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서로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헤어지는 것은 한 사람의 일이에요. 상대방의 동의 같은 건 필요 없어요.”“그런데 임신한 건 왜 일부러 계속 숨겼어요?”“아이를 핑계로 억지로 이찬 씨 발목 잡고 싶지 않아요. 나도 한때는 이찬 씨와 정말 결혼하고 싶었죠. 순진하기도 하지... 이찬 씨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줄 알았으니까... 이찬 씨 마음속에 조유진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도 모르고. 이찬 씨, 그거 알아요? 당신은 자면서까지 조유진 이름 부른다는 거? 이런 것까지 신경이 안 쓰이지는 않아요. 나는 이찬 씨 옆에만 있으면 만족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나도 생각보다 꽤 욕심이 있더라고요. 나 혼자 좋아하는 거 이제 못하겠어요.”욕심이 많은 그녀는 사랑받기를 바랐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바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있는 심미경은 얼굴을 살짝 숙인 채 자기 기분을 최대한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서 어느새 그녀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울고 싶지 않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억울해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녀 혼자 강이찬을 좋아한 것일 뿐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강이찬은 그 자리에 선 채 그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몸을 굽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미경 씨, 우리 결혼해요. 진짜로 결혼해요. 날짜는 변함없이 월말 그대로 해요. 나 꼭 아이와 미경 씨에게 좋은 가정 만들어 주고 싶어요. 나를... 나를 한 번만 더 믿어주면 안 될까요?”그의 눈빛은 깊고 진지했다.심미경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이찬 씨, 나와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그냥 내가 임신했기 때문에 그저 나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거예요?”‘그것도 아니면 그는 조유진의 그림자와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하지만 이 말을 그녀는 차마 물어볼
심미경의 눈물이 그의 손등에 닿았다.강이찬이 또 말했다.“미경 씨, 이제부터 미경 씨 차갑게 대하지 않을 테니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번에는 잘해드릴게요.”이성적으로는 그를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자, 슬프기만 했다.“이찬 씨, 한 번 더 믿어도 되는 거예요?”강이찬은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더니 말했다.“미경 씨, 저랑 결혼해 줄래요?”이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반지는 그가 직접 고른 것이었다.강이찬은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워주면서 말했다.“만약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제주시로 돌아가서 다시 골라도 돼요.”심미경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약지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았다.예전에는 그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꿈꿔왔는데 정작 프러포즈를 받으니 어째서인지 전혀 기쁘지 않았다.아마도 강이찬이 자신과 결혼하려는 이유가 임신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강이찬은 흔들리는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이진이 독립시키려고요. 이제부터 미경 씨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동시통역하고 싶다면서요? 이미 온라인에 접수 신청했어요. 아직은 임신 중이라 급히 일할 필요도 없으니 먼저 동시통역 자격증을 취득하고, 출산하고 몸조리도 끝내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해도 돼요. 말리지 않을게요.”‘동생을 끔찍이 사랑하던 사람이 동생을 독립시키겠다고?’“쫓아내면 이진이가 이찬 씨를 미워하지 않을까요?”“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고생도 좀 맛보게 해야 하겠어요.”심미경은 어두워진 그의 눈빛 속으로 점점 깊이 빠지게 되었다.“이찬 씨, 이번이... 마지막 기회에요.”강이찬을 위한, 그리고 자신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그래요. 여전히 마음이 안 놓인다면 대제주시로 돌아가자마자 혼인신고부터 해요.”‘혼인신고?’심미경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둘 사이의 관계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혼인신고는 나중에 해요.”“그래요. 저랑 대제주시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요.”
