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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조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하나, 둘, 셋... 은은하게 아름다운 가슴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고 있던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다.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는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마치 벌거벗은 채로 배현수의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유진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계속... 벗을까요?”

촉촉한 두 눈으로 눈앞에 있는 이 도도한 남자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팔이 아파 났다.

배현수는 그녀를 가슴에 와락 안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맞춤하면서 휴게실로 밀고 들어갔다.

이 두 사람의 발걸음은 어딘가 어수선해 보였다.

휴게실로 들어간 배현수는 문을 닫더니 그녀가 유일하게 입고 있던 속옷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유진, 다음에 또 거짓말하면 오늘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조유진은 아파서 미간을 찌푸렸다.

……

배현수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마음껏... 그녀에게 견디기 힘들었던 상황이 드디어 끝나고 말았다.

배현수가 샤워하러 간 사이 이곳에 더는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조유진은 카펫 위에 벗겨진 옷을 챙겨입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마침 강이찬과 강이진을 마주치고 말았다.

강이진은 이곳에서 조유진을 만날 줄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조유진은 당황한 나머지 강이찬을 향해 고개를 끄덕하며 간단히 인사하고 신속히 빠져나갔다.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강이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왜 이곳에 있대?”

“유진 씨 SY그룹에서 일하기로 했어.”

“뭐? 현수 오빠가 저 여자를 채용했다고?”

강이진은 조유진의 걷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뭐 보고 있어? 얼른 들어가자.”

“오빠, 유진 씨 걷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아? 설마 현수 오빠 침대에서 방금 일어난 건 아니겠지?”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강이찬은 차갑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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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진은 어이가 없었다.“오빠, 내 일에 신경 좀 써! 현수 오빠, 사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오빠한테 SY그룹에 데려와달라고 했어요. 혹시 SY그룹에 저한테 어울릴 만한 자리가 있을까요?”“어제저녁에 방금 귀국해서 이제 한국에 정착시키려고. 일은 급할 것도 없는데 집에서 컨디션이나 조절하면서 시차 적응하라고 했더니 바로 일 찾겠다고 고집부리는 거 있지. 배 대표, 이진이가 내 동생이긴 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으면 굳이 우리 사이를 봐서 알아볼 필요는 없어.”강이찬은 여동생을 SY그룹에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고집을 이길 수가 없었다.배현수가 강이진에게 물었다.“무엇을 전공했다고 했지?”“와튼 스쿨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했어요. SY그룹에 저한테 어울릴 만한 자리가 많겠죠?”“그래, 기획팀과 영업팀에 다 갈 수 있긴 하지만 일반 직원부터 시작해야 해. 상관없다면 언제든지 입사해도 좋아.”배현수는 공사가 분명한 사람이라 강이진이 강이찬의 여동생이라서 회사에 들여보내려는 것은 아니었다.강이진의 학력으로 SY 기획 부서와 판매 부서에 입사하기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강이진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오빠, 내가 말했지? 현수 오빠가 동의할 거라고. 오빠처럼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주위 사람도 생각하는 대표님이야말로 대단한 거지!”상의를 마친 강이찬과 강이진은 배현수의 사무실에서 나왔다.강이찬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또 당부했다.“이진아, SY그룹에서 출근해도 되지만 꼭 겸손해야 해. 될수록 너와 나의 관계도 숨기고. 그래야 너나 나나 현수한테도 좋아.”“오빠, 내가 SY그룹에 출근하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난 오빠랑 현수 오빠 도와주러 온 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안 즐거워 보이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낙하산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내 학력으론 어떤 회사든 다 갈 수 있어.” “아무 회사나 다 갈 수 있는데 굳이 SY회사에 오지 않아도 되잖아. SY그룹은 경쟁도 심하고, 그리고 너는 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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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진은 그녀를 쳐다보면서 사실대로 말했다.“제 식판을 엎었잖아요.”“그래서 뭐요, 고의적이면 또 어쩔 건데요? 당신과 같이 배은망덕한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요! 그때 현수 오빠를 배신한 대가예요!”강이진은 배현수대신 억울한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다.하지만 정말 배현수대신 억울해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조유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조유진은 바닥에 엎질러진 식판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5,000원짜리 식비를 어떻게 갚을 건가요? 현금으로 갚을 건가요? 아니면 계좌이체 하실 건가요?”“조유진, 돌았어?”“강이진 씨 배상 안 할 거예요?”강이진은 웃기기만 했다.“그깟 식판 하나 엎어버렸을 뿐인데 뭘 배상까지?”“퍽!”조유진은 강이진이 들고 있던 식판을 힘껏 그녀의 얼굴에 부어버렸다.“야! 조유진, 뭐 하는 거야!”풀 메이크업을 받은 강이진의 얼굴은 국물 범벅이 되고말았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닦아보려고 했지만 야채며 기름이며 닦을수록 더 지저분했다.조유진은 차갑게 말했다.“강이진 씨, 제가 현수 씨한테 잘못한 건 맞는데 강이진 씨한테 잘못한 건 아니에요. 심지어 모르는 사이인데 왜 제 식판을 엎는 거예요?”“실수로 그랬다고! 이렇게까지...”“저도 실수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이진 씨.”조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식당을 벗어났다.홀로 우두커니 남겨진 강이진은 분하고 화가 치밀었다.식당에서 오가던 사람들은 얼굴에 야채며 밥알이 묻어있는 강이진의 모습에 시선이 가면서 웃기다고 생각했다.“조. 유. 진!”강이진은 화가 치밀어 이를 꽉 깨물고 주먹까지 꽉 쥐었다.…배가 고프지 않았던 조유진은 식당에서 강이진과 난리를 치고 나온 뒤로 더욱 식욕이 없었다.그녀는 점심 휴식 시간을 틈타 그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다.SY그룹의 크기는 어마어마했고 총 15동의 건물이 있었다. 저마다 계열사의 사무본부였다.마지막으로 1동에 도착했을 때 옆에 있는 높은 건물을 보더니 신세를 한탄했다.그녀와 배현수의 관계는 늘 나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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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쳐! 난 이미 물러설 곳이 없어! 빨리 엘리베이터를 눌러! 대표님 사무실로 가!”조유진은 조금 망설였다.진우민을 대표님 사무실로 데려갔다간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이성을 잃은 진우민은 칼날을 조유진의 목에 더 가까이 댔다.“빨리!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조유진은 어쩔 수 없이 26층을 눌렀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조유진은 조심스럽게 CCTV를 쳐다보더니 좋은 마음에 진우민을 설득했다.“진 과장님, 지금 이 시간에 대표님과 서 비서님 모두 식사하러 가셔서 사무실에 안 계실 텐데, 그래도 가시겠어요?”“언젠간 돌아오겠지! 밥을 얼마나 오래 먹는다고. 조유진, 수작 부리지 마! 가만히 안 있으면 바로 옥상으로 데려갈 테니까!”제일 꼭대기 층이 바로 옥상이었다.조유진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26층 대표님 사무실.서정호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영업팀 진우민 과장이 칼로 조유진 씨를 협박하면서 이곳으로 오고 있답니다. 경찰에 신고할까요?”배현수는 눈썹을 움찔했다.“아직 아니야. 진우민은 해고당한 것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협박해 해고를 철수해 달라고 하는 수가 있어.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흥분할 수도 있어. 불필요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 바로 건물 내에 있는 직원들 대피시켜.”“네. 지금 바로 알리겠습니다!”서정호가 뒤돌아 나가려고 했을 때.엘리버이터가 26층에 도착한 소리가 들려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진우민은 조유진을 협박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다 마침 서정호와 마주치게 되었다.흥분한 진우민은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서 비서님! 마침 찾으려던 참이에요! 대표님께 저를 해고하지 말아 달라고 해주세요! 조유진이 비서님 애인이잖아요. 저를 회사에서 계속 출근할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조유진 살려드릴게요.”서정호가 다급하게 설명했다.“진 과장님, 혹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조유진 씨는 제 애인이 아니에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54화

