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기대어 구경하고 있던 육지율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현수랑 오래 알고 지내면서 이렇게 예쁜 여사친이 있는 줄 몰랐네요. 현수가 워낙 꽁꽁 숨겨서요.”그는 조유진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는 듯 여사친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말했다.송지연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과찬입니다.”그녀는 일부러 여사친이라는 호칭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 미션은 조유진을 자극시켜 그 반응을 잘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배현수도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조선유가 호기심에 조유진한테 물었다.“엄마, 여사친이라는 게 뭐야?”조유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설명했다.“너랑 퉁퉁이 같은 아주 친한 친구를 말하는 거야.”“우와! 나도 아빠 여사친 할래!”조유진이 말했다.“선유는 원래 아빠의 친한 친구잖아.”다만, 가끔 말대꾸하는 친구이지만 말이다.옆에 서 있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얼굴에서 실망감이나 슬픈 표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한참을 봐도 그런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그야말로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차가울 정도로 냉정해 질투는커녕 표정 변화마저 없었다.‘이것이 바로 라이벌을 대하는 태도인가?’송지연은 그런 조유진을 더 유심히 관찰했다.‘조유진... 정상적이진 않아. 열정적으로 주변의 일과 사람을 대하면서 무리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웃음기가 하나도 없어.’잠시 후 남초윤이 도착하고, 조유진이 말했다.“다 오셨네요. 요리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 보고 올게요.”남초윤은 별장에 도착해서 모든 사람과 인사했지만 유독 육지율만은 모른 척했다. 거실에 남아 육지율을 마주하기 싫었는지 조유진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나랑 같이 가.”두 사람은 그렇게 부엌으로 들어갔다.남초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육지율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내가 여기 서 있는 거 안 보이나?’주방에 있는 장 셰프는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사모님, 이제 몇 가지 요리만 남기고 다 되어갑
조선유는 자연적으로 조유진의 옆에 앉게 되었고 남초윤도 뺏길세라 조유진의 옆을 차지했다.배현수의 차가운 눈빛에 남초윤은 섬뜩하긴 했지만, 자리를 비켜주는 대신 맞은편을 짚으면서 중얼거렸다.“친구 옆에 가서 앉으세요.”어차피 배현수와 육지율은 끈끈한 형제애로 맺어진 사이였다.배현수는 조유진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이 자리 배치에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그는 이를 꽉 깨물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육지율의 옆에 가서 앉았다.육지율도 질세라 의자를 들어 한끝으로 가더니 팔꿈치로 배현수를 찔렀다.“지연 씨는 너의 여사친인데 내가 옆에 앉기는 좀 그렇잖아.”배현수는 센터로 밀려나 좌 육지율, 우 송지연이 되어버렸다.조유진도 센터에 앉아있었다.그러고 보니 조선유와 송지연, 남초윤과 육지율, 센터에 앉은 배현수와 조유진이 마주 보게 되었다...제대로 짝을 만난 것이었다.오른손을 다친 배현수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할 수가 없어 그동안은 조유진이 먹여주거나 왼손으로 젓가락질했다.왼손으로 젓가락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오른손처럼 편하지는 않았다.요 며칠 조유진도 습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배현수에게 음식을 짚어주려다 송지연이 먼저 공용 젓가락으로 배현수에게 새우 한 마리를 집어주는 것을 보았다.수육 하나를 짚은 조유진은 결국 옆에 있던 조선유에게 건네주게 되었다.아주 자연스럽게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하지만 이때, 조선유가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엄마, 잊었어? 나 수육 안 좋아하잖아!”수육에는 비계가 있어 먹기 싫어했다.조선유의 입맛을 모를 리가 없는 조유진은 멈칫하더니 다시 수육을 자기 그릇에 넣었다.“그러면 갈비 먹어.”그러고는 또 조선유에게 갈비를 집어주었다.“새우 먹을래!”조유진은 조선유를 위해 새우 한 마리를 집어와 손수 껍질을 까주었다.조선유는 배현수 그릇에 있는 새우를 보더니 말했다.“아빠는 새우 껍질 바르지 못하니까 엄마가 발라줘.”조유진은 껍질을 바른 새우를 조선유에게 먹여주더니 또 새우 한 마리를 집어와 배현