정설혜가 쇼핑몰에서 사람을 칼로 찌른 동영상을 삭제하고 댓글도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인기 검색어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댓글 비공개 태세로 오히려 반감을 샀던 것이다.어떤 네티즌들은 조햇살 계정에 입에 담지도 못할 악성 댓글을 달았다.그로 인해 이틀에 한번 업데이트하던 계정은 연속 며칠 동안 업데이트하지도 못했다.요 며칠 조유진은 최선을 다해 배현수를 돌봐주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적었다. 조선유도 낮에는 등교해야 했기 때문에 커다란 별장은 썰렁하기만 했다.조유진은 소파에 앉아 일기책을 보고 있었다. 배현수와 약속한 시간은 한 달이었지만 그가 팔을 다치는 바람에 6일이 더 추가되었다.그래도 눈 깜짝할 사이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었다.예정대로라면 배현수는 다음 주 금요일에 실밥을 제거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아직 6일이 남아있었다.조유진은 오늘 날짜를 지워버리더니 일기장을 닫았다.배현수는 2층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점심때 아무것도 먹지 않아 조유진이 과일을 준비해서 올라갔다.2층 서재.배현수는 송지연과 통화하고 있었다.“저녁에 친구 몇몇이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을 건데 너도 같이 와.”전화기 너머의 송지연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갑자기 저녁 식사 초대를 한다고? 무슨 꿍꿍인데?”배현수는 4년 동안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준 송지연의 병원만 다녔어도 단 한 번이라도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었다.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도움이 필요해.”“조유진 씨와 관련된 일이야?”“응. 오늘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유진이를 좀 봐줘. 저번에 유진이가 나한테 PTSD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말인데, 오늘 좀 봐줘.”“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유진 씨를 봐주는 거 유진 씨는 알아? 환자마다 정신과의사한테 털어놓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오늘은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좋아하실까...”“정신과 의사인 거 숨겨줘.”송지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뭐라고?”“몰래 관찰하고 진료해 줘.”“그러면 내가
「현수 씨는 지율 씨 파를 안 먹는 거 알더라고.」그리고 뒤에 강아지 이모티콘을 달았다.남초윤: 「오~ 대단한데? 아예 그냥 둘이 살지? 오늘 저녁 볼만하겠군!」조유진:「기대돼.」...오후 4시쯤, 조유진은 조선유 하교 픽업을 다녀왔다.5시쯤 되었을 때, 육지율이 과일바구니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만나자마자 육지율은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배현수에게 건네주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빨리 회복해!”배현수는 그 한 송이를 육지율한테 던지며 말했다.“남자 사이에 꽃은 왜 선물하는데!”“너 건강이 걱정되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그래야 조유진도 빨리 성남으로 돌아가지.”“...”육지율은 염장 지르면서 또 한마디 추가했다.“조유진, 내 말 맞아?”조유진이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육 변호사님, 초윤이 곧 올 거예요. 이혼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은가 봐요. 요 며칠 계속 피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육지율은 입을 움찔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언성을 높였다.“누가 피했다고 그래! 무서워할 줄 알아? 내가 만나보지 못한 세상 물정이 어디 있는데!”배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이혼은 당해보지 못했지.”육지율은 할 말이 없었다.“...”‘제기랄, 할 말이 없게 만드네.’장 셰프가 식전 음료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때 마당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은 남초윤인 줄 알고 고개를 쳐들었다가 한 낯선 여자가 흰색 BMW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육지율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너의 새로운 여자친구?”육지율은 구경거리가 났다는 듯이 말했다.“현수 너 이 자식. 구 여친 현 여친을 한 자리에 불렀어? 대환장 파티로군!”배현수는 그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말했다.“현 여친 좋아하고 있네. 너를 말하는 거야?”“난 새로운 여친 없거든?”송지연은 과일바구니와 선물을 들고 들어오면서 인사했다.“조유진 씨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사진보다 실물이 낫네요.”그녀가 먼저
