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번 여론전에서 조유진을 단순히 숨기려만 한다면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누리꾼들이 잠잠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만약 조유진과의 관계를 정식으로 공개하면 적들의 함정에 빠져 또다시 SY를 부정적인 여론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거짓 증언을 한 사람이 설사 강요로 한 행동이라고 해도 기정사실로 된 사건의 전말은 어떻게든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배현수와의 의지와 별개로 바깥사람들에게 조유진은 그렇게 긍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배현수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서정호는 배현수의 생각을 대충 짐작했다.“배 대표님, 지금쯤 아마 드래곤 파에서도 저희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을 겁니다. 만약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오히려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조유진 씨도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분명 대표님을 이해할 거예요.”홍보팀의 박상민이 꼼수를 부리긴 했지만 이번 수법으로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였던 SY그룹의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켰다.단 한방으로 승리한 셈이다.서정호의 말을 들은 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오늘 아침에 웨딩드레스를 선물했어. 그런데 반나절도 안 돼서 외부에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반박기사를 낼까? 유진이가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이런 것도 다 감수해야 하는 거야?”침을 꿀꺽 삼킨 서정호는 잠자코 가만히 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을 꼭 감은 배현수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아니... 아니에요. 조유진 씨가 그렇게 억지 부릴 사람은 아니에요.”‘하지만 완전히 실망하겠죠.’물론 이번 기회를 빌려 그녀가 자발적으로 대제주시를 떠날 수 있게 한다면 이것도 어쩌면 그의 계획에 있던 것이 아닌가?배현수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계산하고 있었다.SY의 주가 하락은 계획의 일환이었다.글로벌 하버 데이트 사진도 그중 하나였다. 몰래 결별설이 불거지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런 포즈를 일부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누가
립스틱을 바르자 조유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화사해 보였다.선유 역시 초롱초롱한 눈을 똑바로 뜨고 작은 팔로 조유진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엄마, 너무 예뻐. 나와 결혼해 줄래?”그러자 옆에 있던 장은숙이 웃으며 말했다.“엄마는 아빠에게 시집가야 하는데 어떻게 너와 결혼해? 네가 화동하면 되겠네.”그 말에 선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화동이 뭐예요?”“화동은 말이지... 너의 엄마와 아빠 결혼식 때 앞에서 꽃을 뿌려주는 아이들이야.”전신거울 속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조유진은 곧 배현수를 만나러 나갈 생각에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럭셔리한 웨딩드레스에 잠깐이나마 배현수와 결혼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장은숙과 선유가 조유진의 뒤에서 드레스 자락을 들어줬다.조유진은 계단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갔다.소파에 앉아 있던 배현수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선유는 어디에서 갖고 왔는지 장미 꽃잎 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녀석은 작은 손으로 꽃잎을 움켜쥐고 허공에 뿌리며 외쳤다.“신부 입장!”분홍색 장미 꽃잎이 바닥에 가득 떨어졌다.눈이 마주친 배현수는 마치 진짜로 신부를 맞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조유진은 웨딩드레스 치맛자락 한끝을 들고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분명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이 몇십 초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머리 위에 신부 왕관을 썼더라면 완벽에 완벽을 가했을 것이다. 조유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배현수는 순간순간을 놓칠세라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그윽하고 은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시선에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쑥스러워 웨딩드레스를 위로 올리며 물었다.“예뻐요?”“응. 예뻐.”조유진은 살면서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배현수 또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유진을 처음 봤다.어디 예쁘기만 하겠는가?배현수의 눈빛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선유가 뛰어오더니 조유진과 배현수의 손을
뜨거운 기운이 조유진의 온몸을 감쌌다.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뛰는 심장을 어루만졌고 조유진은 숨을 헐떡였다.통제 불능인 상태에 다다랐을 때, 한 손으로 배현수의 목을 껴안은 조유진은 마지막 남은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고 버텼다. 그러고는 근육 라인이 선명한 그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배현수.”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그녀의 부름이었다.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배현수는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만하라고? 일부러 나를 괴롭히는 거야?”배현수가 다가와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그러자 조유진은 얼굴을 옆으로 피하며 말했다.“물어볼 게 있어요.”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배현수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뭔데?”“송인아가 트위터에 올린 다이아몬드 반지, 현수 씨가 선물한 거예요?”“아니.”이런 그의 대답이 사실 놀랍지 않았다.조유진도 송인아가 트위터에 올린 다이아몬드 반지가 배현수가 선물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큰 다이아몬드는 배현수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고급 보석 연구에 취미가 있는 남초윤은 송인아가 올린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고 한눈에 가짜임을 알아챘다. 진품 로트 넘버는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그렇게 큰 빨간 보석은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았다.설사 배현수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다고 해도 가짜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조유진의 이 물음은 다른 것들을 물어보기 위해 배현수를 떠보는 것이었다. 그녀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송인아가 아니었다.배현수의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조유진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외부에 나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결혼할 거라고 말하면 SY그룹에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는 거죠?”조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누리꾼들이 자기에 대한 평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거짓 증언을 해서 무죄인 사람을 감옥에 보낸 그녀에게 누가 좋은 말을 해주겠는가?아마 평생 이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것이다. 이 꼬리표는 그녀가 직접 자신에게 붙인 것이다.
