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진은 침대에 엎드려 어떻게 하면 조유진을 배현수 곁에서 떼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마당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핸드폰을 거두고 1층으로 내려가 봤더니 강이찬이 돌아온 것이었다.“오빠,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에 들어왔어?”‘오늘은 출근일 아닌가? 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강이찬은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지금 원주에 가려고.”“원주?”강이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그 자그마한 곳은 심미경 고향 아니야? 오빠, 정말 속아 넘어간 거 아니야? 직접 가서 데려오려고? 내가 말했잖아. 이거 그냥 그년 수작이라고. 밀당하는 거라고...”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이찬이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짐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왜? 원주에 가서 그년을 데려오는데 내가 왜 떠나야 해? 어디에 가 있으라고? 나 오빠 동생이야. 설마 길바닥에 나앉으라고?”분명 전에 심미경한테 강이찬이 데리러 가면 이름 석 자를 거꾸로 쓰겠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었지만 강이찬은 이번에 결심한 듯 단호하기만 했다.“너 24살이나 되었어. 어린 애가 아니야. 이진아, 독립할 줄도 알아야지. 이번에 밖에서 고생 좀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고생 한번 못 해봐서 이렇게 제멋대로야.”“내가 왜 고생을 해야 하는데? 오빠는 이 커다란 집에서 살면서 나는 왜 밖에 나가서 고생해야 하는데? 그래.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니까 이제 나를 괴롭히려고? 엄마 아빠가 알면 가만히 안 놓아둘 거야!”“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엄마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너 엄하게 키우는 거야. 지금도 이런데 내가 널 교육하지 않으면 나중에 엄마 아빠 볼 면목도 없어.”강이찬은 말을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 안방으로 가 짐을 정리했다.강이진은 제자리에서 화가나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강이찬!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야! 심미경이 일부러 덫을 놓은 거라고!”강이찬
강이찬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한다면 심미경이 따라서 결혼할 줄 알았던 것이다.유일하게 결혼할 수 없는 이유 단 한 가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이찬은 넋 놓게 되었다.‘예전에는 왜 이런 사람인 줄 몰랐지?’...산성 별장.장은숙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더니 물었다.“사모님, 이 옷 잘못 버린 거에요 아니면 정말 버리는 거예요? 새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잘 못 버릴까 봐 여쭤보려고요.”‘이거 내가 어제저녁 입었던 옷 아니야?’조유진은 자신이 세탁 바구니에 넣었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무의도에서 배현수는 무슨 취미 때문인지 조유진의 옷을 마구 버렸다.비록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대제주시로 올 때 옷을 몇 벌 안 챙겨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아직 10날이 남았는데 뭐 입지?’요 며칠 배현수는 전례 없는 자택 근무를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2층을 힐끔 보더니 바로 배현수를 찾으러 서재로 향했다.“현수 씨, 어제저녁 제가 입은 이 옷, 현수 씨가 버렸어요?”그녀가 갑자기 뛰쳐 들어와 이런 질문을 하자 배현수는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옷 몇 벌 따위 오후에 다시 사러 가면 되지.”조유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제 옷을 버렸어요?”“어제저녁 그 옷 신준우 가운에 닿았잖아. 가운에는 세균이 많아. 난 결벽증이 있다고.”조유진은 이 설명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어제저녁 신 선생님이 저를 안아서 제 몸에도 세균이 묻었는데 왜 저는 안 버렸어요?”“옷은 버려도 다시 사면 되지만 너를 버리면... 이 세상에는 두 번째 조유진이 없잖아.”담담한 말투에 굳이 뭐라 할 수가 없었다.배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오후에 쇼핑할 때 같이 갈까?”“일하고 있잖아요. 초윤이랑 사러 가면 돼요.”‘현수 씨 같은 성격에 쇼핑이나 할 인내심이 있을까?’“유진이는 왜 남초윤밖에 몰라?’배현수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피식 웃었다.“만약 법적으로 동성결혼이 허
