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48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강이진은 침대에 엎드려 어떻게 하면 조유진을 배현수 곁에서 떼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마당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을 거두고 1층으로 내려가 봤더니 강이찬이 돌아온 것이었다.

“오빠,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에 들어왔어?”

‘오늘은 출근일 아닌가? 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강이찬은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지금 원주에 가려고.”

“원주?”

강이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 자그마한 곳은 심미경 고향 아니야? 오빠, 정말 속아 넘어간 거 아니야? 직접 가서 데려오려고? 내가 말했잖아. 이거 그냥 그년 수작이라고. 밀당하는 거라고...”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이찬이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짐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

“왜? 원주에 가서 그년을 데려오는데 내가 왜 떠나야 해? 어디에 가 있으라고? 나 오빠 동생이야. 설마 길바닥에 나앉으라고?”

분명 전에 심미경한테 강이찬이 데리러 가면 이름 석 자를 거꾸로 쓰겠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었지만 강이찬은 이번에 결심한 듯 단호하기만 했다.

“너 24살이나 되었어. 어린 애가 아니야. 이진아, 독립할 줄도 알아야지. 이번에 밖에서 고생 좀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고생 한번 못 해봐서 이렇게 제멋대로야.”

“내가 왜 고생을 해야 하는데? 오빠는 이 커다란 집에서 살면서 나는 왜 밖에 나가서 고생해야 하는데? 그래.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니까 이제 나를 괴롭히려고? 엄마 아빠가 알면 가만히 안 놓아둘 거야!”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엄마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너 엄하게 키우는 거야. 지금도 이런데 내가 널 교육하지 않으면 나중에 엄마 아빠 볼 면목도 없어.”

강이찬은 말을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 안방으로 가 짐을 정리했다.

강이진은 제자리에서 화가나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강이찬!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야! 심미경이 일부러 덫을 놓은 거라고!”

강이찬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49화

    강이찬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한다면 심미경이 따라서 결혼할 줄 알았던 것이다.유일하게 결혼할 수 없는 이유 단 한 가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이찬은 넋 놓게 되었다.‘예전에는 왜 이런 사람인 줄 몰랐지?’...산성 별장.장은숙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더니 물었다.“사모님, 이 옷 잘못 버린 거에요 아니면 정말 버리는 거예요? 새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잘 못 버릴까 봐 여쭤보려고요.”‘이거 내가 어제저녁 입었던 옷 아니야?’조유진은 자신이 세탁 바구니에 넣었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무의도에서 배현수는 무슨 취미 때문인지 조유진의 옷을 마구 버렸다.비록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대제주시로 올 때 옷을 몇 벌 안 챙겨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아직 10날이 남았는데 뭐 입지?’요 며칠 배현수는 전례 없는 자택 근무를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2층을 힐끔 보더니 바로 배현수를 찾으러 서재로 향했다.“현수 씨, 어제저녁 제가 입은 이 옷, 현수 씨가 버렸어요?”그녀가 갑자기 뛰쳐 들어와 이런 질문을 하자 배현수는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옷 몇 벌 따위 오후에 다시 사러 가면 되지.”조유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제 옷을 버렸어요?”“어제저녁 그 옷 신준우 가운에 닿았잖아. 가운에는 세균이 많아. 난 결벽증이 있다고.”조유진은 이 설명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어제저녁 신 선생님이 저를 안아서 제 몸에도 세균이 묻었는데 왜 저는 안 버렸어요?”“옷은 버려도 다시 사면 되지만 너를 버리면... 이 세상에는 두 번째 조유진이 없잖아.”담담한 말투에 굳이 뭐라 할 수가 없었다.배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오후에 쇼핑할 때 같이 갈까?”“일하고 있잖아요. 초윤이랑 사러 가면 돼요.”‘현수 씨 같은 성격에 쇼핑이나 할 인내심이 있을까?’“유진이는 왜 남초윤밖에 몰라?’배현수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피식 웃었다.“만약 법적으로 동성결혼이 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0화

