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선유가 이 차에 앉았는지는 잘 몰랐다.배현수는 마이바흐에 자주 앉아 다녔으니까.그리고 오늘 서정호가 몰고 나온 건 롤스로이스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현수가 포장지도 뜯지 않은 초콜릿을 조유진 손에 건네주며 가볍게 웃고 차갑게 얘기했다.“심미경 씨가 깨어나면 너한테 절이라도 하겠어.”“...”사람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게다가 심미경에게는 아이도 있으니...심미경을 살리려는 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그저... 심미경을 보면서 예전에 본인이 임신했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비슷한 처지라서 더욱 마음이 이상했다.조유진도 혼자 아이를 키웠었으니 심미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게다가 심미경은 낯선 사람도 아니고 배현수의 친구의 약혼녀다.배현수는 핸드폰을 꺼내 강이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강이찬의 약혼녀니까, 직접 와서 챙겨주라고 할 생각이었다.배현수는 심미경을 챙겨줄 의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다.하지만 조유진이 그를 말리며 얘기했다.“일단 강이찬 씨한테 연락하지 마요. 미경 씨가 깨어나면 그때 다시 봐요.”심미경이 강이찬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으니까...이 저녁에, 임신한 심미경이 혼자 캐리어를 끌고 길가에 쓰러졌다는 건 강이찬과 헤어졌다는 것이다.그 이유는 조유진도 잘 모르지만 여자의 촉이 알려주고 있었다. 심미경과 강이찬이 크게 싸웠다고 말이다.그렇지 않으면 임신한 상태로 나오지 않았겠지.그 어떤 여자도 임신했을 때 혼자 길바닥에 쓰러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조유진은 초콜릿을 심미경 입 안에 넣어주며 얘기했다.“미경 씨, 내 말 들려요?”심미경은 반쯤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여기... 어디...”“길에서 쓰러졌어요. 우리가 지금 병원으로 데려다줄게요. 그... 강이찬 씨한테 연락해 줄까요?”강이찬의 이름을 들은 심미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쉰 목소리로 애걸복걸했다.“아니요, 제발, 제발 이찬 씨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요. 우린 이미 헤어졌어요.”“헤
심미경은 저번에 병원에서 조유진, 남초윤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 후에 조유진과 남초윤은 심미경이 임신했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심미경은 조유진이 입도 무겁고 약속도 잘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심미경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오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샀는데, 마침 가는 길에 저혈당이...”“고향이요? 어딘데요?”“원주요.”조유진은 원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작은 곳이지만 경치가 좋은 곳이다.“원주는 경치가 좋죠.”심미경은 웃으면서 얘기했다.“맞아요. 만약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배 대표님이랑 원주로 여행 오셔도 돼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고향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에요?”심미경은 조유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솔직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고향에 가서 쉬고 싶어요. 나중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잠시 도망치고 싶어요.”배현수의 눈은 차갑게 번뜩였다.“미경 씨가 도망치면 아이는요? 낙태할 겁니까, 낳을 겁니까?”솔직한 말을 듣기 거북했다.심미경은 그 말에 한참이나 대답하지 못했다.조유진이 분위기를 풀려고 손을 뻗어 심미경의 팔을 두드리며 위로했다.“신경 쓰지 마요. 원래도 저렇게 말하는 편이라.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면 천천히 생각해 봐요.”배현수는 여전히 차갑게 그곳에 서 있었다.그는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귀찮은 일에 연루되는 것도 질색이었다. 하지만 임신을 숨기는 심미경의 행동이 마치 그때의 조유진 같아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거친 말을 내뱉고 말았다.심미경의 태도를 봐서는 아이를 지울 것 같지는 않았다.그럼 아이를 낳겠다는 건데.그는 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애를 낳으면, 키울 능력은 있습니까?”조유진은 아이를 낳고 식물인간이 된 안정희까지 챙기면서, 배현수의 압박하에 방송국의 직장도 잃고 6년간 힘들게 살아왔다.배현수는 조유진이 그 6년을 어떻게 버텨온 것인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조선
“내가 미경 씨를 구한 건 나도 전에 홀로 아이를 키워봐서 알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경 씨, 잘 생각해야 해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현수 씨의 말이 좀 거북하긴 해도 사실이에요. 미경 씨와 강이찬 씨는 나와 현수 씨의 상황과는 달라요. 적어도 서로 원수는 아니잖아요. 강이찬 씨가 임신 소식을 알게 되면 엄청 기뻐할 거예요.”원수?심미경은 조유진과 배현수의 일을 조금만 알 뿐,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저번에 강이진의 말을 들어보니 조유진 어머니의 죽음이 미심쩍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감히 판단하기 어려웠다.강이진은 싫지만 증거도 없이 강이진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하여튼 심미경은 자기를 살려준 조유진에게 아주 감사했다.심미경이 조유진에게 물었다.“조유진 씨, 배 대표님과는 언제 결혼할 생각이에요?”“아니요. 지금 전 그저 선유의 엄마일 뿐이에요. 현수 씨도 그저 선유의 아빠일 뿐이에요. 우리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정말 결혼할 수도 없고요.”조유진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어차피 한 달이 되면 두 사람은 갈라져야 한다.그때가 되면 다들 알게 될 것이니 숨길 수 없다.‘유진 씨 어머니의 죽음 때문일까?’심미경은 강이진에게서 조유진과 배현수는 조유진 엄마의 죽음 때문에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자세한 이유는 심미경도 몰랐다.하지만 먼저 물을 수도 없었다. 이건 그들의 사생활이니 너무 자세히 알려고 들면 실례가 될 것이다.게다가 그저 추측일 뿐, 증거도 없으니 이간질을 해서는 안된다.수액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조유진이 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와서 수액을 교체했다.시간은 어느새 열한 시가 되었다.심미경은 조유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해 죄스럽게 얘기했다.“전 이제 괜찮아졌어요. 이만 돌아가셔도 돼요. 혼자라도 괜찮아요. 배 대표님과 일 보러 가세요.”조유진도 갈 생각이었다. 심미경을 간호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배현수가 짜증을 낼까 봐서였다.배현수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