송지연은 이곳에 혼자 운전해서 왔고 이 부근은 대리 부르기도 쉽지 않았다.더군다나 배현수는 팔을 상해서 운전하지도 못했다.취하면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없기는 했지만...송지연은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물었다.“제가 취하면 유진 씨가 저를 데려다주실래요?”남초윤은 할 말이 없었다.“...”‘이년이 얼굴도 두껍네?’식사 자리는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조유진만은 덤덤했다.“그래요, 제가 데려다줄게요.”남초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조유진을 쳐다보았다.“...”“취하면 여기서 자고 가. 남는 것이 방이야!”배현수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송지연마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이 이런 초강수를 둔다고?’배현수는 어두운 눈빛으로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장 아주머니, 술 냉장고에 있는 40도짜리 보드카를 가져다주세요!”“대표님, 몇 병을 가져다드릴까요?”“다섯 명이니까 다섯 병 가져다주세요!”장은숙은 한숨을 들이마셨다.“...”‘사람이 죽어 나갈 일은 없겠지?’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장은숙은 무의식적으로 이 집의 여주인인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대표님 정상이 아니신 것 같은데 사모님이 좀 말려주실래요?’하지만 조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아주머니, 가져다주세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기쁘신가 봐요.”육지율은 옆에서 수박 한 조각을 먹으면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나는 안 마셔. 마셔도 와인이나 마시지. 복분자주 같은 건 어릴 때 많이 마셔서 냄새만 맡아도 싫어.”남초윤이 말했다.“기사 아저씨가 술은 무슨. 와인도 마시지 마세요.”육지율마저 술을 마시면 자신을 데려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건방지게 의자에 기대어 흥미진진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며칠 전에는 이혼하자고 그러더니. 왜 와인도 마시지 못하게 해? 와이프 노릇이나 하려고?’남초윤은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그러자 육지율이 운을 뗐다.“그래요. 마시지 않을게요. 수박이나
조유진이 갑자기 말했다.“마시고 싶으면 마셔요. 어차피 배 대표님 별장에는 방도 많은데. 한 사람이 자든 세 사람이 자든 상관없어요.”조유진은 아까처럼 냉정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감정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그녀를 계속 관찰하던 송지연은 이 표정 변화를 포착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잔을 들면서 말했다.“유진 씨도 좀 마시지 그러세요?”취중 진담이라는 말대로 술을 마시면 감정도, 마음도 읽히기 쉬웠다.배현수가 말렸다.“유진이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 마시지 못해.”“그럼 말고.”송지연도 이대로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때 조유진이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못 마실 거 뭐 있어요. 지연 씨가 저랑 한잔 마시고 싶다는데 같이 마셔드려야죠.”예전에 조유진은 심한 알코올 알레르기를 앓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몇 번 술을 마셨더니 알레르기 반응은 있어도 예전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한잔 마시면 기껏해 두드러기가 나서 며칠 가려울 뿐이었다.조유진이 자신에게 한 잔 따르려고 하자 배현수가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렸다.“조유진.”하지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손에 쥐고 있던 보드카 한잔을 그대로 쭉 들이켰다.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는 술잔을 머리 위에 올려놓더니 송지연을 쳐다보았다.“지연 씨, 저는 다 마셨어요. 이제 지연 씨 차례에요.”송지연은 눈앞에 있는 조유진한테서 흥미를 느꼈다.‘조유진 씨도 정말 현수처럼 죽을 각오까지 하는 성격이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40도짜리 보드카를 들이켜? 이제야 현수가 왜 수년간 잊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 독해, 너무나도 독해. 자신한테도, 현수한테도 너무 독해. 겉으론 약해 보여도 현수랑 같은 성격이야.’조유진이 통쾌하게 한잔 마셔버리자, 송지연도 잔에 술을 가득 담더니 한 번에 들이켰다.이때 남초윤이 말했다.“저기요, 저랑 마시자고 하더니 왜 유진이랑 마시고 있어요? 유진이 알코올 알레르기 있다니까 만만해 보여요?”송지연