    “엄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대제주시는 집값도 비싸잖아. 일반 대학을 필업해서 몇십 년을 일해도 집 하나 못 사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향에서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밖에서 무슨 서러운 일을 겪었어?”“엄마, 서러운 일은 무슨.”조윤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공무원시험도 쉽지 않아. 너희 사촌 언니도 몇 해 동안 시험 봤는데 아직이야. 너는 영어를 잘하잖아. 영문 전업이기도 했고. 공무원시험을 보면 배웠던 거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어?”심미경도 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시통역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원주시로 돌아오려면 공무원이 낫다고 생각했다.“그건 아니야. 나중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으면 또 찾으면 돼.”조윤미는 이런 것에 대해 잘 몰랐다.“일단 생각 좀 잘해보고. 요즘 살이 빠진 것 같아. 아침에 달걀 좀 삶았는데 먹고 공부해.”조윤미는 달걀을 가져오더니 하나 까서 건네주었다.심미경은 달걀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하고 말았다.전에 통화했을 때 심미경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면서도 반년이 지나도 보여주지 않았고 매번 물어볼 때마다 일이 바빠서 나중에 함께 보러 오겠다고 했다.그리고 이번에 이유 없이 집에 돌아와 여기서 일하겠다면서 남자친구와 계속 만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 걸 보니 더욱더 이상하다고 느껴졌다.조윤미는 달걀 냄새에 헛구역질하는 것이 무슨 증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혹시 임신했어?”심미경은 속을 달래더니 급히 설명했다.“엄마, 그냥 속이 안 좋아서 그래.”“나를 속이려고? 나도 너 가졌을 때 달걀 냄새를 맡지 못했어. 솔직히 말해. 이 아이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 아이지?”심미경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조윤미는 침묵을 지키는 딸 모습에 흥분하면서 손찌검했다.“혼전임신이잖아! 이러면 이제 시집에서 얕볼 거란 말이야! 왜 그랬어! 미경아. 남자친구는? 왜 혼자 왔어?”조윤미는 심미경이 입을 열지 않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결국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1화

    조윤미는 심미경을 원주시에 있는 한 병원으로 데려갔다.이때 블랙 포르쉐 한 대가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운전하고 있던 진민우는 백미러로 힐끔 보더니 확신이 부족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 심미경 씨 본 것 같은데 맞아요?”강이찬은 심미경이 한 중년여성에 끌려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차 세워.”...병원 내부, 조윤미는 접수를 마치고 심미경과 함께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조윤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손을 꽉 잡았다.“미경아, 엄마 탓하지 마. 나는 너 다른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혼전임신에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릴 거라고. 너한테도 안 좋은 일이야. 이제 몇 살이나 되었다고 아이를 낳아.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인생, 이대로 발목 잡히게 할 순 없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이 아이 낳게 할 수 없어.”심미경은 창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조윤미가 자신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도망치지는 않았다.전에 아이를 지울까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정작 지우려고 하니 아쉬울 뿐이었다.심미경은 조윤미를 간절하게 쳐다보니 물었다.“엄마, 생각을 좀 더 해보면 안 될까?”“생각할 게 뭐 있어. 아이는 뱃속에서 하루하루 커가는데 시간을 지체할수록 너한테 안 좋아! 그 남자가 너랑 결혼해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면 몰라도. 아니면 이 아이 절대 낳을 수 없어!”‘결혼? 근데 이찬 씨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아이를 핑계 삼아 결혼해달라고 할 순 없잖아.’심미경이 중얼거렸다.“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이 아이 가질 수 없는 거야!”진료실에서는 심미경의 이름을 세 번째나 부르고 있었다.“3번 고객님 심미경 씨!”조윤미는 심미경을 끌고 진료실로 들어갔다.의사가 물었다.“어디 편찮으세요?”조윤미는 문을 닫더니 조용히 말했다.“의사 선생님, 저희 딸 임신했는데 이 아이 원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오늘 내로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2화

    강이찬은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미경 씨 책임질 테니 저랑 돌아가요.”“돌아가서 뭐해요? 이찬 씨, 저희는 이미 헤어졌어요.”강이찬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돌아가서 결혼해요.”...대제주시 쇼핑몰.조유진은 연한 브이넥 원피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나왔다.가게 직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밍크 숄을 하나 가져와 조유진 어깨에 걸쳐주었다.“배 사모님은 인물이 좋으셔서 이 브이넥 원피스에 밍크 숄을 함께 입으시면 더욱 빛나실 거에요.”“저는 배 사모님이...”조유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귀빈실 소파에 앉아있던 배현수가 벌떡 일어났다.그녀가 물었다.“이거 예뻐요?”배현수는 훤히 드러난 가슴을 보더니 어두운 눈빛을 하고서 차갑게 말했다.“그냥 그래. 다음 거 입어 봐.”브이넥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는 조유진이 너무나도 야해 보였다.비록 그녀의 관능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혼자만 보고 싶었다.가게 직원은 어이가 없었다.‘이것이 그냥 그렇다고? 배 사모님보다 이 밍크 숄이 어울리는 사모님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어떤 사모님은 관리를 잘했어도 배 사모님처럼 청순하지 않아 이 밍크 숄을 입으면 촌스러웠는데. 배 사모님은 젊고 피부도 하얘서 하나도 촌스럽지 않아.’하지만 가게 직원은 반박할 수가 없어 그저 웃으면서 말했다.“이 옷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음 옷을 입어보세요. 디자인이 비교적 심플해요.”배현수는 심플하다는 원피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등이 다 드러나는데 심플하다고?’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무겁게 말했다.“배 사모님은 추위를 많이 타서 감기에 자주 걸리세요. 노출 없는 옷은 없어요?”“대표님, 밍크는 일반 재질보다도 더 따뜻해요.”그리고 지금은 비록 기온이 조금 떨어지긴 했어도 곧 10월이 다가오기 때문에 춥다고 할 수가 없었다.밍크 숄을 입으면 더울지도 몰랐다.배현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밍크 숄로 그녀의 새하얀 가슴을 가렸다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3화