옆에 기대어 구경하고 있던 육지율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현수랑 오래 알고 지내면서 이렇게 예쁜 여사친이 있는 줄 몰랐네요. 현수가 워낙 꽁꽁 숨겨서요.”그는 조유진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는 듯 여사친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말했다.송지연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과찬입니다.”그녀는 일부러 여사친이라는 호칭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 미션은 조유진을 자극시켜 그 반응을 잘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배현수도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조선유가 호기심에 조유진한테 물었다.“엄마, 여사친이라는 게 뭐야?”조유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설명했다.“너랑 퉁퉁이 같은 아주 친한 친구를 말하는 거야.”“우와! 나도 아빠 여사친 할래!”조유진이 말했다.“선유는 원래 아빠의 친한 친구잖아.”다만, 가끔 말대꾸하는 친구이지만 말이다.옆에 서 있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얼굴에서 실망감이나 슬픈 표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한참을 봐도 그런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그야말로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차가울 정도로 냉정해 질투는커녕 표정 변화마저 없었다.‘이것이 바로 라이벌을 대하는 태도인가?’송지연은 그런 조유진을 더 유심히 관찰했다.‘조유진... 정상적이진 않아. 열정적으로 주변의 일과 사람을 대하면서 무리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웃음기가 하나도 없어.’잠시 후 남초윤이 도착하고, 조유진이 말했다.“다 오셨네요. 요리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 보고 올게요.”남초윤은 별장에 도착해서 모든 사람과 인사했지만 유독 육지율만은 모른 척했다. 거실에 남아 육지율을 마주하기 싫었는지 조유진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나랑 같이 가.”두 사람은 그렇게 부엌으로 들어갔다.남초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육지율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내가 여기 서 있는 거 안 보이나?’주방에 있는 장 셰프는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사모님, 이제 몇 가지 요리만 남기고 다 되어갑
조선유는 자연적으로 조유진의 옆에 앉게 되었고 남초윤도 뺏길세라 조유진의 옆을 차지했다.배현수의 차가운 눈빛에 남초윤은 섬뜩하긴 했지만, 자리를 비켜주는 대신 맞은편을 짚으면서 중얼거렸다.“친구 옆에 가서 앉으세요.”어차피 배현수와 육지율은 끈끈한 형제애로 맺어진 사이였다.배현수는 조유진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이 자리 배치에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그는 이를 꽉 깨물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육지율의 옆에 가서 앉았다.육지율도 질세라 의자를 들어 한끝으로 가더니 팔꿈치로 배현수를 찔렀다.“지연 씨는 너의 여사친인데 내가 옆에 앉기는 좀 그렇잖아.”배현수는 센터로 밀려나 좌 육지율, 우 송지연이 되어버렸다.조유진도 센터에 앉아있었다.그러고 보니 조선유와 송지연, 남초윤과 육지율, 센터에 앉은 배현수와 조유진이 마주 보게 되었다...제대로 짝을 만난 것이었다.오른손을 다친 배현수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할 수가 없어 그동안은 조유진이 먹여주거나 왼손으로 젓가락질했다.왼손으로 젓가락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오른손처럼 편하지는 않았다.요 며칠 조유진도 습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배현수에게 음식을 짚어주려다 송지연이 먼저 공용 젓가락으로 배현수에게 새우 한 마리를 집어주는 것을 보았다.수육 하나를 짚은 조유진은 결국 옆에 있던 조선유에게 건네주게 되었다.아주 자연스럽게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하지만 이때, 조선유가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엄마, 잊었어? 나 수육 안 좋아하잖아!”수육에는 비계가 있어 먹기 싫어했다.조선유의 입맛을 모를 리가 없는 조유진은 멈칫하더니 다시 수육을 자기 그릇에 넣었다.“그러면 갈비 먹어.”그러고는 또 조선유에게 갈비를 집어주었다.“새우 먹을래!”조유진은 조선유를 위해 새우 한 마리를 집어와 손수 껍질을 까주었다.조선유는 배현수 그릇에 있는 새우를 보더니 말했다.“아빠는 새우 껍질 바르지 못하니까 엄마가 발라줘.”조유진은 껍질을 바른 새우를 조선유에게 먹여주더니 또 새우 한 마리를 집어와 배현