“엄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대제주시는 집값도 비싸잖아. 일반 대학을 필업해서 몇십 년을 일해도 집 하나 못 사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향에서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밖에서 무슨 서러운 일을 겪었어?”“엄마, 서러운 일은 무슨.”조윤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공무원시험도 쉽지 않아. 너희 사촌 언니도 몇 해 동안 시험 봤는데 아직이야. 너는 영어를 잘하잖아. 영문 전업이기도 했고. 공무원시험을 보면 배웠던 거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어?”심미경도 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시통역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원주시로 돌아오려면 공무원이 낫다고 생각했다.“그건 아니야. 나중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으면 또 찾으면 돼.”조윤미는 이런 것에 대해 잘 몰랐다.“일단 생각 좀 잘해보고. 요즘 살이 빠진 것 같아. 아침에 달걀 좀 삶았는데 먹고 공부해.”조윤미는 달걀을 가져오더니 하나 까서 건네주었다.심미경은 달걀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하고 말았다.전에 통화했을 때 심미경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면서도 반년이 지나도 보여주지 않았고 매번 물어볼 때마다 일이 바빠서 나중에 함께 보러 오겠다고 했다.그리고 이번에 이유 없이 집에 돌아와 여기서 일하겠다면서 남자친구와 계속 만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 걸 보니 더욱더 이상하다고 느껴졌다.조윤미는 달걀 냄새에 헛구역질하는 것이 무슨 증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혹시 임신했어?”심미경은 속을 달래더니 급히 설명했다.“엄마, 그냥 속이 안 좋아서 그래.”“나를 속이려고? 나도 너 가졌을 때 달걀 냄새를 맡지 못했어. 솔직히 말해. 이 아이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 아이지?”심미경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조윤미는 침묵을 지키는 딸 모습에 흥분하면서 손찌검했다.“혼전임신이잖아! 이러면 이제 시집에서 얕볼 거란 말이야! 왜 그랬어! 미경아. 남자친구는? 왜 혼자 왔어?”조윤미는 심미경이 입을 열지 않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결국
조윤미는 심미경을 원주시에 있는 한 병원으로 데려갔다.이때 블랙 포르쉐 한 대가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운전하고 있던 진민우는 백미러로 힐끔 보더니 확신이 부족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 심미경 씨 본 것 같은데 맞아요?”강이찬은 심미경이 한 중년여성에 끌려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차 세워.”...병원 내부, 조윤미는 접수를 마치고 심미경과 함께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조윤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손을 꽉 잡았다.“미경아, 엄마 탓하지 마. 나는 너 다른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혼전임신에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릴 거라고. 너한테도 안 좋은 일이야. 이제 몇 살이나 되었다고 아이를 낳아.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인생, 이대로 발목 잡히게 할 순 없어.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이 아이 낳게 할 수 없어.”심미경은 창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조윤미가 자신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도망치지는 않았다.전에 아이를 지울까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정작 지우려고 하니 아쉬울 뿐이었다.심미경은 조윤미를 간절하게 쳐다보니 물었다.“엄마, 생각을 좀 더 해보면 안 될까?”“생각할 게 뭐 있어. 아이는 뱃속에서 하루하루 커가는데 시간을 지체할수록 너한테 안 좋아! 그 남자가 너랑 결혼해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면 몰라도. 아니면 이 아이 절대 낳을 수 없어!”‘결혼? 근데 이찬 씨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아이를 핑계 삼아 결혼해달라고 할 순 없잖아.’심미경이 중얼거렸다.“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이 아이 가질 수 없는 거야!”진료실에서는 심미경의 이름을 세 번째나 부르고 있었다.“3번 고객님 심미경 씨!”조윤미는 심미경을 끌고 진료실로 들어갔다.의사가 물었다.“어디 편찮으세요?”조윤미는 문을 닫더니 조용히 말했다.“의사 선생님, 저희 딸 임신했는데 이 아이 원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오늘 내로