세상의 이목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그런 이목이 SY그룹과 배현수에게 상처를 준다면 조유진은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가끔은 정말로 7년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작은 셋방에 다시 살고 싶어요. 그때의 배현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조유진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때의 결백한 조유진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었으니까.”그땐 아무도 조유진이 배현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대제주시 방송학과의 퀸카 조유진, 대제주시 법학과 수재 배현수, 두 사람 모두 한없이 빛나는 앞날을 기약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조유진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배현수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조유진에게 거짓 증언의 딱지가 붙어 뗄 수 없기 때문이었다.배현수는 늘 멘탈을 붙잡고 이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막상 조유진을 밀어내려고 하니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배현수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한마디 했다.“적어도 나에게 너는 절대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야. 유진아, 네가 있어서 내 인생도 가치가 있는 거야.”눈시울이 붉어진 조유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와 결혼해 줄래요? 배현수 씨?”‘얼마든지.’마음속으로 열 번 넘게 하는 말이었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그에게 쓸데없는 세상의 이목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배현수가 원한다면 그 여자가 살인범이어도 상관이 없었다.조유진의 그까짓 죄명은 그만 용서해 주면 그만이다. 세상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하지만 조유진이 죽어가는 사람과 결혼하게 할 수는 없었다.배현수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유진아, 미안해. 나는 할 수 없어.”그녀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없는 것이다.조유진도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배현수를 원망하지도 않았다.목이 꽉 막힌 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현
허탈한 미소를 지은 조유진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화내고 싶어요. 7년 전에 거짓 증언으로 현수 씨에게 3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시키지 않았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송인아와의 기사를 해명하라고 화를 냈겠죠. 빨리 우리 사이를 공개하라고 했겠죠. 하지만 나에게는 자격이 없어요. 그렇게 하면 SY그룹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물론 현수 씨에게도, 나에게도...”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헤어진 줄 알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다.그리고 송인아와 재결합하라는 내용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조유진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수모를 참을 수 없었다.배현수는 분명 그녀의 남자친구이고 얼마 전 금방 재결합했다. 하지만 배현수와 송인아 사이에서 그녀는 제3자에 불과했다.설령 배현수와 송인아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조유진이 알고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 혼자만 알 뿐, 밖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배현수가 바로 반박기사를 내 해명하지 않은 것을 조유진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눈치껏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배현수에게 누를 끼치면서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인터넷 여론은 조유진에게 매우 우호적이지 않았다.배현수가 뒤에서 아무리 사람을 시켜 조유진에 대한 연관검색어를 지운다고 해도 열기가 워낙 뜨거운 탓에 여론의 목소리는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남초윤마저 보다 못해 쏘아붙였다.“배현수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아예 송인아와의 관계를 인정한 거야?”조유진은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주말에 심미경 씨 결혼식에 갔다가 바로 성남으로 돌아갈 거야.”“무슨 뜻이야? 헤어진다고? 배현수가 진짜 헤어지자고 했어?”조유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눈치껏 알아챈 남초윤은 잔뜩 화를 내며 말했다.“배현수와 같이 있고 싶다는 사람은 너였어. 이제 누리꾼들이 두 사람 헤어졌다고 하면 진짜 헤어진 거야? 예전에는 배현수가 그래도 뚝심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내가 착각
남초윤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티즌들은 배현수와 송인아를 아예 커플로 인정했어요. 회사 직원들조차 두 사람이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요. 진짜로 그런 생각이 없으면 왜 나와서 해명하지 않는 건데요?”육지율은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다.“현재는 송인아의 열기가 SY의 주가 반등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일단 맛 좀 보고 나서 해명해도 늦지 않고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부분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조유진만 그 여론들이 거짓이고 오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돼요.”남초윤은 씩 웃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당신네 남자들이란 정말 다 똑같아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죠. 거절도 인정도 하지 않고요. 쓰레기 같은 인간!”분명 배현수에게 하는 욕이었지만 왜 말에 뼈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왠지 누구를 저격하는 말처럼 들리네? 