송지연은 이곳에 혼자 운전해서 왔고 이 부근은 대리 부르기도 쉽지 않았다.더군다나 배현수는 팔을 상해서 운전하지도 못했다.취하면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없기는 했지만...송지연은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물었다.“제가 취하면 유진 씨가 저를 데려다주실래요?”남초윤은 할 말이 없었다.“...”‘이년이 얼굴도 두껍네?’식사 자리는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조유진만은 덤덤했다.“그래요, 제가 데려다줄게요.”남초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조유진을 쳐다보았다.“...”“취하면 여기서 자고 가. 남는 것이 방이야!”배현수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송지연마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이 이런 초강수를 둔다고?’배현수는 어두운 눈빛으로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장 아주머니, 술 냉장고에 있는 40도짜리 보드카를 가져다주세요!”“대표님, 몇 병을 가져다드릴까요?”“다섯 명이니까 다섯 병 가져다주세요!”장은숙은 한숨을 들이마셨다.“...”‘사람이 죽어 나갈 일은 없겠지?’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장은숙은 무의식적으로 이 집의 여주인인 조유진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대표님 정상이 아니신 것 같은데 사모님이 좀 말려주실래요?’하지만 조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아주머니, 가져다주세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기쁘신가 봐요.”육지율은 옆에서 수박 한 조각을 먹으면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나는 안 마셔. 마셔도 와인이나 마시지. 복분자주 같은 건 어릴 때 많이 마셔서 냄새만 맡아도 싫어.”남초윤이 말했다.“기사 아저씨가 술은 무슨. 와인도 마시지 마세요.”육지율마저 술을 마시면 자신을 데려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건방지게 의자에 기대어 흥미진진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며칠 전에는 이혼하자고 그러더니. 왜 와인도 마시지 못하게 해? 와이프 노릇이나 하려고?’남초윤은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그러자 육지율이 운을 뗐다.“그래요. 마시지 않을게요. 수박이나
조유진이 갑자기 말했다.“마시고 싶으면 마셔요. 어차피 배 대표님 별장에는 방도 많은데. 한 사람이 자든 세 사람이 자든 상관없어요.”조유진은 아까처럼 냉정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감정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그녀를 계속 관찰하던 송지연은 이 표정 변화를 포착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잔을 들면서 말했다.“유진 씨도 좀 마시지 그러세요?”취중 진담이라는 말대로 술을 마시면 감정도, 마음도 읽히기 쉬웠다.배현수가 말렸다.“유진이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 마시지 못해.”“그럼 말고.”송지연도 이대로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때 조유진이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못 마실 거 뭐 있어요. 지연 씨가 저랑 한잔 마시고 싶다는데 같이 마셔드려야죠.”예전에 조유진은 심한 알코올 알레르기를 앓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몇 번 술을 마셨더니 알레르기 반응은 있어도 예전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한잔 마시면 기껏해 두드러기가 나서 며칠 가려울 뿐이었다.조유진이 자신에게 한 잔 따르려고 하자 배현수가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렸다.“조유진.”하지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손에 쥐고 있던 보드카 한잔을 그대로 쭉 들이켰다.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는 술잔을 머리 위에 올려놓더니 송지연을 쳐다보았다.“지연 씨, 저는 다 마셨어요. 이제 지연 씨 차례에요.”송지연은 눈앞에 있는 조유진한테서 흥미를 느꼈다.‘조유진 씨도 정말 현수처럼 죽을 각오까지 하는 성격이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40도짜리 보드카를 들이켜? 이제야 현수가 왜 수년간 잊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 독해, 너무나도 독해. 자신한테도, 현수한테도 너무 독해. 겉으론 약해 보여도 현수랑 같은 성격이야.’조유진이 통쾌하게 한잔 마셔버리자, 송지연도 잔에 술을 가득 담더니 한 번에 들이켰다.이때 남초윤이 말했다.“저기요, 저랑 마시자고 하더니 왜 유진이랑 마시고 있어요? 유진이 알코올 알레르기 있다니까 만만해 보여요?”송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