강이찬은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미경 씨 책임질 테니 저랑 돌아가요.”“돌아가서 뭐해요? 이찬 씨, 저희는 이미 헤어졌어요.”강이찬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돌아가서 결혼해요.”...대제주시 쇼핑몰.조유진은 연한 브이넥 원피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나왔다.가게 직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밍크 숄을 하나 가져와 조유진 어깨에 걸쳐주었다.“배 사모님은 인물이 좋으셔서 이 브이넥 원피스에 밍크 숄을 함께 입으시면 더욱 빛나실 거에요.”“저는 배 사모님이...”조유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귀빈실 소파에 앉아있던 배현수가 벌떡 일어났다.그녀가 물었다.“이거 예뻐요?”배현수는 훤히 드러난 가슴을 보더니 어두운 눈빛을 하고서 차갑게 말했다.“그냥 그래. 다음 거 입어 봐.”브이넥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는 조유진이 너무나도 야해 보였다.비록 그녀의 관능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혼자만 보고 싶었다.가게 직원은 어이가 없었다.‘이것이 그냥 그렇다고? 배 사모님보다 이 밍크 숄이 어울리는 사모님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어떤 사모님은 관리를 잘했어도 배 사모님처럼 청순하지 않아 이 밍크 숄을 입으면 촌스러웠는데. 배 사모님은 젊고 피부도 하얘서 하나도 촌스럽지 않아.’하지만 가게 직원은 반박할 수가 없어 그저 웃으면서 말했다.“이 옷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음 옷을 입어보세요. 디자인이 비교적 심플해요.”배현수는 심플하다는 원피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등이 다 드러나는데 심플하다고?’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무겁게 말했다.“배 사모님은 추위를 많이 타서 감기에 자주 걸리세요. 노출 없는 옷은 없어요?”“대표님, 밍크는 일반 재질보다도 더 따뜻해요.”그리고 지금은 비록 기온이 조금 떨어지긴 했어도 곧 10월이 다가오기 때문에 춥다고 할 수가 없었다.밍크 숄을 입으면 더울지도 몰랐다.배현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밍크 숄로 그녀의 새하얀 가슴을 가렸다
배현수의 시선은 카운터를 지나 블랙 타이트 끈 민소매 원피스에 고정되었다.가게 직원은 그가 몇 초간 이 원피스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더니 말했다.“배 사모님 어깨선이 이쁘셔서 끈 민소매 원피스를 입으시면 정말 예쁠 거예요. 추위를 타시면 밍크 숄과 함께 입든 어떻게 입어도 이쁠 거에요. 배 대표님, 한 벌 선물하실래요?”배현수는 살짝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제일 작은 사이즈요.”조유진은 비록 168cm의 큰 키였지만 약해서 S 사이즈밖에 입지 못했다.“네. 네 벌 함께 계산해드릴게요. 총 1억7,540만 원입니다.”배현수는 블랙 카드를 건네더니 말했다.“카드로 결제해주세요.”조유진이 환복을 마쳤을 때는 이미 결제가 끝났다.가게 직원은 입구까지 배웅하면서 공손하게 말했다.“배 대표님, 배 사모님, 나중에 가을 신상이 나오면 미리 말씀드릴게요. 오시기 불편하시면 제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맘에 드시는 옷 있으시면 직접 집까지 배송도 가능하답니다.”나중이면... 배현수와의 관계가 끝나 대제주시에 없을지도 몰랐지만, 조유진은 그래도 예의상 대답했다.“네.”배현수는 그녀를 쳐다보더니 그녀가 한 달이라는 약속 시간을 잊은 줄 알고, 그녀가 자신의 곁에 남아있기로 한 줄 알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때 조선유가 전화 와서 밀크티가 먹고 싶다면서 집에 돌아올 때 포장해오라고 말했다.배현수와 조유진은 그렇게 밀크티 사러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조유진도 목이 말랐는지 과일 티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더니 배현수에게 물었다.“뭐 마시고 싶어요?”배현수를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안 마실래.”“밖에 오래 있었는데, 목 안 마르세요?”그는 조유진을 담담하게 쳐다보더니 말했다.“목마르면 네 것 같이 마시면 되지.”“...”예전에 연애할 때도 데이트하면 큰 사이즈의 과일 티 하나만 주문했었다.배현수는 어차피 몇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개를 시키면 낭비였다.주문을 마친 조유진은 밀크티와 과일 티 두 잔을 나눠서 포장했다.
