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심미경의 인스타 스토리에 ‘좋아요'를 눌렀다.이때 남초윤에게서 음성 메시지가 왔다.“미경 씨는 자기가 대타 노릇을 한 게 진짜 상관없을까? 아니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는데 그 자식이 얘기하지 않은 걸까? 나는 왜 갑자기 강이찬이 이렇게 쪼잔해 보이지? 예전에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참, 배현수와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미경 씨와 강이찬도 결혼하는 마당에 애까지 있는 너희들도 이참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어때?”조유진이 스피커 핸드폰으로 음성을 듣다 보니 옆에서 운전하던 배현수도 남초윤의 말을 들었다.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배현수를 보며 말했다.“미경 씨와 이찬 씨가 오늘 혼인신고 하러 갔대요. 두 사람이 찍은 웨딩사진 봤어요?”“아니.”배현수는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의 덤덤한 얼굴은 그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이때 남초윤에게서 또다시 음성 메시지가 왔다.“결혼이라는 이 늪에 빨리 들어와 봐. 그러다가 나중에 깨지면 같이 이 늪을 벗어나는 게 어때? 적어도 친구가 같이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은데? 유진아,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금 너의 마음은 어떤 거야? 배현수가 살아 돌아왔으니 우리가 곧 축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될까?”이 음성도 스피커폰이었지만 옆에 있는 배현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조유진은 문자로 한마디 답장했다.[나는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그러자 남초윤의 음성 메시지 답장도 이내 다시 왔다.“설마? 배현수가 도도한 척하는 거야? 너와 결혼하기 싫대?”조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배현수를 올려다보았다.하지만 배현수는 눈살만 살짝 찌푸릴 뿐 계속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남초윤의 음성 메시지를 배현수도 사실 다 듣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또한 일종의 대답이었다.이어 남초윤은 계속 메시지를 보냈지만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계속 듣다 보면
오늘 밤, 사실 조유진은 겉으로 심미경의 결혼을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배현수를 떠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배현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동요도 없었고 그 어떤 대답도 없었다.조유진은 울고 싶지 않았다. 이 눈물이 부끄러워서든 화가 나서든, 그게 아니라 억울해서 괴로운 눈물일지라도 왠지 너무 체면이 깎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를 꼭 껴안고 있던 배현수는 한참 지난 후에야 심장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그녀를 품에서 놓아준 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결혼은 큰 행사야. 우리가 심미경 씨나 이찬이가 아니잖아. 내가 너와 결혼하려면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해.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안 될까?”그 말에 조유진은 배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결혼하기 싫으면 그런 핑계 대지 않아도 돼요. 내가 현수 씨에게 결혼을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요.”말을 마친 조유진은 또다시 배현수를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배현수는 씩 웃으며 다시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일단 먼저 이 귀찮은 일들을 다 처리하면 내가 성남에 너와 선유를 데리러 갈게. 그러고 나서 우리 혼인신고 하러 가자.”하지만 배현수는 이 생에 그녀와 결혼할 기회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은 그녀를 달래지 않으면 조유진은 어쩌면 성남도 안 가겠다고 할 것이다.배현수는 항상 어쩔 수 없이 조유진에게 거짓말을 했다.그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배현수가 작정하고 속이려 한 이상 그녀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의 눈빛으로 보아 확실히 거짓말 같지 않았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조유진은 그저 말없이 배현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배현수는 어느새 따스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때 배현수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화 다 풀렸어?”“일단 오늘 현수 씨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하지만 전세까지 냈는데 안 가면 돈 낭비잖아요. 그리고 내가 특별히 우리가 같이 본 적 없던 영화로 골랐단 말이에요.”그 말에 배현수는 눈썹을 찡그렸다.“무슨 영화? 너와 같이 액션 영화를 본 것은 기억이 나.”그의 말을 들은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런 영화 아니에요! 진지한 멜로 영화란 말이에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가린 그녀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멜로 영화가 진지한 것도 있어?”멜로 영화에 에로틱한 장면이 빠지면 어린이 프로가 아닌가? 조유진은 배현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이렇게 차갑고 도도한 사람이 어떻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음담패설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7년 전, 그들이 동거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나이가 어린 조유진은 그런 영화들이 궁금해 배현수에게 같이 보자고 졸랐다.처음에 배현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절친 남초윤이 그녀에게 안 좋은 것만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유진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보게 되었다.사실 배현수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기숙사에 살 때, 남자애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어떤 여자가 예쁜지 토론하곤 했다.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조유진과 함께 있는 게 훨씬 더 좋았다.조유진이 하도 보겠다고 떼를 써서 배현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그런 영화를 봤다. 하지만 얼마 보지 못하고 바로 컴퓨터를 껐다.조유진이 다른 남자를 보는 것을 정말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날 밤, 그는 그녀의 온몸에 오랫동안 키스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앞으로 다른 남자 보지 마. 보고 싶으면 나를 봐.”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반쯤 안긴 채로 제일 위층에 있는 프라이빗 영화관에 들어섰다.그녀가 고른 영화는 비교적 오래된 2007년에 개봉한 [속죄]라는 영화였다. 배현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지만 슬픈 결말로 끝나는 비극적인 영
