가 안 좋아할 거예요. 창민 아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우리 아빠가 더 좋거든요!”이 말에 엄창민은 웃으며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문질렀다.“선유가 생각보다 효녀네?”선유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얼마나 효녀인데요. 창민 아저씨, 우리 아빠에게서 엄마를 뺏지 마요. 속상해서 오열할지도 몰라요.”엄창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아빠가 오열하는 거 봤어?”“네!”선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거짓말 같지 않았다.엄창민은 막대사탕을 건네주며 말했다.“그래? 아저씨에게 아빠 뒷담화 좀 해봐.”“너무 많은걸요? 사흘 밤낮 얘기해도 부족할 거예요! 창민 아저씨, 남의 뒷담화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잖아.”친딸이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는 엄창민에게 자기 뒷담화를 하는 것을 배현수가 알기라도 하면 선유 엉덩이가 아마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이때 엄창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 표시에 배현수의 이름이 떠 있었다.방금 떠난 사람이 바로 전화를 한다고? “여보세요?”배현수는 인사도 없이 주소를 읊었다.“18굽이 레이싱 트랙, 한 시간 후에 봐요.”18굽이 레이싱 트랙, 이곳은 레이싱용 산길이 아닌가?엄창민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베란다로 나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모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전화기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왜 내가 꼭 갈 거라고 생각하죠?”“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싫으면 됐고요.”엄창민은 이런 배현수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배현수 씨,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잔말 말고 올 거예요, 안 올 거예요?”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잔뜩 귀찮은 말투였다.“갈게요...”배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창민은 알 수 없었지만 조유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엄창민은 무조건 갈 것이다....성남의 18굽
차 문을 열고 긴 다리를 뻗어 레이싱 카에 올라탄 배현수는 나지막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질 일은 없을 거예요.”엄창민은 입꼬리만 올리며 겉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 자식, 정말 안하무인이네?’배현수의 차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엄창민은 손가락을 힘껏 움츠려 차 지붕을 툭툭 쳤다.“이겨도 그게 무슨 약속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죽으라고 하지는 않을게요.”그 말에 엄창민은 말문이 막혔다.“걱정 마세요, 합법적인 일이니까. 엄창민 씨에게 좋은 일이에요.”계속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창민에 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벌써 겁먹은 거예요?”승부욕이 불타오른 엄창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겁먹은 거로 보여요? 18굽이 레이싱 트랙이 누구의 땅인지는 알아요?”“성남에서 길에 떨어져 있는 동전 하나까지 전부 엄씨 집안 거, 아니에요? 18굽이 레이싱 트랙? 엄 대표님의 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엄씨 집안과 같이 거대한 사업에 몸담고 있는 가문이 회색지대의 어두운 사업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카지노, 레이싱 경기장, 경마장.성행 그룹에 입사하기 전, 18굽이 레이싱 트랙은 엄창민이 직접 관리했다.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레이싱을 한 횟수만 한두 번이 아니었고 18굽이 레이싱 트랙에도 매우 익숙했다.하지만 처음 온 배현수는 여기에 몇 개의 레이싱 코너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 사람이 엄창민과 겨뤄서 이길 수 있을까?그것은 헛된 망상이나 다름없었다.뼛속까지 의리를 지키는 엄창민은 쉽게 남의 덕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배현수를 보고 한마디 충고했다.“반 시간 줄게요. 우선 레이스라도 익히는 것은 어때요?”배현수는 바로 거절했다.“아니요, 일찍 도착해서 이미 한 바퀴 달렸어요.”엄창민은 그의 말이 우스울 뿐이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한 바퀴요? 한 바퀴 달리고 이미 익혔다고요? 이따가 사람이 차와
곧이어 빨간색 차와 파란색 차는 두 개의 화살처럼 정상으로 돌진했다.때로는 빨간색이 앞섰고 때로는 파란색이 앞섰다. 또 가끔은 나란히 어깨를 겨누기도 했다.88번 코너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코너였다. 힘껏 액셀을 밟은 엄창민은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산꼭대기에는 거대한 레이싱 플랫폼이 있었다.결승점의 노란색 선을 먼저 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엄창민이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뒤따라오던 파란색 차가 앞으로 돌진하더니 옆으로 홱 돌았다. 파란색 차는 빨간색 차 앞에 가로로 세워졌다.“시X!”속도가 너무 빨라 엄창민은 브레이크를 밟을 겨를도 없었다. 아무리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해도 배현수의 차를 먼저 결승선으로 밀 것이다.가로로 있는 파란색 차와 세로로 있는 빨간색 차의 바퀴는 빠른 속도로 회전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두운 밤, 두 차는 눈부신 불꽃을 내뿜었다.빨간색 차는 어쩔 수 없이 파란색 차를 결승점으로 밀었다.파란색 차의 바퀴가 먼저 노란 선을 넘었다.이번 경기로 엄창민은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간사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장사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배현수... 이렇게 험한 길에서 이 정도로 거칠게 달린다고? 파란색 페라리의 옆구리 중간 부위는 이미 움푹 패어 있었다.엄창민은 빨간색 차를 일정 거리 후진한 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배현수! 당신 미쳤어요? 이러다가 내 차에 치여 죽으면 어떡하려고요! 환희가 일부러 나를 원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거예요?”침착하게 차에서 내린 배현수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엄창민 씨 때문에 죽는 일은 없을 거예요. 죽어도 내 탓이고요.”“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배현수 씨 차의 운전석을 들이받았을 거예요.”“그래서 빠른 속도로 달렸잖아요. 엄창민 씨도 차 운전석을 들이받지 않았고요.”배현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조금 전의 모든 것이 자기와 무관한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그러자 엄창민이 큰소리로 외쳤다.“우리는 목숨을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