육지율은 평소에는 껄렁거려 보여도 진지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람이었다.남초윤은 술에 취해도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휘청거리면서 조유진을 찾아가려고 했다.육지율은 그런 그녀의 손목을 확 잡더니 말했다.“저랑 이혼하려고 한다면서요?”“...”‘제기랄, 취했는데 무슨 이혼 소리야.’“술 깨면 다시 얘기해요.”남초윤이 손을 뿌리치자 육지율은 벌떡 일어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저번 주 김성혁 씨와 인터뷰 끝나고 같이 밥 먹는 모습이 찍힌 거 할아버지가 보셨어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설명?’남초윤은 인터뷰 전날에야 인터뷰 대상이 김성혁이라는 것을 알았다.밥을 먹은 것은 그저 우연한 쫑파티 자리였을 뿐이었다!남초윤은 실실 웃더니 많이 취했는지 육지율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이성과 밥 먹은 것도 설명해야 한다면 육 변호사님은 천번 만번 해야겠어요!”‘설명은 무슨. 어차피 이 결혼생활 더는 이어가고 싶지도 않은데.’남초윤은 결혼생활 2년 동안 육지율한테 잘못한 것이 없었다. 바람을 피우지도 않았고, 육지율과의 잠자리를 거절한 외에 그한테 잘못한 부분이 없었다.“남! 초! 윤!”육지율은 화났는지 한 글자 한 글자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남초윤이 피식 웃었다.“육씨 가문이 워낙 대단해서 지율 씨가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없다는 거 알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뭐 더 말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냥 대충 사는 거죠.”그냥 이대로 포기하기로 했다.‘이혼하든 말든.’남초윤은 육지율에게 가까이 가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런데 지율 씨는 원하는 것이 뭐예요? 어차피 달지도 않은 수박일 텐데.”육지율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달지 않으면 달지 않은 대로 먹으면 되죠! 달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저는 원래 단거 안 좋아해요!”남초윤은 할 말이 없었다.“...”장은숙이 뒤에서 애타게 불렀다.“육 변호사
“잘 봐요! 나는 그 빈털터리가 아니라고요!”남초윤은 헤벌쭉 웃기만 했다.‘빈털터리이든 말든.’“잘생기면 된 거죠... 거기 잘생기신 분, 오늘 밤 재워드릴까요?”“...”남초윤은 가까이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저한테 카드 있어요!”남초윤은 가방 안에 있는 카드를 꺼내려고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내 카드로 나를 재워주겠다고?’육지율은 화가 나 단호한 말투로 물었다.“아가씨, 진심이세요?”“진심이고 말고요. 저희 남편 돈 엄청 많아요. 하룻밤 재워주는 비용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을 거예요!”“...”육지율은 이가 빠질 정도로 바득바득 갈았다.“남. 초. 윤!”그는 마치 숨을 끊어놓을 듯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꽉 잡았다.남초윤은 숨쉬기 어려운지 본능적으로 입을 벌렸다.‘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남초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하지만 이때, 육지율은 고개를 숙여 자기 입술로 술 냄새가 풍기는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김성혁만 강제 키스를 할 줄 아는 것이 아니야! 내가 못 할 줄 알았어? 일부러 가만히 놔줬더니 정말 동의를 거쳐야 터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렇게 이 둘은 뒤엉켜 붙고 말았다.육지율이 제대로 힘을 쓰면 남초윤은 밑에 깔려서 울 수밖에 없었다.이때 육지율은 그녀의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더니 차갑게 말했다.“이름을 다시 잘 못 불렀다간 차에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요!”남초윤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의 넥타이를 힘껏 잡아당겼다.취기가 올라와 두려운 것이 없었다.‘누군데 이래. 그냥 술집 호스트인 주제에 겁도 없이! 죽을래?’남초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더니 말했다.“이봐요, 내가 경고하는데. 이 바닥에서 계속 지내고 싶다면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을 거예요!”그러고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두드렸다.그리고... 블랙 카드를 꺼내더니 그의 얼굴에 던졌다!술만 취했지 멍청하지는 않았다.‘누가 잔대? 무슨 성병이 있는지도 모르는데!’남초