    배현수의 시선은 카운터를 지나 블랙 타이트 끈 민소매 원피스에 고정되었다.가게 직원은 그가 몇 초간 이 원피스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더니 말했다.“배 사모님 어깨선이 이쁘셔서 끈 민소매 원피스를 입으시면 정말 예쁠 거예요. 추위를 타시면 밍크 숄과 함께 입든 어떻게 입어도 이쁠 거에요. 배 대표님, 한 벌 선물하실래요?”배현수는 살짝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제일 작은 사이즈요.”조유진은 비록 168cm의 큰 키였지만 약해서 S 사이즈밖에 입지 못했다.“네. 네 벌 함께 계산해드릴게요. 총 1억7,540만 원입니다.”배현수는 블랙 카드를 건네더니 말했다.“카드로 결제해주세요.”조유진이 환복을 마쳤을 때는 이미 결제가 끝났다.가게 직원은 입구까지 배웅하면서 공손하게 말했다.“배 대표님, 배 사모님, 나중에 가을 신상이 나오면 미리 말씀드릴게요. 오시기 불편하시면 제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맘에 드시는 옷 있으시면 직접 집까지 배송도 가능하답니다.”나중이면... 배현수와의 관계가 끝나 대제주시에 없을지도 몰랐지만, 조유진은 그래도 예의상 대답했다.“네.”배현수는 그녀를 쳐다보더니 그녀가 한 달이라는 약속 시간을 잊은 줄 알고, 그녀가 자신의 곁에 남아있기로 한 줄 알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때 조선유가 전화 와서 밀크티가 먹고 싶다면서 집에 돌아올 때 포장해오라고 말했다.배현수와 조유진은 그렇게 밀크티 사러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조유진도 목이 말랐는지 과일 티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더니 배현수에게 물었다.“뭐 마시고 싶어요?”배현수를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안 마실래.”“밖에 오래 있었는데, 목 안 마르세요?”그는 조유진을 담담하게 쳐다보더니 말했다.“목마르면 네 것 같이 마시면 되지.”“...”예전에 연애할 때도 데이트하면 큰 사이즈의 과일 티 하나만 주문했었다.배현수는 어차피 몇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개를 시키면 낭비였다.주문을 마친 조유진은 밀크티와 과일 티 두 잔을 나눠서 포장했다.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4화

    비록 야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차분한 모습에 시선이 더욱 많이 가는 것 같았다.조유진이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그를 밀쳐내자 배현수는 키스를 안 한 것처럼 행동했다.너무도 갑작스러운 키스에 조유진은 얼굴이 빨개졌다.“현수 씨...”“응?”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또 키스하고 싶어?”“...”조유진은 뻘쭘하기만 했다.“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거 옳지 않아요.”배현수는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그럼 이따 차에서 할까?”“...”‘그 뜻이 아닌데!’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던 배현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했다.조유진은 후다닥 한 계단 위로 올라가더니 그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배현수는 조유진보다 한 계단 아래에 서 있었지만 그래도 키가 커서 조유진보다 높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턱을 어깨에 기대고 마성적인 중저음으로 귀를 간지럽혔다.“차에서 키스할래 아니면 영화 보러 갈래?”“...”조유진은 쿵쾅쿵쾅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긴장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고개를 돌렸을 때 배현수의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오후에 일 안 해도 돼요?”오늘은 출근일이었지만 회사도 가지 않고 오전에 집에서 미팅만 했을 뿐이었다.맨날 바쁘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나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 해. 오늘 나머지 시간은 다 네 거야.”“회사에서 찾는 사람 없어요?”그러고 보니 온종일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너랑 있을 때는 아예 꺼버려.”조유진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지라 배현수의 말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1층에서 옷 사고 차에 두고 영화 보러 갈까요?”사실 배현수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지만, 조유진이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갈 뿐이었다.‘옷을 차에 두는 틈을 타 차에서 잠깐 키스하면 되겠네. 영화를 같이 보는 수고비랄까?’에스컬레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두 사람이 옷가게로 걸어가고 있을 때 조유진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엄창민이었다.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5화