일 년 전, 조유진의 소식이 갑자기 끊겼다. 영문을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친한 친구인 남초윤은 단순히 그녀의 우울증이 재발했다고만 얘기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아 신준우는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그래서인지 신준우는 다시 만난 조유진이 너무 반가웠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는 것에 무한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조유진에게로 달려간 신준우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얘기했다.“살아있었구나, 정말 살아있었어!”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던 신준우를 조유진이 밀어내려던 참이었다.그 순간 한 남성의 차디찬 음성이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그 소리를 들은 신준우는 그제야 끌어안고 있던 조유진을 놓아주고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조유진은 배현수의 곁으로 걸어가 상황을 설명했다.“신 썜이 오랜만에 저를 만난 게 너무 기쁘셨나 봐요. 소식이 아예 끊겨서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셨으니까요.”“기쁘다고 함부로 막 끌어안고 그래도 되나?”남자의 눈빛은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웠다.신준우는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었다.신준우는 조유진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신준우는 그 장례식 장소였던 남산 추모공원에서 배현수를 마주쳤었다.장례식에서 한 번 마주치고 만 사이였지만 신준우는 이 남자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친해지기 힘든 성격일 것이 분명했을 텐데 조유진이 대체 어떻게 이런 남자와 함께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둘 사이에 이미 선유라는 이름의 아이까지 있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 정도 성격이면 아무도 배현수와 잘 지내려고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신준우 역시, 서글서글한 유순한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약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배현수의 말이 거슬렸던 신준우가 바로 맞받아쳤다.“그저 친구 사이의 간단한 웰컴 포옹이었습니다만.”배현수가 가볍게
“그게 아니라면, 뭐 신준우 도와서 복수라고 할 건가?”조유진은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한번 물었다.“그럼 지금은 또 어떻게 대제주시 제일 병원으로 돌아온 거죠? 이것도 현수 씨가 시킨 거예요?”그 질문에 배현수는 여전히 초연한 태도로 솔직하게 대답했다.“맞아.”그녀가 바다로 뛰어든 뒤, 신준우가 그녀를 구해줬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던 배현수가 대제주시 제일 병원 원장을 찾아가 지시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온전히 배현수의 덕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그래도 그 인간, 제일 병원이 키워낸 능력 있는 유망주였어. 내가 아니어도 제일 병원 쪽에서 언제든지 나 몰래 다시 데리고 왔을 거야.”“......”배현수의 초연하고도 당당한 태도에 얼이 빠져버린 조유진은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왜 그런 거예요? 그때 현수 씨가 저를 싫어해서 어디 한번 당해봐라 싶은 마음으로 그런 거예요? 하지만 신 선생님은…….”조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현수의 말이 들려왔다.“유진아, 남자가 제대로 질투를 시작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어. 만약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안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거야.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 난 단 한 번도 신준우를 내 경쟁 상대로 생각해본 적 없으니까.”강이찬도 아니었고 신준우도 아니었고 엄창민도 아니었다.하지만 경쟁 상대가 없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편한 것은 또 아니었다.“......”조유진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검은 롤스로이스가 빠른 속도로 산성 별장에 들어서자 배현수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만약 신준우가 널 살렸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었다면 방금 널 끌어안았던 신준우 그 두 손, 내가 아작내버렸을 거야.”배현수의 말을 다르게 해석해보면 그는 조유진을 봐서라도 신준우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배현수는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음에도.두 사람이 한창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시기에
