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알아서 잘 생각해 보세요!”조선유는 아빠의 편이었지만 배현수가 너무 맥을 쓰지 못하는 것뿐이었다.녀석이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배현수가 말했다.“방금 새아빠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어?”조선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엄마랑 저한테 잘해주고, 엄마만 좋아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선유는 아빠를 버리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도 저를 계속 사랑할 거고 저도 아빠를 계속 사랑할 거예요.”‘... 그렇다면 나를 버리지 않는 거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그래, 나가봐.”“응. 아빠도 내가 했던 말 잘 생각해 봐요! 저는 그래도 아빠가 엄마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조선유는 새아빠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배현수는 녀석에게 새아빠가 생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저 단순히 조유진 옆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상상만 해도 불쾌했다.손에 쥐고 있는 계약서 내용은 점점 흐릿해졌고, 불안해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몇 번이고 감정을 추슬러 보았지만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고, 자꾸만 차오르는 화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그는 손에 쥐고 있던 폴더를 창문에 던져버리고 말았다.툭!폴더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계약서가 사방에 흩날리게 되었다.테이블 앞에 앉아있던 배현수는 이마를 짚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눈빛마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했을 때, 담배 옆에 있는 조유진이 사준 침향스틱에 시선이 고정되고 말았다.조유진이 산성 별장을 떠난 지 이미 며칠 지났지만, 배현수는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그녀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화장대 앞 머리빗에 남아있는 머리카락 몇 가닥, 그녀가 마시다 남긴 물이 담겨있는 컵...장은숙이 이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했을 때 배현수가 버럭 화를 내면서 말렸다.“건드리지 마세요.”전에는 3일에 한 번 씻던 침대 시트를 이제는 일주일이 지나도 씻지를 못했다.침대에는 조유진의 향기가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배현수가 병적으로 아
배현수는 조유진과 대화하고 싶은 것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뿐이었다.조선유는 그를 힐끔 보더니 조유진에게 물었다.“엄마, 엄마는 엄창민 아저씨 좋아?”“좋지.”엄창민은 조유진이 가장 어려울 때 도움을 줬던 사람이었다.그 사람이 싫었다면 친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을 들은 배현수는 가슴에 비수가 꽂힌 듯 아팠다.이때 조선유가 울상을 하면서 물었다.“엄창민 아저씨가 좋아졌다면 아빠는 어떡해?”“뭘 어떡해?”조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조선유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배현수가 이미 방을 나간 후였다.“엄마는 아저씨랑 결혼할 거야?”“아니, 엄마랑 아저씨는 그저 친구 같은 관계야. 선유랑 퉁퉁이처럼 말이야.”이런 좋은 감정은 남녀 사이의 사랑과는 먼 감정이었다.배현수는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조유진이 엄창민을 좋아한다고 인정했을 때부터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조유진이 자신 이외의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성남으로 다시 돌려보낸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였다.‘그런데 조유진이 자기 입으로 직접 다른 남자가 좋다고 했어... 엄창민이 나보다도 좋아? 그 사람이 나보다도 유진이를 사랑해? 나보다도 유진이를 더 많이 알아? 둘이 안지 고작 얼마나 되었다고. 나랑 유진이가 알고 지낸 13년과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배현수의 가슴에는 질투의 화신이 불타오르고 있었다.마치 불난 데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그 불씨가 점점 커 커져갔다.배현수는 그 질투심에 눈이 멀어 손등에 선명하게 핏줄이 부어오를 정도로 주먹을 꽉 쥐더니 분노가 극치에 달해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화를 삭이려고 무표정으로 진정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화의 불씨는 점점 더 커져 미칠 것만 같았다.배현수가 작은 약병을 열었을 때 탄산리약은 마지막 한 알만 남은 상태였다.조유진이 살아서 돌아와 그의 옆에 있을 동안에은 발작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
이 몇 대의 바이크는 마이바흐 차량을 초월하더니 선두를 달리던 놈이 휘파람을 불면서 시비를 걸어왔다.“우후~ 아저씨 좋은 차 타시네? 누가 더 빠른지 내기해 보실래요?”평소였다면 이런 깡패 같은 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인내심 한계에 다다른 지금은 바로 욱하게 되었다.‘이것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네.’마이바흐 차창이 내려지더니, 잘생기고 포스가 넘치는 배현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바이크 뒤에 앉아있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한 여자아이가 환호했다.“아저씨 멋져요!”이에 앞에서 운전하던 놈이 발끈하고 말았다.“젠장, 너는 내 여자라고! 왜 다른 남자한테 정신이 팔려서 그래? 나보다도 멋져?”“당연히 너보다 훨씬 멋지지!”“제기랄, 어떻게 내기 한판 해보실래요?”이놈은 기껏해 20살짜리 한창 패기가 넘치는 청년으로 보였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30살 배현수는 이들에게 아저씨가 맞았다.이 넓은 거리는 저녁이라 아무도 없어 레이싱하기 좋았다.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통해 불어왔고, 배현수는 액셀 브레이크를 밟아 시속 200km/h로 올렸다. “아저씨! 죽고 싶어서 세단 시속을 이 정도까지 올려요?”이들은 일부러 배현수를 자극하려고 그의 차량을 하나둘 추월했다.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부대는 이상하리만큼 날뛰기 시작했다.이 깡패 같은 놈들은 뒤에 있는 배현수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웠다.“아저씨! 뒤에서 기어 와요? 저희가 기다려 줄까요?”차 안에 있던 배현수는 무표정으로 또 한 번 액셀 브레이크를 밟아 시속 300km/h로 올렸다.이 마이바흐 차량은 업그레이드 후에 최대 시속 400km/h까지도 가능했지만, 400km/h까지 올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이들이 타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최대 시속은 기껏해 240km/h로 보였다.이때, 마이바흐 차량이 바람처럼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부대를 추월하게 되자 그중 한 명이 놀라고 말았다.“젠장! 300km/h까지도 가능한 차였어?”“아저씨 죽으려고 환장했