    조유진이 갑자기 내뱉은 말에 배현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섹스를 맛본 남자한테 1년 동안 잠자리를 가지지 않고 자위만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조유진이 떠난 389일 동안 하루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하지만 전제는 그녀도 원한다는 것이었다.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봤을 때 원한다기보다 마치 임무를 완수하는 것 같이, 자신한테 보상해주려는 것처럼 보였다.배현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설마 이별 선물이야?”“...”그는 멈칫하더니 또 말을 이어갔다.“아니다, 우리 만난 적도 없는데 이별은 무슨? 이별 선물이 아니라면 뭔데? 조유진, 말해봐.”조유진은 이 한마디로 그가 격노할 줄 몰랐는지 다급하게 설명했다.“현수 씨한테 2,800억 원이나 빚졌는데 곁에 남아있기로 한 한 달 동안 무슨 짓이든 할수 있어요. 현수 씨가 원한다면요...”조유진은 배현수가 곁에 남아있으라고 한 한 달 동안 손만 잡고 포옹만 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전에 모른 척 한 것은 오랜만에 만나 습관이 안 되어 받아들일 수 없어 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신체접촉도 많아지고 약까지 먹어서인지 반응 정도가 줄었다는 것을 느꼈다.배현수는 그녀의 말을 끊더니 분노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는 당연히 하고 싶지.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어느 남자가 하기 싫겠어? 하지만 유진아.”그는 멈칫하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남은 10날 동안 이런 방식으로 나한테 보상해주고 위로해주려면 그만해. 10날 후 떠나고 싶다면 굳이 잡지 않을게.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거 알잖아. 몸으로 나랑 거래할 필요는 없어.”“이런 거래 안 해본 건 아니잖아요. 한 번 더 한다고 달라질 거 있어요?”조유진의 아무렇지 않게 말한 말은 비수처럼 배현수의 가슴에 꽂혔다.예전에 조유진을 미워했을 때 이런 거래를 한 것이 맞았다. 200만 원에 한 번씩 말이다.‘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배현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356화

    ”유진아, 제발 번복 좀 해줘. 아니면 현수 씨한테 얘기 좀 해줘. 번복하면 너를 다시용서해줄 거야. 제발 현수 씨한테 아빠랑 동생 감옥에서 꺼내 달라고 해줘. 대제주시에서 권력도 크신데 어려운 일도 아닐 거야!”조유진은 싫증 난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사람 잘 못 보셨어요. 저는 그분들을 살려낼 생각이 없으니 포기하세요.”정설혜는 쇼핑몰 청소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조씨 가문이 망한 뒤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인과응고이기도 했다.애인의 신분으로 조범과 안정희의 이혼을 부치기고, 아들 조영훈을 데려고 안정희 병실에서 우쭐거렸기 때문에 조유진은 그녀를 평생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퍽!조유진이 쇼핑백을 들고 떠나려고 하자 정설혜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쇼핑몰 1층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연기에 능한 정설혜는 조유진의 팔을 잡고 대성통곡하면서 말했다.“딸아,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동생은 나 몰라라 해도 아빠를 어떻게 감옥에서 고생시킬 수 있어? 너의 친아빠잖아! 혈연관계도 없는 남자 때문에 아빠랑 동생을 감옥에 처넣어? 어떻게 그렇게 독할 수가 있어!”조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당신 딸이 아니에요. 정설혜 씨, 이거 놔요.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남자한테 홀려가지고! 아빠랑 동생은 감옥에서 1년이나 콩밥 먹고 있는데!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너희 아빠 좀 구해줘. 제발!”이때 정설혜는 정말 체면도 차리지 않고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조유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말했다.“저는 이미 조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 잘 못 찾으셨어요!”정설혜가 그녀를 와락 덮치더니 말했다.“딸! 가지 마! 이 엄마를 모른 척 해도 아빠의 생사도 모른 척 하려고? 아빠는 감옥에서 앓고 있고 동생은 감옥에서 맨날 맞아만 대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

최신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