희미한 불빛만 비치는 어두운 공간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고 모든 욕망이 이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스크린을 등진 채 배현수의 다리 위에 앉은 조유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여기에 CCTV가 있는 것은 아니겠죠?”“없어, 있어도 이미 껐어.”이 프라이빗 영화관은 육지율이 추천해 준 것이다. 육지율은 여기에 투자까지 했다 보니 주주인 셈이었다. 그는 이런 엉망진창인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술집, 연극장, 길모퉁이 카페, 보드게임 놀이방, 방 탈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조유진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정말요?”그녀와 이마를 맞댄 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다른 사람에게 사생활까지 보여줄 생각 없어.”그의 말에 조유진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공장소에서 행동이 너무 과격할 수는 없지 않은가...“영화도 아직 다 안 끝났고... 여기 꽤 더러울 것 같은데요.”그 말에 배현수는 그녀와 코끝을 맞대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유진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봤다.“그저 뽀뽀만 하려고 한 건데? 더 깊은 것까지 원한 거야?”배현수의 말에 조유진은 말문이 막혔다.‘아니! 그게 아니라 싫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귀까지 빨개졌다.사람을 이상한 생각 하게끔 유도한 게 누군데... 그녀는 배현수가 원하는 게 그 짓인 줄 알았다. 배현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늘 차갑고 도도한 그였지만 그녀를 보는 눈빛은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대형 스크린의 빛이 그의 얼굴에 반사되어 그림자가 가끔 졌지만 조유진을 보는 눈빛은 너무 그윽하고 따뜻해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어두운 빛 때문에 조유진은 그의 얼굴에 스쳐 간 아픔과 아쉬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그런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갖다 댔다.입술이 닿자마자 팝콘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꼭 돌아올 거야, 반드시. 유진이와 약속했으니까.’ 멈칫한 조유진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졌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아까 계속 자고 있지 않았어요?”“들었어.”굳이 듣지 않아도 영화 속 남자주인공 로비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대사가 쉽게 외워졌다.조유진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영화의 엔딩 장면을 함께 지켜봤다.남자주인공 로비는 집사의 아들로 태어나 소꿉친구 세실리아와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사촌 누나의 증언과 모함으로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몇 년 후,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죄를 뒤집어쓴 남자주인공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군대로 들어갔고 무자비한 전쟁은 결국 로비와 세실리아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로비가 노르망디에서 죽은 후, 세실리아도 전쟁 속에 살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로비가 죽었을 때, 손에는 여주인공의 편지 뭉치가 꼭 쥐어져 있었다.영화의 끝은 누군가의 꿈으로 끝났다.꿈속에서 로비와 세실리아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바닷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부딪히는 파도 옆에서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조유진은 어느새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녀는 휴지를 손에 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영화 속 남자주인공은 배현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다만 배현수는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패혈증으로 죽지 않았다.하지만 3년 동안의 감옥 생활은 분명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굴욕을 안겼을 것이다.3년이라는 시간은 조유진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로비보다 배현수가 더 가슴이 아팠다.이 영화는 그녀의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어느 한 감정을 강하게 건드린 듯 두 볼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런 그녀를 품에 꼭 껴안은 배현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그러니까 왜 갑자기 슬픈 영화를 보자고 그랬어? 이대로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내가 너에게 해코지라도 한 줄 알겠어.”고개를 든 조유진