남초윤의 말에 육지율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행동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당신네 남자들? 육씨 집안 사모님. 말에 뼈가 있네요?”눈살을 찌푸린 남초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입을 열었다.“당신은 남자 아니에요? 설마 여자예요?”남초윤이 여기서 말하는 ‘남자’는 결코 좋은 단어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잘생긴 남자를 보고 사람들은 단지 ‘저 남자’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육지율의 귀에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였다.손에 있던 수건을 옆으로 내던진 육지율은 몸을 숙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잊었어요? 내가 남자라는 것 외에 당신의 남편이라는 것을?”남초윤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어차피 곧 남편도 아니잖아요. 이혼하기로 약속한 거 잊었어요?”육지율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이혼하기로는 했지만 조건이 있어요.”“무슨 조건인데요?”육지율은 차분한 얼굴로 따지며 말했다.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당신은 육씨 집안 사모님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어요. 나도 별 요구는 없어요. 못다 한 아내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일요일, 부경 산장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갰다.결혼식은 야외 잔디밭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부경 산장의 잔디밭은 전문 인력이 관리하고 있어 겨울에 접어드는 11월에도 색이 바래지 않아 사진이 잘 찍혔다.한 무리의 사람이 결혼식장에 도착했다.남초윤은 조유진과 선유와 같이 산장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결혼식장의 디저트 테이블 근처로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다.야외 결혼식장에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장미 꽃잎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남초윤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상하네? 강이찬의 결혼식인데 왜 소란 피우기 좋아하는 여동생이 안 보이지? 이렇게 큰 행사에 얼굴 드러내는 거 좋아하지 않았어?”“분장실에서 도와주고 있겠지.”그 말에 남초윤이 코웃음을 쳤다.“걔가 돕긴 뭘 도와. 말썽만 안 부리면 다행이지. 결혼식에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조유진은 별생각 없이 샴페인 잔을 들고 마시려던 참이었다.이때 남초윤이 그녀의 잔을 확 낚아채며 말했다.“유진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건 술이야! 넌 마시면 안 돼.”결혼식이었지만 조유진은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멀찍이 서서 술잔을 든 채 육지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배현수를 본 남초윤은 조유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내일 정말 성남에 가는 거야? 다시 얘기해 볼 생각 없어? 그동안의 감정이 아깝지도 않아?”조유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깨진 거울은 절대 다시 붙일 수 없나 봐. 다시 붙인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으니까. 서로 너무 오랫동안 시간만 지체한 것 같아. 이제 정말 인연이 끝난 것 같아. 우스운 얘기기는 한데 사실 7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있은 적이 없어. 그래서 그런지 지금 헤어져야 정상이라는 생각까지 들어.”너무 많은 것들을 오랫동안 잃어버리면 없는 것에 습관이 되고 그런 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이 감정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결혼식장
심미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중년여성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누구야? 급한 일이 있으니까 강이찬 좀 바꿔. 직접 나와서 해결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가서 여동생을 폭로해 버릴 수밖에 없어!”심미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저는 강이찬 씨의 아내입니다. 누구세요? 이찬 씨를 왜 찾는 거죠?”맞은편에는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표준 서울 발음이 아닌 사투리가 억세게 들렸다.“아, 그러니까 당신이 강이진의 시누이야? 누구든 상관없어. 돈만 받으면 되니까! 아직 1억이 남았는데 왜 안 갚는 거야? 전화도 안 되고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어. 어디 도망간 거 아니야?”심미경은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했다.“당신 대체 누구예요? 이진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요?”설마 이진이가 도박 빚이라도 졌단 말인가?전화기 너머의 장순자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강이진! 그 년이 내 남편을 사주해 교통사고를 내게 했어. 감옥에 들어가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생겨 입막음 비용으로 우리에게 2억을 주겠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 1억밖에 못 받았어. 당신들이 강이진 대신 이 돈을 갚지 않으면 당장 경찰서에 가서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심미경은 잠시 멍해졌다.“혹시 전화 잘못 거신 거 아니에요?”“잘못 건 거 아니야! 강이진의 오빠가 강이찬이잖아? 맞지? 발뺌할 생각하지 마! 2억은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껌값이잖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돈을 보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교통사고는 내 남편이 다 뒤집어썼어. 물론 내 남편은 음주운전에 그치긴 했지만 강이진 그 년은 살인 미수야! 누구의 형이 더 무거울지 잘 생각해 봐!”교통사고?음주운전?살인 미수?강렬한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심미경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으며 말했다.“당신 남편 이름이... 뭐예요?”“황인구!”순간 뇌 정지가 된 듯 머릿속이 윙윙 소리가 났다.황인구? 황인구...심미경의 교통사고도 황인구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