블랙 마이바흐 차량은 급히 핸들을 돌려 길옆에 있는 가드레일을 박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끼익!차바퀴는 지면과 마찰하면서 불꽃과 함께 바닥에 검은 궤적을 남기게 되었고 그 마찰하는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고 말았다.비록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흰색 차량 주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상대방은 차창을 내리더니 화를 냈다.“운전 똑바로 안 해? 죽고 싶으면 혼자서 조용히 죽을 것이지 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차 안에 앉아있던 배현수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표정에 창백한 상태로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가!”“...”‘미친놈!’흰색 차량 주인은 욕하면서 부랴부랴 이곳을 떠났다.마이바흐 차량은 비스듬히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차 앞 대가리가 움푹 파여 있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고, 가만히 앉아있던 배현수는 한참 지나서야 무표정으로 전화를 받게 되었다.전화기 너머에서 송지연이 물었다.“나 병원에 도착했는데. 너는?”배현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또 한 번 물었다.“배현수! 안 들려?”배현수가 갑자기 물었다.“MECT 치료를 받으면 조유진 잊어버릴 수 있어?”“...”송지연은 당황하고 말았다.배현수의 경계선인격장애는 백 프로 조유진으로 인해 생긴 병이라 그녀를 잊어야만 완쾌할 수 있었기 때문에 4년 전에 기억을 없애는 심리치료를 제의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조유진이 죽도록 미웠기 때문에 복수하고 나서 잊겠다고 했었다.송지연은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조유진한테 복수하고, 미워하는 것은 조유진을 불구덩이에 끌어들여 서로 괴롭히고,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거나 다름없었다.결국 조유진을 죽음에까지 몰아냈어도 전혀 잊히지 않았다.“잊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는 있는데. 마음이 정해졌어?”이것은 탑클래스 정신과 의사인 송지연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배현수는 피식 웃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다른
성남시 엄씨 사택.엄씨 가문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그 사람은 바로 엄준의 친딸 백소미였다.엄준은 셰프에게 백소미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상차림을 준비하라고 했다.저녁 식사 자리에는 조유진과 엄창민도 참석했다.엄준은 기쁜 마음에 잔을 들더니 말했다.“자. 소미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하지.”사람들은 다 같이 축배를 들었다.엄준은 백소미와 몇 마디 나누더니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최근에 환희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조유진은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 할 줄 알아요.”백소미는 엄씨 가문에 오기 전에 가족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왔기 때문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전에 인터넷에서 조햇살 씨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엄청나게 잘하시던데요? 아빠, 전에 ‘골든 스틸’을 좋아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늘 밤 분위기도 좋은데 유진 씨 저희를 위해 연주해 줄 수 있을까요?”엄준은 아내 신희수가 죽은 뒤로 옛 기억이 떠오를가봐 연주회도 관람하지 않아 ‘골든 스틸’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그는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환희야, 가능하다면 한 곡 부탁드릴게.”오늘은 친딸도 돌아오고, 수양아들 수양딸도 한자리에 함께해서 와인도 마셨겠다 아주 기분 좋은 상태였다.조유진은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이렇게 말했다.“그러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한 곡 연주해 보겠습니다. 못해도 웃으시면 안 돼요.”엄준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더니 말했다.“도 집사, 사모님 바이올린 가져와 봐.”“사모님 바이올린이요?”도 집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특별제작한 그 바이올린은 신희수가 남긴 유물이었다. 살아생전 이 바이올린으로 자주 엄준에게 ‘골든 스틸’을 연주해 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 만지게 할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물건이었다.‘그거를 조유진 씨한테 준다고?’“맞아. 환희가 연주할 수 있게 가져와 봐. 특별제작한 거라 음색이 아주 좋거든.”이 순
문제 있을 리가 없었다.세상에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저 엄준과 조유진이 인연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엄준은 혼이 빠져나간 듯 조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러게, 너무 닮았어...”아름다운 선율이 클라이맥스에 달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현이 하나 끊어지면서 노랫소리가 그만 멈추고 말았다.도 집사는 그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현이 끊어졌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어르신, 이거...”엄준이 손을 저었다.“괜찮아. 몇 해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래. 현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끊기는 것도 정상이야. 다시 새로 교체하면 돼. 아무것도 아니야.”조유진이 사과했다.“저 때문에 끊어졌으니 교체하는 것은 저한테 맡겨주세요.”“그래. 이 바이올린 환희한테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음에 들면 내가 선물해 주고 싶어.”