착한 귀염둥이?이 단어를 들은 조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마치 7년 전으로 돌아간 이 느낌... 7년 전의 배현수만이 그녀를 이렇게 불렀었다.조유진은 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들어 물었다.“뭐라고요?”그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는지 배현수는 아닌 척 헛기침을 하고는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아니야, 가자. 밀크티 사러 갈까, 아니면 가방 사러 갈래?”조유진은 배현수의 귀까지 빨개진 것을 발견했다. 사실 그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아주 이례적이다. 이 사람도 부끄러운 줄 안다고?!쇼핑몰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배현수와 조유진, 눈에 띄는 피지컬을 자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 달래며 질척거리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잘생긴 외모에 카리스마가 넘치고 도도했고 여자는 재벌 집 딸 같은 청아한 외모에 청순함까지 갖추고 있었다.행인들은 남자가 여자를 괴롭힌다고 생각해 찌질한 남자라고 눈으로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몰랐다. 바로 이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내일 아침 뉴스 메인 페이지를 장식할 줄은... [비즈니스계의 거물과 버려진 못된 첫사랑][첫사랑, 후회의 눈물]사진을 다 찍은 파파라치는 유유히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아니꼬운 시선을 알아차린 조유진은 뒤늦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손등으로 다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밀크티도 가방도 다 필요 없어요.”늘 인내심 있게 조유진을 대하는 배현수는 전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었다.“그럼 뭐 하고 싶은데?”배현수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사실 이런 인내심과 사랑은 선유를 향해서도 없었다.조유진은 전에 남초윤과 이 쇼핑몰을 구경하러 온 적이 있었다. 길 건너편에 거대한 역사 기념관이 있다는 것이 기억나 그곳에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그녀가 신은 하이힐 바닥은 양가죽 재질이라 물에 닿으면 안 되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쇼핑몰
엄창민은 조유진이 원하는 그 어떤 것도 다 들어줄 것이다. 조유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선유는 현수 씨의 딸이에요. 개인 과외할 선생님을 구하는 일을 왜 창민 오빠에게 부탁해요?”그동안 배현수는 엄창민과 엮이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그런데 지금은 먼저 엄창민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선유에게 할 개인 과외 같은 ‘집안일’을 말이다. 조유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생각을 바로 눈치챈 배현수는 이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말했다.“어차피 엄창민에게 관심이 없잖아? 그저 오빠라고 생각한 거 아니었어?”조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일부러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모르죠? 언제 마음이 변할지. 어쨌든 미혼인 남자와 여자잖아요. 안 그래요? 배 대표님?”마지막 한 마디는 일부러 배현수의 귀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말에 그녀를 받쳐주던 큰 손은 일부러 복수라도 하려는 듯 힘을 살짝 풀었다. 깜짝 놀란 조유진은 얼른 그의 목을 껴안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방금 뭐라고 불렀어?”조유진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배 대표라고?”조유진이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배현수도 알고 있었기에 담담한 목소리로 협박했다.“손 놓을까?”조유진은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안 돼요.”가을비가 내리는 밖은 습하고 추웠다. 비도 생각보다 많이 오고 있었다.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길가에 발이 닿기만 하면 하이힐은 바로 망가질 것이다.눈썹을 치켜세운 배현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그럼 예쁘게 불러봐.”“배현수.”퉁명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말투는 마치 협박을 받는 사람 같았다. 배현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너를 납치라도 했어?”뭐랄까... 협박한 것은 맞으니까... 목소리를 가다듬은 조유진은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배현수?”‘이 정도면 되겠지?’입꼬리를 살짝 올린 배현수는 야유하는 듯
강이진은 못마땅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옆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오빠, 이것은 오빠와 새언니를 위해 특별히 고른 커플 컵이야. 평생 두 사람이 헤어지지 말라는 의미도 있고. 그동안 오빠가 조유진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오빠를 도우려고 했어. 그런데 오빠가 싫다고 하니 뭐, 어쩔 수 없지. 오빠는 조유진을 좋아하는 게 현수 오빠와의 우정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 눈에 현수 오빠는 그저 남이야. 오빠는 내 친오빠이고. 나는 당연히 오빠 편이고. 그래서 오빠가 조유진과 잘되기를 바랐어. 그런데 오빠는 내가 오히려 방해만 한다고 하니… 나는 오빠가 너무 안타까워. 하지만 이미 심미경과 결혼했으니 진심으로 축복할 수밖에.”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이찬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가 친남매이기 때문에 네가 더더욱 자수하기를 바라. 이진아, 그렇게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돼.”“오빠, 내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 하지만 잊었어? 몇 년 전, 우리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던 날, 나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콘크리트 기둥에 깔려 다리가 부러졌어! 그때 구조대원들에게 오빠를 먼저 살려달라고 부탁했고! 오빠,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안 좋게 말할 수 있지만 오빠는 안 돼!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오빠와 내 손을 잡고 말했잖아. 이 세상에 우리 둘만이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앞으로 서로 잘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나는 최선을 다해 오빠를 도왔어. 그런데 오빠는? 나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는데?”한바탕 호소를 퍼부은 강이진은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강이찬은 고개를 숙인 채 정색한 얼굴로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개를 들어 하나뿐인 여동생을 쳐다보는 강이찬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이유가 고작 가족의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온 거야? 이진아,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