대제주시의 새벽 세 시, 그 시각 강이찬은 생각에 잠겨있었다.며칠 동안이나 밤을 새운 그는 차창을 내렸다. 대제주시의 맑은 가을 새벽 공기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와 달아오른 그의 뺨을 식혔다.찬 바람을 맞으니 어느 정도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심미경이 꺼낸 헤어지자는 말이 홧김에 내뱉은 말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는 이미 수십 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심미경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있었다.만약 심미경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심미경은 1년 가까이 강이찬과 함께 하며 단 한 번도 순종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강이찬 역시 그런 심미경과 함께하며 그녀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던 참이었다.요리 실력이 뛰어났던 심미경은 강이찬이 입맛이 없을 때마다 그에게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대접했었다. 그런 심미경 덕에 강이찬은 꽤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었다.어찌 됐든 그는 일상 속에서 심미경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침대 위에서든 어디에서든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그가 사적인 연회 때문에 늦게 귀가할 때도 심미경은 짜증 한번 낸 적 없이 묵묵히 늦게 귀가한 그를 챙겨줬었다.강이찬은 심미경을 떠올리며 그녀가 정말 좋은 여자친구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실제로 정말 좋은 여자친구였고 좋은 결혼 상대였다. 하지만 강이찬은 그녀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되지 못했다.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었던 것도 모자라 첫 만남 때는 일부러 대놓고 그녀를 무시하며 시비를 걸기도 했었다.운전석에서 운전하고 있던 진민우가 백미러로 강이찬을 바라보며 못 참겠다는 듯 얘기했다.“사장님, 저희 이미 대제주시를 이미 세바퀴나 돌았는데도 미경 아가씨 그림자도 안 보이는데, 계속 찾으실 거예요?”강이찬은 체념했다는 듯 비서에게 얘기했다.“경찰에 실종 신고해.”그 말을 들은 비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되물었다.“네?”실종 신고요? 진심이세요?진민우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하지만 아직 2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강이찬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왼쪽에 누워있을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미경아….”하지만 만져지는 것은 사람의 형체가 아닌 사람의 온기가 없어 차갑게 식어있는 침대 시트였다.“미경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이찬은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텅 비어버린 자신의 옆자리를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심미경이 자신을 떠났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까먹어버린 것이었다.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방을 나섰다.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강이찬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강이진과 부딪쳤다. 집으로 돌아온 강이진은 어둠 속에서 자신과 부딪친 강이찬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오빠! 여기서 뭐해!”강이찬이 미간을 찡그리며 차갑게 물었다.“어디서 뭘 하다 왔길래 이렇게 늦게 들어와?”강이진은 손에 들고 있던 신상 명품백을 내팽개치며 대답했다.“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말이야. 친구들이랑 클럽에서 기분 전환 좀 하고 왔어. 근데 오빠는 아직도 안 자고 뭐 해?”“목말라서, 물 마시러 내려온 거야.”“이런 건 심미경 시키면 되잖아. 왜 직접 내려와? 심미경은 어쩌고? 이렇게 취했는데신경도 안 쓴다고? 내가 이 년을 진짜…. 오빠, 걱정하지 마. 내일 날 밝는 대로 내가 얘기 좀 해야겠어. 이게 정신상태가 아주 빠져가지고.”강이진마저 심미경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어제 심미경이 이미 집을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술기운에 까먹어버린 듯했다.그게 아니라면, 그녀 역시 강이찬처럼 심미경이 객기 좀 부리다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심미경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강이진의 말을 듣고 있던 강이찬은 얼빠진 사람처럼 거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강이진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강이찬은 주방으로 걸어가 컵에 물을 따랐다. 컵에 담긴 물을 절반 정도 마시고 왜인지 모르게 화가 치
“너무 작아서요.”작은 휴대폰 화면 속의 여섯 글자에 배현수의 눈앞이 캄캄해졌다.배현수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그 순간 알림창으로 카톡 알림이 떴다. 저장명이 ‘육 개새끼’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술 마시러 안 나올래?]배현수는 의아하다는 듯 답장을 보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새벽 네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동이 트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이런 새벽 시간에 술자리로 불러내는 것이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육지율의 생활패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너 어차피 지금 안 잘 거잖아, 아니야? 방금 열 명한테 카톡 보냈는데 답장한 게 너밖에 없어.]이 새벽에 술 마실 사람 찾겠다고 열 명한테나 메시지를 보내는 노력이 가상했다.어장관리 하는 남자들이나 하는 짓을 왜 본인 친구가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답장하기 귀찮아진 배현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육지율에게서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날아왔다.[이 시간까지 자지도 않고 뭐하는데, 술 마시러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오고. 뭐, 조유진이랑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놀이라도 하시나?]알림창을 확인한 배현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엎치락뒤치락은 개뿔. 이 넓은 침실에 혼자 있구만.생각해보니 또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여자친구가 뽀뽀도 하고 포옹도 다 해주면서, 동침은 절대 안 하려는 이유가 뭘까?][조유진이 같이 자기 싫대?]의도치 않게 뼈를 맞아버린 배현수는 또다시 침묵을 이어갔다.[밀당 하는 거지 뭐. 이거 은근 남자 소유욕 자극하는 데는 짱이거든. 뭐, 좀 재밌기도 하고. 근데 이게 또 질질 끌면 너무 지루해져. 왜, 조유진이 얼마나 끌고 있길래 그래?][이때까지 한 번도 건드린 적 없어.][...야, 내가 솔직히 말해줄게. 조유진 이거 진짜 쓰레기네. 밀당을 해야 하는데 밀기만 하고, 나빴다. 내가 봤을 땐 전에 술집까지 너 데리러 왔던 그 여자분이랑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냥 갈아타.