엄준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조유진은 이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다.“아버지. 너무 소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가 없어요.”이 바이올린은 조유진한테는 그저 평범한 바이올린뿐이었지만 신희수의 유물이라 엄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엄준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는 먼지가 쌓일가봐 계속 옷장에 넣어두고 있었어. 그런데 바이올린은 연주하라고 만들어진 거잖아. 계속 옷장에 있어봤자 빛을 발하지 못해. 몇 해 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니 바로 끊어지는 거 봐. 예술은 계승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며.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무용지물이 되는 거야. 받아. 소중한 물건이라고 생각되면 나한테 자주 연주해 줘.”엄창민이 말했다.“환희야, 받아.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선물하는 건데 안 받으면 속상해하실 거야.”엄준은 엄창민을 가리키더니 소리 내 웃었다.“그동안 옆에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네. 역시 창민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엄준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조유진도 더는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았다.“아버지, 저 이 바이
백소미는 엄준을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핸드폰이 울려 발신자 번호를 봤더니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 보스님.”상대방은 변조된 목소리로 통화했다.“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이미 한 달도 지났는데 엄씨 가문에서는 언제 너의 신분을 밝히는 거야?”백소미는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아직 엄준의 신임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보스님,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전화기 너머 남자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그러니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더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네?”“엄준이 수양딸로 받아들인 조유진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엄씨 가문에 들어왔어도 엄환희의 신분은 계속 조유진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약 조유진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면 없애버려도 좋아.”“네, 알겠습니다. 보스님.”“빨리 성행 그룹에 입사해서 결정적 업무를 받아야 해. 나는 네가 엄씨 가문의 신임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다는 거 잘 알잖아.”“그러면 엄창민은...”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악독하게 말했다.“방해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려!”“...네.”“그리고 등 뒤에 있는 몽고반점 언제나 명심해. 엄씨 가문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경계심을 품고 있을 거야.”“알겠습니다.”백소미는 통화를 마치고 통화기록을 지워버렸다.옷을 벗어 거울을 통해 등 뒤를 확인했더니 멍든 자국이 아직 남아있었다.며칠 후 멍 자국이 없어지면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대제주시 반얀트리 호텔.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보스님, 조유진이 엄준의 친딸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살려둘까요?”“아니, 죽여버려.”똑 똑 똑.말이 끝나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방 안에 있던 사람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말했다.“일단 가봐.”“네.”침입자는 다시 귀신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단 몇 초 사이, 스위트 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문밖
“그렇게나 빨리? 대제주시에서 볼 일은 다 끝났어?”“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네 주인인 내가 어디 가면 그냥 따라오면 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그래요, 주인님.”하지만 성남으로 돌아가기 전, 두 사람의 목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조유진이 죽으면 엄준이 슬퍼할지 모르겠네. 아쉽네, 곧 죽게 되는 마당에 자기 친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다음 날 오후 6시.엄창민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연주회 저녁 8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나니까 먼저 저녁부터 먹자. 아니면 2시간 동안 배고플 거야.”“그래요, 간단히 아무거나 먹죠.”조유진이 차에 올라타자 엄창민이 물었다.“뭐 먹고 싶어?”“훠궈 먹으러 가요.”“훠궈?”엄창민에겐 오늘이 연인 사이의 데이트는 아니더라도 첫 정식 데이트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첫 데이트에 훠궈? 좀 그렇지 않나?’조유진은 그가 훠궈를 싫어하는 줄 알고 말했다.“삼겹살 먹어도 괜찮아요.”“...그래.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이들은 극장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조유진은 아무거나 대충 먹자는 말 그대로 엄창민을 평범한 삼겹살 가게로 데려갔다.가게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참 기다려야 했다.정장 차림인 엄창민은 다소 이 가게와 어울리지 않았다.조유진은 그를 쳐다보더니 머쓱해하면서 말했다.“평소에 어떤 곳에서 식사해요? 고급 레스토랑?”“...응.”사실대로 말했지만 조유진이 무안해할가봐 또 말을 바꿨다.“그런데 이 가게도 맛있을 것 같아. 삼겹살 가게는 또 처음 와보네. 삼겹살 좋아해?”“네. 평소에 많이 먹어요.”조유진은 삼겹살이며 훠궈를 먹기 좋아했다. 배현수와 연애했을 때도 그가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영화 보고, 밀크티를 마시고, 훠궈도 먹고 삼겹살도 먹었었다... 그리고 쇼핑몰 안마의자에서 온 오후 시간을 보냈었다.함께라면 아무리 재미없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사실 배현수는 주말에 그녀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