    “칼로 회사 동료를 협박했다는 이유로 큰 형사처벌을 받을 거야. 진우민, 칼 내려놔. 아직 돌이킬 기회는 있어. 잘못을 알고도 계속 범하면 이제 누구도 너를 살릴 수 없어.”배현수의 설득하에 진우민은 전처럼 그렇게 조유진의 대동맥을 압박하지 않았다.조유진은 몰래 시름을 놓았다.서정호가 말렸다.“진 과장님, 먼저 조유진 씨를 풀어주세요. 무슨 문제든 잘 이야기해 보시죠. 보세요, 배 대표님이 바로 여기 계시잖아요. 회사 결정은 바꿀 수 없지만 진 과장님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대표님이나 저나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진우민은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했다...이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진우민의 핸드폰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칼로 조유진의 목을 겨누고 있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를 받았다.“여보... 나 회사에서 해고되었어... 나랑 이혼 안 하면 안 돼? 사랑이... 사랑이 데리고 나를 떠나지 마!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어!”통화는 처참히 끊기고 말았다.진우민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안 돼! 난 이 일자리 없으면 안 돼! 와이프가 딸을 데리고 나를 떠나겠다잖아! 나랑 이혼하겠다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회사에서 어떻게 나를 해고할 수가 있어! 회사자금을 빼돌리는 사람이 많고도 많은데 왜 하필 나야!”서정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진 과장님! 흥분하지 마세요!”“기자들과 매체에 폭로할 거야! 대형그룹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부정적인 뉴스잖아! 만약 해고된 직원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뉴스가 퍼지면 주식도 대폭 하락되겠지!”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갑게 말했다.“SY가 대형그룹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매체도 언론도 SY에서 막을 수 있다는 거 알 텐데. 계속 이렇게 억지 부린다고 해도 나중에 다치는 사람은 바로 너일 거야.”“아, 몰라! 와이프가 나랑 이혼하겠다잖아! 일자리까지 잃게 되면 내 딸 양육권도 뺏길 텐데! 이대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왕 죽을 바에 같이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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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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