비록 야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차분한 모습에 시선이 더욱 많이 가는 것 같았다.조유진이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그를 밀쳐내자 배현수는 키스를 안 한 것처럼 행동했다.너무도 갑작스러운 키스에 조유진은 얼굴이 빨개졌다.“현수 씨...”“응?”배현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또 키스하고 싶어?”“...”조유진은 뻘쭘하기만 했다.“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거 옳지 않아요.”배현수는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그럼 이따 차에서 할까?”“...”‘그 뜻이 아닌데!’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던 배현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했다.조유진은 후다닥 한 계단 위로 올라가더니 그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배현수는 조유진보다 한 계단 아래에 서 있었지만 그래도 키가 커서 조유진보다 높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턱을 어깨에 기대고 마성적인 중저음으로 귀를 간지럽혔다.“차에서 키스할래 아니면 영화 보러 갈래?”“...”조유진은 쿵쾅쿵쾅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긴장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고개를 돌렸을 때 배현수의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오후에 일 안 해도 돼요?”오늘은 출근일이었지만 회사도 가지 않고 오전에 집에서 미팅만 했을 뿐이었다.맨날 바쁘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나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 해. 오늘 나머지 시간은 다 네 거야.”“회사에서 찾는 사람 없어요?”그러고 보니 온종일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너랑 있을 때는 아예 꺼버려.”조유진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지라 배현수의 말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1층에서 옷 사고 차에 두고 영화 보러 갈까요?”사실 배현수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지만, 조유진이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갈 뿐이었다.‘옷을 차에 두는 틈을 타 차에서 잠깐 키스하면 되겠네. 영화를 같이 보는 수고비랄까?’에스컬레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두 사람이 옷가게로 걸어가고 있을 때 조유진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엄창민이었다.
조유진이 갑자기 내뱉은 말에 배현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섹스를 맛본 남자한테 1년 동안 잠자리를 가지지 않고 자위만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조유진이 떠난 389일 동안 하루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하지만 전제는 그녀도 원한다는 것이었다.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봤을 때 원한다기보다 마치 임무를 완수하는 것 같이, 자신한테 보상해주려는 것처럼 보였다.배현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설마 이별 선물이야?”“...”그는 멈칫하더니 또 말을 이어갔다.“아니다, 우리 만난 적도 없는데 이별은 무슨? 이별 선물이 아니라면 뭔데? 조유진, 말해봐.”조유진은 이 한마디로 그가 격노할 줄 몰랐는지 다급하게 설명했다.“현수 씨한테 2,800억 원이나 빚졌는데 곁에 남아있기로 한 한 달 동안 무슨 짓이든 할수 있어요. 현수 씨가 원한다면요...”조유진은 배현수가 곁에 남아있으라고 한 한 달 동안 손만 잡고 포옹만 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전에 모른 척 한 것은 오랜만에 만나 습관이 안 되어 받아들일 수 없어 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신체접촉도 많아지고 약까지 먹어서인지 반응 정도가 줄었다는 것을 느꼈다.배현수는 그녀의 말을 끊더니 분노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는 당연히 하고 싶지.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어느 남자가 하기 싫겠어? 하지만 유진아.”그는 멈칫하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남은 10날 동안 이런 방식으로 나한테 보상해주고 위로해주려면 그만해. 10날 후 떠나고 싶다면 굳이 잡지 않을게.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거 알잖아. 몸으로 나랑 거래할 필요는 없어.”“이런 거래 안 해본 건 아니잖아요. 한 번 더 한다고 달라질 거 있어요?”조유진의 아무렇지 않게 말한 말은 비수처럼 배현수의 가슴에 꽂혔다.예전에 조유진을 미워했을 때 이런 거래를 한 것이 맞았다. 200만 원에 한 번씩 말이다.‘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