이 작은 약병은 나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송지연 발에 닿았다.허리 숙여 약병에 적혀있는 이름을 보았더니 바로 파록세틴이었다.이 약은 각종 우울증 치료에 쓰였고 조급함이 동반된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그리고 PTSD에 쓰이기도 했다.‘유진 씨 정말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PTSD를 앓고 있을지도 몰라.’이때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조유진과 조선유의 목소리마저 들려왔다.“엄마! 나 혼자 잠이 안 와! 같이 잘래!”“그러면 일단 방에 가 있어. 엄마 샤워하고 찾으러 갈게.”“알았어!”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자, 송지연은 당황해하면서 황급히 조유진의 가방을 다시 잠그더니 약병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그렇게 숨을 새도 없이 조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두 사람은 그대로 마주치고 말았다!조유진이 멈칫하더니 물었다.“왜 여기 계세요?”송지연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방을 잘못 들어왔나 봐요. 여기가 저를 위해 준비한 방인 줄 알았어요.”“손님방은 왼쪽에 있어요.”“네. 그럼 가볼게요.”송지연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조유진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송지연은 1층으로 내려가면서 배현수와 마주쳤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물었다.“무엇을 찾았는데?”송지연은 약병을 건네면서 말했다.“파록세틴이야. 네가 전에 말한 반응들과 오늘 저녁 관찰한 모습을 보면 내 판단이 맞는 것 같아.”배현수는 작은 약병을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PTSD?”“맞아. 무슨 이유로 걸린 병인지는 직접 물어봐야 할 거야. 일반적으로 큰 사고를 당해서 걸리는 병이거든.”배현수는 고개 숙여 약병을 만지작거리더니 생각이 많아 보였다.“만약 정말 나한테 PTSD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강제적으로 곁에 둔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고통스러울 거야. 신체접촉이 있을 때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거야. 심지어 질식할 수도 있어.”“이만 가봐. 대리 이미 도착했어.”배현수는 아
“조유진, 사실대로 말해.”배현수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조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정말 사실대로 말해요? 저한테는 안 좋은 기억이라 말하기 싫은데.”어떤 말은 입 밖에 내면 수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배현수가 계속 되물었다.조유진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배현수를 쳐다보았다.“현수 씨,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제 6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냥 모른 척하면 될 거 아니에요. 마지막 6일을 즐겁게 보내다가 각자 갈 길 가면 안 될까요?”‘왜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거지?’하지만 배현수는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고 애매모호한 대답보다 확실한 대답을 원했다.그는 작은 약병을 보더니 비웃듯이 말했다.“전에 말한 흥분제, 흥분제도 아니지?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나한테 가까이할 수도 없었지? 고통스러울 만큼?”“...”“조유진, 내 말이 맞아?”배현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조유진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침을 꿀꺽 삼켰다.“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요?”그가 따지지만 않는다면 아름다운 관계로 남을지도 몰랐다.“왜 이렇게 된 건지 알고 싶어서 그래.”조유진은 고개를 숙여 슬픈 감정을 숨기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배현수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것 같았다.“어머님 죽음과 관련 있어?”배현수는 망설임 끝에 이 질문을 했다.조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를 참으면서 말했다.“아직 팔의 상처도 낫지 않았는데 이 말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나중에 나으면...”“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6일이라도 내 옆에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거라면. 유진아, 내가 정말 너한테 마음을 독하게 먹은 줄 알아?”그는 자신한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곁에 잡아둬서 약을 먹게 할 정도로 독한 사람은 아니었다.조유진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심지어 고개 들어 배현수를 볼 수조차 없었다.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배현수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 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말해도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